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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창욱의 드라마

지창욱에게 <기황후>는 긴 호흡으로 페이스를 조절하는 마라톤과도 같은 작품이었다. 타고난 재능 대신 성실과 인내로 갈고닦은 이 배우는 삶 자체가 드라마다.

UpdatedOn August 19, 2014

수트와 슬리브리스 모두 곽현주, 목걸이는 ck 주얼리 제품.

스물에 데뷔해 배우로 20대를 질주하고 있는 지창욱은 속도나 기록보다는 자신을 스쳐가는 풍경 하나하나에 집중하며 살고 있다. 작품이 끝날 때마다 사람들에게 캐릭터 이름으로 기억되는 것에 만족하고 감사하던 그가 <기황후>를 마친 후 ‘지창욱’ 자체로 불리고 회자되는 것에 가벼이 들뜨지 않고 차분하게 웃을 수 있는 이유다. 작품 하나로 뜬 배우도 아니요, 작품 하나 하고 말 배우도 아니란 뜻이다. 자존감을 높이 세우되 자만하지 않고, 현재를 즐기되 미래를 확신하지 않는 것. 지창욱이라는 사람의 마음가짐이다. 여기까지 오는 데 지창욱의 삶에서도 수많은 드라마들이 쓰이고 또 지워졌다. 슬픔을 아는 사람이 더 근사하게 웃을 수 있다는 걸 지창욱의 미소를 보며 알았다.

수트는 문경래, 슬리브리스는 올세인츠 제품.

드라마 종영 후 더 바쁠 것 같다. 얼마 전 일본 팬 미팅을 치렀고 광고 촬영도 많고.
감사하며 바쁘게 지내고 있다.

지창욱의 일본 팬들은 어떤 작품을 가장 좋아하나?
<웃어라 동해야> <무사 백동수> <다섯 손가락> <총각네 야채가게> 등등 골고루 보고 좋아해주시더라. <기황후>도 그렇고.

학창 시절 공부를 꽤 잘했는데 고3 때 갑자기 연극영화과 쪽으로 진로를 바꿨다. 대입 실기 오디션은 기억나나?
하하. 그때 세 학교 시험을 봤는데 딱 한 군데만 붙었다.
실기시험 보는 당일 현장에서 쪽대본 같은 걸 준다. 그걸 보고 자기 스타일대로 해석해 연기를 하는 거지. 특기 같은 걸 따로 보여주기도 하고.

연기 이외에도 감정을 풀어내는 다양한 방식이 존재하지 않나.
왜 배우이고, 연기였나?

막연하게 연기하는 사람들이 즐거워 보였다. 쉬워 보였고.



쉬워 보였다고?
돈도 많이 벌 것 같고…(웃음) 아무것도 모르다 보니 현실 감각이 없었다. 내 눈엔 배우들이 그저 화려해 보였다.

다른 인터뷰에선 학창 시절을 ‘인생의 암흑기’ 라고 표현했던데….(웃음)
대학만 가면 만날 술 마시고 늦잠 자고 신나게 놀 거라 생각했는데, 대학 생활이 고등학교 때보다 더 빡빡했다.
심지어 공부는 더 이상 안 해도 될 줄 알았는데 연극사에 희곡에 과제에….

열심히 했나?
열심히 안 했지.(웃음) 내가 생각했던 게 이게 아닌가 싶었다. 어렸을 때부터 체계적으로 연기를 배워온 친구들과 함께 있으니 나는 비교도 안 되는 거다. 연기를 배우는 관점 자체도 나보다 훨씬 깊어 보였고. 그래서 처음엔 적응을 잘 못했다. 그렇다고 그만둘 수도 없었다. 내가 바득바득 우겨서, 어머니와 그렇게 싸워가면서 선택한 거였으니까. 뭔가 자존심도 상하고. 아직 아무것도 몰라서 그렇지 여전히 막연하게 재밌을 것 같긴 했다. 그러다 선배들 따라다니면서 단편영화를 찍기 시작했다. 그게 너무 재밌더라.

셔츠는 폴 스미스, 팬츠는 곽현주, 신발은 나무하나, 양말은
삭스탑, 반지는 모두 프리카 제품.

바로 현장으로 가고 싶었구나.
그랬다. 1년 정도 현장을 쫓아다니다 운 좋게 독립 영화에 캐스팅되고 촬영 끝난 후 또 바로 대학로에서 오디션을 거쳐 뮤지컬 무대에 오르게 됐다. 그런데 그 작품들 하면서 세상 욕이란 욕은 다 먹었던 것 같다.

준비가 안 된 상태라고?
그렇지. 연기 못한다고. 그때 감독님이 했던 말이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 있다. “우리는 돈을 받고 공연을 올리는 사람들이지 연기를 배우는 학원이 아니야.” 생각해보니 맞더라, 그 말이.

연기가 쉬워 보였다더니 막상 해보니 그렇지 않았나?
마음대로 안 되더라. 생각대로 뭔가 표현이 안 되는 거다.
운 좋게 데뷔는 일찍 했는데 멋모르고 용감하기만 했다.

백지 같은 상태에서 연기를 시작한 건데, 현장에서 어떻게 대처했나?
당시엔 연기에 대한 철학 같은 게 전혀 정립되지 않았고, 연기가 뭔지도 모르는 상태인 데다가 카메라 울렁증까지 있었다. 대본을 대충 외우니 카메라 앞에서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 거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그래서 누가 갑자기 툭 치면 저절로 대사가 튀어나올 정도로 대본을 외우고 연습을 했다.
잠꼬대로 대사를 말하기는 하고… 대사에 집착하다 보니 이게 또 연기가 아닌, 그냥 외운 걸 말로 뱉어내는 게 되는 거다. 촬영장에서 감독님한테 엄청 혼났다. 준비가 안 된 상태로 현장에 일찍 나오긴 했지만 작품을 하면서 좋은 선배님들을 정말 많이 만났다.
선배들 연기를 옆에서 보고 배우면서 조금씩 연기란 이런 거구나를 깨우쳤다.

타고난 재능으로 연기를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배우들도 있지 않았을까? 그런 부분에 대한 열등감이나 자격지심은 없었나?
그래서 중간에 그만둬야 하나 진지하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웃어라 동해야> 할 때. 너무 내 뜻대로 안 되고 버거워서 나는 정말 이쪽으로 재능이나 끼가 없나 보다, 왜 저 사람들처럼 안 될까, 힘들었다.

가죽 재킷은 오디너리피플, 팬츠는 앤 드뮐미스터, 팔찌는 올세인츠 제품.

생애 첫 타이틀롤을 맡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었다고?
시청률도 좋았고 작품도 잘됐는데 개인적으론 너무 힘들었다.
열심히 하면 된다고 믿으면서 거기까지 간 건데 그러면서도 나 스스로 계속 의심이 생기는 거다. 그땐 나 자신의 모든 게 맘에 안 들었다. 내가 배우로서 계속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 했으니까. 당시엔 작품이나 역할 분석을 나름 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정말 깊이가 얕은 거였다. 그것보다 더 깊은 게 있었는데 몰랐던 거다, 방법을.

당시에 최선이라 생각한 걸 실행했다면 그것이 정말 최선이 아닐까?
그런가.

10년 후 지금 모습을 생각해도 마찬가지일 거다.(웃음) 끊임없이 자기 비하와 만족 사이를 롤러코스터처럼 왔다 갔다 하는 와중에 그래도 전보다 흔들림이 덜하고 자신에 대한 믿음이 강해진 작품이 있지 않았을까?
<총각네 야채가게> 하면서 배우로서 많이 성숙해졌다. 이전 작품들의 시청률이 너무 좋아서 나만의 압박감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총각네 야채가게>는 시청률이 1% 정도 나왔다. 처음엔 두려웠다. 이제 나 아무도 안 찾아주는 거 아닌가, 하고.
사실 시청률이 나쁘면 배우들도 힘이 빠진다.
대충 해도 사람들이 어차피 안 보는데,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큰일 나는 건데 어느 순간 내가 그렇게 되려고 하더라. 작품이 회를 거듭하면서 시청률이라는 기준을 내려놓고, 배우가 작품에 대해 가져야 할 책임감이나 사명감에 대해 오롯이 생각했다.

그래서인가. <기황후>에서 신나서 연기하는 게 보였다.
쪽잠을 자야 할 수밖에 없는 촬영 스케줄이었는데 그 시간도 아껴서 대본 분석하고 준비했다. 캐릭터에 대해, 신에 대해 찾아내고 준비한 만큼 쾌감이 있었다. 여전히 연기는 어렵고, 나는 생각만큼 잘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젠 생각은 할 수 있다. 카메라 앞에 서면 머릿속이 하얘지는 백지장이었다면 지금은 생각하고 분석하고, 그걸 표현해보려고 노력하는 정도까진 된 거다.

연기의 맛을 알았다는 건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겼다는 소리다. 결국 그동안 해온 모든 작품들이 트레이닝 과정이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작품이나 역할에 대한 과욕보다 내가 책임지고 잘 표현할 수 있는 역할을 맡아 열심히 하고 싶다.

photography: 이상엽
editor: 조하나
STYLIST: 김영미(인트렌드)
HAIR: 정미영(이경민포레)
MAKE-UP: 심수영(이경민포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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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WORD

CREDIT INFO

Photography 이상엽
Editor 조하나
Stylist 김영미
Hair 정미영
Make-up 심수영

2014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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