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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환희가 인사 드립니다

배우 고 최진실의 아들 최환희가 연예계에 데뷔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

On December 23,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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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셔츠 S.T.Dupont, 블루 오버핏자켓 MAXXIJ.


"힘든 일도 다 지나가기 마련이잖아요." 최환희는 반달눈을 한 채 웃고, 할 말을 조리 있게 하는 평범한 20살이었다. 연예계에 진출하기까지 주변의 우려가 있었지만, 아티스트라는 그의 꿈을 말릴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최환희는 '지플랫'이라는 예명으로 가요계 진출을 알리며 음악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힘든 일을 겪고 있을 때 자신의 음악으로 위안이 되길 바란다는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가수가 됐어요"

어떻게 지내고 있어요?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어요. 데뷔하기 전에는 앨범 준비 때문에 편곡하고, 녹음도 좋은 게 나올 때까지 멈출 수가 없어 정말 바빴거든요. 앨범을 발표하면 한가해질 거라고 예상했는데 많은 분이 관심을 가져주시고 노래를 들어주셔서 여전히 바쁘게 지내요. 아무래도 제가 화제성이 있는 사람이니까 데뷔 싱글을 내면, 잠깐 화제가 됐다가 가라앉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서 화보, 인터뷰, 예능, 라디오까지 스케줄이 많이 잡혔어요. 지금 제 일상에 일어나는 일들이 과분하게만 느껴져요.

음악을 시작한 지 2년 만에 데뷔했어요. 음악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지금처럼 무언가를 일찍 이루게 된다거나, 데뷔를 자작곡으로 하게 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어요. 언제 데뷔해야겠다는 뚜렷한 목표조차 없었으니까요. 단지 힙합 경연 프로그램인 Mnet <쇼미더머니> <고등 래퍼>에 나가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음악을 시작했거든요. 힙합 경연 프로그램에 나가서 떠야겠다는 생각을 한 거예요.(웃음) 그런데 지금 소속사 대표님을 만나면서 화제성보다 실력을 탄탄하게 쌓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음악적인 면에서 부족한 부분이 많은 상태로 힙합 경연 프로그램 같은 데 나가면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게 될 게 뻔했어요. 뜰 생각만 하다 보니 생각이 짧았던 거죠. 음악적인 성장이 먼저라는 생각이 든 뒤로는 자기 계발에 힘을 쏟게 됐어요. 그래서 데뷔할 수 있는 기회가 빨리 주어진 거 같아요.

힙합 경연 프로그램에 나갈 생각을 했다니 전략적이네요.(웃음) 어떻게 보면 전략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1차원적인 전략이었어요. '내가 방송에 나가면 뜨겠지'라는 생각을 한 거예요. 모두가 아시다시피 제가 화제성이 없는 인물은 아니잖아요. 방송국 PD님들, 제작진도 방송의 화제성을 더 불러일으키기 위해 저를 부를 수도 있는 거고요. '윈윈(win–win)하자'라는 생각을 했는데 화제는 되겠지만 결국 제가 가져가는 이미지는 아무것도 모르고 음악을 하겠다는 철없는 아이였지 않을 까요? 방송 출연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을 당시 실력이 썩 좋지 않았거든요.

데뷔 소식이 전해지자 많은 곳에서 관심이 쏟아지고 있어요. 감사해요. 사실 처음엔 데뷔한다는 기사가 나온 줄도 몰랐어요. 기사가 올라온 날도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오후 1~2시까지 늦잠을 자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저의 데뷔곡 '디자이너' 작업을 함께했던 지인한테 연락이 온 거예요. 기사가 나왔다고 하길래 "무슨 기사냐"고 물었더니 "데뷔 기사 떴어"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노래가 나오기까지 시간이 남았고 당시 아무런 통보도 받지 못해서 몰랐거든요.(웃음) 잠결에 일어나서 기사를 찾아보는데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제 이름이 올라가 있었어요.

음악적 재능이 있다는 걸 가장 먼저 알아준 사람은 누구였나요? 소속사 로스차일드 엔터테인먼트 로빈 대표님이오. 음악을 만들면서 친구들이나 주변 지인한테 피드백을 받긴 했지만, 전문성을 갖춘 분한테 피드백을 받아본 적은 없었거든요. 2018년, 음악을 시작한 지 반년 정도 됐을 때 지인을 통해 대표님과 만날 수 있는 자리가 생겼고 그 자리에서 제 음악을 들려드렸어요. 그때 대표님께서 칭찬을 많이 해주셨어요. 사실 누가 들어도 아마추어 음악일 텐데 좋은 요소를 발견하고 조언해주신 거 같아요. 혼자 음악을 하다가 전문적인 피드백을 받아서인지 동기부여가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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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 이너 터틀넥 cos, 트윌체크자켓, 세미와이드팬츠 UNALLOYED, 화이트 운동화 converse.


'지플랫'이라는 예명, 마음에 드나요? 의미가 마음에 들어요. 음악 코드는 A부터 G까지 있고 지플랫(Z.flat)은 존재하지 않는 코드예요. '세상에 없는 음악을 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대표님이 지은 예명인데 사실 처음에는 지플랫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확 와닿지 않았어요. 그런데 뜻을 알고 나니까 나쁘지 않은 이름처럼 느껴졌어요.

자작곡으로 데뷔할 거라고 예상했나요? 전혀요. 이제 데뷔하는 신인인데 회사 차원에서는 안전한 루트를 선택하고 싶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래서 회사 쪽에서 데뷔곡을 만들어줄 거라 예상했어요. '디자이너'는 제가 1년 전에 만들어놓은 곡인데, 대표님이 한 번 듣고 기억하고 계셨던 노래예요. 데뷔곡을 정하는데 대표님이 디자이너 얘기를 꺼내시면서 "네 곡 중에 '디자이너'라는 노래 있지 않냐. 그거 좋던데 데뷔곡으로 하자"고 하셨어요. 그 얘기를 듣고 인정받은 기분이 들었어요. 지금 발매된 음원과 본래 만들어놓은 음원은 다른 느낌이에요. 원곡은 차분하고 서정적인 느낌이 강한 노래인데, 데뷔곡으로는 느낌이 맞지 않는다며 밝게 편곡하자는 의견이 나와 지금의 '디자이너'가 탄생하게 됐어요.

언제부터 곡을 썼어요? 처음에는 단지 랩이 재미있어서 랩만 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대표님이 "네가 만든 건 없냐"고 물으시는 거예요. 직접 만든 비트가 있긴 했는데 학교 음악 시간에 가볍게 만들어놓은 게 전부였어요. 누가 들어도 아마추어 티가 많이 나는 비트였는데 "아마추어 티가 나지만 어떤 음악을 만들고 싶은지 정확하게 느껴진다"고 말씀하셨어요. 그 이후로 꾸준히 비트를 만들고 곡을 써 온 거 같아요. 자신이 없었는데 칭찬을 들으니까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데뷔곡 '디자이너' 가사를 직접 썼는데 가장 마음에 드는 구절을 꼽는다면요? "두려웠던 실패마저 내 옷의 밑그림이 돼"라는 구절이 있는데 혼자 음악 하면서 회의를 느꼈던 순간을 표현한 가사예요. 물론 지나간 일들이지만, 실력이 모자란다는 생각이 들면서 자책했던 때가 있었거든요. 자책하던 시기를 딛고 더 노력한 덕에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실패에서도 배울 게 있으니까요.

'힙합'을 선택한 이유는 뭔가요? 일종의 '해소 창구'. 원래 감정 표현에 서툴고 생각이나 의견을 자유롭게 얘기하지 못하는 성격이었어요. 그런데 힙합을 하면서 가사를 쓰고 경험이나 감정을 쓰다 보니까 바뀌더라고요. 저에게 있어 힙합은 번역기 같은 장르예요.

지금까지 써온 곡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곡은 무엇인가요? 제주도에서 홀로 기숙사 생활을 하다가 음악을 하겠다고 서울로 왔을 때 쓴 곡이 있어요. 낯설고 위험한 서울에 이제 막 성인이 된 제가 홀로 떨어졌을 때 느꼈던 감정들을 음악을 통해 헤쳐나가겠다는 포부를 담았어요. 그 곡에는 "그 신화의 부분이 될 수 있을까"라는 구절이 있어요. '전설들은 절대 죽지 않는다. 나도 그 라인에 낄 수 있을까'라는 의미를 담은 거예요. 그 구절이 가장 마음에 들어요.

프로듀서를 꿈꾸고 있는데 롤 모델 1명을 꼽자면? 너무 많은데….(웃음) 한 명을 꼽자면 '코드 쿤스트'. 코드 쿤스트 선배님의 음악은 저의 음악 작업에 큰 영향을 미쳐요. 제가 음악을 만들면서 사용하는 악기 사운드도 코드 쿤스트 선배님이 쓰는 것과 비슷한 부분이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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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비 라운드 니트, 핑크 오버핏 팬츠 cos.

'부모님'의 그늘에서 벗어나 '최환희' 자체가 얼마나 가치 있는 사람인지 증명하고 싶어요.

스무살, 나의 이야기

연예계 진출을 두고 주변의 반대나 우려는 없었나요? 엄마와 친했던 연예인 이모들이 가장 크게 걱정하셨어요. 지금까지 연예계에 몸담고 계신 분들이니까 업계가 냉정하다는 걸 알고 있어서 걱정하셨던 거 같아요. 이모들이나 할머니를 제외하곤 걱정보다는 응원을 해줬어요. 동생 준희도 연예계 데뷔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낸 적은 없어요.

제주국제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다가 대학 진학을 포기했어요. 오롯이 제가 내린 결정이에요. 그런데 당시 할머니가 크게 걱정하셨어요. 할머니는 연기자의 꿈을 이루고 싶다고 했을 때부터 걱정하셨거든요. 그래도 제가 원하는 것이니까 인정해주시고 전적으로 지원해주셨어요. 그런데 대학 진학까지 1년도 남지 않은 시점에 음악으로 진로를 바꾼 것도 모자라서 대학에 안 가겠다고 하니까 억장이 무너지셨던 거죠. 음악 쪽으로 대학을 준비하기엔 시간이 부족했어요. 그래서 차라리 대학에 가지 않는 편이 낫겠다 싶었던 거예요.

어떻게 할머니를 설득했나요? 저의 음악을 계속 들려드리는 방법으로요. 처음에는 할머니가 음악하는 걸 탐탁지 않게 여기시니까 음악 장비를 살 때도 몰래 샀어요. 어쩌다 들킬 때면 많이 혼나기도 했고요. 그런데 할머니가 반대하는 걸 하다가 혼나는 거니까 아무런 대꾸나 반항을 할 수 없겠더라고요. 잔소리나 꾸중을 묵묵히 듣고 있다가 음악을 들려드리는 행동으로 진심을 보여드렸어요.

원래 싫은 소리를 잘하지 않는 성격인가요? 네, 싸우면서 감정 상하는 걸 싫어해요. 상대에게 잘못이 있어도 싸우면서 감정 소모하는 게 싫어 가만히 있는 편이에요. 안 좋은 상황이 빨리 지나가길 바라는 마음도 있어요. '평화주의자'라고 해야 할까요?(웃음) 할머니가 화내고 잔소리하셔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거예요. 할머니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그래요.

연예인 말고 다른 진로를 생각해본 적은요? 한 번도 없어요. 지금까지 진지하게 생각했던 꿈은 배우, 가수, 프로듀서, 아티스트, 래퍼처럼 전부 예능 계열이었어요. 한때는 학교에서 영상부로 활동하면서 영상 편집을 배웠는데 재미있어서 감독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어요.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초등학교 때는 축구를 좋아해서 축구 선수를 꿈꾸면서 '홍명보 축구교실'도 다녔네요.

음악으로 진로를 바꾼 결정적인 계기가 있나요? 학교 축제 때 친구와 함께 무대에 올라가서 대중적인 힙합 노래를 불렀을 때요. 랩을 하면서 후렴구를 부르는데 관객이 다 같이 따라 부르는 거예요. 그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어요. 래퍼들이 무대에 서는 이유가 이런 건가 싶었죠. 관객이 떼창을 하고 함께 노는 게 너무 재미있어서 무대에 서는 게 매력적인 일이라는 걸 알게된 거예요. 그 이후로 음악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어요.

연기자라는 꿈을 갖게 된 건 부모님의 영향이 컸나요? 그런 거 같아요. 어머니가 배우셨으니까 대를 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또 어릴 때부터 방송에 출연할 때마다 항상 연기자가 될 거라고 말했는데, 매번 연기자가 될 거라고 했던 제 말을 번복하기 싫어서 꼭 연기자가 돼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있어요.(웃음) 제가 해온 말은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 대를 이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고 살았던 거예요.

연기자로서 활동은 하지 않고 음악에만 매진할 계획인가요? 네, 연기는 하지 않을 거 같아요. 연기를 시도해보고 음악으로 진로를 전향한 거라 후회가 없어요. 만일 연기를 해보지 않고 음악으로 진로를 바꿨다면 후회했을 수도 있겠죠? 연기가 저랑 맞지 않는다는 걸 경험했기 때문에 미련이 전혀 없어요.

부모님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했어요. 네, 그런데 그 말을 하기까지 큰 용기가 필요했어요. 제가 부모님의 아들이라는 걸 싫어한다고 오해할 수 있는 말인데 전혀 아니거든요. 부모님은 언제나 자랑스러운 분들이에요. 저에겐 위대하고 대단하고, 무엇보다 제가 사랑하는 분들이에요. 그런데 제가 성인이 됐음에도 부모님의 보살핌 아래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제 뒤에 '최진실의 아들'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면서 상황을 좋게 만들었다는 느낌이랄까요? 소위 '백' '뒷배경'이라고 하잖아요. 부모님의 자식이라는 수식어로 도움을 받은 건 사실이에요. 어릴 땐 사람들이 알아봐주는 게 마냥 좋았는데 성인이 되니까 좋은 것보다 독립하고 싶은 마음이 커지더라고요. 부모님이라는 타이틀이 주는 도움 없이 '최환희' 자체가 얼마나 가치 있는 사람인지 증명하고 싶은 오기가 생겼어요. 그래서 부모님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말한 거예요.

부모님의 그늘이라는 표현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이들도 있어요. 알고 있어요. 그런데 그들의 해석을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아요. 부모님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말한 건 사실이니까요.(웃음) 그냥 '악마의 편집'을 당했다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어릴 적부터 많은 부분이 노출됐어요. 워낙 어릴 때부터 받아온 관심이라 신경이 쓰이진 않아요. 단지 유명인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어느 집에서나 일어날 수 있을 법한 일들이 드라마틱하게 과장돼 보도되는 게 속상할 뿐이에요. 사춘기 시절에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은 한 번쯤 일어날 수 있는 평범한 일이잖아요. 그런데 우리 집이 유명인의 집안이라는 이유로 화제가 됐던 건 조금 불편했어요.

지나친 관심에 항변하고 싶을 때도 있었을 거 같아요. 말을 꺼낸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오히려 제가 나서서 오해를 바로잡으려고 하면 일이 더 커질 거 같아서 최대한 말을 아꼈어요. 아시다시피 우리 가족을 언급한 데 대해 말을 꺼낸 적이 거의 없어요. 크고 작은 일들을 언급하는 거 자체가 감정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부담이 될 거 같았거든요.

그동안 들었던 말, 질문 중에 속상했던 부분이 있나요? 제가 방송 출연을 하거나 인터뷰를 했을 때 반응들을 보면 "점잖게 잘 컸다" "잘 자랐다"라고 하세요. 그런데 사실은 전혀 점잖지 않거든요. 사람들에게 선비 같은 이미지로 기억되는 거 같아요. 어릴 때부터 방송 이미지를 잘못 잡은 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웃음) 저는 '또라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말도 많고 행동도 거칠고 도전적이에요. 좋은 뜻으로 점잖다고 해주는 거라 감사하긴 하지만, 사실이 아니라 당황스러울 때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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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힘든 시기가 있었는데, 지금 돌아보면 '그때 왜 그렇게 힘들었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기숙사 생활을 오래 해서 할머니, 동생과 함께 지낸 시간이 많지 않겠어요. 거의 초등학교 때부터 7~8년 동안 기숙사 생활을 했어요. 기숙사에서 지내다가 한 달에 한 번씩 집에 갔었는데 그 시간을 제외하면 혼자 지낸 거나 다름없어요. 그래서 지금 혼자 자취하는 게 어렵게 느껴지지 않아요. 스스로 끼니를 해결할 수준은 돼요.

요리도 직접 하나요? 가벼운 건 해 먹어요.(웃음) 요리는 라면, 김치볶음밥을 할 줄 알고, 최근 요리에 흥미가 생겨 까르보나라, 알리오 올리오도 해 먹었어요.

가장으로서 무게를 느끼나요? 그렇죠. 동생 준희는 아직 학생이고 할머니도 돈을 벌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까 사실상 우리 집에서 수입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은 저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가장의 무게를 느끼게 된 거예요. 주변의 영향도 컸어요. 친구들을 보면 부모님이 다 계시고 직업이 있으니까 돈을 벌어야겠다는 압박을 가진 친구는 없어요. 반면에 저는 아니잖아요. 친구들의 환경, 주변 사람들이 처한 상황을 보지 않았더라면 가장의 무게를 느끼지 않았을 거예요. 지금은 적어도 3인분은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이 돼야겠다고 생각해요.

동생 준희에게는 아빠 같은 오빠겠어요. 제가 돈을 버니까 밥 사 먹으라고 용돈을 주는 게 전부예요. 아빠같이 보일 수 있지만, 간섭을 일절 하지 않는다는 부분에서 다른 거 같아요. 저는 준희가 하고 싶은 걸 막을 마음이 없어요. 준희가 하고자 하는 일을 응원하고 지켜봐줄 거예요.

동생이 데뷔 사실을 알았을 때 첫 반응은 어땠나요? 음악을 처음 시작한다고 했을 때는 "정신이 나갔냐"는 반응이었어요.(웃음) 데뷔한다고 말하면서 곧 앨범과 뮤직비디오가 나온다고 밝혔을 때는 준희가 더 떨려했어요. 잘 몰랐는데 저 모르게 홍보도 많이 하고 다녔더라고요.

요즘 가장 큰 위로가 되는 건 무엇인가요? 친구들이오. 스케줄이 바쁘거나 음악적으로 잘 풀리지 않을 때 친구들을 만나면 아무 생각 없이 놀 수 있어서 좋아요. 걱정거리가 많아도 친구들을 만난 시간에는 웃을 일이 많아서 걱정이 생각나지 않아요.

요즘 즐겨 듣는 노래와 좋아하는 가수가 궁금해요. '비비' 노래를 많이 들어요. 같이 작업해보고 싶을 만큼 즐겨 듣고 있어요. 가수는 래퍼 '창모'를 좋아해요.

20살인데 연애하고 싶지 않아요? 글쎄요. (웃음) 하면 좋겠죠.

이상형은요? 고양이처럼 생긴 몽환적인 여자. 단발머리보다는 긴 머리를 선호해요.

취미는요? 게임을 좋아해요. '레전드오브리그'를 즐겨요. 요즘 코로나19 때문에 바깥 활동을 할 수 있는 게 없다 보니 게임을 많이 하게 되고, 유튜브도 자주 봐요.

음악으로 대중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나요? 지금 많이 힘들어도 시간이 지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걸 전해주고 싶어요. 저도 힘든 시기가 있었는데, 지금 돌아보면 '그때 왜 그렇게 힘들었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힘들 때 제 노래를 즐겨 듣고, 힘든 상황이 지나가고 나서 제 노래를 다시 들었을 때 '그때 이 노래 많이 들었는데, 잘 이겨냈다'라고 회상할 수 있는 노래를 만들고 싶어요.

힘들었던 시간이 지나갔다고 생각하나요? 지나갔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앞으로도 힘든 순간들은 또 찾아오겠죠. 그래도 매일 힘들진 않을 거라 믿으면서 지낼 거예요.

음악으로 성공한다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 성공의 기준이 여러 가지겠지만, 지금의 제가 생각하는 성공은 '음원 차트 1위'예요. 1위를 하면 그동안 도와주셨던 분들에게 선물을 드리고 싶어요. 마음을 담은 선물이든 현금이든 감사함을 꼭 표현하고 싶어요.

어떤 아티스트로 성장하고 싶어요? 사람들의 마음을 울릴 수 있는, 움직일 수 있는 노래를 만드는 아티스트요.

최환희로서는 어떤 어른이 되고 싶어요? 매사에 신중하지만, 마음만은 젊은 어른이오. 어린 친구들에게 철없이 보여도 되니까 재미있고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많은 분이 응원하고 있는 거 알고 있나요? 네, 그런데 가끔 응원이 부담될 때도 있어요. 이번에 데뷔곡을 발표했지만, 대단한 걸 보여준 건 아니잖아요. 그런데도 큰 관심을 받는 걸 보면 아직까지 어머니의 영향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받는 응원을 아티스트 지플랫으로서 응원받는 모습으로 바꿀 수 있을 때까지 쉬지 않고 달려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이번에 나온 '디자이너' 많이 들어주세요.(웃음) 그리고 앞으로 나올 곡도 많으니까 기대해주세요. 저의 음악적 색깔을 더 뚜렷하게 보여드릴 테니까 앞으로 지플랫의 성장을 지켜봐주시길 바랍니다.



CREDIT INFO

에디터
김연주
사진
이대원
헤어&메이크업
정일·미주(에스휴)
스타일링
조아라
2021년 01월호

2021년 01월호

에디터
김연주
사진
이대원
헤어&메이크업
정일·미주(에스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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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