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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익은 예술이다.

온 세상이 자신을 주목하고 있다는 것을, 이준익은 분명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태연할 수 있다니, 그는 아주 과감하거나 혹은 무딘 남자다. <br><br>[2007년 9월호]

UpdatedOn August 22, 2007

Photography 김용식 Editor 이지영
stylist 조윤희 assistant 라혜영,이지인 hair&makeup 박혜령 cooperation 야마하(YAMAHA)

세상에서 가장 교만해지기 쉬운 족속이 바로 인간이다. 조금만 주위에서 띄워주면 이내 콧구멍이 벌름벌름. 거기다 상까지 쥐어주고 박수에 환호까지 던져주면 그야말로 기고만장인 자세로 돌변한다. 원래대로라면, 보통 인간의 수순대로라면 이준익 감독은 지금쯤 무척 오만해 있어야 맞다. 관객 천만 명을 끌어 모았으니, 덕분에 상도 받고 돈도 벌었을 테니 충분히 거만해질 타이밍이다. 그는 이제 국민 감독 아닌가. 어깨를 반쯤 추켜올린 상태로 다닌다 해도 아무도 뭐라 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래도 될 법한 그가, 어찌 이리 평범한 자세로 걷고 있느냔 말이다. 그래서 그를 만났다. 주위에서 부채질하지 않느냐고, 왜 턱 끝을 45도 위로 올린 채 도도하게 걷지 않느냐고 묻고 싶었다. “나는 지금도 가진 것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남들이 보면 명예도 누리고 약간의 부도 가졌다고 생각하겠지만 허기의 습관이 늘 남아 있다. 항상 춥고 배고프다.” 겸손이라는 단어는 자만을 바탕에 깔았을 때 가능하다. 그러니 이 맥락에서 이준익은 겸손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지나치게 들떴다가, 이내 사그라지고 마는 얇은 종이 같은 사람이 절대 아니다. 그는 원래 타고나기를 과감하게 태어난 사람이다. 그러니 세상의 요동에도 흔들리지 않고, “도대체 철은 들어서 어디다 쓸거냐”고 담대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부터 펼쳐질 이야기는 철들지 않은 40대 감독의 대담한 지론이다. 그러니 이 안에서 이준익을 보아도 되고, 예술이란 무엇인지 깨달아도 된다. 또 흘러가는 얘기 속에서 문득 때 아닌 감동을 맛봐도 된다. 그렇게만 된다면 에디터도, 이준익도 대만족이다.


<즐거운 인생> 얘기부터 하자. <라디오 스타>에 이어 역시나 이준익다운 이야기다.
내 나이가 40대 후반이다보니 자기 나이에 맞는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게 솔직한 심정이 아닐까 싶었다. 지금 40대 남자들의 사회적 존재 가치는 무엇일까. 그저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어느덧 젊은 세대들에게 밀려 물러나게 됐다는, 그 첫맛을 느끼는 나이가 40대 중반인데 말이다. 그러면 이 남자들에게 앞으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즐거움을 영화적으로 줘야겠는데, 그 방법이 무엇일까 생각하다 이 영화를 기획하게 됐다. 제목은 <즐거운 인생>이지만 현실은 그리 즐겁지 않은, 기쁘고 환희에 찬 것만 즐거운 것이 아니라, 때로는 아프고 외롭고, 고통스러운 것조차도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는 것. 그리고 그걸 즐길 수 있는 삶이 아름답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40대 후반. 20년 전을 되돌아볼 수 있는 나이가 됐다. 어떤 20대를 보냈나.
나는 뭐, 먹고사느라 정신없이, 닥치는 대로 발버둥 치면서 살았다. 내 20대는 허겁지겁이었다.(웃음)

영화를 만들면서 본인 역시 남은 인생을 어떻게 꾸려가야 하나 하는 생각을 했을 것 같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미 너무 늦은 나이가 되어버렸는데.
들었던 철을 버리면 된다. 흔히 사람들은 철들지 않은 사람을 무척 비난한다. “언제 철들래?” 이렇게 말한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철들어서 대체 어디다 쓰나? 어디 쓸 데가 없는 거다 그게. 이 영화의 모토는 ‘철들지 말자’였다. 철들어서 근엄해지고 목에 힘주고 그래서 어디다 쓰나. 유독 대한민국의 나이 먹은 사람들은, 나이가 벼슬인 양 행동할 때가 많다. 젊은이들을 가르치려 들고, 무시하고, 강요하고 마치 그것이 철든 사람의 양식인 양 군다. 아주 권위적인 거다. 그런 철은, 차라리 안 드는 게 낫다.

철이 없는 당신은, 이번에도 역시 음악을 소재로 한 영화를 찍었다.
영화 속 ‘활화산 밴드’에게 음악은 처절한 자신의 존재 증명이다. 이들은 20대 때 대학 가요제 출전을 목표로 팀을 결성해 그렇게 애쓰다 결국 3번의 예선 탈락 고배를 마셨다. 그러다 멤버들의 군 입대를 계기로 잠정적으로 해체됐는데, 그 밴드가 20년 만에 겨우겨우 재결성됐다. 그런데 세월이 또 얼마나 흘렀겠나. 20년 전 멤버 중 한 명은 이미 죽고, 죽은 사연도 별로 대단하지도 않고, 그래서 겨우겨우 그의 아들이 보컬을 맡게 됐다. 그러니 이 사연이 얼마나 아프냔 말이다.

‘아직도 꿈만 꾸고 계십니까?’라는 카피가 가슴을 때리더라. 본인 역시 그동안 꿈만 꾸고 놓쳐버린 것들이 있었나.
물론이다. 난 79학번인데 70, 8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사람들은 아마 통기타를 안 만져본 사람이 거의 없을 거다. 6·25 이후 미국의 대중문화가 바로 수혈되면서 당시 내 동년배들은 모두 미국 록음악에 미쳐 라디오 이어폰을 끼고 꼬박 밤을 새우며 수많은 날들을 보냈다. 그야말로 전설적인 록커나 기타리스트들을 줄줄이 꿰고 살았는데 누구나 록에 대한 로망이 있었던 것 같다. 지미 핸드릭스처럼, 에릭 클랩튼처럼 기타 치는 폼을 거울에 비춰가며 섀도 댄싱을 하다가 누군가 덜컥 문을 열면 뻘쭘한 표정을 지어 보이던 그런 경험. 누구나 있지 않을까. .

가난해도 낭만은 살아 있다?
오로지 감성과 열정으로만 들이대던 시절이었다. 대학을 가는 건 소수나 누릴 수 있는 혜택이고, 고등학교 학비도 내기 힘들던 시대니 말 다했지. 누구나 가난한 시대였기 때문에, 음악을 로망으로 품고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던 기억이 난다.
그 이상을 바라기엔 현실이 너무 열악했으니까.

로망 말고, 꿈은 없었나.
난 개인적으로 꿈이 별로 없었다. 하나 있었다면 화가. 회화과를 중퇴했지만 어쨌든 전공이 미술 학도였기 때문에 나는 화가가 대통령보다 더 위대한 직업인 줄 알았다. 화가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세상을 바꾸기는커녕 먹고살지도 못하는데 무슨 세상을 바꿔.(웃음) 먹고는 살아야지 바꾸든지 말든지 할 거 아니냐고. 그래서 때려치웠다.(웃음) 오히려 영화 하니까 먹고살게 되더라.

활화산 밴드는 결국 20대 때 하고 싶던 일들을 하게 됐다. 당신은 어떠한가.
아직도 하고 싶은 일이야 너무 많다. 그림도 그리고 싶고, 밴드도 하고 싶다. 록 보컬은 솔(Soul) 아닌가. 영혼을 토해내는 방식이기 때문에 발성이니 뭐니 다 필요 없고 안에 있는 불덩이를 입 밖으로 화염 방사기를 뿜듯 뿜는 거다. 그게 음악 하는 거지. 어디 작은 무대라도 올라서 왁왁 소리 지르는 거 해봐야 하는데.(웃음)

금세라도 할 수 있을 것 같다.(웃음) 워낙에 예술에 대한 로망이 있었나.
물론 나는 순수 회화를 했으니까 예술이라는 단어가 친숙한 것 같다. 그러나 그때는 뭣도 모르면서 입에 달고 다녔던 거지, 진정으로 가슴에 묻고 있던 건 아니었던 것 같다. 나이를 먹고 나니까, 가슴에 조금씩 느껴진다는 게 무엇인지 알 것 같다. 나는 책을 머리에 베고 잠만 자도 반은 자기 게 되는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꼭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야만 하는 게 아니라 이 책을 봐야지, 봐야지 하는 심정으로 허구한 날 들고 다니다 보면 반은 내 것이 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아직은 나도 기타를 잘 못 치지만 어디 지나가다 기타 가게 앞에만 서면 쳐다보고, 어디 가서 기타 소리만 들려도 기타 잡는 동작을 하는 것만 봐도 기타의 절반은 아는 게 아닐까 혼자 생각한다.(웃음)

영화로, 음악으로, 그리고 당신이 지금 하고 있는 그 모든 행위로 꿈을 펼치고 있는 것 같다.
일단 꿈이라는 건 허황된 망상과는 다르다는 게 내 생각이다. 망상과 꿈은 확실히 구분해야 한다. 꿈이라는 건, 추구해서 이루고 싶은 현실적 욕망을 말한다. 아주 여러 가지로 부족한 여자가 안젤리나 졸리가 되는 꿈만 꾸고 있으면 그게 꿈인가, 과대망상이지.(웃음)

그럼, 21세기의 꿈이란 뭔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 그게 꿈의 실체고 실존이라고 생각한다. 40대 남자에게 아무도 밴드 하라고 얘기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밴드를 하겠나? 하고 싶으니까. 결국 이들은 꿈을 이룬 거다. 하고 싶은 걸 하니까. 이들이 밴드를 한다고 누가 후원을 해주나? 집에서는 “당신 미쳤어? 그런 걸 왜 해? 돈이나 벌어오지 말야!” 이런 소리나 듣는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밴드를 하고, 행복해 보인다. 꿈의 실체란 이런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 영화를 통해 이를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물론 해냈다고 생각하고.

그러나 40대 남자들의 이야기가 요즘 친구들에게 얼마나 와 닳을지 모르겠다. 그들이 과연, 40대 남자들의 꿈과 생존을 알기나 할까. 감독으로서 고민이 있었을 텐데.
상업 영화니까 당연히 상업적인 트렌드에 대한 경계심을 갖게 된다. 그런데 영화라는 것이 20대 초중반 젊은이들의 전유물로만 소비된다면 그 사회는 미성숙한 사회다. 영화 선진국들은 어린아이부터 나이 먹은 어른까지. 각자 자신에 맞는 영화를 다양하게 소비하고 재생산한다. 그게 바로 문화 선진국이고. 그런데 우리는 아직 문화 선진국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나라라서 젊은이들의 유행, 젊은 스타가 나오는 마케팅적인 소구력이 있는 영화가 중심이 된다. 아마도 그런 부분이 우리 스스로 문화 선진국이 못 된다는 걸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은 어디일까.

그 방향으로 한 발자국 가는 데 일조하는 게 문화 시민이 아닐까 싶다.
20년 전 당신도, 그리고 당신 또래 다른 친구들도 극장 앞에 서 있었을 것이다.
물론이다. 지금 20대 젊은이들이 극장 문화의 주인인 양 생각하는 것 역시 오만이다. 왜냐하면 20년 전에는 그 자리에 누가 서 있겠느냔 말이다. 나는, 오늘 극장에 서 있는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 20년 후에도 그 자리에 서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그런데 지금 영화·음악·미술 등 문화 소비의 주체인 젊은이들이 20년 후엔 공연장에도 안 나타나고 극장 앞에도 없고, 도대체 음반 나오는 거에도 관심 없고 그런 시대가 온다면 얼마나 창피하겠나. 그건 나라가 창피한 거다.

적어도 당신은, 40대 후반인 지금에도 영화를 만들고 있으니 창피하지는 않을 것 같다.
내가 이 영화 시작할 때, 현장에 가지고 다니는 시나리오 표지에 ‘철들지 말자’라고 썼다. 쓸모없는 철은 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결국 공연을 하는 것으로 활화산 밴드는 꿈을 이룬다. 물론 천만 관객을 이끌어낸 당신 역시 꿈을 이뤘을 것 같다.
아직은 체감을 못한다. 남들이 봤을 때는 어쨌든 성공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지만 나 자신은 전혀 그렇지 않다. 꿈은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게 아닌가. 죽기 1초 전에도 꿈은 남아 있을 것 같다. 죽는 그 순간에도 열망인 거다. 꿈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항상 미루어지는 거니까.

<왕의 남자> 이후 얻은 것과 잃은 것이 있을 텐데.
얻은 것은 편안한 시간이다. 잃은 것은 없는 것 같고. 가진 게 없었기 때문에 별로 잃을 게 없었다. 장생이 연산 앞에서 이렇게 말하지 않나. “나는 가진 게 없는 몸이니까 잃을 게 없다. 빨리 죽여라 이놈아!” 나는 지금도 가진 것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남들이 보면 명예도 누렸고 약간의 부도 가졌다고 생각하겠지만 허기의 습관이 늘 남아 있다. 항상 춥고 배고프다.(웃음)

온 세상이 당신을 지켜보는데 어깨가 무겁진 않나.
사람들의 기대가 있다는 것에 대해 별로 실감을 못한다. 난 그게 안 느껴진다. <라디오 스타> 인터뷰할 때도 부담이 없었다. 사람들은 부담을 안 가지면 잘못된 것처럼 이야기하는 데 나는 부담이 없다.(웃음)

유독 남자들의 고뇌에 대해 많이 이야기한다.
나는 그게 인간의 고뇌라고 보지, 남자들의 고뇌라고 보지는 않는다. 다만 내가 여자보다 남자에 대해 많이 소통하니까 조금 더 알 거 아니겠나. 그러다보니 내가 조금 더 아는 남자를 이야기하는 것일 뿐이다.

이야기에 규모라는 것이 있다면, 지금 당신 영화의 규모는 소박하게 느껴진다. 국민 감독인 당신에게 분명 더 큰 예산의 영화에 대한 부추김이 있었을 텐데.
나는 소박한 것이 소박한 걸로 머무는 게 아니라, 소박한 것을 절박하게 이야기하는 걸 좋아한다. 아무리 거대한 이야기라도 절박하지 않으면 사람을 감동시키지 못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관객을 감동시키는 것은 꼭 위대한 것만이 감동을 주는 건 아니다. 그리고 또 소박한 것이 그렇게 왜소한 건 아니다. 절박하냐, 절실하냐 절실하지 않느냐 그것 때문에 사람이 찡해지거나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거지, 거대한 이야기가 감동을 준다는 전제는 없다고 본다. 나에게 이야기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다. 그것이 얼마나 절실하냐 그것이 중요할 뿐이다.

마냥 다 좋을 수만은 없다. 스트레스는 없나.
영화를 찍는 건 즐거움이다. 선택을 강요받는 게 스트레스의 정의 아닌가. 나는 항상 주변 동료들에게 ‘스트레스를 가지고 놀아라’는 말을 한다. 스트레스를 공으로 만들어 가지고 노는 거다. ‘어떻게 할 건데?’ 하는 심정으로. 스트레스는 축구공이다. 축구장에 축구공이 없으면 축구가 되나. 인생에 스트레스가 없으면 인생이 아니다. 스트레스는 공차기다.

재미없는 일은 하지 않는 사람으로 보인다.
아니. 나는 해야 될 일을 재미있게 하는 거다. 재미없으면 안 하는 게 아니고. 해야 될 일을 재미있게 하는 거다.

지금 감독 인생의 얼만 만큼 와 있다고 생각하나.
반 정도 왔나?

앞으로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척 많을 것 같다.
많다. 너무 많아서 순서 정하기도 힘들다. 일단 지금 예정되어 있는 <님은 먼곳에>를 찍고, 쿠바 가서 살사 영화도 찍고 싶고, 몽고 가서 초원의 이야기도, 말과 초원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싶고 그렇다.

무엇이 예술일까. 당신은 분명 예술적인 행위를 하고 있는데 말이다.
어쩔 수 없이 돈을 벌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을, 아주 신나고 재미있게 게임하듯 하는 게 예술이다. 많이 벌든 적게 벌든, 하다못해 편의점 알바를 해도 재미있게 하면 된다. 거기서 음악 틀어놓고 춤춰 가면서 하는 거다. 그 시간을 즐기면 된다. 얼마나 재미있나. 뭐든지 예술이다. 컨템포러리 아트는 예술이라는 장르로 규정지은, 특수한 예술인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모두 아티스트다. 카페를 해도 예술적으로 할 수 있는 거고, 잡지를 만들어도 예술로 만들면 된다. 밥을 팔아도 예술적 향기가 있으면 그건 예술을 파는 거다. 국가에서 예술 면허증 주나? 내가 예술이라면 예술인 거지. 자동차 세일즈맨이 자기가 자동차 팔 때까지의 비즈니스, 그건 아트다. 어떤 연주자가 연주하는 것보다 더 예술인 거다. 안 사겠다는 사람을 사게 만드는 그 테크닉! 그런 예술을 사랑하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우리 환경은, 그리고 인생은 즐거울 수 있는 것들로 가득하다.

좋은 예술과 나쁜 예술을 구분할 수 있겠나.
나쁜 예술은 사람을 이롭게 하지 못하는 거다. 혼자 골방에서 ‘나 이거 예술이야’ 생각하던 걸 다른 사람에게 보여줬는데, 아무런 감동을 못 준다고 생각해보자. 그건 나쁜 예술이다. 훌륭한 예술은 뭐냐면 백반집 아줌마가 밥을 맛있게 지어서 깻잎에 양념 제대로 발라 김 잘~구워 소금 골고루 뿌려 딱 가져다놓는 거, 4천5백원짜리 먹으면서 이건 완전 예술이라고 느끼는 거다. 남들을 이롭게 하니까. 내게 감동을 주니까. 예술의 궁극적 목적이 뭔가? 관객을 감동시키는 게 예술의 목표다. 잡지사 기자가 너무나 감동적인 기사를 썼다 치자. 우연히 미용실에 가서 봤는데 누군가가 감동을 받았어. 그 기사를 쓴 기자는 예술가다. 왜? 아무런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감동을 줬으니까. 그것보다 위대한 예술이 어디 있겠나. 난 확실하게 예술이 뭔지 안다. 감동을 주는 게 예술이다. 청소부 아저씨가 새벽에 보도블록 사이에 있는 먼지까지 싹 치워놨는데, 그 첫 길을 가는 내가 감동을 받았다고 치자. 그 청소부 아저씨는 나에게 예술을 선물한 거다. 세상은 그렇게 온통 예술 투성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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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Photography 김용식
Editor 이지영
stylist 조윤희
assistant 라혜영,이지인
hair&makeup 박혜령
cooperation 야마하

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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