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카카오 스토리 인스타그램 네이버 포스트 네이버 밴드 유튜브 페이스북

통합 검색

인기검색어

HOME > PEOPLE

PEOPLE

기혼 여성은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다?

이성경 작가와 박식빵 작가는 기혼 여성이라서 페미니즘에 더욱 공감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녀들에게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물었다.

On October 19, 2021

/upload/woman/article/202110/thumb/49319-468746-sample.jpg

이성경 작가(좌)와 박식빵 작가는 기혼 페미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페미니스트들은 비혼주의, 비출산주의라는 인식이 있어요. 기혼 페미니스트가 된 계기가 궁금해요.
이성경(이하 이) 남편 때문에 페미니즘을 알게 됐어요. 남편과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데 '처가댁'이라는 간판이 보이는 거예요. 남편에게 "남자들은 왜 처가댁이라고 안 하고 처가라고 해? 여자들은 시댁이라고 하잖아. 이상하지 않아?"라고 물었어요. 그러자 남편이 "너는 참 이상해. 별것도 아닌데 예민하게 받아들여. 처갓집이라는 말이 친근하니까 사용하지"라고 답하더라고요. 제가 웃으면서 "그럼 나도 이제 시가라고 해야겠다. 친근하고 좋네"라고 말했더니 남편이 화난 표정으로 "당신, 페미니스트야?"라는 거예요. 당시 '페미니즘'의 '페' 자도 몰랐던 저는 당황해서 "아니야!"라고 대답했어요. 그때부터 궁금해졌어요. 도대체 페미니즘이 뭐길래, 남편이 저러나 싶었던 거죠.

박식빵(이하 박) 제가 겪은 고부 갈등 이야기를 담은 <님아, 그 선을 넘지 마오>를 출간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출간한 책을 다시 한 번 보려고 펼쳤는데 머리가 띵했어요. 내 책을 페미니즘으로 홍보하면서, 어째서 결혼 제도에 대해 한 치의 의문도 갖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 거죠.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페미니즘은 무엇인가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소수자에 대한 시선이자 이미 평등하지 않은 이 세상이 어떻게 여성을 관찰하는를 살펴보는 것이요. 단순히 남성에 대한 피해 의식을 갖는다거나 똑같이 대우해달라는 게 아니에요.


왜 결혼 후 페미니스트가 됐나요?
결혼 전에 저는 이성경이라는 한 사람이었는데 결혼 후 저는 이성경이란 사람이 아니라 여성이 됐거든요. 날마다 제 성별을 인식했어요. 여자니까, 아내니까, 엄마니까, 며느리니까. 요리를 해야 하고 출산을 해야 하고 육아를 해야 했죠. 제가 일상에서 하는 고민들은 사람이라서 하는 게 아니라, 여자라서 하는 것이었어요. 오늘 저녁엔 뭘 먹지라는 고민을 하는 이유가 여자라서 하는 거더라고요.


저도 어제 "집에 먹을 게 없네"라는 소리를 들었어요. 같은 집에서 저는 알아서 밥을 먹었는데, 뭐 어떡하라고 그런 말을 할까요?(웃음)
마치 여자인 내가 저녁을 챙겨줘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불평등한 거예요. 공동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함께 밥 걱정을 해야죠. 저는 그런 말을 들으면 이제 남편에게 이렇게 말해요. "왜 밥이 없어?"(웃음)

그런 의식을 갖는 게 페미니즘의 시작이에요. 하루는 남편이 페미니즘을 이해하고 싶다고 세 줄로 요약해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마음을 가다듬고 제가 한 책에서 본 매슬로의 인간 욕구 5단계로 설명했어요. 남자들은 4단계인 인정 욕구부터 충족되지 않는데, 여자들은 2단계인 안전 욕구부터 충족이 안 된다고요. 이런 불평등을 없애는 게 페미니즘이라니까 이해가 되지 않는대요.


불평등을 인식하지 못하죠. 받아들이는 날이 올까요?
옵니다. 저는 결혼 10년 차라 싸울 만큼 싸웠는데 이제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어요. 그 기저엔 '밥'이 있어요. 도서<진짜 페미니스트는 없다>에 따르면 출산과 밥이 여성의 삶을 억압한다고 해요. 60대 여성들이 남편의 밥을 챙겨줘야 돼서 일주일 동안 여행을 못 간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저는 남편에게 출산은 어쩔 수 없으니 밥에 대한 책임을 지라고 했어요. "내 인생에서 밥을 빼겠다"라고 선언했어요.


계획대로 인생에서 밥이 빠졌나요?
남편이 완벽하게 책임져요. 남편에게 배달 음식을 먹든, 외식을 하든, 굶든 스스로 생각하고 식단을 결정하라고 했죠. 밥 문제가 해결되니까 삶이 평등해 보이더라고요. 지금은 남편이 아이들이 먹을 아침을 준비하고 출근하고, 김장 김치를 담글 정도로 요리 실력이 늘었어요. 그래서 저는 주변에 남편을 무한으로 내버려둬야 한다고 말해요. 남편에게 무언가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거죠.


육아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남자도 육아를 하면 할수록 더 열심히 하더라고요.
아이가 3살이 되기 전까지 남편도 육아를 하는 분위기를 형성해야 해요. 전 실패했어요. 출산 직후부터 홀로 육아를 책임졌거든요. 아이가 낮엔 종일 울고 밤엔 잠을 잘 못 잤는데, 남편은 출근해야 하니까 저 혼자 낑낑거리면서 버텼죠.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육아는 저 혼자의 일이 되더라고요. 그런데 되돌아보면 육아 자체보다 반 발짝쯤 뒤로 물러나 있는 남편 때문에 더 힘들었어요.

일반적으로 3살 전에 엄마와 애착 형성을 해야 한다고 하는데 왜 아빠하고는 애착 형성을 해야 한다는 말을 하지 않나요? 아빠에게도 엄마와 똑같이 3년밖에 시간이 없거든요. 그래서 전 주말마다 집에서 나가서 아이들이 아빠와 친밀해질 수 있는 기회를 줘요. 어린 시절에 아빠와 친밀감을 쌓지 않으면 평생 쌓을 수 없거든요. 외로운 중년 남자라는 말이 괜히 생기는 것이 아니에요.

페미니즘은 일상에서 평등을 찾는 것이에요.
가사노동과 돌봄은 아내라서, 엄마라서 여성이 해야하는 일이 아니라 함께 사는 사람들이 같이 해야 하는 일이에요.
이런 고민을 하는 게 페미니즘이에요.

남자도 돌봄에 능동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의미죠?
가사와 돌봄은 누군가를 위한 희생이 아니라 삶을 풍요롭게 할 기회예요. 요리를 함으로써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다양해지고, 육아에 참여함으로써 노년에 자식에게 안부 전화 한 통이라도 더 받을 수 있을 테니까요.

합의의 과정이 쉽진 않은 것 같아요. 저는 아직도 남편과 치열하게 다투고 있어요. 남편은 페미니즘보다 먹고사는 문제가 더 중요하다고 말해요. 자연스럽게 대화가 단절되더라고요.

저는 결혼을 앞둔 남녀가 결혼 전에 가족이라는 것이 무엇이고, 가정에서 가사와 돌봄이 어떤 의미이고 왜 함께 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대화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미혼 여성 일수록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져야 해요. 결혼한 여자의 삶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여자가 처한 상황에 어떤 문제의식을 가져야 하는지 스스로 알아야 하죠.

우리가 매일 겪는 일이 곧 페미니즘이에요. 많은 여성이 결혼한 다음 날부터 남편의 아침 메뉴를 고민해요. 자신은 아침을 먹지 않으면서 남편이 먹을 국을 끓이는 여자가 많아요.

남편의 아침을 차려주는 게 당연한 게 아니라는 의식을 가져야 해요. 당연한 게 아닌데 당연한 것이 되는 상황에 의문을 갖는 거죠. 그래야 내 삶이 자유로워질 수 있어요.


페미니즘은 일상의 이슈를 다루는 건데, 왜 부담스러운 존재가 됐을까요?
언론이 문제라고 생각해요. 민주주의에 여러 모습이 있듯이 페미니즘에도 여러 모습이 있거든요. 여러 갈래의 페미니즘 중에서 제일 자극적인 것을 부각시켜서인 것 같아요. 페미니스트라고 해서 모두가 비혼주의자일 필요 없고 노메이크업이나 탈코르셋을 하지 않아도 되거든요. 세상에 다양한 사람이 있듯이 페미니스트가 추구하는 바도 다양해요. 페미니즘이라는 가치에 무지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가치관을 알면 그 자체로 인정할 수 있어요.

왜 스스로 알려는 노력을 하지 않을까요?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인 남편이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지 않고 알려달라고만 해서 아쉬울 때가 많아요.

모든 남자가 여자들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긴 어려울 거예요. 나와 관련된 직접적인 이슈가 아니면 들여다보지 않을 가능성이 크죠. 우리는 동물 보호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왜 그 운동을 하는지, 또 어떤 사람들이 왜 비건이 되길 택했는지 잘 모르잖아요. 그럼 "내가 잘 모르니까 간략하게 알려줄 수 있을까?"라고 물을 수 있잖아요. 상대가 질문할 수 있어요. 그럼 우리는 알려줘야죠.


그런데 기혼 여성이 처한 불평등을 이해시키려다가 이런 말을 듣기도 해요. "넌 왜 그렇게 불만이 많아? 싸움을 만든다"라든가 "너는 유별나다"와 같은 말이요.
하고 싶은 말을 참으면 해결되는 것은 하나도 없어요. 불편해도 계속 말해야 변화가 생겨요.

많은 사람이 남녀 갈등이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갈등이라는 단어 대신 성장이라는 단어를 썼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지금 성장통을 겪고 있다고 인식했으면 좋겠고요. 부부 상담을 하면 서로 양보해 가운데서 만나라고 하는데, 전 가운데가 아니라 더 나아가서 만났으면 해요. 여자들의 인식은 저 앞에 있는데, 남자들은 가부장제의 틀에 갇혀 저 뒤에 있는 거잖아요. 가운데서 만나면 여자들은 퇴보하는 거죠. 남녀 모두 성장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관점으로 접근해야 변화가 일어날 거예요.


마지막으로 묻고 싶습니다. 페미니즘 운동으로 어떤 세상을 만들고 싶은가요?
제 딸이 부당하게 피해 보거나 차별받았을 때 그 상대에게 올바른 방법으로 똑똑하게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페미니즘을 알기 전에 저는 여자라서 피해나 차별을 받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거든요.

일상이 평등해지길 꿈꿔요. 그러기 위해선 기혼 여성들이 생각하는 걸 멈추지 않아야 해요. 생각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익숙한 남성 중심 사회로 끌려갈 거예요. 내가 먼저 바뀌어야 남편도 바뀔 수 있어요. 모두가 평등하게 가사와 돌봄을 책임질 때, 우리는 성숙한 인간으로서 충만한 삶을 살 기회를 얻을 수 있어요.

CREDIT INFO

에디터
김지은, 박현구
사진
지다영
장소협찬
파비욘드갤러리
2021년 10월호

2021년 10월호

에디터
김지은, 박현구
사진
지다영
장소협찬
파비욘드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