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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준호의 아빠 맘 모르겠니, 주안이와의 대화

놀 궁리만 하는 주안이에게 잔소리를 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10초도 되지 않아 잘 참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On April 1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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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해외에 사흘 정도 다녀올 일이 있었다. 그 시간 동안 주안이와 많은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았고, 새삼 주안이의 문자메시지 스타일이 어떤지 알게 됐다. “~임?”, “고맙”, “오와” 짧으면서도 마무리가 되지 않는, 그리고 감정이 배제된 문장을 쉴 새 없이 보내왔다. 대체로 그 나이대 사내아이들의 특징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내게 잠은 잘 잤는지, 그곳은 재미있는지 물어봐주었고, “주안아, 보고 싶어”라고 말하면, “나두”라고 답장을 보내줬다. 그 대답은 멀리 떨어져 있는 내 마음을 녹이기에 충분히 따뜻했다.

예전의 주안이는 “아빠 사랑해요”와 같은 엄마가 시키는 내용의 문자를 주로 보냈다면 이제는 내가 타는 비행기에 대해 이것저것 궁금한 것을 물어봤다. 궁금증이 해결되면 “잘 갔다 와~ 사랑해”라는 말로 마무리 짓는 패턴이 반복됐다.

나는 친구 같은 아빠가 되기 위해 노력 중이다. 하지만 주안이와 학업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렸을 때 내가 듣기 싫었던 이야기를 내 아들에게 똑같이 하게 된다. ‘조금 다르게 표현해야지’, ‘기다려줘야지’, ‘알아서 할 거야’ 하는 마인드 컨트롤을 하지만, 결국 답답한 마음에 이것저것 잔소리 같은 조언을 늘어놓는다. 어설프고 서투른, 마음만 앞선 초보 아빠의 모습 그 자체다. 아이를 키우는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다들 비슷한 고민들을 하고 있다.

언젠가 식사 자리에서였다. 여행을 좋아하는 주안이가 여행에 대해 이런저런 희망 사항을 늘어놓았다. 여름방학이 되면 미국 수도인 워싱턴 D.C.에도 가고 싶고, 사촌 동생과 워터파크도 가고 싶다고 했다. 겨울방학엔 스키장에 가서 올해 배우지 못했던 기술을 배우고 싶다며, ‘놀’ 궁리를 열심히 하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주안이의 희망 사항을 그 자체로 즐기지 못하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 화들짝 놀랐다. 놀 궁리만 하는 아들의 말에 속이 탔기 때문이다. “이제 중학생인데 ‘공부 생각도’ 해야지”라는 말을 꿀꺽 삼켰다. 주안이는 그렇게 기분 좋게 대화를 이어가더니 “밥 다 먹었으니 이제 숙제하러 갈게요” 하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짧은 순간이지만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잘 참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참고 삼켜야 할까? 내심 자신이 없어지기도 했다.

어렵다. 부모가 되고 부모님의 깊은 사랑을 어느 정도 알았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부족하다. 부모님께 물려받은 사랑이 현명하게 되물림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의문이 생기는 요즘이다.

사랑한다고 다 퍼주지 말고, 부모의 욕심을 강요하지 않아야 한다. ‘주안이가 행복하게 마음껏 꿈을 펼칠 수 있도록,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길잡이가 되도록 나부터 잘 살아야지’라는 생각과 함께 자식을 키우면서 어른이 된다는 말을 실감하는 중이다.

글쓴이 손준호

1983년생으로 연세대학교 성악과를 졸업한 뮤지컬 배우다. <팬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오페라의 유령> 등 다수의 뮤지컬에 출연했다. 2011년 8살 연상의 뮤지컬 배우 김소현과 결혼해 2012년 아들 손주안 군을 얻었다. 뭘 해도 귀여운 아들의 행복을 위해 고군분투 중인 대한민국의 평범한 아빠다.

CREDIT INFO

기획
하은정 기자
손준호
사진
손준호 제공
2024년 04월호

2024년 04월호

기획
하은정 기자
손준호
사진
손준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