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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의 '기생충'이 아카데미 시상식을 장악하기까지

칸영화제와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수상할 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영화 <기생충>이 미국 최고 권위의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타게 될 줄은 말이다. 봉준호 감독은 미국 영화 역사를, 그리고 대한민국 영화 역사를 새로 썼다.

On March 0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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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영화의 아카데미 시상식(이하 ‘오스카’)을 향한 도전은 1963년 신상옥 감독이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를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부문에 출품하면서 시작됐다. 그러니까 <기생충>은 우리 영화가 오스카에 첫발을 내디딘 지 정확히 57년 만에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 장편영화상 4개 부문을 수상하면서 새로운 역사를 만든 것이다. 한국 영화로서는 최초의 아카데미 시상식 수상이고 나아가 아시아권 최초였다. 미국에서 개봉 후 대중의 좋은 반응을 이끌었다는 것도 의미가 있다. 지난해 10월 11일 북미 개봉과 동시에 봉준호 감독은 ‘봉하이브’라는 팬덤을 얻었다.

오스카상 측에도 여러모로 의미가 있는 수상이었다. 그간 영어권 영화에만 작품상을 수여했던 오스카가 이젠 비영어권 영화에도 작품상을 줄 자세가 됐음을 공식화한 것이다. 이동진 영화 평론가의 말마따나 “<기생충>이 오스카가 필요했던 게 아니고, 오스카가 <기생충>이 필요한 해”였다. <기생충>의 작품상 수상은 기네스북에도 등재됐다. 잉그마르 베르히만의 <화니와 알렉산더>, 이안 감독의 <와호장룡>과 함께 ‘오스카에서 가장 많은 상을 받은 외국어 영화’ 공동 1위에 올랐다. 봉준호 감독과 함께 각본상을 공동 수상한 한진원 작가에게도 관심이 쏠린다. 그는 봉 감독에게 감사를 전한 뒤 “엄마와 아빠에게 고맙다. 미국에는 할리우드가 있듯이 한국에는 충무로가 있다. 제 심장인 충무로의 모든 필름 메이커와 스토리텔러와 이 영광을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한진원 작가는 영화 <남쪽으로 튀어> 소품팀으로 시작해 <헬머니> <위험한 상견례 2> <판도라>의 연출부 생활을 했다. 그러다가 넷플릭스 영화 <옥자>로 봉준호 감독과 처음 만났는데, 이후 봉 감독은 한 작가를 직접 <기생충> 스크립 슈퍼바이저로 합류시켰고, 그렇게 <기생충>은 한 작가의 첫 시나리오 데뷔작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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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호가 봉준호의 페르소나가 된 이유

배우 송강호는 봉준호 감독의 필모그래피 다수를 함께한 그의 페르소나다. ‘봉준호의 페르소나 송강호’라는 뜻의 ‘봉페송’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다. 봉준호 감독이 처음 상업 영화 감독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살인의 추억>(2003)부터 <괴물>(2006), <설국열차>(2013) 그리고 <기생충>까지, 송강호는 무려 네 작품에 출연하며 흥행에 일조했다. 아카데미 4관왕의 역사를 쓸 때도 봉준호 감독의 옆에는 그가 있었다. 봉 감독은 송강호가 <기생충> 시나리오를 거절하면 프로젝트를 백지화할 생각까지 했다고 말한다. <기생충>이 ‘봉준호 리얼리즘’의 정점이라면 그 중심에는 송강호의 설득력 높은 연기가 있었다.

송강호가 ‘봉준호 월드’에 입성하게 된 데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다. 바야흐로 1997년 , 봉준호 감독이 <모텔 선인장>의 연출부 막내로 있을 때였다. 무명이었던 송강호가 오디션을 보러 왔다가 떨어졌고, 이를 안타깝게 여겼던 봉준호 감독이 송강호에게 직접 삐삐를 쳤다. “아쉽게도 이번 작품에선 함께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다음 기회에 꼭 함께 작업하고 싶습니다.” 송강호는 그때 다짐했다. 연출부 막내인 봉준호 감독이 언젠가 입봉해 출연 제의를 해온다면 두말하지 않고 출연하겠노라고. 그리고 5년 후, 송강호는 봉준호 감독의 작품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출연한다. 그게 바로 <살인의 추억>이다. 이후 봉준호 감독의 주연급 남자 배역은 모두 송강호에게 주어졌다. 송강호 역시 봉 감독의 출연 제의를 거절한 적이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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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의 여성 뒷배들

<기생충>이 오스카의 주인이 되기까지 봉준호 감독 뒤에는 든든한 뒷배가 있었다. 공교롭게도 다 여성들이다.

우선 시나리오 작가인 아내 정선영 씨다. 봉준호 감독이 쓴 대본을 보는 첫 번째 관객이 바로 그녀다. 두 사람의 연애 시절 에피소드는 <기생충>의 중요한 얼개가 된다. 바로 과외다. 실제로 부잣집 영어 과외 선생이었던 아내의 이야기가 영화에 절묘하게 녹아든 것이다. 봉준호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플란다스의 개>도 아내의 믿음이 없었다면 탄생하지 못했다. 쌀 한 톨이 없어 밥을 굶을 정도로 가난했던 신혼 시절에도 “1년만 기다려달라”는 남편의 말에 “못 먹어도 고”를 외쳐준 뱃심 있는 여자가 바로 봉준호 감독의 아내다. 이번 오스카 시상식에도 아내는 함께 있었다. 작품상 시상자 제인 폰다가 <기생충>을 호명하는 순간 정선영 씨가 환호성을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모습이 현지 언론에 포착되기도 했다. 기쁜 마음에 부둥켜안은 이는 아들 봉효민 씨다. 봉효민 씨는 YG케이플러스에서 제작한 웹무비 프로젝트의 <결혼식>을 연출했다.

시상식을 지켜보고 있으면 객석에서 빵빵 터지는 웃음소리가 계속 들린다. 그의 수상 소감이 담긴 유튜브 영상에는 “놀라운 감독일 뿐만 아니라 재미있는 사람이다”라는 댓글도 달려 있다. 외국 사람이 우리나라 말을 어떻게 알고 이런 반응을 보일까? 오스카 캠페인 기간 내내 그 옆에서  봉 감독의 말을 영어로 정확하게 옮겨준 샤론 최(최성재)가 있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건 이런 거다. “어렸을 때 제가 항상 가슴에 새겼던 말이 있어요. 영화 공부할 때…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봉준호 감독의 수상 소감 일부다. 샤론 최는 이렇게 옮겼다. “When I was young and studying cinema, there was a saying that I carved into my heart which is… the most personal is the most creative.” 샤론 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대치동 맘 카페가 들썩거렸다는 후문도 있다. 샤론 최가 대치동에서 모 영어학원 유치원부에 다녔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해당 학원으로 입학 문의 전화가 쇄도한다는 기사가 보도되기도 했다. 그녀가 이 학원을 다녔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샤론 최에 대한 정보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25살이라는 것과 단편영화를 만든 적이 있으며, 현재 다음 영화를 준비하고 있는 감독이라는 정도다.

영화 제작사 바른손이앤에이의 곽신애 대표도 ‘오스카의 <기생충>’을 만드는 데 한몫했다. 곽신애 대표는 곽경택 감독의 여동생이자 정지우 감독의 아내다. 영화 잡지 <키노>의 기자로 일하다가 결혼을 계기로 영화 제작사로 이직, 2010년 바른손이앤에이에 입사한 후 3년 만인 2013년 대표 자리에 앉았다. 바른손이앤에이는 영화 <희생부활자> <가려진 시간> <기억을 만나다> 등을 만든 제작사다. 아무튼 그녀는 오스카에서 작품상을 수상한 아시아 최초의 여성이 됐다. 그녀는 수상 소감으로 “상상도 해본 적 없는 일이 일어났다. 지금 이 순간 의미 있고, 시의 적절한 역사가 돼 기쁘다”고 말했다.
 

#시상식 뒤풀이 비하인드

오스카 시상식 뒤풀이 현장의 비하인드가 담긴 영상이 또 한 번 화제가 됐다. 봉준호 감독이 트로피를 가지고 자리에 나타나자 홀로 앉아 술을 마시던 외국 여배우가 그에게 관심을 표하는 장면이 담겨 있다. 10초 남짓한 영상이지만 해당 영상에는 ‘봉준호가 예쁜 여자를 유혹하는 방법’이라는 제목이 달렸다. 오스카 작품상이 엄청난 힘을 가졌다는 걸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같은 날 <기생충> 출연 배우와 제작자, 감독 등만 따로 모여 조촐한 뒤풀이가 열렸다고 한다. 이 자리에는 봉준호 감독을 비롯해 송강호, 조여정 등이 참석했는데, 같은 시기에 미국에 있던 공효진과 이하늬가 초대돼 함께 여흥을 즐겼다는 후문이다. 이하늬가 자신의 SNS에 뒤풀이 현장 사진과 함께 축하 메시지를 올렸는데, 이게 화근이 되기도 했다. ‘작품과 상관없는 사람이 그 자리에 왜 함께 있느냐’는 일부 네티즌의 질타였다. 이에 이하늬가 즉시 사진을 삭제하며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日 언론, 오스카 로비설?

주로 자국 영화에 상을 수여해오던 오스카 시상식에서 한국 영화와 감독이 상을 싹쓸이하자 ‘돈으로 오스카상을 샀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경쟁작으로 지목된 쟁쟁한 작품을 제치고 받은 상이었기에 어쩌면 당연한 시샘이었다. ‘오스카 로비설’은 몇몇 일본 언론의 의혹 제기에서 시작됐다. <기생충>이 오스카 총 6개 부문 후보로 선정됐다는 발표가 있었던 날 일본 아사히 신문은 ‘<기생충> 진격 뒤의 한국 기업’이라는 제목으로 “<기생충>이 미국에서 활약할 수 있었던 건 CJ그룹과 이미경 부회장 덕분”이라는 요지의 기사를 게재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작품을 알리고,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간담회나 파티 등을 진행하는 것을 ‘아카데미 레이스’라고 칭하는데, <기생충>은 지난해 8월부터 진행된 이 레이스에 3000만 달러(355억원)를 썼다. 통상적으로 1000만 달러(약 120억원)를 투자하는 다른 영화에 비하면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이미경 부회장의 전폭적인 지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레이스였을 것이다. 실제로 봉준호 감독이 아닌 이미경 부회장이 수상 소감 마이크를 잡는 모습은 의아함을 불러일으키는 대목. CJ 측 관계자는 “터무니없는 말이다. 그렇게 돈으로 가능한 것이었다면, 왜 중국과 일본 영화는 그동안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하지 못했겠느냐”고 말했다.
 

봉준호 감독 인터뷰

미국에 남아 남은 오스카 시상식 일정을 마치고 금의환향한 봉준호 감독은 19일 오전 기자들 앞에 섰다. 표정은 아주 밝았다.

“<기생충>이 이렇게 긴 생명력을 가져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다가 한국에 다시 오게 돼서 기쁩니다. 기분이 묘해요. <기생충>이 왜 세계적인 호응을 얻었는지에 대해선 관객분들이 평가해주실 거라고 생각해요. 다만, <기생충>이 좋은 작품으로 기억되길 바랍니다.”

작품상 수상 당시 세계적인 거장 마틴 스콜세이지 감독에 대해 경외감을 표했던 봉준호 감독. 그는 이 자리에서 마틴 스콜세이지 감독으로부터 편지를 받은 사연을 소개했다.

“오늘 아침에 마틴 스콜세이지 감독님으로부터 편지를 받았습니다. 너무 영광스러웠습니다. 그동안 수고했고, 이제 좀 쉬라고 하셨어요. 대신 조금만 쉬라고요.(웃음) 다들 제 차기작을 기다리고 있으니 조금만 쉬었다가 다시 작품을 만들라고 하셨죠. 이제 다음 작품을 준비하며 뚜벅뚜벅 걸어 나갈 것입니다. 빨리 다음 작품을 잘 만드는 게 한국 영화 산업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봉준호 감독은 오스카 캠페인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후보에 오른 작품들이 오스카 캠페인을 열심히 합니다. 우리 영화는 상대적으로 중소 배급사라서 게릴라 캠페인을 펼쳤습니다. 인터뷰를 600회, 관객과의 대화를 100회 정도 했어요. 경쟁작들이 LA 시내에 광고판, 잡지 커버를 장식할 동안 우리는 똘똘 뭉쳐 물량의 열세를 커버했습니다. 송강호 씨가 코피를 흘리는 일이 많았죠.(웃음)”

CREDIT INFO

에디터
이예지
사진
게티이미지(핸드아웃), 영화 스틸컷, 유튜브 캡처
2020년 03월호

2020년 03월호

에디터
이예지
사진
게티이미지(핸드아웃), 영화 스틸컷, 유튜브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