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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쉼, 해남 산책

한복 디자이너 이효재와 <우먼센스> 편집장이 느리게 걷는 웰니스 여행을 시작한다.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온 자연의 길 위에서 비우고 채우는 시간! 그 처음은 해남, 일지암과 유선관이다.

On August 30,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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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지암은 차 문화의 성지라고 불립니다.
이곳에서 스님이 내주는 차를 마시는 경험 자체가 차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겐
복이라고 할 수 있죠. 참으로 감개무량합니다.

by 한복 디자이너 이효재

낯선 곳에서 한 달 살기 유행이 여전히 유효하다. 분주하게 움직여 겉모습만 훑고 지나가는 관광이 아니라 진정한 삶의 연장선상에서 쉼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이번 연재도 그런 의미에서 시작했다. 바삐 움직여 많은 곳을 도장 찍듯 들르기보다는 여행지를 오감으로 오롯이 껴안아 음미하듯 천천히 느껴보기로. 한복 디자이너 이효재와 기획한 이 기행은 욕심내지 않고 천천히 한두 곳만 들르는 것으로 정했다. 그리하여 의기투합해 선택한 첫 번째 장소는 바로 땅끝 해남! 서울을 도시의 전형으로 친다면, 땅끝 해남이 어쩌면 또 다른 해답의 출발점이 될 성싶었다.

해남을 가기 위해 서울에서 목포까지 KTX로 2시간 반 남짓, 목포에서 자동차로 40여 분간 이동했다. 해남이 가까워오자 느껴진 풍경은 땅과 하늘의 극명한 대비였다. 해남은 예로부터 광물이 풍부한 적색 황토가 특징이다. 한껏 비옥함을 뽐내는 토양은 해남산 작물이 왜 유명한지 단박에 깨닫게 해주었다. 낮은 구릉지를 유유히 지나다 보면 점점 고도가 높아지며 숲이 울창한 산길을 맞닥뜨린다. 바로 이곳이 두륜산 도립공원. 대흥사 가는 길은 국내에서도 손꼽히는 절경으로 유명하다. 여름의 어느 날 올라갔던 그곳의 녹음이 눈이 아릴 정도로 푸르르고 멋스러웠지만 꽃으로 뒤덮인 봄도, 곱게 물든 가을의 단풍도, 하얗게 덮인 겨울의 설경도 너무 기대되는 곳이었다. 계절마다 한 번씩 들러야겠다는 생각을 그 길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이번 여행의 목적지는 해남 두륜산 도립공원 내 대흥사 입구의 한옥 스테이 유선관과 대흥사 위에 자리 잡은 암자, 일지암 딱 두 곳이었다. 대흥사도 훌륭한 절이지만 이미 가본 이들이 많을 터. 사람들의 발길이 쉬 닿지 않는 곳, 닿기 어려웠던 숨은 여행지를 찾아 기록해보자는 게 그 출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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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지암은 초의선사가 우리나라 다도의 기틀을 세우고 많은 문학과 교류한 유서 깊은 공간입니다.
다시 복원한 이곳에서 차를 직접 심고 따고 전파하면서 그 유지를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by 일지암 암주 법강

차의 성지, 대흥사 일지암에서 마신 차 한 잔

목적지 일지암을 설명하려면 초의선사를 빼놓을 수 없다. 조선 후기의 승려로 우리나라 다도를 정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와 교류하고 한국의 다경이라 불리는 <동다송(東茶頌)>을 지어 우리 차를 예찬하고 다도의 멋을 전했다. 대흥사 경내에는 초의선사의 2가지 기념물이 있는데, 먼저 차 한 잔을 앞에 둔 노년의 초의선사 동상을 들 수 있다. 동상을 지나 산길을 30여 분, 700m 정도 걸어 올라가면 만날 수 있는 일지암이 두 번째 기념물이다. 초의선사가 1824년에 지어 40여 년을 기거한 우리나라 차 문화의 상징인 곳이다. 세월이 지나 그 흔적만 남아 있다가 1970년대에 그 터를 확인하고 건물을 중건했다. 일지암 초정은 가운데에 방 한 칸을 두고 사면에 툇마루를 둔 형태다. 그 옆에 바라보이는 건물이 자우홍련사(자우산방)라는 초의선사의 살림채로 연못에 4개의 돌기둥을 쌓아 만들어 독특한 운치를 자아내는 누각이다. 돌로 켜켜이 쌓은 기둥들이 인상적이다. 이곳에는 옛 정취가 그대로 살아 숨 쉬는 차나무가 지천으로 심어져 있고, 바위틈에서 솟는 물이 나무 대롱에 연결돼 물확에 담겨 흐른다. 이것까지도 옛 모습대로 복원한 것이다.

일지암이 더 특별해 보이는 이유는 가파른 산길을 올라 모퉁이를 돌자마자 새로운 세상인 듯 펼쳐지는 기운과 풍경 때문이기도 하다. 무성한 수풀을 지나 양지 바른 언덕에 올라서면 하염없이 먼 산을 바라보게 하는 매력이 있다. 스님들은 수행을 위해 암자에 머무르기 때문에 일반인과 차담을 나누지 않는데, 동행한 이효재 디자이너 덕분에 과분한 차담의 기회가 주어졌다. 누마루 한편에 앉아 일지암 암주 법강 스님이 직접 기르고 찌고 덖어 내려준 차 한 잔을 맛보며 맞은편 아득한 문필봉 절경을 마주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마침 올라간 날은 산안개가 자욱해 신선놀음에 비견할 만했다. 처연한 고즈넉함이 일지암을 지키고 수행하는 스님의 외로움과 맞바꾼 것이란 생각에 잠시 숙연해졌지만 바람 따라 풍경 소리까지 너무 아름다워 마치 시공간을 이동한 듯한 착각에 빠져들 정도. 푸르른 남도의 풍광에 차향까지 더해져 유혹하더라.


유선관을 리모델링하면서 앞마당을 비우지 않았다면 주위 경관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겁니다.
마당을 비우고 낮은 돌담을 경계로 천년 동백 숲이 보이는 것이 포인트예요.
그 부분이 소름 끼칠 정도로 절묘합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정원을 꾸미고 이것저것 들여놓으려고 했을 텐데
비움의 미학을 제대로 보여주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죠.

by 한복 디자이너 이효재

100년 여관, 유선관에 머물다

두륜산 도립공원 매표소를 지나 굽이굽이 산길을 올라가면 만날 수 있는 한옥 스테이, 유선관. 이곳은 대흥사를 찾는 방문객과 수도승을 위해 지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관으로 지은 지 100년이 넘었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영화 <서편제> <장군의 아들>뿐만 아니라 예능 프로그램 <1박 2일>에 나오면서 널리 알려졌다. 지난해 오랜 시간 같은 자리를 지키던 한옥 여관은 해남이 고향인 한동인 대표의 손을 거쳐 대대적으로 탈바꿈해 새 단장을 마쳤다.

계곡을 거슬러 대흥산 입구 가로수 길을 올라가다 오른쪽에 위치한 나지막한 돌담 안 유선관은 정갈하고 고고하다는 것이 첫인상이다. 해남을 여행지로 정할 때부터 이효재 디자이너가 마르고 닳도록 칭찬한 곳이라 사실 궁금함과 기대감이 컸다. 그래서 딱 보자마자 이곳이 유선관임을 알 수 있었을 정도.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마사토와 장대석이 깔린 넓은 마당과 건물을 둘러싸고 있는 울창한 숲, 그리고 작은 간판이다. 입구에서 카페 유선으로 가는 돌바닥의 돌 하나하나도 허투루 놓인 것 없을 정도로 정갈하다. 바로 보이는 공간은 카페 유선으로 숙박 시 조식을 먹는 곳이기도 하다. 기존에는 공동 화장실과 샤워실이 있던 공간이라고 한다. 그 뒤로 숙소가 자리 잡고 있는 모양새다.

카페를 지나 현판이 보이는 안쪽으로 들어가면 본격적인 숙박 공간이다. 현판은 벼락 맞은 600년 된 나무로 만들어 오묘한 빛깔을 낸다. 유선관은 한옥 스테이로 1호실부터 6호실까지 총 6개의 객실과 2개의 프라이빗한 스파로 이루어져 있다. 1호실은 개별 마당을 가진 독채로 운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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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차경(借景)에 특히 신경을 썼습니다.
유선관을 타고 흐르는 계곡, 동백 숲 등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그 풍경을 그대로 건물과 경관을 구성하는 재료로 활용한 겁니다.
실내는 아늑하면서도 불편함이 없도록 했습니다.
대신 창밖의 자연을 벗 삼아 오롯이 쉴 수 있도록 배려했죠.

by 유선관 대표 한동인

객실 내부는 침실과 좌식 테이블 공간이 구분돼 있는 심플한 구성이다. 여행하면서 현실의 모든 근심을 잊고 진정한 쉼을 얻기에 더없이 좋은 공간 조합이다. 한옥 스테이의 경우 욕실에 대한 막연한 우려가 있는데, 이곳은 현대식으로 리모델링돼 전체적으로 편리하면서도 편안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동행한 이효재 디자이너는 유선관에 들른다면 2호 객실을 추천한다. “계곡에 가장 가깝게 자리 잡은 2호 객실은 넓은 앞마당과 옆마당까지 아우르는 곳입니다. 마당을 통하는 출입구 외에 계곡 쪽으로 창문이 3개나 있는 코너라 가장 유선관의 진면목을 느낄 수 있는 방이죠. 아침에 일어나면 2호 객실 뒤쪽의 계단을 내려가 계곡의 흐르는 물로 꼭 세수해보길 권합니다. 그 기분 좋은 시원함에 매료될 거예요.”

스파는 두 군데로 각각 넓은 개인 욕조가 2개씩 배치돼 있다. 스파 앞에는 동백 숲과 계곡과 맞닿아 있는 야외 공간이 있어 마치 노천탕에 온 듯 황홀하다. 세속의 어떤 방해도 없이 고요하고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유선관에 들른다면 스파는 필수 코스다. 단, 1시간 단위로 예약을 해야 한다.

유선관의 마당 바닥에는 배수구가 없다. 리모델링 시 우물을 만들듯 마당을 다 파서 돌을 깔고 그 위에 마사토를 얹었다. 비가 오면 바닥으로 자연스레 스며들어 진흙 바닥의 물웅덩이가 생기지 않는 것이 특징. 옛 선비들의 사랑채에는 유선관처럼 마사토가 깔려 있었다고 한다. 고고한 선비처럼 정갈한 유선관의 품위는 땅속부터 품어져 나온다고.

노곤하게 스파를 즐기고 창문을 열어 유선관을 따라 흐르는 계곡 물소리, 바람 소리를 듣다 보면 유선관의 밤이 어느새 지나간다. 일어나자마자 창문부터 열게 된다. 비가 오면 운치가 그만인데 산속의 나무와 풀, 이끼, 돌까지 그 색깔이 올라와 생동감을 더한다. 창을 통해 들어오는 공기는 상쾌하고 신선함 그 자체. 자꾸 대청마루에 앉아 한옥의 정취를 느끼고 싶어지는 곳이다. 유선관에는 돌 하나, 나무 하나 그냥 놓여 있지 않다. 예전 높은 담장을 허물고 딱 옆의 계곡을 가리지 않을 만큼, 그리고 위험해 보이지 않을 만큼 담장을 올려 낮지만 안정감이 든다. 테이블과 벤치도 돌인 듯, 나무인 듯 원래 그 자리에 존재하는 정물처럼 자리 잡고 있다.

밤새 비가 내려도 어떤 질척거림도 없는 마당, 흔들림 없이 짙은 오라를 뿜어대는 한옥, 단정하고 편안한 객실, 북적이는 호텔이나 리조트에서는 느낄 수 없는 고즈넉함에 매료됐다. 자연을 위한, 자연이 다한 이곳은 언제고 다시 들르고 싶은 쉼터가 될 듯하다.

CREDIT INFO

에디터
서지아
사진
서지아
2022년 09월호

2022년 09월호

에디터
서지아
사진
서지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