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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때문에 이혼이 안 돼요! 유책주의에 대하여

우리나라는 선진국 중 유일한 유책주의 이혼 고수 국가다. 그런 이유로 이혼을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경우가 빈번하다. 홍상수 영화감독이 그 예다.

On September 24,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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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예전에 변호사 사무실로 한 중년 여성이 찾아왔다. 유명 재력가의 아내였다. “남편이 결혼 생활 동안 줄곧 제 마음을 아프게 했어요. 가끔 폭력을 쓰는 것보다 인격을 무시하고 욕설을 하는 게 더 힘들었어요.”

참다 참다 못해 이혼을 결심했는데 정작 남편은 “가정을 지켜야 한다”며 이혼을 거부하고 있다는 것. 더욱 황당한 건 부부는 이미 오랜 시간 별거 중이며 남편은 자녀와도 연락을 거의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남편은 1,000억원 상당의 재력가이지만 그녀와 자녀들은 근근이 생활을 꾸려나가고 있다고 한다. 과연 이 여성은 이혼을 하고 재산도 받을 수 있을까?
 

A. 어떤 ‘증거’가 필요할까?
우리나라 민법은 제840조에서 6가지 이혼 사유(폭행, 외도, 유기, 기타 중대한 사유 등)를 규정하고 있다. 이런 6가지 사유에 해당해야만 이혼이 인정된다. 잘못이 있는 유책 배우자가 이혼을 청구할 경우 상대방이 이에 준하는 잘못이 없는 한 결혼 생활이 아무리 파탄에 이르렀더라도 이혼을 허가하지 않고 기각한다. 우리나라 유명 영화감독이 여배우와 사랑에 빠져 아내를 상대로 이혼 청구를 했지만 결국 기각된 사건을 기억할 것이다. 대표적인 유책주의의 의한 판결이라고 볼 수 있다.

유책주의는 배우자의 부정행위와 폭행, 폭언이 인정돼야 이혼할 수 있기 때문에 상대방의 부정행위 현장을 잡고, 폭행은 그때마다 바로 진단서를 떼며, 욕설은 녹음해 증거를 확보해야만 재판상 이혼을 할 수 있다. 증거를 얻지 못하면 평생 이혼을 못 하고 억울하게 살아가야 할 수도 있다. 어떤 증거를 준비해야 할까?

일기장도 증거가 될까? 유책 배우자의 일기장이나 다이어리, 수첩 등을 몰래 복사해 증거로 제시하는 경우도 있다. 법원은 증거자료로는 인정하지 않고 참고 자료 정도로 본다.

불법적인 증거도 인정된다? 외도는 사진, 문자메시지, 녹음, 차량 블랙박스 영상 등이 증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외도 증거를 잡기 위해 배우자의 차나 휴대전화에 위치 추적 장치를 부착하면 형사처분을 받는다(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용하는 이유는 소송상 유리한 증거를 찾기 위해서다. 불법 위치 추적에 의해 수집한 증거의 경우, 형사재판에서는 증거능력이 배제돼 증거로 인정될 수 없으나 민사재판이나 가사재판에서는 증거능력이 인정돼 증거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도청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또한 휴대전화를 몰래 열어 보는 행위도 원칙적으로는 불법이다. 불법적으로 수집한 증거는 형사재판에서는 유죄의 증거로 쓸 수 없지만, 이혼소송이나 가사소송에서는 상대방의 잘못을 입증하는 자료로 쓰일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행위는 별도로 형사책임을 질 수도 있다.

자녀나 가족의 진술서는 마지막 무기 자녀의 진술서가 도움이 될 수 있다. 자녀는 거짓말하지 않고 솔직하게 말하고 누구보다 사실관계를 가장 잘 알기 때문이다. 한편 시가(또는 처가) 식구들이 아내(또는 남편)에게 유리하게 하기는 어렵지만 혹시 남편(또는 아내)과 사이가 좋지 않은 시댁(또는 처가) 식구에게 진술서를 확보하면 도움이 된다.

서두에 언급한 그 재력가의 아내는 긴 시간이 지난 후에 드디어 이혼하고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다. 이 사건이 각각의 당사자 모두에게 힘들었던 이유는 유책주의를 고수한 현행법 때문이다. 남편은 이혼을 강력히 거부하고, 아내는 결혼 기간 동안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증거를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혼하려면 배우자를 불신하고 증거를 준비해야 한다. 과연 이런 제도가 행복한 가정을 유지하기 위한 제도인지는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일방적인 잘못을 한 유책 배우자의 이혼 청구는 인정되기 어렵더라도 최소한 원고가 큰 잘못은 없지만 이미 결혼 생활이 파탄에 이른 부부이거나 상대방의 잘못에 대해 미처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지만 더 이상 혼인 관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부부는 이혼을 허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글쓴이 이인철 변호사는…

글쓴이 이인철 변호사는…

연세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고려대학교 대학원 법학 박사과정 수료
법무부장관 표창
법무법인 리 대표변호사

CREDIT INFO

에디터
하은정
이인철(이혼,가사법 전문 변호사)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2022년 09월호

2022년 09월호

에디터
하은정
이인철(이혼,가사법 전문 변호사)
사진
게티이미지뱅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