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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웃은 누구인가

나는 개뿔도 아니다. 그저 쓸데없는 관찰력과 글쟁이로서 갖춘 넓고 얕은 지식, 그것이 전부다. 또한 사람에 대한 관심이 많고 그들의 침실 인테리어까지 궁금해한다. 내게는 그다지 친하지는 않지만, 얼핏 외계인 또는 좀비로 느껴지는 이웃들이 있다. 그들이 요즘 부쩍 내 눈에 띈다.<br><br>[2008년 9월호]

UpdatedOn August 21, 2008

Words 이책(<롯데 옴므> 편집장)

촛불소년

외모 넓은 이마, 은테 안경, 홑꺼풀의 뱀눈, 가는 입술은 양 끝이 살짝 올라갔다. 주머니가 주렁주렁 달린 카고 팬츠를 입은 모습을 볼 수는 없다. 언제나 복고풍 면바지나 단정한 일자 청바지에 장식 없는 셔츠를 입는 대신 신발은 컨버스화만 신는다.

행동 동네에서 말이 없는 그는 지난여름 내내 시청 앞 촛불문화제에 참가했다. 현장에서 그의 태도는 상대적으로 과격한 편이며, 집에 돌아가면 그날의 집회 정리 보고서를 아고라에 매일 올리는 열성 필자로 활동 중이다. 주말에는 책 읽기와 모형 나무 범선 조립에 열중한다.

대화 모든 관심이 시민운동에 있는 것 같았는데 뜻밖에도 조립, 여자친구, 오르지 않는 수학 성적 등이 관심거리였다. 아고라에 열중한 것 또한 당장의 관심과 논리력 향상을 위한 수단의 하나라고 말했다.

그에게 발생할 것 같은 극적 사건 훗날 정치인이 되어 이성이 파괴되고 야합에 무감각해지는 불상사.

가임기 종말에 다다른 40대 미스 신
외모 생머리에 깡마른 체격이다. 뼈에 살이 붙어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날씬하고 당당한 커리어우먼 필이 가득하다.

행동 가장 소중한 것은 자신의 창문이다. 그것을 열면 푸른 숲 액자가 되기 때문이다. 그의 관심은 오직 창문 꾸미기에 있다. 내가 알기로 그녀의 창틀은 1년에 두 번쯤 바뀐다. 술 매너 좋은 남자에게서 전화가 오면 기쁜 마음으로 단장을 하지만 섹스까지 이어지는 일은 거의 없다. ‘미스 신’이라고 부르면 사단이 난다.

대화 마흔 살이 되던 해 자살 충동을 느꼈다고 한다. 이제 곧 폐경기를 맞게 될 자신을 생각하면 히스테리가 일어나지만, 남자와 잠자리를 하거나 결혼에 대한 용기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연하남들이 가끔 집적거리는 것이 이제는 오히려 위로가 된다며 씁쓸히 웃는다.

그에게 발생할 것 같은 극적 사건 그녀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남자와의 전격 결혼 그리고 파경.

호러(Horror) 소년 또는 호로 자식
외모 물고기 대가리같이 가늘고 긴 머리엔 언제나 격자무늬 테두리가 있는 중절모를 쓰며 짙은 아이라인은 팝페라 가수 느낌이다. 언제나 검은색 재킷에 체인으로 제 몸을 감고, 무더운 8월에 하이톱 스니커즈를 신고 있다.

행동 놀토와 일요일이면 어김없이 홍대 앞에 나가서 거의 똑같이 생긴 애들과 만나 기꺼이 거리 패션쇼를 벌이고 함께 밥 먹고 카페에 가고 담배 피우며 지낸다. 최근에는 바퀴 달린 여행용 가방을 끌기 시작했다.

대화 피로 물든 세상과 피를 채운 욕조, 피비린내 나는 소나기가 내리는 세상을 생각한다고 말했다. 세상이 미워서가 아니라 그게 아름답다고 했다. 이런 생활이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펑크 경험이 인생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그에게 집이란 잠자고 용돈 받는 곳일 뿐이다.

그에게 발생할 것 같은 극적 사건 불량배들의 린치 또는 부모에 의한 감금과 강제 삭발 사태.

억만장자 보물 장수
외모 작은 입, 예리하고 찢어진 눈, 깡마른 체구에 큰 키, 한국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세련된 옷과 신발은 그의 나이를 가늠할 수 없게 한다.

행동 일년에 1백 일 이상을 유럽 여행에 몰두한다. 여행은 주로 현지 에이전시로부터 온 연락에 의해 시작된다. 그를 움직이게 하는 정보는 유럽 고택의 철거 또는 오래된 관공서의 수리 소식이다. 유럽에 갈 때마다 그는 앞으로 한국 땅에서 보물이 될 유럽의 고물을 컨테이너에 실어 보낸다.

대화 그는 돈 많은 좌파를 꿈꾼다. 문화 예술을 공부하는 사람들을 체계적으로 도와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유럽 문화를 수입하는 것에서 머물지 않고 유럽의 좌파적 가치를 배우고 싶어한다. 평소 그는 자신이 경영하는 카페에 찾아온 사람들과 문화 토론을 하며 대부분 시간을 보낸다.

그에게 발생할 것 같은 극적 사건 빠른 사세 확장으로 좌파적 인사가 아닌 재벌과 교류하는 컬렉터가 되어 안주해버리는 것.

해외여행에 미친 전직 기자
외모 티베트 사람처럼 생겼다. 얼굴선이 굵고 눈은 찢어졌지만 수려한 느낌이다. 브랜드 옷을 입지 않지만 눈에 띄는 컬러와 스타일을 고수한다.

행동 주말에도 일에 빠져 산다. 프리랜서 필자로서 취재 및 기고 활동, 스타일리스트로서 화보 진행 활동, 마케터로서 홍보 대행 등 그녀의 일은 끝이 없다. 그렇게 번 돈을 대부분 해외여행 비용으로 탕진한다.

대화 이제는 정착을 꿈꾸고 싶지만, 여전히 가고 싶은 곳이 많은 걸로 보아, 여행중독증 단계에 와 있다고 스스로 판단하고 있다. 매력적 유혹이지만 여성으로서의 본능과 가정 만드는 시기를 영영 놓칠까 불안하기도 하다.

그에게 발생할 것 같은 극적 사건 사건이랄 건 없지만, 어느 날 그녀가 여행에서 돌아온 뒤 가족에게 이스탄불 남자와 결혼을 선언하고 한국을 떠나는 것.

아침마다 교통정리하는 55세 아저씨
외모 칼처럼 각을 세운 전투 모자와 ‘라이방 선글라스’, 얼룩무늬 군복에 광이 번쩍번쩍 나는 군화. 꼿꼿한 허리와 강단 있는 태도. 동네에서 만난 선글라스 속의 눈동자는 꼬리가 처져 있었고 하악관절이 조금 튀어나온 합죽이다.

행동 아파트단지를 점령지쯤으로 생각한다. 애들은 물론 어른들의 행동에 간혹 간섭을 함으로써 스스로 혈압을 올리곤 한다. 정작 본인은 아무 곳에서나 흡연과 침 뱉기를 서슴지 않는다.

대화 인간은 죽을 때까지 학생이며, 따라서 어른과 선배는 아이들을 끝없이 훈육해야 하며 동년배를 위한 질서 의식 함양에도 힘써야 한다고 말한다. 조선놈들은 맞아야 정신을 차린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본인의 가래침 얘기를 꺼내자 절대 그랬을 리가 없다며 목에 핏대 지름을 세 배 이상 확장하면서 성질을 부린다. 자칫 맞을 뻔했다.

그에게 발생할 것 같은 극적 사건 훈육 제로(Zero) 불량 청소년의 극단적 린치, 또는 추석날 교통정리 봉사활동 중 운전자에 대한 지나친 간섭 중 자동차에서 내린 시민과의 한판 격투기.

멀티미디어 숭배 부부
외모 주말에만 얼굴을 볼 수 있는 그들은 시장표 야구모자에 청바지 차림으로 함께 외출한다. 남편은 두툼한 콧수염을 기른 훤칠한 사람이었고 부인은 미인은 아니지만 글래머러스한 매력녀다.

행동 주말마다 전자제품 백화점에 가서 새로 나온 멀티미디어 제품을 구경한다. 멀티미디어 체험단에 참가, 얼리어답터로서 행복을 만끽한다. 그들은 밤마다 거실에서 테니스 게임에 열중하는데, 그 소음의 폐해가 말할 수 없이 끔찍하다.

대화 그들은 한 집에서도 각자 노트북을 갖고 놀며, 대화도 거의 공짜 문자 서비스를 이용한다. 멀티미디어야말로 부부에게 섹스 이상의 즐거움이며 놀이다. 그들은 아무런 운동도 하지 않는다.

그에게 발생할 것 같은 극적 사건 결국 주택 구입에 실패, 평생 집세를 내며 살게 되는 주거 환경, 또는 3년 뒤 부부 비만으로 삶의 모든 활력이 사라지는 불행. 그들은 내 집 바로 위층에 사는데, 위(wii) 테니스를 즐기다 거실 바닥에 구멍을 낼 수도 있다.

필리핀 출신 불법 취업 가정부
외모 작은 키에 비해 비만으로는 보이지 않는 굵은 몸, 선량해 보이는 눈동자가 슬퍼 보이는 것은 관찰자의 편견. 잘 웃는 얼굴, 언제나 똑같은 옷과 가방.

행동 비교적 깨끗한 방을 사양하고 그 큰 집에서 가장 작고 초라한 방에서 십자가와 성경책을 머리맡에 두고 산다. 가정주부의 모든 일을 하며 일요일이면 주인 할머니와 성당과 코스트코에 가는 게 유일한 외출이다. 필리핀 가족과 통화하는 날은 일요일 밤이다.

대화 비자를 새로 만드는 일이 귀찮고 비용도 많이 들기 때문에 스스로 불법을 자처했으며, 필리핀에 있는 어머니, 동생들이 자신이 보내는 돈으로 비교적 잘살고 있으므로 행복하다고 했다. 한국에서 필리핀 사람과 친하게 지낸 적은 없으며 그다지 원하는 일도 아니라고 했다.

그에게 발생할 것 같은 극적 사건 50대 중반에 접어든 그녀가 끝내 고향인 필리핀의 앙겔라스에 돌아가지 못하고 한국에서 유명을 달리하는 것.

대중교통만으로 출퇴근하는 204호 아저씨
외모 약간의 사각턱에 살짝 찢어진 눈. 175cm 정도의 키, 적당히 나온 배, 어깨에는 가방 하나. 주중 주말 가리지 않고 늘 파크랜드나 GO2 같은 중저가 브랜드만 입는다. 하지만 구두만큼은 세련된 라인이라 믿고 있는 리갈을 즐겨 신는다. 늘 오전 7시에 버스정류장에 나타나는 그의 표정에는 무언가 비장함이 담겨 있다.

행동 일주일 내내 자정 넘어 퇴근하는 그는 가족과 거의 대화를 하지 않으며 일요일에는 언제나 자전거를 타고 호수공원을 라이딩한다. 오후에 집으로 돌아온 그는 자전거를 구석구석 닦고 조이고 기름칠한 뒤 드디어 가족과 함께 집안일을 한다. 이때 그의 복장은 거의 사각팬티 바람이며 1층 길거리에서 자신의 모습이 보인다는 점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대화 이사를 가지 않는 이유는 직장이 언제 사라질지 모르기 때문이며, 가장은 오로지 희생정신 하나로 살아가는 존재라고 말한다. 믿을 건 자신의 몸뚱이 하나뿐이고, 희망이랄 것도 없는 비전은 자식들 무사히 키우고 일몰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라고 했다.

그에게 발생할 것 같은 극적 사건 정치 논쟁 중 극렬한 폭력 사태에 휘말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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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Words 이책(<롯데 옴므> 편집장)

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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