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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에 감사해, 국민 배우 김혜자

배우 김혜자가 에세이집 <생에 감사해>(수오서재)를 출간했다. 아프리카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이후 14년 만이다. 이 책은 그녀의 연기 인생에 대한 자전적 기록이며 몰입과 열정, 감사와 기쁨, 그리고 ‘국민 배우’라는 명성 이면의 불가해한 허무와 슬픔에 대한 생의 무대 위 고백이기도 하다. 책에 싣지는 못했지만 그녀는 ‘에필로그’를 단 한 줄로 써서 출판사에 보냈다고 한다. “그리운 배우가 되기를.” *본문의 인용 부분은 <생에 감사해>에서 발췌했습니다.

On January 31,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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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와 슬픔에 대한 생의 무대 위 고백

일생을 연기에 바친 배우는 시청자와 관객의 마음만이 아니라 시대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현실과 허구를 오가면서 모두의 희망과 아픔과 욕망이 그녀를 통해 경이롭게 표현된다. 그리하여 세상의 찬탄을 받는 스타가 되지만 그만큼 그녀는 거대한 고독과 허무 속에 놓인다. 그리고 그 고독과 허무가 토대가 돼 스크린 속에 또 다른 얼굴로 재탄생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연기자, 우리가 사랑하는 배우 김혜자. 그녀는 지난 60년간 수많은 배역으로 살며 삶의 모순과 고통, 환희와 기쁨을 전했다. 배역을 맡으면 온전히 ‘그 사람’이 돼야 했고, 그렇게 되기 위해 치열하게 몸부림치며 연기했다. 그렇기에 그녀는 기자들에게 “내 나이를 쓰려거든 ‘수천 살’이라고 해줘요”라고 말한다. 정말로 그 삶들을 다 살아낸 것 같기에. 이렇듯 그녀의 연기에 대한 사랑 고백은 절절하다.

신은 절대로 내가 경험한 삶이 그냥 없어지게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아주 우울한 생각을 했든, 너무 슬픈 생각을 했든, 치졸하고 부끄러운 생각을 했든, 그 모든 것이 내가 역을 맡을 때 조금씩 도움을 주었습니다. 내가 겪은 모든 일과 감정들이 연기에 다 투영되었습니다. -57쪽 ‘살아, 네 힘으로 살아’ 중에서 

나도 사실은 매우 진취적인 사람이며, 어떤 면에서 특이한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다만 그것을 표현하지 않을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만추> 같은 영화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남편 죽인 살인범으로 감옥에 있다가 며칠 휴가받아서 가는 기차 안에서 만난 낯선 남자와 정사를 나누는, 누가 봐도 ‘김혜자’에게는 매우 튀는 영화였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것이 아무렇지 않았습니다. 내가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고, 머릿속에서는 얼마나 특이한 생각들을 하는 여자인데 그런 것이 이상할 리 없습니다. 내면에서는 별의별 상상을 다하는데, 다만 사람들에게 그것을 알릴 필요가 없었을 뿐입니다. 나에게 언제나 얌전한 역만 시켰는데, 그런 역을 하라니까 너무 좋았습니다. -169쪽 ‘인생에서 가장 깊은 계절’ 중에서


김혜자가 지금껏 최고의 배우로 현재진행형인 이유는 자기애다. “나는 나를 굉장히 아꼈다”고 말할 만큼 스스로에 대한 사랑으로 자신을 지켰다. 내가 나를 지키지 않으면 금방 허물어질 것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한번은 어느 연출자 선생님이 나에게 “어떻게 먹고 싶은 떡만 먹느냐?”라며 제의가 오는 작품은 거절하지 말고 하라고 권유하셨습니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래도 먹고 싶은 떡만 먹을 거예요.” 내가 하도 작품을 고르니까 누군가가 “어차피 텔레비전은 예술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너무나 서운해서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예술이라고 생각하고 온몸을 던져도 힘이 드는데, 어떻게 처음부터 아니라고 할 수 있어요? 난 그렇게는 못해요.” CF도 내 마음에 드는 것만 했습니다. ‘지금은 굶더라도 나중에 내가 먹고 싶은 떡을 먹겠다’라는 것이 나의 고집이고 생각이었습니다. 먹고 싶지 않은 것은 안 먹고 참았다가, 먹고 싶은 떡이 나왔을 때 먹는 것. 그렇게 배역을 선택해 왔습니다. -318쪽 ‘신은 계획이 있다’ 중에서

제일제당의 조미료 광고 모델이 끝난 이후에도 수차례 다른 회사의 조미료 광고 모델 제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에게는 돈보다 중요한 게 있었습니다. 나를 지키는 일입니다. 그런 점에서 나는 매우 영리한 여자입니다. 바보 같고 비현실적인 사람으로 보일 때도 있지만, 내가 나를 지키지 않으면 금방 허물어진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영리한 것이라기보다는 그런 쪽으로 ‘촉’이 발달해 있습니다. 나는 나를 굉장히 아꼈습니다. -347쪽 ‘나를 지키는 나’ 중에서


김혜자는 생의 마지막까지 연기에 혼을 불사르려는 강한 욕망을 가진 배우다. 작품을 할 때마다 그것이 자신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여긴다. 작품을 선택할 때 비록 현실이 고통스럽고 절망적이더라도 그 사이에 바늘귀만 한 희망의 빛이 보이는지를 기준으로 삼는다. 그녀는 에세이에서 줄곧 희망을 전한다. 절망과 우울증 속에서도 스스로 힘을 내어 살아가는 게 삶이고, 인간이라고 위로하고 다독인다.
 

스케줄 관리해 줄 매니저도 없고, 의상 코디도 없이 ‘나만큼’ 해서 세상에 나를 보였습니다. 작품을 고를 때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 내가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것을 선택했습니다. 작품을 선택할 때는, 그 여자가 지금 현실이 너무 슬프고 고통스러워도 희망의 빛이 보이는 역을 했습니다. 보는 사람들을 절망에 빠뜨리는 역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형편없는 몰골의 역이어도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누구나 날개를 갖기를 희망합니다. 날개는 누가 달아 주지 않습니다. 내 살을 뚫고 나올 뿐입니다. -138쪽 ‘나의 매니저’ 중에서

<마더>는 나의 죽어 있던 세포를 깨워 준 영화입니다. 봉준호 감독은 내가 미처 생각도 못한 것을 얘기할 때도 많았고, 생각은 같지만 내가 표현이 부족할 때 말해 준 것도 많았습니다. 나를 깨워 놓고 자기 생각을 얘기해 주어서 좋았습니다. 촬영을 하면서 그동안 딱딱하게 굳어 있던 것들, 고착되어 있던 생각들이나 매너리즘에 빠져 있던 것들이 새로워졌습니다. 땅을 일구듯이 나를 다시 일구고 새로 거름을 준 것 같았습니다. 내게 일에 대한 열정이 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현지 촬영으로 전국을 돌아다니니까 만성인 두통도 없어지고, 새로운 열정과 희열이 솟아나는 게 신기했습니다. 불씨만 남아 있던 열정을 다시 타오르게 해 준 봉준호 감독에게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72쪽 ‘매번 처음 사는 인생으로 살았다’ 중에서


많은 후배 배우가 ‘김혜자 같은 배우’를 목표로 삼지만 김혜자는 스스로에게 박한 평가를 내린다. 서툴고 모자란 사람, 부족했기 때문에 열심일수밖에 없었던 사람, 연기에만 완벽주의자였고 엄마와 아내로서는 낙제점인 사람, 용서하기보다는 용서를 구해야 하는 사람. 작품에 들어갔을 때 모든 힘을 쏟아붓고 나머지 시간은 껍데기만 남은 매미 허물처럼 존재하는 스스로를 자책하는 시간도 많다. 다만 그녀를 지탱하는 것은 감사의 힘이다. 신이 자신을 살게 하는 이유를 헤아리며 ‘하루하루를 죽이는 삶을 살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사람들은 내가 현모양처인 줄로만 압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살림도 못하고, 대본만 받으면 그날부터 대본 속 인물이 되어 버려서 식구들은 잊고 살았습니다. 그런데도 남편과 아이들은 내가 배우이니까 당연하다고 인정을 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배우로서 잘해야만 했습니다. 내가 가족에게 남긴 자잘한 상처들이 흐지부지 묻히지 않도록. 가족에게 상처를 주면서 배우의 길을 걸었기 때문에 배우로서 떳떳하지 못하면 정말 면목이 없는 일입니다. 나를 배우로 인정해 주는 가족의 헌신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나에게 부끄럽지 않은 배우가 되어야 한다고 늘 생각했습니다. 그래야 가족에게 미안하지 않고, 부끄럽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연기에 집중하면서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224쪽 ‘용서’ 중에서

삶은 그냥 살아가는 것밖에 답이 없는 것 같습니다. 아픈 오스카만 시한부 인생을 사는 게 아닙니다. 몸이 성한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매일매일 처음 보는 것처럼 세상을 바라봐야 합니다. 우리는 인생을 너무 낭비할 때가 많습니다. 며칠을 살더라도 얼마만큼 가득 차게 사는가, 그것이 중요합니다. 삶은 선물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240쪽 ‘사는 것 외에 다른 해답이 없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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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콜 할 때까지

이제 김혜자는 자신의 혼을 바쳐 연기를 펼칠 ‘마지막’ 대본이 그녀를 찾아오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잔잔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소소하게, 평온하게 말이다. 김혜자는 자신의 에세이 마지막 챕터 제목을 ‘커튼콜 할 때까지’로 정했다. 배우 김혜자는 드라마가 막을 내리면 정직하고 무심한 눈으로 삶을 응시할 뿐이다.
 

앞으로 어떤 작품을 하게 될지 모르지만, 나는 끝나는 날까지 단정하게 살고 싶습니다. 내 책상 위에 있는 달력에도 써놓았습니다. ‘끝나는 날까지 단정하게 살리라’라고. 피곤하고 귀찮아서 흐트러져 있다가도 ‘아니야, 누가 보지 않아도 나 자신에게도 단정하게 사는 나의 모습을 보여 주고 이야기해주고 싶어’ 하면서 힘을 내어 일어납니다. / 배우로 나이가 든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지만 살아 있는 동안 끊임없이 나를 바칠 무언가가 있다는 것만큼 행복한 일은 없습니다. 젊은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으냐는 질문을 받곤 합니다. 그 모든 괴로움과 번민이 다시 반복되기를 원하느냐는 질문처럼 들려서 웃곤 합니다.

나는 커튼콜만 남았다고 오래전부터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디어 마이 프렌즈>를 할 때도 <눈이 부시게>를 할 때도 <우리들의 블루스>를 할 때도 이것이 나의 마지막 커튼콜 작품이라는 생각으로 혼신을 바쳐서 했습니다. 언제나 막차를 타는 심정으로 카메라 앞에 섰습니다. 나는 ‘원로’ 소리를 듣는 것이 싫습니다. 그 말이 내 귀엔 슬프게 들립니다. 원로가 무엇인가요? 이 바닥에서 이제 늙었다는 것이 아닌가요? / 어느 날 마당에 나가니 주황색 장미가 펴 있었습니다. 놀라서 내가 물었습니다. “너 언제 폈어?” 나무 사이에 있어서 몰랐습니다. 너의 얼굴 보니 나한테 해 주고 싶은 말 있는 것 같아. 말해 봐. 너는 나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어?” 그렇게 한참을 서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저녁이 옵니다. 3층 내 방 창문 너머로 저녁이 오는 풍경을 바라보며 앉아 있습니다. 옅은 색조의 어둠이 점점 짙어져 가면서 나중에는 나무들도 꽃들도 그 어둠에 몸을 맡깁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자세히 보면 어슴푸레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연약하고, 또 강하게. / 나를 깨우는 사람이 정말 많습니다. 연기할 때가 아니면 이렇게 늘쩍지근하고 게으른 사람인데 그럴 때마다 내 생각을 깨우쳐 주고, 자극을 주는 분들이 있어 왔습니다. “김혜자, 일어나!” 하고 말해주는 것 같은 이들이, 나를 정신 나게 하고 움직이게 하는 사람들이. 살다 보면 알게 됩니다. 고비고비마다 ‘그 사람을 통해서 살게 했구나’ 하는 것을. ‘아, 정말 기가 막힌다. 신은 나만 보고 있는 게 아닐 텐데, 어떻게 고비고비마다 고마운 사람들을 보내 주셨을까’ 하고 깨닫습니다. 내가 일부러 계획을 한 것도 아닌데, 나를 생각해 주고 끊임없이 일을 하게 해준 사람들. 살아야 할 이유를 갖게 해준 그 사람들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인생은 기억할 단 하루만 있으면 된다고 하는데, 많은 아름다운 기억들도 빛나고 있습니다. 참으로 감사한 생을 살았다 생각합니다. 나는 참 축복받은 배우이구나, 합니다. 언제까지가 나의 삶일지는 모르겠지만, 남은 삶도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성실하게 아름답기를 바라봅니다. 그리 해 주시기를 신께 기도하며 창을 닫습니다. -359쪽, ‘커튼콜 할 때까지’

배우 김혜자는…

배우 김혜자는…

서울에서 태어나 경기여중·고를 졸업하고 이화여대에서 미술을 전공했다. 대학 재학 중이던 1962년 KBS 공채 탤런트 1기에 합격했으나 자신의 연기에 실망해 이내 그만두고, 도망치듯 떠나 결혼해 첫아이를 낳고 육아에 마음을 쏟았다. 하지만 연기에 대한 갈망은 쉬이 사그라지지 않았고, 27살 때 연극으로 다시 배우의 길에 들어섰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극단 실험극장에서 연기의 기본부터 다시 배웠으며, 열망에 훈련을 더한 시기를 거쳐 ‘연극계의 신데렐라’로 떠올랐다. 이후 1969년 개국한 MBC에 스카우트돼 본격적으로 TV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국민배우로 사랑받고 있다.

CREDIT INFO

에디터
하은정
정리
곽희원(프리랜서)
사진
조남룡(코오롱스포츠), 홍장현, 조세현
참고도서
<생에 감사해>(수오서재)
2023년 02월호

2023년 02월호

에디터
하은정
정리
곽희원(프리랜서)
사진
조남룡(코오롱스포츠), 홍장현, 조세현
참고도서
<생에 감사해>(수오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