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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수 끝 당선! 바이든 시대 개막!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11·3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공화당 후보를 꺾고 승리를 거머쥐었다. 미국 46대 대통령이 된 것이다.

On November 26,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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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수 끝에 46대 대통령 당선

미국은 축제 분위기다. 조 바이든의 당선 소식이 전해지자, 미국 워싱턴 D.C에 위치한 백악관 앞에는 소식을 들은 바이든 지지자와 시민 수백 명이 몰려들었다. 이들은 “바이든 대통령”을 연호하거나, 트럼프 후보의 유행어(You’re fired)를 활용, “트럼프는 해고됐다”는 팻말을 흔들었다.

선거운동부터 당선까지 대선 행보 과정을 함께했던 수많은 팝스타 역시 환호의 메시지들을 올렸다. 비욘세는 조 바이든의 승리 선언 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바이든과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당선인이 손을 맞잡은 사진 한 장을 게시하며 “두 분의 당선을 축하드린다”고 가장 먼저 축하 메시지를 건넸다.

바이든을 도와 직접 선거운동에 나서기도 했던 레이디 가가는 바이든 당선 소식에 “바이든과 해리스, 그리고 미국인들이 가장 위대한 친절과 용감한 인류애의 실천을 세상에 몸소 보여줬다”며 “새로운 지도자와 첫 여성 부통령에 사랑을 바친다”고 소감을 전했다. 프로농구(NBA) 스타 르브론 제임스는 바이든이 트럼프를 따돌리고 덩크슛에 성공하는 합성사진을 트위터에 올렸다.

조 바이든은 일곱 살 때 처음 대통령이 되는 꿈을 꿨고, 반려견들의 이름을 ‘상원의원(Senator)’ ‘주지사(Governor)’로 지었을 정도로 정치에 관심이 많았다. 평범한 청년이었던 20살 때 “30살에 상원의원이 되고 나중에 대통령도 할 것”이라고 주변에 밝히기도 했다. 그리고 78살의 나이에, 삼수 도전 끝에 대통령이 됐다.

조 바이든은 1942년 11월 20일, 펜실베이니아주의 스크랜턴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아버지 조 바이든 시니어와 어머니 캐서린 진 바이든 사이에서 3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선박 부품 제조 회사를 다니던 아버지가 직장을 잃기 전까지는 부유했지만, 가세가 기울면서 외갓집에 맡겨지기도 했다.

델라웨어대와 시러큐스대 로스쿨을 나와 변호사가 된 바이든. 그는 두 번 결혼했다. 첫 아내는 니일리아로, 21살 때 친구들과 카리브해 바하마로 여행을 갔다가 만났다. 1966년 결혼한 둘은 보(사망), 헌터(50세), 나오미(1972년 사망) 등 세 아이를 뒀다. 결혼 후 1970년 지역의회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그는 2년 뒤 델라웨어주에서 3선 현역 의원을 꺾고 당시 최연소(30세) 미 상원의원이 됐다.

하지만 비극은 빠르게 찾아왔다. 선거 한 달 후 아내가 세 자녀를 데리고 크리스마스트리를 사 오다 트럭에 치였고, 이 사고로 아내와 13개월 된 딸(나오미)이 숨졌다. 두 아들도 중상을 입었다. 두 아들을 돌보기 위해 의회가 있는 수도 워싱턴에 집을 구하지 않고 델라웨어주 윌밍턴 자택에서 매일 왕복 4시간 거리를 출퇴근했다. 3년 후인 1975년, 소개로 지금의 아내 질(69세)을 만났고, 2년 후 결혼했다. 1981년 딸 애슐리(39세)를 낳았다.

그 후 6선 의원으로 승승장구한 조 바이든. 의회에서 외교위원장, 법사위원장 등 요직을 역임했고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에선 8년간 부통령을 지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자신보다 19세 연상인 그의 경험과 노련미를 중시, 백악관에서 이뤄지는 거의 모든 회의에 바이든을 참여케 했다.

하지만 바이든의 목표는 늘 대통령이었다. 1988년과 2008년 두 차례 대권 도전을 했지만, 당내 경선을 완주하지 못하고 중간에 포기해야 했다. 지난 2016년 대선에도 도전하려 했지만 델라웨어주 법무장관 출신이자 자신의 정치적 후계자로 평가받았던 장남 보가 뇌종양으로 숨지자 출마를 포기했다. 이런 바이든의 4년 전 선택은, 이번 대선에서 ‘동정’ 어린 표로 이어졌다는 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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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 후 “하나 된 미국” 강조

조 바이든 당선인은 대선 승리 선언과 함께 혼란스러웠던 분위기를 고려, ‘하나 된 미국’을 선언했다. 그는 “분열이 아니라 단합을 추구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맹세한다”며 “이제 미국을 치유할 시간이다. 나를 찍은 사람들만큼 나를 찍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일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또 트럼프 지지자들을 향해 “서로에게 기회를 주자. 우리는 적이 아니라 미국인이다, 품위를 재건하고, 민주주의를 방어하며, 이 나라의 모든 사람에게 공정한 기회를 주기 위한 전투를 하자”고 밝혔다.

하지만 변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가 끝나지 않았다’며 불복 의지를 거듭 피력하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본인 소유의 버지니아주 골프장에서 11월 7일과 8일(모두 현지 시각) 골프를 치다가 선거 패배 소식을 들었는데 그는 “조 바이든이 거짓 승자 행세를 하고 있다”고 반박했고 미디어를 향해서도 “미디어가 진실이 드러나는 것을 원하지 않아서 바이든을 돕고 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트럼프의 ‘불복 카드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선거인단 중 270명만 확보하면 승리하는 미국 대선에서 바이든은 이미 273명을 확보했고, 최대 321명도 가능하다는 게 미국 CNN 등의 예측이다. 펜실베이니아주 혹은 미시간주 등 한두 곳에서 법원 판단으로 결과를 뒤집는다고 해도 전체 선거를 뒤집기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강경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부인 멜라니아 여사와 사위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보좌관은 “대선 패배를 수용해야 한다”고 얘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 근무 경험이 있는 관계자는 “미국에서는 대선 패배 인정과 함께 검찰 수사 등을 하지 않는 일종의 ‘딜’을 하는 게 있는데 그동안 대통령을 하면서 의혹이 제기된 이슈가 너무 많은 게 트럼프”라며 “불복 선언을 유지하다가 ‘의혹들에 대한 사면’을 약속받고 난 뒤 승복하는 식으로 가지 않겠냐”고 예측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으로서의 면책특권을 잃으면 각종 검찰 수사와 소송이 불가피하다. 과거 ‘성 추문 입막음’ 의혹 수사, 탈세, 명예훼손 등이 트럼프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 개인의 금융, 납세, 보험 사기 의혹까지, 논란은 커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측은 그동안 면책특권을 들어 이를 거부했지만 조 바이든이 대통령에 취임하면 피할 수 없게 된다.
 

3차례 한국 방문 대표적 ‘지한파’

바이든 당선인의 한국과의 인연도 관심을 끈다. ‘지한파’로 분류되는 바이든은 과거 상원의원과 부통령을 지내면서 한국을 세 차례 방문한 바 있다. 첫 번째 방문은 지난 1998년 11월.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 민주당 간사 자격으로 1박 2일 일정으로 한국을 공식 방문했다.

두 번째 방문은 2001년 8월 상원 외교위원장 자격이었다. 특히 이때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난 일화가 유명하다. 청와대 오찬에서 김 전 대통령에게 “넥타이가 아주 좋아 보인다”고 하자 김 전 대통령이 “넥타이를 바꿔 매자”고 즉흥적으로 제안한 것인데, 이때 김대중 전 대통령의 넥타이에는 음식이 묻어 있었다. 하지만 바이든은 이를 세탁도 하지 않고 소중히 보관했다고 한다.

마지막 방문은 부통령 재직 중인 2013년 방한. 직접 손녀를 데리고 왔는데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 정홍원 전 국무총리와의 면담 외에 이례적으로 연세대학교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정책 연설을 하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와의 관계는 어떨까. 선거 전부터 바이든 후보 캠프와 미국 민주당 주요 인사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소통을 이어왔던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눈치를 보면서도 바뀔 ‘백악관 주인’과의 새로운 외교 관계를 준비 중이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지난 11월 8일 미국을 찾아 바이든 외교 라인과 접촉을 시도하는 등 접점을 늘리는 데 집중했다.

하지만 변화는 불가피하다. 오바마 전 행정부 시절 대북 정책 기조는 ‘전략적 인내’. 북한이 먼저 핵·미사일을 포기하지 않는 한 미국도 협상에 나서지 않겠다는 기조였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취임 직후인 2009년 4월 핵안보정상회의에서 ‘핵 없는 세상 만들기’를 주창하고 있을 당시 북한이 인공위성 로켓을 쏜 데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서 대북 제재가 논의되던 그해 5월에는 제2차 핵실험을 하면서 굳어진 정책이다.

그런데 조 바이든은 부통령이던 2013년 12월 7일 손녀 피너건과 함께 한국을 찾았을 때 비무장지대(DMZ) 경계 태세에 대해 브리핑을 받으며 “비핵화가 우선”이라고 얘기했다.

지난 10월 22일(현지 시각) 미 대선을 앞둔 마지막 TV 토론에서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불량배’로 표현하며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을 정당화해줬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북한에 대해 ‘비핵화’를 우선적으로 요구함과 동시에, 트럼프와 달리 동맹에 대한 참여와 의무도 더욱 적극적으로 요구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대목이다.

동맹을 거래의 대상으로 접근했던 트럼프와는 달리 동맹 및 파트너와 공조를 통한 글로벌 리더십 회복을 거듭 밝혔던 조 바이든.

앞선 외교계 관계자는 “위에서 대통령 마음대로 찍어 누르는 톱다운(Top-down) 방식의 업무 지시를 했던 트럼프 정부 시절에는 깜짝 북미 정상회담이 이뤄지기도 했지만, 국방부나 외교부의 시스템으로 의사결정을 할 바이든 정부에서는 우리 정부가 ‘남북 종전 선언’ 등을 원한다고 해서 그대로 미국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며 “북한으로부터 비핵화를 얻어내 미국을 설득해야 하기 때문에 문재인 정부가 새로운 외교 전략을 세팅해야 할 때가 된 것”이라고 내다봤다.

CREDIT INFO

에디터
하은정
취재
서환한
사진
스플래쉬뉴스
2020년 12월호

2020년 12월호

에디터
하은정
취재
서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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