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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만 쌓이네

내가 늙어서 그들의 감성을 이해 못하는 걸까.” 가사를 쓰는 남편이, 대중가요의 가사를 쓰는 남편이 말했다. 가요의 주소비자가 변했다고 했다. 사람들은 변했다고. 아무도 문학을, 아무도 글을, 아무도 시를 읽지 않는다고. <br><Br> [2008년 6월호]

UpdatedOn May 26, 2008

 

이런 걸 뭐 자랑이라고 대놓고 말하는지 모르겠다.
공식적으로 편집부의 모든 콘텐츠가 하나의 보따리에 싸여 인쇄소로 넘어가는 날은 16일에서 17일로 넘어가는 이른 새벽.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는 인간은 표지부터 라스트띵에 이르는 모든 페이지를 고이 접어 인쇄소로 넘긴 후, 그러고도 한숨 푹 자고 나서야 편집장의 글(바로 이글)을 쓰기 위해 PC 앞에 앉는다. 이날은 그러니까 기자들이 한 명도 출근하지 않는 날이며 <아레나> 사무실의 체감 온도가 2~3℃ 정도 내려간 날 되겠다. 마감 열병을 앓던 나의 부서원들이 모두 귀가한 후의 사무실은 그때서야 정상 체온을 되찾는다. 신열이 내린 사무실은 그야말로 적막강산. 이제야 비로소 시계추도 온정신이 돌아온다. 마감 중의 시계추는 머리에 꽃만 안 달았지, 그야말로 미친년이다. 어찌나 촐싹거리며 널을 뛰는지 아귀 한 대 쳐서 기절시키고 싶은 심정이 들 정도니까.
아, 그러니까 지금은 5월 하고도 17일 하고도 오전 10시. 
나는 방금 전 출근했고 내 책상 반경 4m 내엔 개미 새끼 한 마리 얼씬하지 않는다. 드디어 ‘아무도 날 찾는 이 없는’ 쓸쓸한 그 시간이 도래한 것이다. 와우!

‘지금부터 한 시간 삼십 분 안에 이 원고를 털어야 하며
지금부터 두 시간 안에 원고 교열을 끝내야 하고
지금부터 두 시간 삼십 분 안에 레이아웃을 마쳐야 하고
지금부터 네 시간 안에 인쇄소에 보낼 필름이 고스란히 내 손에 전해져야 한다.’
그러면 정말 끝이다.

중요한 건 뭘 쓰느냐다.
대체 이달 편집장의 글 주제가 뭐냐는 거지.
그건 당일 아침 출근길에 주로 정한다. 액셀러레이터를 힘껏 밟으며 <아레나>와 보낸 지난 한 달을 뒤적여 한 권의 책을 가상으로 제본하다 보면 슬쩍 혀끝에 와서 달라붙는 놈이 있다. 염불 외듯 제목을 중얼거리며 회사에 도착하면 차 엉덩이를 급하게 주차장 구석에 쑤셔 박고 사무실로 내달린다. 갑자기 이 순간이 지나면 멜로디를 잊을지도 모른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작곡가처럼. 왜 이 죽일 놈의 영감(?)이 운전대를 붙들고 있는 그 순간에 한결같이  찾아오는 거냐 물으시면, 그냥 웃지요.    
오늘 출근길에도 <아레나> 6월호를 뇌 속에 넣고 한 바퀴 돌렸다. 그랬더니 이기원 기자가 작성한 ‘이 죽일 놈의 가사’라는 기사가 혀끝에 와서 척하고 달라붙지 뭔가. 표지 문안으로 천거된 대규모 기획 기사도 아니련만 내게 와 꽃이 된 것은 정확히 동병상련의 정 때문이다. 에디터는 이렇게 썼다. ‘점점 가요를 듣지 않게 된다. 조금 더 엄밀히 말하면 요즘 가요를 듣지 않게 된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잠깐이라도 귀를 기울일라치면 여자에게 수작을 걸다가 차갑게 거절당한 것 같은 낭패감이 밀려든다. 얼마 전 한 카페에서 박현빈의 ‘샤방샤방’이라는 노래를 들었다. ‘얼굴도 샤방샤방 몸매도 샤방샤방 아주 그냥 죽여줘요’라는 구절을 듣는데, 정말 ‘콱 죽여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 나도 점점 가요를 듣지 않게 된다. 대중가요의 가사 몇 줄을 인생을 향한 선각자들의 메시지로 여겨온 시절도 있었는데, 그런 시대를 살아온 나였는데 말이다. 나에겐 대중가요의 가사를 쓰는 남편이 있다. 그와 TV 가요 프로그램을 보다가 이런 얘기를 나눴다. “요즘 어린 친구들은 저런 가사에도 감동을 받을까. 내가 늙어서 그들의 감성을 이해 못하는 걸까.” 가사를 쓰는 남편이, 대중가요의 가사를 쓰는 남편이 말했다. 가요의 주소비자가 변했다고 했다.
사람들은 변했다고. 아무도 문학을, 아무도 글을, 아무도 시를 읽지 않는다고. 아아.
하지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가사 역시 ‘글’이라는 것이다. 시대와 세대의 취향을 아무리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한 편의 ‘글’이 추종하는 주제와 함축적인 ‘글’이 타고 넘는 운율과 작가의 서정이 드러나야 한다는 거다. 가사는 말 그대로 불릴 것을 전제로 쓰인 ‘글’이니까. 
기자는 짧디짧은 한 페이지짜리 기사에서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 속 그 한 문장.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소’라는 가사의 문학적 은유를 그리워했다. 나 역시 그렇다. 덧붙여 가사로 인해 사회 정의가 동맹되곤 하던 그 정절과 기개 역시 그립다.
바로 지난날의 이 글처럼.

‘검푸른 바닷가에 비가 내리면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물이오?
그 깊은 바다 속에 고요히 잠기면
무엇이 산 것이고 무엇이 죽었소?
눈앞에 보이는 수많은 모습들
그 모두 진정이라 우겨 말하면
어느 누구 하나가 홀로 일어나
아니라고 말할 사람 누가 있겠소?’
(김민기의 ‘친구’ 중)

그나저나 밥 딜런은 가사로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오른 적도 있는데, 어디 요즘 한국 가요 중에 신춘문예 시 부문에라도 추천할 작품은 없을까. 하긴 이런 걱정할 시간에 편집장의 글 마감일이나 당기는 것이 여러 사람에게 좋겠지.
나는 양희은의 ‘내 나이 마흔에는’이나 부르며 이 글을 마무리해야겠다. ‘봄이 지나도 다시 봄~ 여름 지나도 또 여름~ 가을 지나면 어느새 겨울 지나고 다시 가을… 날아가만 가는 세월(마감)이 야속해 붙잡고 싶었지. 내 나이 마흔 살에는….’

아레나 코리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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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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