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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 살, 물, 모래, 그리고 흐르는 문장들

‘주술의 시인’ 강은교에 대하여.

On July 24,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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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교’의 문장으로 말하던 때가 있었다. 생애 처음 만나는 낯선 감정들이 조수 간만의 차이를 느낄 틈도 없이 밀려오고 밀려가던 때 그 감정들을 표현할 말이 미처 없어서 문득문득 목이 멜 때. 그때 강은교의 문장들을 꾹꾹 눌러 적어놓곤 했다. ‘청춘의 문장’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렇게밖에는 이름 붙일 수 없는 문장이 있다. 지금도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이라거나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러고도 남은 시간은 침묵할 것”이라는 문장을 만나면 수십 년 전의 파도가 그리고 간 물결자국이 화석처럼 떠오른다. 소리와 냄새조차 휘발되지 않은 생생한 화석이다.

그 많은 필사 노트는 어디로 갔을까? 사실은 궁금하지 않다. 그 문장들은 종이에 적힌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갓 무두질한 양피지에 적듯 그 문장들을 내 피부 안쪽에 적어두었다. 그때 읽었던 시들은 이후 살면서 직면하는 선택에 음으로 양으로 많은 영향을 주었다. 사람들을 만나 관계를 맺을 때 불이 아닌 흐르는 물로 만나는 법, 떠나고 싶은 자와 잠들고 싶은 자를 놓아주고 뒷모습을 실눈으로 보는 법, 길이 보이지 않을 때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는 것을 잊지 않는 법.
강은교는 1945년 함경남도 홍원에서 태어났다. 독립운동가였던 아버지는 곁에서 가족을 지키지 못했고, 어머니는 백일 된 그를 업고 임진강을 건너야 했다. 6·25전쟁 이후 열차 꼭대기에 앉아 흘러흘러 부산까지 갔던 것도 아버지가 정부를 따라 부산으로 갔기 때문이었다.

20대 중반인 1968년에 시 ‘순례자의 잠’을 발표하면서 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한 그는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민중운동가이자 시인인 남편과 결혼했다. 1971년에는 첫 시집 <허무집>을 냈다. 4·19와 5·16, 독재 정권이 이어지던 당시의 분위기 속에서 그는 현실에 대한 관심과 허무주의를 시로 표현했다. 무속, 불교적 윤회관 등이 드러나는 그의 시는 독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강은교, 그는 마력의 시인이요 주술의 시인이다. 강은교에게 있어 허무는 윤회사상으로 발전하고, 윤회사상에 바탕한 그의 시는 어느새 주술적 가락을 띠게 된다. (중략) 이 주술적 가락 속에서 그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언어들, 예컨대 뼈, 살, 물, 모래 등은 해체된 삶의 무의미한 모습, 삶이 궁극적으로 도달하는 허무의 실상, 의지와는 무관하게 형성, 진행되는 인간의 운명 등을 각각 상징함으로써 그의 시 자체를 영매적, 주술적인 것으로까지 만들어주고 있는 것이다”라는 신경림 시인의 말은 그의 작품이 가지고 있는 분위기와 철학을 보여준다.

아이를 임신하고 있을 때 ‘선천성 뇌동맥 정맥 기형’으로 뇌혈관이 터지면서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온 그는 그 과정에서, 임신했던 쌍둥이 중 하나를 잃고 왼쪽 다리를 절게 되는 후유증을 얻었다. 이후 그의 시는 사람과 삶, 공동체에 대한 애정과 치유로 방향을 바꾼다. 2000년에 버클리대 방문 교수로 활동한 그는 ‘시 낭독회’를 열면서 시 낭독의 효과를 경험하고, 이후 ‘시 치료’의 새로운 기법을 만들어 실천하고 있다.

시집으로 <빈자일기> <소리집> <붉은 강>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 <그물 사이로> <추억제> <누가 풀잎으로 다시 눈뜨랴> <어두우니 별 뜨는 하늘이 있네> 등이 있다. 이 외에도 다수의 동화와 연구서, 역서를 펴냈다. 현대문학상, 소월시문학상, 한국문학작가상, 정지용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CREDIT INFO

에디터
하은정
박사(북 칼럼니스트)
2022년 08월호

2022년 08월호

에디터
하은정
박사(북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