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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객잔

상하이는 도시 역사도 그리 길지 않다. 항우와 유방의 시대, 상하이는 `호`라 불리는 변변찮은 어촌이었다. 호는 대나무로 만든 낚시 도구를 말함이니 그저 낚시나 해 먹고 살던 가난한 촌구석이었다는 얘기다. <br><br> [2008년 5월호]

UpdatedOn May 07, 2008

 

항구 도시에서 산다는 것. 뭍에서 뭍으로 이동하는 낯선 이들과 맞닿아 산다는 것, 타지 사람이 묻혀온 남모를 문화와 부지불식간에 교접하는 것. 또는 물건과 물건이, 언어와 언어가, 섭생과 섭생이 항구 주위를 휘돌며 서로서로 교역하는 삶을 나는 모른다. 태생이 깊은 내륙의 성(城) 안인 탓이다. 서울, 산으로 에워싸인 이 성은 작지만 대대손손 기름졌다(고 믿고 싶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나는 알게 모르게 도성 사람의 기질을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았을 것이다. 아니, 그 타고난 기질이 선명한 자가 바로 나다. 맞다, 피는 못 속인다. 골수까지 성(城) 사람인 나는 항(港) 사람에 대해 적잖이 무관심하다. 그게 바로 지역 사학자들이 주장하는 성(城)과 항(港)의 차이가 지닌 불편한 진실 때문이다. 성(城)의 속성은 울타리다. 울타리는 이 안과 저 밖을 나누는 벽이다. 울타리 안은 은밀하다. 반대로 항(港)의 기본 속성은 개방이다. 열린 공간은 이 안과 저 밖을 연결한다. 사회지리학적 속성 구분법에 의하면 두 지역 사람들의 차이는 첨예하게 다르다.
‘성(城) 사람들은 대의명분을 중시한다. 너그럽고 호인으로 보인다. 하지만 타지인에게 배타적이다. 돈에 연연하는 것을 저급하다 생각한다. 결국 장사에 성공하기 힘들다. 거대 목표나 집단의 이상을 추구하는 성향이 있다. 반대로 항(港) 사람들은 수선스럽게 보이지만 솔직하다. 노출되어 있는 공간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을 감추지 않는 대신 남을 받아들이는 데 익숙하다. 장삿속이 밝고 정치적 이상보다 개인 경제의 영화를 중시한다. 그들은 타고난 장사치다.’
이는 어쩌면 흙과 물의 자연적 섭리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춘삼월에 항구 도시인 상하이, 장사치의 도시인 상하이에 갔다. 성 사람인 나는 최근 밀려드는 ‘상하이발 (글로벌 패션 브랜드들의 행사) 초대장’을 받아들 때마다 이 항구 도시의 과감한 노출이 부담스럽곤 했다. 이 도시의 손님맞이가 하도 화려하고 천연덕스러워서인가, 내가 성 사람이라 그런가. 물가가 싸서 여느 동남아시아 관광지처럼 나들이하기 부담 없고, 인건비가 싸서 내수 물건을 역으로 하청 줄 수 있는 도시였을 때가, 적어도 만만하게 겨룰 수 있어 보일 때가 편했다는 말이다. 그러니 호들갑스럽게 들끓는 지금의 상하이는 영 마뜩찮았다. 문화재를 타지인에게 턱하니 빌려주고, 개방 전의 공공시설 한쪽도 남들에게 슬쩍 덜어주는 그 넉넉한(?) 씀씀이를 두고 엉덩이를 아무데나 내미는 천박한 도시라 폄하하고도 싶었다. 하지만 솔직히 성(城) 사람인 나는 항(港) 사람들의 적극적인 문화 교역,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방식의 친구 사귀는 기술(내외하지 않는)에 최근 자주,자주,자주 놀란다. 덩치 작고 태생이 가난한데 남들보다 열 배 치열하게 산 대가로 거머쥐게 된 신인왕 타이틀을, 기골이 장대하고 태생이 넉넉한 데다 날 때부터 꾀도 많은 올해의 루키에게 넘겨줘야 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이랄까. 그런 고지식한 불편함까지 느끼게 되는 요즘이다.

상하이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상하이 항의 국제 크루즈 터미널을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80주년 기념 파티장으로 허가했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이 패션 브랜드의 위용이 남달랐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개방 이전의 자국 시설을 자국민이 걸음을 내딛게도 전에 타지인에게 내어줄 수 있다는 건 상하이 특유의 유연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상하이는 그만큼 항(港) 사람 특유의 정서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곳이다. 사실 상하이는 도시 역사도 그리 길지 않다. 항우와 유방의 시대, 상하이는 ‘호’라 불리는 변변찮은 어촌이었다. 호는 대나무로 만든 낚시 도구를 말함이니 그저 낚시나 해 먹고 살던 가난한 촌구석이었다는 얘기다. 이후 영국이 아편을 빌미로 항을 열고 스멀스멀 들어왔고 미국도 프랑스도 아시아 교역을 위한 교두보로 상하이를 이용하면서 국제 도시의 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게 19세기 이후의 일이다. 그런데 그 1백 년 후 상하이는 중국 최대의 경제도시가 되었고 전 세계 모든 산업체가 합궁하지 못해 안달이 난 색스러운 도시가 된 것이다. 사실 제아무리 성 출신 사람이라도 상하이의 그 넉살은 부럽고 또 두렵다. 낯이 두꺼운 상하이는 날랜 혀와 말랑한 가슴도 가졌다. 그리고 이 밑바닥에는 철저한 손익 전표가 깔려있다. 항(港) 사람으로 살면서 외국 문화와 융합이 자연스러워진 상하이는 성(城) 사람이 태생적으로 따라잡을 수 없는 유연한 몸도 가졌다. 남들은 상하이를 여성에, 베이징을 남성에 비유하지만 그거야 거대 중국 안에서의 잣대일 것이고, 지금의 상하이는 남성의 생식기를 떼어낸 기골 장대한 하이브리드 괴물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앞서도 말했지만 거대 패션 브랜드들은 앞다투어 상하이에서 문화 비즈니스란 명목 하에 찬란한 행사들을 벌이고 있는데, 그 이유는 하나같이 ‘미래 도시 상하이가 브랜드의 진취적 행보에 대한 표상이다’라는 거다. 믿기는가, 1999년 홍콩 반환 이후 10년 만이며, WTO 가입 후 8년 만의 변화다. 비약하자면 이제 나는 ‘Sanghai is just Sanghai, not China’라는 기름진 뱀 같은 문장에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게 됐을 정도다. 그저 경제 허브일 뿐만 아니라 문화의 중심지가 될 수 있음을 서서히 인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내 고향 서울 역시 ‘철저히 경제’라는 기저에서 ‘그래도 문화’라는 방향으로 기수를 틀고 있다. 2010년까지 5백억원의 아트 펀드를 조성하겠다 하고, 예술인 마을을 조성하고, 패션 산업을 키우고, 4대문 안 도시를 중심으로 문화와 패션의 허브를 가꾸고, 글로벌한 도시 미관을 위해 간판법을 바꾸는 등 수많은 청사진을 품고 있다. 일단 좋은 일이다. 계획이 있어야 실천이 따르기 마련이니. 덩치 큰 혼혈 도시의 상하이에서 내 고향 서울을 바라보며, ‘곧 한국이 아시아 최대 경제국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놀라운 공동체 의식과 집단적 욕망이 그 성공 비결이다.’라는 경제학자 자크 아탈리의 글을 빌려 이 항구 도시에 대한 질투를 털어낸다. 이 역시 성 사람 특유의 허세다. 그가 말한 한국이 극복해야 할 위험 요소는? 저출산과 교육 문제란다. 그렇다면 서울 성의 발전과 한국의 강대국 이론 증명을 위해 내가 할 일은 아이를 낳는 것이란 말인가. 노력하자, 뭐든.

 

아레나 코리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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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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