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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딸이 아닌, 서동주

서동주가 에세이를 냈다. 누구의 딸이 아닌, 온전한 그녀의 이야기다.

On July 2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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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서동주는 서세원, 서정희의 딸로 익숙하다. 그녀는 일찍이 유명세를 치른 '스타 2세'이자 '금수저' 혹은 '엄친딸'이었다. 이름 앞에 늘 화려한 수식어가 붙었지만 그중 진짜 서동주를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녀의 삶은 굴곡의 연속이었다. 취업 전선에서 59번 탈락했고 이혼의 아픔을 겪었으며, 한 때 빈털터리 백수가 된 적도 있었다. 세간에 떠들썩하게 전시된 부모의 이혼 소송과 가정사, 아버지 서세원과의 절연, 그로 인해 불거진 가십들도 모두 서동주가 감내해야 할 몫이었다. <샌프란시스코 이방인>은 그 당시 서동주가 겪은 감정들을 담백하게 풀어낸 에세이다. 누군가를 겨냥해 폭로나 고발을 하려는 목적이 아니다. 고단했던 삶의 한 챕터를 마무리하기 위해, 가족이라는 족쇄를 벗고 진짜 서동주의 모습을 찾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었다. 그래서 서동주는, 요즘이 어떤 때보다 행복하다고 말한다.


에세이 반응이 뜨겁습니다. 감사하고 그저 얼떨떨해요. 사실 처음에는 에세이를 낼 생각이 아니었어요. 2018년부터 블로그에 일기를 써왔고 그걸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싶다는 생각만 했거든요. 애초에 책을 낼 목적으로 글을 썼다면 지금처럼 솔직하게 쓰지 못했을 것 같아요.

엄마 서정희 씨의 반응은 어떤가요? "내 책보다 잘 팔려야 할 텐데~" 하면서 좋아하고 자랑스러워하세요. 하지만 엄마 책보다 잘 팔리진 않을 것 같아요(서정희는 지난 5월, 7번째 책 <혼자 사니 좋다>를 출간했다). 사실 판매 부수를 떠나서 에세이가 세상에 나온 것만으로도 뿌듯하고 행복해요.

에세이에 가족사가 다수 포함돼 있어요. 민감한 이슈를 다루면서 고민은 없었나요? 사람들이 제 의도와 다르게 받아들일까봐 걱정됐고 겁도 났어요. 아니나 다를까 '살해 협박' '자해 시도' 같은 자극적인 타이틀로 기사가 났더라고요. 이 에세이는 가족사를 파헤치려는 목적이 아니라 당시 마음이 어땠는지 제 감정에 무게중심을 둔 책이에요. 민감한 내용이 포함돼 있을 뿐이지, 내용이 자극적이진 않아요. 그런데 책이 나오기 전부터 가십으로 떠들썩하니 순간적으로 두려운 마음이 들더라고요.

왜 두려웠나요? 각자의 자리에서 잘 살아가고 있는데 굳이 쓸데없는 오해를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더 이상 (아버지에게) 악감정이 없을뿐더러, 가족들의 마음을 부정적으로 건드리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에세이가 나오기 전까지 악몽을 많이 꿨어요. 심리적으로 힘들었거든요. 혹시 후폭풍이 있을까봐 걱정도 했고요. 하지만 만약 기회가 닿아서 아빠가 제 에세이를 읽게 되더라도 이해해주지 않을까 생각해요.

아버지에게 연락은 왔나요? 아니요. 별다른 연락은 없어요.


서동주는 2014년 부모의 가정 폭력 등 소송 사건을 계기로 아버지인 서세원과 절연했다. 천륜지간의 뜻을 거스르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누군가는 손가락질했지만 서동주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폭력에 시달려온 엄마를 돌봐야 했고 아버지로부터 핍박 받았던 자신을 지켜야 했다. 서동주는 에세이를 통해 밝혀지지 않은 가정사와 아버지의 일화들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그리고 "이제야 비로소 어른이 된 것 같다"고 홀가분하게 말한다.


에세이에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자세히 담겼어요. 폭력이나 협박은 이미 뉴스로 많이 알려진 내용이고 책을 통해 처음 밝힌 건 사기 대출에 대한 일이었어요(서동주는 에세이를 통해 아버지가 자신의 명의로 사기 대출을 한 사실을 밝혔다). 당시에는 참 힘들었어요. 생판 모르는 제3자가 저지른 일보다 정신적으로 훨씬 큰 데미지가 오더라고요. 하지만 제가 그 사실을 밝힌 건 '(아버지가) 나쁜 사람이다'라고 못 박고 싶은 게 아니에요. 제가 이런 일도 겪었다는 것을 털어놓고 싶은 거죠. 살면서 가족 간의 사기는 의외로 빈번하게 일어나잖아요. 많은 분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했어요.

아버지로 인해 가장 힘들었던 기억은 무엇인가요? 이혼 당시가 가장 힘들었죠. 엄마가 그런 일을 겪고 있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어요. 그때는 미국에서 로스쿨에 다닐 때라 바로 귀국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거든요. 엄마가 울면서 전화를 걸어와 "지금 병원에 간다"고 말했던 게 생각나요. 차 안에서 저도 많이 울었어요. 당시 소송 문제, 사기 대출 문제 때문에 미국과 한국을 오가면서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어요. 심적으로 상당히 지치고 힘들던 시기였어요.

돌이켜보면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분명 좋은 아빠였던 적도 있어요. 같이 영화를 보고 달걀을 삶아 먹었던 추억들이 있어요. 반면에 저희를 너무 아프게 했던 사람이라 늘 양가적인 마음이 존재하는 것 같아요. 사실 몇 년 전만 해도 아빠에 대한 미움이 컸어요. 그런데 그 어떤 큰 상처도 결국 시간이 지나면 자동적으로 치유가 되더라고요. 지금은 그냥 잘 살았으면 좋겠어요. 새로운 가정을 꾸렸으니 현재의 가족들에게 잘 해주고 좋은 아빠가 되길 바라요.

엄마 서정희의 삶은 어떤 것 같나요? 나이를 먹을수록 엄마가 아닌 여자 서정희가 보이더라고요. 엄마가 그때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이해하고 공감하게 돼요. 그래서 더 돌봐주고 보호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에세이에 '가끔은 엄마가 내 딸도 되고 내 친구도 되고 내 연인도 되고 또 엄마도 되면 좋겠다'고 쓴 부분이 있어요. 그게 제 진짜 마음이에요. 물론 평소에는 많이 싸워요. 엄마가 저에게 어리광을 피우는 스타일이거든요. 밖에서는 한없이 어른 같다가도 제 앞에서는 그저 과자 먹는 애기가 돼요.

모녀의 동안 미모가 언제나 화제예요. 어렸을 때부터 얼굴이 노출되다 보니, 아직도 저를 어리게 보는 분이 많아요. 개인적으로는 제 얼굴이 동안인지 잘 모르겠어요. 저희 엄마야말로 진짜 동안이죠. 엄마를 보고 있으면 제가 원하는 만큼의 동안 유전자를 물려받지 못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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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땐 금수저라고 이야기할 만했죠. 나중에는 그냥 수저가 됐지만요.(웃음) 그래서 더 노력했던 것 같아요. 스스로 떳떳하고 열심히 살았기 때문에 사람들의 편견이나 인식이 서운하진 않아요."

서동주에게 가족이란 뭘까요? 아직도 풀지 못한 숙제요. 예전에는 가족이 울타리 같은 존재고 절대 무너지면 안 된다는 통상적인 생각을 했어요. 근데 지금은 달라요. 각자의 삶을 중심으로 살되 가끔 가족으로 뭉치는 거죠. 그래서 떨어져 있어도 늘 같이 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동생과도 자주 연락하고 지내요. 동생 내외와 셋이 있는 모바일 단톡방도 있어요. 좋은 시누이가 되고 싶어 용돈도 주고 선물도 자주 보내요.(웃음) 평소에는 일상적인 얘기도 하고요.

결혼을 한 번 하셨죠? 결혼도 이혼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아요. 지금까지 열심히 살았으니 결혼 생활도 열심히 하면 잘할 수 있을 줄 알았어요. 남들 다 하는 결혼이고 다들 잘 사니까 제가 자만했던 거죠. 결혼이 탈출구라고 생각해 뛰어든 것도 맞아요. 다 제 부족함이었죠.

힘들 때 어떤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나요? 나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쉽게 재단하고 오해하는 일을 상당히 많이 겪었어요. 그렇다고 오랫동안 우울해하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내 삶의 루틴을 찾고 즐겁게 살아가는 게 그들에게 줄 수 있는 더 현명한 대답이라고 생각해요. 힘든 일을 겪다 보니 자연스럽게 단단해진 것 같아요. 처음에는 견딜 수 없다고 생각한 일들을 점점 잘 견뎌내더라고요. 한때는 부모님이 잘나갔고 저도 공부를 잘했으니 교만했던 적이 있어요. 그런데 삶이라는 게 제 생각대로 흘러가질 않더라고요. 부모님은 이혼했고, 경제적으로 점점 힘들어졌고, 개인적인 일들도 안 풀리기 시작했어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고 느낀 순간부터 조금씩 겸손해진 것 같아요.

'금수저'라는 대중의 인식이 서운하진 않나요? 어렸을 땐 금수저라고 이야기할 만했죠. 나중에는 그냥 수저가 됐지만요.(웃음) 그래서 더 노력했던 것 같아요. 쉬운 길을 택하며 살기보다는 잘 못하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자고 다짐 했어요. 그래서 이 악물고 공부했고 하루 6시간씩 아르바이트도 했죠. 스스로 떳떳하고 열심히 살았기 때문에 그런 편견이나 인식이 서운하진 않아요.

악성 댓글 때문에 힘든 적도 있었죠?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실시간 검색어에 제 이름이 떠도 잘 안 보려고 해요. '이 사람은 나를 잘 모르니까 그 한마디에 좌지우지되지 말자'고 마음을 다잡아요. 많은 분이 제가 시간이 남아돌아서 방송도 하고 책도 쓰는 줄 알더라고요. '혹시 변호사 잘려서 TV에 나오는 거 아냐?'라는 반응도 있는데 절대 아니에요. 6개월에 한 번씩 평가를 받는데 아직 안 잘리고 잘 다니고 있습니다.(웃음) 칭찬도 많이 받고 있어요.

왜 변호사를 선택했나요? 경제적인 부분이 상당히 컸어요. 돈을 많이 벌고 싶었거든요.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책임감도 있었던 것 같아요. 예전에는 자선단체에서 일했는데 월급이 넉넉지 않았어요. 그 월급으로는 샌프란시스코의 물가를 감당할 수 없었죠. 그래서 변호사가 돼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제일 잘하는 게 공부니까 좀 더 공부해 로스쿨에 입학해야겠다는 목표를 세웠어요. 로스쿨을 졸업하면 억대 연봉이 가능하니까 잃는 장사는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제 기준에서는 가장 빠르고 실용적인 선택을 한 거죠. 물론 '재수 없다'는 소리는 많이 들었습니다.(웃음)

항상 바쁘게 살아요. 연애도 하죠? 네 지금 잘 만나고 있습니다. 2018년에 처음 친구로 만나 그동안 사귀다가, 헤어졌다를 몇 번 반복했는데 이제는 좀 덜 싸우게 돼요. 남자친구는 저에게 언제나 안정감을 주는 좋은 사람이에요. 그를 만나고 제 성격도 한층 온순해진 것 같고요.

다시 결혼을 꿈꾸나요? 사람 인생은 모르는 거니까 속단하기 힘들어요. 계획대로 되는 게 아니잖아요. 다만 최근에 한 변호사의 유튜브 채널을 보는데 웬만하면 결혼하지 말고, 아니다 싶으면 빨리 이혼하고, 이혼했으면 재혼하지 말라고 말하더라고요. 제가 계속 그 금기를 깨는 것 같아서 '어떡하지? 이제 결혼하면 안 되는 건가?' 싶었어요.(웃음) 저는 연애의 소중함을 잘 아는 사람이지만 결혼은 신중하게 생각할 문제죠. 하지만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면 저는 과감히 하는 쪽을 선택하고 싶어요.

돌이켜보면 지금까지의 인생은 어땠나요? 반전의 반전의 반전요. 어렸을 때 엄마가 했던 말이 기억나요. "너는 예원학교에 입학해서 이화여대로 진학하고 얌전히 있다가 애 낳고 살라"고요. 그게 행복이라고 하셨어요. 엄마 말대로 했다면 현모양처가 돼 아이도 있었겠지만, 지금의 저는 엄마가 원했던 모습과는 전혀 다르죠. 그게 인생인 것 같아요. 앞으로 제 인생이 어떻게 펼쳐질지 미래의 나는 또 어떤 일을 벌이며 살아갈지 아무도 몰라요. 그래서 기대되고 궁금해요.

삶의 목표가 있나요? 솔직하게 말해도 되나요? 빠른 은퇴입니다.(웃음) 궁극적인 삶의 목표가 따로 있어요. 이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어요. 유기견 보호, 미혼모, 가정 폭력 등 사회적 이슈에 늘 관심이 많아요. 유기견을 위한 기부는 꾸준히 해왔고요. 아무래도 저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에게 마음이 가요.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그 사실이 더 동기부여가 돼요. 지금은 엄마, 동생과도 잘 지내고 좋은 직장에 다니고 있고, 무사히 에세이도 발간했으니 요즘이 가장 행복한 나날입니다.

마지막으로 서동주에게 다가오는 40대를 어떻게 보내고 싶냐고 물었다. 그녀는 치열한 30대의 결과물이 꽃피는 40대를 보내고 싶다고 대답했다. 다가올 그녀의 날들은 그 누구의 20대보다도 찬란할 것이다.

CREDIT INFO

에디터
박주연
사진
서동주 제공
2020년 08월호

2020년 08월호

에디터
박주연
사진
서동주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