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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생 도시

이토록 여행이 간절했던 적이 있을까? 작가 6명이 보내온 ‘대리 만족 여행기’.

On August 10, 2021

3 / 10

 

예술의 해방구, 탈린

이상정(<밥보다 여행> 저자)

2018년 2월 6일, 트렁크 2개 끌고 25살인 딸과 함께 지구의 서쪽 어딘가를 향해 떠났다. ‘모녀 여행 365일’(실제로는 서울에서 벌어진 일 처리로 276일 만에 돌아오게 됐지만) 계획으로 여행한 지 188일 되는 날, 37번째 도시 탈린에 도착했다. 이 도시를 선택한 이유? 세계사 시간에 입으로 외우기만 했던 발트 3국 중 하나, 동토(凍土)의 끝일 것만 같은 땅, 구소련의 지배하에 있던 나라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은 어떤 곳일지 궁금해서였다.

탈린 공항에 첫발을 디디자마자 비행기를 잘못 타고 헬싱키에 내린 건가 우려돼 휘휘 둘러봤다. 첫인상은 경쾌하고 밝고 아름답고 깨끗하며 군더더기가 없는 맑은 색상의 도시였다. 고개를 갸우뚱했다. 1991년에 소련으로부터 독립했으므로 아직은 잿빛 도시리라 상상했는데 말이다. 경험 없는 상상은 오류이기 일쑤임을 또 실감했다. 게다가 자타가 공인하는 IT 강국임을 탈린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 비치된 잡지를 통해 알게 됐다.

공항에서 크루즈선이 머무는 항구와 지근거리에 위치한 숙소(침실, 거실, 부엌, 욕실이 있는 아파트)까지 겨우 30분이 걸렸다. 딱 그 30분 동안 탈린이라는 도시를 함축하는 ‘디자인, 디테일, 디지털’ 세 단어가 떠올랐다. 흠잡을 구석이 없는 도시. 이 말이 인정머리가 없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며 오히려 그 반대다. 우리는 이 도시에 일주일 동안 머물기로 했다.

숙소의 주인 카트린은 ‘중세도시’로 흥미를 끄는 구도심은 당연하겠고 젊음과 창작, 예술 지구인 ‘텔리스키비 크리에이티브 시티(Telliskivi Creative City)’에 가보라고 권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출발한 기차가 닿는 공장 지대로 한때 꽤나 성업했던 곳이다. 거대한 규모의 폐공장 상업 지구 개발계획은 불발됐다. 대신 기획자, 창작자, 예술가, NGO 활동가들의 손에 넘겨졌고 지금까지 자율적으로 운영되는 재개발의 성공 사례로 그들만의 해방구가 됐다.

중세도시 모습을 간직한 구도심을 지나 텔리스키비 시티까지 곧장 걸어가면 40분 정도 걸린다. 우리는 오가며 가게, 카페, 무쇠 간판, 상점마다 상징적으로 세워놓은 인형들에 눈길을 주었다. 이국의 풍물을 마주하면 더 파보고 싶은 호기심과 견물생심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추운 도시라 그런지 독특한 디자인의 모자, 요정 나라의 모자처럼 뾰족하거나 꼬리 달린 형형색색의 모자들이 두 눈을 현혹시켰다. 결국 모자를 구입했다.

우리는 다른 도시에서 보지 못했던 ‘것’들을 촉각으로 느꼈다. 눈은 촉감과 교묘히 연결돼 생나무 그릇의 부드러움, 모 스웨터의 따스함, 가죽 장정(裝訂)의 매끄러움, 벼린 쇠의 둔탁함을 고스란히 전해주었다. 자연의 기본에 충실한 도시이자 IT와 미래를 향한 문화예술 콘텐츠가 살아서 움직이는 듯한 도시. 말 그대로 형용사 ‘생생하다’가 어울리는 도시 탈린을 반환점으로 우리는 동쪽, 서울을 향해 조금씩 이동했다.
 

추천 스폿 3

1 올데한자(Olde Hansa) 레스토랑
구시가 한가운데에서 인테리어, 직원 의상, 음악, 퍼포먼스, 음식을 통해 흥겨운 중세 시대 분위기를 맛볼 수 있다. 레시피는 700년이나 됐단다.

2 레스토랑 풀(Restoran Pull)
탈린 구도심 옆, 거대한 제분소 공장 지대를 재개발한 세련된 디자인의 ‘로테르만’ 지역 내에 위치. 탈린 전통미의 현대적 해석, 트렌디한 탈린 라이프스타일을 엿볼 수 있으며, 모던한 세련미를 드러내는 캐주얼 파인 다이닝을 제공한다. 정갈하게 신선한 재료로 만든 음식 맛은 묻지 않아도 된다.

3 에프 훈(F-Hoone)
텔리스키비 시티의 여타 식당과 마찬가지로 구소련 시대의 폐공장을 개조해 만든 식당으로 재개발 초기에 이곳에 안착한 초기 멤버. 터프한 인더스트리얼 디자인으로 실내를 꾸몄다. 나이 불문하고 감각적이며 리버럴한 사람들이 모여드는 듯하다.

 

3 / 10

 

지상의 천국, 칸쿤

조헌주(<서먹한 엄마와 거친 남미로 떠났다> 저자)

끝없이 펼쳐진 에메랄드빛 바다! 아름다운 색을 품고 있어선지, 잔잔해서 아름다운 건지…. 바다를 보는 내내 새삼 내가 멕시코 칸쿤에 와 있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신혼여행지로 유명한 이곳에 남편이 아닌, 엄마와 단둘이 와 있다니. 그래도 내가 딸로서 엄마한테 최고 잘한 일은 엄마와 함께 여행하며 이곳 칸쿤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올인클루시브 호텔에 함께 온 일이 아닐까? 엄마가 “진짜, 너무 좋다”라고 말하는 걸 백번쯤 들었으니까. 하얀 모래사장이 ‘떡가루’처럼 곱다며 멋진 석양과 함께 바다에서 수영을 즐기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난 흐뭇했다. 지상에 천국이 있다면 바로 이곳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일상에서는 아무리 멋진 일출이나 일몰을 보더라도 여행지에서만큼 감흥이 덜한 건 사실이다.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어서겠지. 계속될 수 없다는 유한한 상태에 놓이면 찰나를 잡고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진다. 그게 바로 낯선 곳으로 떠난 여행이 가져다주는 묘미다. 그 찰나에 부여잡은 그 장면과 감성은 일상에서 소소하지만 대단한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같은 풍경 속에서 내가 최고로 행복했던 그 순간을 떠올리면 금세 행복한 기운이 온몸으로 퍼진다. 그렇게 계속 일상에서도 내가 여인의 섬의 일몰을 떠올리는 이유다.

칸쿤은 온전히 휴식하기도 좋지만 원하는 여행을 다 즐길 수 있는 팔색조의 매력을 지니고 있다. 많은 매력적인 장소 가운데 우리의 마음을 가장 사로잡은 건 핑크라군이다. 분홍색 플랑크톤이 대량 서식해 핑크빛으로 물든 호수! 생각만 해도 마음이 ‘핑크핑크’하다. 신비로운 자연현상은 꼭 봐야 한다며 차를 대여해 그곳으로 향했다. 2시간쯤 신나게 달렸을까? 차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서 세워보니 타이어가 다 찢어져 타고 있었다. 그것도 모르고 좋다고 달렸는데…. 다행히 뒤에 오던 차의 사람들이 도와줘 새 타이어로 교체했다. 그런데 또 길을 잘못 들어 한참을 헤매고, 차가 갯벌로 빠져 위험한 상황에 처하고 차 밑의 범퍼까지 떨어지는 사고가 연속적으로 발생했다.

우여곡절 끝에 3시간이면 갈 거리를 6시간 걸려 도착하고 그 와중에 코앞에 있는 진짜 핑크라군을 못 보고 옆에 다른 곳에서 사진을 열심히 찍었다는 사실! 아무튼 마침내 핑크라군에 도착해 사진을 찍던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비로소 “다 이루었다!”라고 외칠 수 있었던 순간! 여행에서나 인생에서나 이렇게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난다. 그런 상황에 부딪히고 받아들이기도 하며 점점 마음이 단단해져간다. 마음속에 천국을 하나둘씩 쌓아가며 행복한 어른으로 성장하고 있다.
 

추천 스폿 3

1 핑크라군(Las Coloradas)
버스를 타고 갈 수도 있지만 차를 빌려 사람들과 함께 타고 가면 색다른 묘미를 느낄 수 있다. 핑크라군을 찍고 꼭 큰길로 가길 바라며, 가는 길에 플라밍고 서식지에서 플라밍고도 볼 수 있다.

2 익킬 세노떼(IK-KIL Cenote)
석회암 암반이 함몰돼 지하수가 드러난 천연 샘 세노테 중 가장 유명한 익킬 세노테는 땅속에 있는 오아시스 같다. 날씨가 좋을 땐 해가 지하까지 비춰 신비로움이 느껴진다. 다이빙과 수영을 즐길 수 있는, 놓치면 안 될 포인트다.

3 여인의 섬(Isla Mujeres)
황홀한 선셋 포인트다. 투어 상품으로 소수의 인원이 카마타란 요트를 타고 가는 것과 큰 배를 타고 가는 것이 있다. 투어 상품을 이용하지 않고 선착장으로 가서 보트를 타고 들어가면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3 / 10

 

오로라의 순간, 로포텐

배나영(<리얼 국내여행> 저자)

말 그대로 칠흑 같은 밤이었다. 북유럽의 밤은 검디검어 차의 헤드라이트 불빛도 집어삼키는 듯했다.

우리는 EBS <세계테마기행>의 북유럽 편을 찍고 있었다. 단출한 일행이었다. PD님과 촬영감독님, 큐레이터인 나까지 달랑 3명. 촘촘한 일정에 맞춰 핀란드에서 스웨덴을 지나 노르웨이까지 육로를 통해 12시간을 이동하는 날이었다. 책임감 투철한 PD님이 운전을 도맡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피곤을 덜어주려 애썼지만 자정을 넘기면서 모두 말수가 줄었다. 겹겹이 패딩을 껴입고 뒷자리에 앉아 깜박 졸았나 보다. 갑자기 엉덩이가 하늘로 치솟았다. 으잉?

눈을 떠보니 몸이 기우뚱했다. 왼쪽 뒷바퀴를 높게 쳐든 차. 상황인즉슨 PD님은 잠깐 졸음도 쫓을 겸, 주차할 데가 있나 갓길을 살폈더랬다. 선명한 타이어 자국이 보이길래 주차장인가 싶어 슬며시 핸들을 꺾었지만 웬걸, 그대로 눈밭에 곤두박질쳤다. 알고 보니 그 타이어 자국은 눈 위에서 씽씽 달리는 스노모빌(눈 위에서 빠르게 이동할 수 있도록 트랙과 스키가 부착된 동력 차량)의 자국이었다.

우리는 차를 밀어도 보고, 눈을 치워도 보고, 눈을 타이어 밑에 뭉쳐 넣어도 보고 할 수 있는 모든 ‘난리 브루스’를 췄으나 차는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추워서 다시 차에 탔다. 새벽이라 기온은 이미 영하 30℃, 칼바람까지 불어 체감온도는 영하 40℃를 밑돌았다.

차 안에서 우리는 또 한 번 좌절했다. 긴급 상황이니 구급 센터에 연락하자고 의견을 모았으나 전화가 터지지 않았다. 마을의 불빛도, 지나가는 차 한 대도 없는 길에서 전화까지 불통인데 영하 30℃에서 얼마나 버틸지 모르는 기름. 너무나 비스듬해 좌불안석인 차 안. 내일은 내일의 촬영이 있고, 아직 7~8시간 더 운전해서 가야 하는데. 한숨조차 내쉬기 어려웠다.

“어? 오로라다!” 오로라는 우리가 가장 절망한 순간 찾아왔다. 희뿌연 언덕 너머에서 푸른빛이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하늘이 점점 초록으로 물들었다. 감독님은 주섬주섬 카메라를 꺼내 세팅을 시작했고, 나는 졸다 깬 얼굴에 비비크림을 찍어 바르며 촬영 준비를 했다. 오로라는 무지갯빛 커튼을 360도로 펄럭이며 한참이나 우리를 위로했다. 우주적인 스케일로 펼쳐지는 장관 아래 인간들의 걱정 따위는 끼어들 틈이 없었다. 어느새 우리는 세상만사를 잊은 채 한참 동안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운명이란 참 신기하기도 하지. 초록빛 오로라의 여운이 가시자마자 우리에겐 천사가 나타났다. 커다란 냉동 트럭을 몰고 나타난 천사는 종종 있는 흔한 사고라며 우리 차에 로프를 걸어 5초 만에 길 위로 꺼내주고 총총 사라졌다.

어쩌면 우리는 다시없을 황홀한 순간을 만나기 위해 아찔했던 절망의 시간이 필요했던 게 아닐까? 폭발하는 오로라 아래서 영하 30℃의 추위를 잊고 춤을 춰보니 알겠다. 인생의 어떤 순간에도 절망하긴 이르다는 걸. 수렁에 빠진 나를 건져낼 천사는 예고 없이 찾아온다는 걸. 이게 바로 인생의 묘미, 여행의 묘미.
 

추천 스폿 3

1 로포텐 바이킹 박물관(Lofotr Viking Museum)
건물 자체가 바이킹의 배를 엎어놓은 듯이 생겼다. 로포텐제도의 보르그 마을에서 발굴된 바이킹 유적을 모아 꾸민 박물관이다. 바이킹이 살던 시대로 돌아가 그들과 함께 “스컬(건배!)”을 외치며 축제를 즐길 수 있다.

2 누스피오르(Nusfjord)
가장 그림 같은 풍경이란 누스피오르를 놓치면 아쉬울 듯. 로포텐제도에서 오지 중의 오지라 낯선 곳이지만 노르웨이 어촌이 잘 보존돼 방문할 가치가 충분하다.

3 스볼베르 마을(Svolvær)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어촌으로 손꼽히는 스볼베르는 매년 전 세계에서 하나뿐인 대구잡이 대회가 열린다. 대구잡이로 생계를 유지했던 바이킹과 만나는 마법의 시간으로, 어른 키만 한 대구를 잡는 장관이 펼쳐진다.

 

3 / 10

 

일상의 선물, 길리

청춘유리(<오늘은 이 바람만 느껴줘> 저자)

인도네시아 길리의 아침은 새소리에서 시작한다. 눈뜨면 폭신한 침대에서 10분 정도 에어컨 바람을 쐬다가 하늘이 보이는 야외 화장실로 들어가 대충 고양이 세수를 한다. 급하게 출근을 한다거나 씻고 화장해야 하는 일이 없는 나는 여행 중이다. 발가락이 편한 슬리퍼를 신고 조식을 먹으러 간다. 매일 비슷한 몇 개의 메뉴가 질릴 법도 한데 다행히 아직까지는 아침만 되면 조식을 먹을 생각에 행복이 몰려온다. 쓴 아이스커피를 마시며 내 옆에 앉아 졸고 있는 이 숙소의 고양이를 보고 있노라면 이곳이 바로 천국이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길리를 사랑했던 이유는 또렷한 계획 없는 일상이 주는 작은 행복들 때문이었다. 일어나서 누군가 만들어주는 밥을 먹고, 침대에 뒹굴다 정오가 넘으면 자전거를 타고 바닷가 산책을 했다. 참고로 자전거는 숙소에 있는 건 낡았을 경우가 있으니 따로 돈을 주고 빌리는 것이 조금 더 마음 편하다. 그러다 마음에 드는 음식점이 보이면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고 스노클링을 하거나 잠을 자거나 책을 읽거나 또 맥주를 마시는 등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이 이끄는 대로 행동하는 하루가 좋았다(지금 생각해보면 이 행위들이 어찌 좋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쩌면 그렇게 살아도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이 섬의 여행자로, 또 낯선 이방인으로 이 섬에 익숙해지는 내가 좋았으리라.

이 섬에 처음 여행을 왔던 건 5년 전, 스노클링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아름다운 수중 환경만큼이나 섬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더 있다. 배를 타고 섬에 진입하자마자 만날 수 있는 에메랄드빛 바다와 새하얀 백사장을 보고 첫눈에 반했고 그곳에서 춤을 추거나 잠을 자거나 책을 읽거나 노래와 바다를 사랑하는 여행자들의 자유로운 영혼에 마음을 뺏겼다.

섬에는 자동차나 오토바이가 없어 시끄러운 경적 소리나 매연 냄새가 아닌 사람들이 사는 소리가 들렸고, 수중 환경만큼이나 아름다운 길리섬의 선셋을 매일 마주하는 건 필수다. 오색빛으로 변하다 어둠이 찾아오면 불이 다 꺼진 길리의 밤하늘 위로 은하수가 펼쳐졌다. 이러니 어찌 천국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니 그곳에서는 삶에서 이고 가던 짐들을 잠깐 내려놓고 가장 가벼운 옷차림으로, 가장 후련한 마음으로 섬에 빠져들어야 한다. 그럼 섬은 분명히 또 다른 선물을 내줄 것이다.

추천 스폿 3

1 잘리키친(Jali kitchen)
현지인이 하는 퓨전 인도네시아 레스토랑으로 대부분의 메뉴가 평균 이상으로 맛있고, 버터치킨이 유명하다. 잘리키친에서 운영하는 잘리리조트도 시설이 깔끔해 숙박하기에 좋다.

2 선샤인 카페(Sunshine cafe)
길리에 있는 한식당으로 수준급의 한식 맛을 낸다. 양념치킨, 김치볶음밥, 김치찌개 등 한식이 그리울 땐 꼭 찾아가야 할 곳이다.

3 스노클링 스폿
거북이가 자주 출몰하는 터틀 포인트와 바닷속 오토바이 구조물이 신비로움을 자아내는 빌라 옴박 선셋 앞 포인트가 좋다.

 

3 / 10

 

변치 않는 도시, 프라하

박사(북 칼럼니스트)

“자, 여기에서 돌아보세요” 하는 소리를 듣고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가 사랑에 빠졌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한 달쯤 계속된 여행으로 웬만한 풍경에는 시큰둥해졌을 무렵이었다. 겨울의 유럽은 해가 무척 빨리 진다. 숙소에 가방을 놓고 저녁 공연을 보러 가면서 우리가 가로지르고 있는 곳이 그 유명한 프라하의 구시가 광장임도 잊고 있었다. 한참 수다를 떨며 걷는 우리 앞을 가로막으며 지인이 말했다. “돌아보세요.” 뒤를 돌아보니 그곳에 불빛을 받아 아름답게 빛나는 틴 성당이 있었다.

웅장하기로 유명한 성당은 웬만큼 보았다. 압도되기도 하고 감탄하기도 하고 경건해지기도 하면서. 그러나 틴 성당은 다른 성당들과 달랐다. 규모도 작고 예술성도 다른 성당들보다 뛰어나다고 하기는 어려웠지만 작은 광장을 살며시 끌어안는 다정함이 있었다. 그 뒤로 나는 구시가 광장에 들어서 틴 성당이 보일 때마다 생각했다. ‘집에 돌아왔구나.’

프라하는 두 번 갔다. 두 번 다 겨울이었다. 내게 그곳은 영원히 겨울인 도시다. 크림을 얹은 따뜻한 커피와 온통 고기뿐인 저녁 식사, 간간이 흩날리는 눈발과 손이 얼듯 차가운 청동상의 도시. 지상은 얼어붙어 있지만 지하로 내려가면 어둡고 따뜻한 불빛 아래 마리오네트 공연과 재즈 연주를 들을 수 있는 도시.

프라하보다 훨씬 오래 머물렀던 도시는 많다. 그 도시들에서 나는 금방 현지인이 됐고 숙소를 집으로 여겼다. 그렇지만 ‘집’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은 구시가 광장을 내려다보는 틴 성당이다. 늘 관광객이 모여 목을 빼고 보고 있는 프라하 구시청의 천문시계를 볼 때도, 카프카가 태어난 생가와 살았던 집을 둘러볼 때도 나는 어딘가를 틴 성당에 기대고 있었다.

두 번째 여행에서 프라하에 도착해 눈도장을 찍은 뒤 두 주 동안 이친과 올로모우츠, 체스키 크룸로프와 마리안스케바즈네를 돌았다. 잠시 오스트리아의 빈에 들러 눈 호강을 하고 돌아오니 체코의 모든 건물이 무척 소박하게 보였다. 더구나 빈에서는 어느 유럽의 도시보다 환상적이라는 화려한 크리스마스 마켓을 둘러보고 온 참이었다. 구시가 광장으로 돌아오니 이곳에서도 마침 크리스마스 마켓을 열고 있었는데, 광장 안에 세워진 부스가 조촐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틴 성당은 변함없었다. 여전히 성모상처럼 우아하게 구시가 광장을 보듬고 있다.

우리는 운이 좋게도 구시가 광장에 면한 호텔 세르나 리스카를 숙소로 잡았다. 마침 틴 성당이 마주 보이는 방이었다. 세상에 틴 성당을 바라보며 잠들 수 있다니! 벅차게 기뻤던 나는 프라하의 마지막 밤을 즐기기 위해 가벼운 차림으로 나섰다. 비비 킹도 무대에서 연주한 적이 있다는 웅겔트 재즈 앤 블루스 클럽에서 맥주 한잔을 마시며 음악을 듣고 돌아와 창밖을 보니 세상에, 밤이 늦었다고 틴 성당을 비추던 불을 몽땅 끄는 게 아닌가. 나의 틴 성당은 어둠 속에 잠겨버리고 말았다.

아쉽다며 술김에 징징거렸지만 틴 성당은 새벽의 자태로 내 섭섭함을 보상해주었다. “나는 영원히 이곳에 있어. 보이든 보이지 않든”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프라하를 떠나던 날의 새벽. 틴 성당을 중심으로 둥글게 산책하며 나는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도시를 향해 눈 닿는 데마다 안녕, 안녕, 안녕, 인사를 했다. 안녕, 카를교. 안녕, 프라하성. 이제 가면 언제 올지 모르지만 내게 프라하는 영원한 우리 집일 거야. 이곳에 두고 가니까. 나의 틴 성당을.
 

추천 스폿 3

1 웅겔트 재즈 앤 블루스 클럽(Ungelt Jazz & Blues Club)
미국의 블루스 가수 비비 킹도 무대에 선 적 있다는 전통의 재즈 클럽이다. 틴 성당 뒤 골목으로 이어지는 웅겔트 광장에 가면 마주할 수 있는데, 11세기에 만든 지하 벙커를 개조해 만든 건물에 있다.

2 카를교(Karluv Most)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다리가 아닐까? 1402년 완공 이후 620년 동안 자리를 지켜온 카를교를 건너며 마주하는 버스킹은 흥을 돋우기에 충분하다.

3 프라하성(Prague Castle)
세계에서 가장 큰 고대 성채 단지의 웅장함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야경이 아름다워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방문할 만한 곳이다.

CREDIT INFO

에디터
김지은
사진
각 작가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2021년 08월호

2021년 08월호

에디터
김지은
사진
각 작가 제공, 게티이미지뱅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