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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이재용의 대국민 사과, 그의 속내는?

이재용 부회장이 대국민 사과문을 낭독하며 세 차례나 고개를 숙였다. 그 배경과 속내는 무엇일까?

On June 0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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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6일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서울 서초동 삼성 사옥에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다소 경직된 표정과 걸음걸이로 기자회견장에 등장한 이 부회장은 기자들의 질문은 일절 받지 않은 채 10분가량 준비해 온 사과문을 담담하게 읽어 내려갔다.
 

대국민 사과, 왜 했나?

우선 표면적인 사과의 배경은 논란이 되고 있는 경영권 승계와 노사 문제, 시민사회와의 소통 등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의 권고에 대한 답변을 위해서다.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는 지난 3월 11일 “총수 일가의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준법 의무 위반 행위가 있었던 점에 대해 이 부회장이 대국민 반성·사과하라”는 등의 내용이 담긴 권고문을 보냈다. 그러면서 마감 시한을 30일 뒤인 4월 10일로 못 박았고, 이후 코로나19 사태의 여파로 사과 기한을 한 달 더 연장해 5월 11일로 확정했다.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는 지난 2월 삼성그룹의 준법 경영을 감시하기 위해 만든 위원회로 지난 10월, 국정 농단 파기환송심에서 재판부의 “그룹 내부에서 기업 총수도 무서워할 정도의 실효적인 준법 감시 제도가 작동되고 있었다면 이 사건과 같은 범죄를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 미국의 연방 양형기준 제8장과 미국 대기업들이 이미 실행 중인 준법 감시 제도를 참고해달라”는 이례적인 당부를 토대로 만든 조직이다.

현재 이 부회장이 뇌물죄와 횡령죄에 따른 법적 공방을 이어가고 있는 점을 들어 여론은 그의 사과의 진정성을 의심했다. 1심에서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항소심에서 감형(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4년)을 받았으나 상고심에서 뇌물 인정액이 50억원 이상 늘어나 형량 증가가 불가피한 것 아니냐는 이유에서다. 따라서 이번 이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문은 집행유예 판결을 하기 위한 사전 포석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이례적인 재판부의 지난 당부 역시 양형 참작 사유를 알려준 ‘수상한 훈계’가 아니냐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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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가지 의미 있는 메시지

이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는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국정 농단 사태’로 대두된 경영권 승계 논란과 ‘노조 와해 사건’으로 불씨를 지핀 노사 문제 그리고 시민사회와의 소통과 준법 정신에 대한 삼성의 입장이다.
 

첫째 “4대 세습은 없다”

먼저 “오늘의 삼성이 ‘글로벌 일류 기업’으로 성장한 것은 국민의 사랑과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운을 뗀 이 부회장은 최근 논란을 빚은 ‘경영권 승계’ 문제에 대해 머리를 숙였다. 그는 “더 이상 논란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 법을 어기는 일을 하지 않고, 편법에 기대거나 윤리적으로 지탄받는 일도 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으며 “내 아이들에게 회사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을 생각이다. 오래전부터 마음속에는 두고 있었지만 외부에 밝히는 것은 주저해왔다. 경영 환경도 결코 녹록지 않은 데다가 내 자신이 제대로 된 평가도 받기 전에 승계 문제를 언급하는 것이 무책임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파격적인 입장을 밝혔다.

이러한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포기 선언에 여권에서는 다양한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대기업 지배구조에 새 화두를 던진 건 긍정적”이라고 인정하면서도 “경영권을 이양할 권한은 주주에게 있을 뿐 이 부회장이 현행법상 세습을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주장이다. 또한 “이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만 부정했을 뿐 지분 승계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 아니냐”며 “처벌을 면하기 위한 궁여지책에 그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둘째 “무노조 경영 안 해”

이 부회장은 삼성의 노사 문제와 관련해 “많은 임직원이 재판을 받고 있는 것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며 “‘무노조 경영’을 포기하고, 노동 3권을 확실히 보장하겠다”고 밝혔다. 창업 이후 82년간 무노조 경영을 고수해온 삼성의 경영 방침이 마침내 마침표를 찍게 된 것이다. 삼성은 그동안 노조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도록 임직원의 복리와 권익을 적극적으로 보장한다는 의미에서 무노조 경영 방침을 고수해왔다. 때문에 국내 최고 대기업이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노동자의 인권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노동계와 시민단체, 정치계의 맹렬한 비난을 받았다. 지난해 12월에는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 공작 혐의와 관련한 1심 재판에서 이상훈 전 이사회 의장과 강경훈 부사장 등 삼성전자 경영진이 유죄 판결을 받았고, 강경훈 부사장은 이와 별도로 삼성에버랜드 노조 활동을 방해한 혐의로 기소돼 징역 1년 4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 부회장은 일련의 해당 사건을 언급하며 “최근 삼성에버랜드와 삼성전자서비스 건으로 많은 임직원이 재판을 받고 있다. 삼성의 노조 문제로 인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이제 더 이상 삼성에서는 ‘무노조 경영’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 노사의 화합과 상생을 도모해 건전한 노사 문화가 정착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삼성의 무노조 경영이 무너지면서 삼성 계열사들의 노조 설립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은 노조를 대신해 각 계열사마다 노사협의회를 두고 있는데 보장된 쟁의권이 없는 조직의 특성상 계열사별로 노동 투쟁이 가능한 공식적인 노조 설립이 활발하게 이루어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이 부회장의 선언이 감형을 노린 ‘보여주기식’ 사과에 불과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고 있다. 노조 탄압으로 고통을 겪은 피해자들에게 말뿐인 사과 대신 법적인 책임이 필요하고 구체적인 실천 방안과 개선 내용에 대한 알맹이가 없다는 것이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산하 삼성에스원 노조는 “이 부회장이 대국민 사과를 하긴 했지만 진정한 사과는 재발 방지 대책과 후속 대책이 마련될 때 가능하다”며 “이재용의 사과가 진정이라면, 삼성이 당면한 임금 협상에서부터 전향적인 조치가 이루어져야 한다. 현재 사측은 시종일관 무성의하고 모르쇠적 행태로 일관하고 있다”고 강도 높은 비판을 내놨다.
 

셋째 “준법 문화 뿌리내릴 것”

마지막으로 이 부회장은 ‘시민사회와의 소통과 준법 감시'에 대해 입을 열었다. “시민사회와 언론은 감시와 견제가 그 본연의 역할이다. 외부의 질책과 조언을 열린 자세로 경청하고 낮은 자세로 먼저 한 걸음 다가서겠다”는 그는 “결코 타협할 수 없는 가치인 준법이 삼성의 문화로 확고하게 뿌리내리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는 내부 준법 감시제도를 제대로 운영할 것을 강조한 재판부를 겨냥한 멘트로 풀이된다. 현재 진행 중인 재판이 끝나더라도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는 독립적인 위치에서 계속 운영될 것이라는 이 부회장의 설명 역시 이러한 주장에 힘을 실었다.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는 이 부회장의 사과문 발표가 있은 다음 날, 정기 회의를 통해 “이 회장의 사과문은 준법의 가치를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므로 의미 있게 평가한다”고 밝히며 “다만 구체적인 실행 방안, 즉 준법 의무 위반이 발생하지 않을 지속 가능한 경영 체계의 수립, 노동 3권의 실효성 있는 보장, 시민사회의 실질적 신뢰 회복을 위한 실천 방안 등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 부회장은 “대한민국의 국격에 어울리는 새로운 삼성을 만들겠다”는 말로 사과문을 마무리했다. 현재 실형과 집행유예의 갈림길에 서 있는 그가 재판부의 노골적 ‘이재용 봐주기’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 이번 대국민 사과가 수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국민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재판을 의식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짐에도 불구하고 여러 논란을 정면으로 돌파하고, 상처를 입은 피해자들에게 고개를 숙였으며, 4세 경영을 포기하고 ‘NEW 삼성’의 청사진을 그렸다는 사실은 삼성에게도, 대한민국에게도 큰 의미가 있어 보인다.

CREDIT INFO

에디터
김두리
사진
<시사저널>·<일요신문> 제공
2020년 06월호

2020년 06월호

에디터
김두리
사진
<시사저널>·<일요신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