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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 랭, 나의 이야기

시간이 약이라고 했다. 그랬다. 그녀가 예전의 웃음을 되찾았다. 하지만 간혹은 그 웃음 뒤로 외로움이 드리워져 있었다.

On December 0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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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작업실을 찾았다. 경기도 수지였다. 작업실을 옮기면서 오랫동안 살던 한남동을 떠나 작업실 인근의 오피스텔로 이사도 했다. 이혼 후 전남편 왕진진의 사채 빚까지 떠안게 된 그녀는 경제적으로 녹녹지 않은 상황이다. 빚은 9억에 육박한다. 모두 왕진진이 그녀 이름으로 낸 빚이다.

"다 받아들였어요. 결국 제가 선택한 일이니까요."

담담했다. 그녀는 최근 17번째 전시를 성황리에 마쳤다. 대표작 터부요기니 시리즈와 함께 한층 업그레이드된 '터부요기니-스칼렛' 테마로 더욱 확장된 작품 세계를 선보였다. 덕분에 내년 개인전도 이미 계약이 끝난 상태다.

"영화 <주홍글씨>를 모티브로 제작했어요. '낙인'이라는 단어를 떠올렸거든요. 저 역시 이혼녀, 리벤지 포르노, 가정 폭력이 낙인된 피해자니까요. 저와 같은 여성들의 불합리한 고통을 스칼렛을 통해 표현했어요. 제 삶이 제 작품에 큰 영향을 미친 셈이죠."

작업실 곳곳에 그녀의 열정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작업물은 방대했고, 아름다웠다. 작업에 빠져 견딜 수 있었던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그녀는 괜찮아 보였다. 예쁘게 웃고 있었으니까. 하이 톤의 목소리도 긴 생머리도, '앙~' 하고 내뱉는 특유의 애교 섞인 말투도 여전했으니까.

작업실에서 그녀를 만났다

요즘 어떻게 지내나요?
친한 지인들과 유튜브 채널을 오픈해 연애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어요. 얼마 전에 구독자가 1,000명이 됐죠. 최근엔 개인전도 성황리에 끝났고요. 곧 마이애미 아트페어에 아티스트로 참여할 예정이에요. 뉴욕에 들러 즉흥적으로 퍼포먼스를 할 계획이고요.


아티스트로서 낸시 랭은 완전히 컨디션을 되찾은 것 같아요.
개인전을 하는 내내 매일 갤러리에 나가서 직접 작품에 대한 설명을 했어요. 제게는 너무나 특별한 개인전이었으니까요. 그래서 한 사람이라도 작품을 더 나누고 싶었어요. 다행히 반응이 좋아 컬래버레이션을 제안하는 브랜드가 많아요. 요즘은 브랜드들과 미팅을 가지는 중이에요.


개인적으로 기자는 팝 아티스트로서의 그녀를 좋아한다. 그녀의 작품에는 예술가로서 자기 확신이 있고, 르네상스적인 독특한 감각이 있다. 그녀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건, 2003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바이올린 퍼포먼스다. 초대받지 못한 한 무명 작가가 비키니를 입고 퍼포먼스를 선보였고, 곧 현지 경찰에 연행된다. 바로 그녀였다. 더불어 그녀를 단숨에 '대박' 미술가로 만들어버린 명품 콜라주 '터부요기니' 시리즈까지. 이 도발적인 아티스트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으로 엇갈렸지만, 미술의 대중화에 앞장섰다는 건 재론할 여지가 없다. 사람을 학력으로 평가하면 안 된다. 하지만 학력만큼 그 사람의 능력을 방증하는 자료는 없다. 그녀는 홍익대학교 미대와 동 대학원 회화과를 졸업했다. 최근까지 17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결혼 후 많은 일이 있었어요. 그사이 어떻게 지냈나요(그녀는 2017년 12월 왕진진과 결혼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혼인신고를 했다. 그리고 지난해 10월 왕진진에게 폭행과 감금을 당했다며 이혼소송을 제기했다)?
결혼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개인전을 열었어요. 그 전시를 준비할 때는 더없이 행복했죠. 그를 완전히 믿고 있었고, 반대로 말하면 완전히 속고 있었으니까요. '난 행복하겠구나, 이제 아티스트로서 작품 세계를 열심히 펼칠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작품을 준비하는 중에 폭행 사건이 터졌죠. 왕진진(그녀는 왕진진의 본명인 '전준주'로 그를 호칭했으나 일관성을 위해 왕진진으로 통일했다)의 가정 폭력이 심해 저는 결국 집을 나오게 됐어요. 일산의 한 지인 집에 찾아가 "언니, 하룻밤만 잘게" 하고 들어가서는 두 달을 신세 진 거예요.


여자로서 힘든 시간이었을 것 같아요.
포기하고 싶었어요. 당시 내 정신 상태라면 누구라도 그랬을 거예요. 매일 왕진진의 미행에 쫓기며 살았어요. 정말 무서웠죠. 집을 부수고 들어오기도 했어요. 그러면서 리벤지 포르노 협박도 있었고요. 그때는 정말 죽고 싶었어요. 지인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었을 거예요. 사생활 영상이 인터넷에 떠돌아다닌다고 생각해보세요. 한번 올려진 동영상은 완벽히 지워질 수가 없어요. 사회적인 살인이에요. 제가 죄를 진 건 아니잖아요? 가정 폭력, 사기 결혼도 있었지만 그와 헤어진 결정적인 이유는 리벤지 포르노 협박이었어요.


어떻게 협박했나요?
저한테 영상을 보냈어요. 입에 담을 수 없는 욕들과 함께요. 서로 사랑했고, 또 혼인신고를 하자던 사람이 나한테 왜 이러는지, 믿기지가 않았어요. 결국 그는 사랑이 아니었던 거죠.


지나고 보니 왕진진은 어떤 남자인가요?
(그녀는 한참 생각했고, 단호하게 말했다.) 사회에서 격리해야 하는 사람. 계획적으로 제게 접근했다는 사실이 큰 상처가 됐어요. 그럼에도 저를 정말 사랑했더라면 바보 같지만 그의 거짓말과 전과자라는 과거까지도 다 품었을 거예요. 저는 당시에도, 우리가 돈을 많이 못 벌어도 열심히 살며 소소한 행복을 누리자고 했어요. 다 받아들일 테니 당신의 과거에 대해 말해달라고도 했죠. 하지만 그는 둘만 있는 자리에서도 거짓말을 반복했어요.


결혼 당시 저희 매체와 화보 촬영을 했어요. 그때 왕진진의 모습이 스태프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죠. 마치 엄마가 아기를 보살피듯 낸시 랭 씨의 옆에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당시는 제게 너무 잘했어요. 외로운 저를 늘 위로해줬죠. 저는 형제도 없는 데다 10년 전 엄마가 돌아가신 뒤엔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늘 그리웠어요. 그 사람의 사랑이 진짜라고 믿었죠.


결혼 발표 후 걱정하는 사람이 많았어요. 직언을 하자면 '왕진진이 위험한 남자란 걸 왜 낸시 랭만 모르지?'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컸죠.
혼인신고한 사실을 개인 SNS에 올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사들이 쏟아졌어요. 여자로서 가장 행복해야 할 시간이잖아요. '내가 유명 스타도 아닌데, 도대체 사람들이 왜 이러지? 왜 내 결혼에 관심이 이렇게 많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왜 나한테 이혼을 하라고 하지?'라는 생각이 들며 이해하지 못했어요. 나중에 그가 많은 송사에 휘말려 있다는 걸 알았죠. 하지만 그때도 그는 논리적으로 제게 설명했어요. 다 거짓말이었지만요. 그래서 전 역으로 '그가 속았구나' '억울하겠구나' 라고 생각했어요. 왕진진은 상대를 세뇌시키는 집요한 부분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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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 곳곳에 그녀의 열정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작업물은 방대했고, 아름다웠다. 작업에 빠져 견딜 수 있었던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왕진진은 사회에서 격리해야 하는 사람이에요. 계획적으로 제게 접근했다는 사실이 큰 상처가 됐어요.
그럼에도 저를 진심으로 사랑했다면 바보 같지만 그의 거짓말과 전과자라는 과거까지도 다 품었을 거예요.
하지만 그는 둘만 있는 자리에서도 거짓말을 반복했어요.

그는, 사랑이 아니었다

결혼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나요?
제가 정신적으로 약해질 대로 약해진 상태에서 그를 만났어요. 어머니는 긴 암 투병으로 돌아가시고 외할머니도 돌아가셨거든요. 그 이전에 아픈 엄마와 저를 버리고 아빠도 사라지셨죠. 엄마가 투병하는 동안 저는 가장이었고 병원비와 생활비를 벌어야 했어요. 생계형으로 방송에 나갔고, 소비됐죠. 그런 와중에 엄마가 돌아가시고 많이 외로웠어요. 한 해 한 해 그 외로움이 짙어지며 가족의 부재가 점점 크게 느껴졌죠. 사회생활을 하며 상처받고 치이면서, '내가 성공하면 누가 기뻐해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도 여느 딸처럼 성공해서 엄마에게 좋은 집과 명품 백을 사드리고 싶었어요. 근데 그게 다 없어진 거예요. 돈을 버는 것조차 무의미해졌어요.


그때 왕진진이 나타난 거네요.
어떤 문제가 생겨도 상의할 혈육이 없는 게 상상이 가세요? 물론 제 옆에는 좋은 지인이 많지만 그것과는 별개예요.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매일 불면증에 시달렸어요. 술을 마셔야 잠을 잘 수 있었죠. 그렇게 몇 년 지냈어요. 하늘 아래 나 혼자라는 생각과 함께 매일 똑같은 일상과 반복되는 허무함에 다 포기해버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빨리 가정을 꾸리고 싶었나 봐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가정을 꾸리게 해달라고 매일 기도했어요. 그때 왕진진이 내 앞에 나타난 거예요.


요즘 심리 상태는 어떤가요?
작품 활동에 매진하고선 많이 나아졌어요. 지난 몇 달을 작업실에서만 살았거든요. 엄청난 작업량을 소화해야 했기에 그간의 안 좋은 기억을 떠올리는 시간이 현저히 줄었죠. 그래서 감사하고 있어요. 당시엔 하나님을 원망했지만, 지나고 보니 아픔만큼 성숙해졌더라고요. 지금은 그렇게 생각해요. '아티스트로서 인생의 슬픔과 고통은 폭넓은 작품 활동을 위해 필요하구나' 라고요. '다 하나님의 큰 계획이셨구나' 하고요. 현실을 다 받아들이기로 마음먹고선 편안해졌어요.


요즘도 외롭나요?
집에 가면 외로워요. 제가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상황이라 작은 오피스텔로 이사했어요. 그 사람 때문에 사채를 썼고, 이자만 월 600만원이에요. 그가 한남동에 있는 제 집을 담보로 돈을 많이 썼어요. 그러다 보니 빚이 계속 늘고 있고, 9억에 육박해요. 그걸 제가 다 떠안게 된 거예요. 그와 결혼 발표를 한 후 돈을 벌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예정돼 있던 강연도 다 취소됐거든요.


아무리 부부라지만 본인의 이름으로 빚을 내는데, 다 수락했어요?
당시에는 남편이었으니까 믿었죠. 그가 저를 설득하는 레퍼토리가 있었어요. 마카오에 사는 어머니가 굉장히 부유한 사업가라고 했거든요. 부모님께 물려받은 도자기가 있어 아버지의 문화 사업을 한국에서 마치고 들어가야 된다고 했어요. 2018년 어머니의 생신 때 마카오에 들어가 결혼식을 올리고 행복하게 살자고도 했고요.


다 믿은 거예요?
성격이 선한 편이에요. 잘 믿어요. 아무리 혼인신고를 한 아내이지만 아내 이름으로 돈을 빌리는 건 미안한 일이기도 하잖아요. 한데 그는 그런 게 없으니까, 섭섭하고 슬프다고 한 적은 있어요. "날 사랑하는 게 맞아?" 하고 물어보기도 했죠.


얼마 전 뉴스를 보니 왕진진이 리벤지 포르노 협박을 했다고 인정했어요. 그러나 특수 폭행, 협박, 상해, 감금 등은 부인했고요(왕진진 측은 "낸시 랭이 술에 취해 집에 들어와 넘어졌고, 멍이 들어 크림을 사준 것뿐"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원래 다 아니라고 해요. 근데 다 맞아요. 증거를 제출한 상태예요.


그의 사기죄가 인정돼도 빚을 다 떠안아야 하나요?
그가 제 이름으로 빚을 냈으니, 은행과 저의 거래잖아요. 제가 다 갚아야 한대요.


억울하지 않나요?
어찌 됐든 내 선택의 결과니까요. 담담히 받아들이고 있어요.


낸시 랭에게 사랑이란 뭡니까?
없어요. 다 거짓이죠. 트라우마가 생겼어요.


그럼에도 새로운 사랑이 찾아오지 않을까요?
다들 제게 또 사랑을 하게 될 거라고 말해요. 현재로서는, 아니에요. 이성적으로 다가오는 남자들이 무서워요. 분명한 건, 혼인신고를 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그 말은 결혼을 안 한다는 의미겠죠. 하나님께 기도하며 울었어요. 제가 간절히 원하는 걸 포기하겠다고요. 가족을 만드는 걸 포기하겠다고요. 생각해보면 저는 혼인신고만 했지 결혼식을 해본 적도 없고, 결혼반지를 껴본 적도 없어요. 문득 제가 결혼을 했었는지도 모르겠는 거예요. 그쪽 친인척을 본 적도, 웨딩 반지를 받은 적도 없고, 신혼여행도 못 갔으니까요. 혼인신고라는 게 너무 쉽더라고요. 종이 한 장에 몇 글자 쓰니 끝나더군요. 결혼이라는 게 무서운 것 같아요. 결혼할 때는 둘이 알콩달콩 행복할 것만 생각하는데 한쪽이 배신하면 이혼도 쉽지 않은 게 결혼이더라고요. 그런 마음은 있어요. 여자로서 웨딩드레스를 입어보고 싶은 마음요. 나중에 이벤트로라도 한 번은 하고 싶어요.


그림이 많은 위안이 됐을 것 같아요.
맞아요. 제게 종교가 있고, 아트가 있어 견딜 수 있었어요. 몇 달간 작업실에 처박혀 지내면서 제가 아티스트인 게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남들은 제가 멘탈이 강하다고 하는데 저 안 그래요. 그럴수록 작업에 매진했어요. 작품으로 스피커 역할을 하고 싶었어요. 아트는 모든 게 가능해요. 기자회견에서 나의 심경을 말하는 게 아니라 작품으로 말할 수 있잖아요. 그 끝에 시련을 겪은 걸 차라리 하나님께 감사하게 됐죠. 그렇다고 그를 용서한다는 의미는 아니에요.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가 아트 쪽에 있으니 작품으로 승화했어요.


인간관계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됐을 것 같아요.
제가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 정말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들은 나를 외면했지만 의외의 친구들이 저를 적극적으로 도와줬어요. 그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제게 뜨겁게 다가왔죠. 행여 제가 나쁜 생각을 할까 봐 옆에서 자존감을 회복시켜주었어요. 제가 제일 싫어하는 말 중 하나인데, 견딜 수 있을 만큼의 고통만 준다고 하잖아요. 정말 그랬어요. 시간이 그렇게 흐르더라고요.


그 많은 일이 1년 사이에 일어났어요. 되돌아보면 어떤가요?
생각하면 다시 현실로 느껴질까 봐 두려워서 안 할래요.


이른바 그에게 '콩깍지'가 벗겨진 계기는 언제였나요?
폭행당했을 때. 그 전에 다툴 때는 그래도 사랑하는 마음이 컸는데 첫 폭행이 굉장히 심했어요. 얼굴이 선풍기처럼 퉁퉁 부었고, 온몸에 멍이 들어 남색이 됐더라고요. 모멸감에 죽고 싶었어요.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르겠어요. 눈을 떠보니 침대 위였어요. 기절을 했나 봐요.


아픈 기억을 다시 꺼내게 했네요.
그가 눈물을 흘리며 사과하더군요. 그러면서 이 고비를 잘 넘겨 부모님이 계신 마카오에 가서 행복하게 살자고 했어요. 어리석게도 그때는 그렇게 또 넘겼죠. 누구한테 하소연할 수도 없었으니까요. 기사화될까 무서웠어요. 여름이라 온몸에 멍이 들어 열흘 동안 집 밖에 나가지도 못했죠. 한데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번째 폭행이 이어졌어요. 그래서 집을 나오게 됐어요. 그리고 소송에 바로 들어갔고요.


평소에 폭력성이 있었던 사람인가요?
다툼은 많았지만 폭력적이진 않았어요. 다툼이 많았던 건, 그가 말한 것들이 안 지켜지고 있었으니까 저도 자꾸 물어보게 되고, 그러면서 큰소리가 나게 됐죠. 그리고 어느 날부터는 물건을 부수기 시작했어요. 그게 곧 폭행으로 발전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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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적으로 다가오는 남자들이 무서워요. 트라우마가 생겼어요.
분명한 건, 앞으로 혼인신고를 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그 말은 결혼을 안 한다는 의미겠죠.
하나님께 기도하며 울었어요. 제가 그토록 원했던 가족을 만드는 걸 포기하겠다고요.

여자로서 자신의 인생, 되돌아보니 어떤가요?
좋은 게 더 많았어요. 어머니가 미국에서 사업을 해서 초등학교 때부터 줄곧 강남에 살며 많은 걸 누렸죠. 좋은 옷을 입고, 집에는 늘 일하시는 이모님이 상주해 있었고, 하고 싶은 걸 다 하며 살았어요. 엄마의 암 투병이 시작되면서 조금씩 가세가 기울어 생계형으로 방송을 시작했죠. 그래도 엄마가 제 옆에 계셨고, 저도 돈을 벌 수 있었으니까 괜찮았어요.


밝은 에너지가 느껴져 좋아요.
외롭고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작가로서는 전에 없이 만족할 만한 작업 결과를 얻었어요. 지난 전시는 제가 그동안 했던 전시 중 가장 퀄리티가 높았고 작업량도 많았어요. 콘셉트도 확장됐고 다양했죠. 신나고 기쁘고 만족스러워요. 작가로서의 성취감은 지금 절정이에요.


작품 활동도 좋지만 일상도 중요해요. 일상에서 느끼는 소소한 행복이 있을까요?
집에 가면 나의 강아지 두 마리가 반겨줘요. 소소한 행복이에요.


인터뷰 내내 느낀 것이지만 가족의 부재가 아직 큽니다. 쉽지 않겠지만 더 단단해져야 해요.
제가 느끼는 고통과 외로움은 가족이 없는 사람만이 알 수 있어요. 그건 부모님이 나이 들어 돌아가셔서 없는 것과는 또 달라요. 제가 외로움을 잘 타는 성격이에요. 어릴 때부터 그랬어요.


지금 대중이 느끼는 낸시 랭의 이미지는 어떻다고 생각하나요?
잘 모르겠어요. 그리고 중요하지 않아요. 남들이 만들어놓은 천년보다 내가 만들어놓은 1초가 더 중요해요.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어요. 그렇다고 제가 감옥에 들어갈 죄를 지은 건 아니잖아요. 저와 같은 자녀가 있으신 분들은 저를 안타깝게 생각하고 응원해주세요. 앞으로 제가 아티스트로 어떻게 성장해가는지 본 뒤에 판단하시면 좋겠어요.


왕진진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없어요.


어머니에게 하고 싶은 말은 있을 것 같아요.
보고 싶어. 사랑해. 이 말을 하고 싶어요. 좀 더 나랑 있어주지, 내가 결혼할 때까지라도 내 옆에 있어주지….


낸시 랭을 걱정하던 대중에게도 한마디해주세요.
저의 사생활 관련 뉴스로 피곤함을 드려 죄송하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었어요. 동시에 저를 걱정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나고 나니 다 맞는 말씀들이셨어요. 그래서 여기서 무너지지 않을게요. 아티스트로서 우뚝 서는 모습을 꼭 보여드릴게요.


지나온 삶보다 앞으로의 삶이 더 중요해요. 40대를 어떻게 보낼 건가요?
저의 가장 큰 갈망은 가족을 만드는 거였어요. 외로움이 싫고 고통스러우니까. 한데 여자로서의 행복은 내려놨어요. 좋은 사람을 만나겠지? 나에게 또 기회가 오겠지? 아니에요. 아무런 기대가 없어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고 하면 꿈을 이룰 수 없어요. 전 아티스트로서 성공하고 싶어요. 그렇게 선택했어요.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하지만, 그것을 극복하는 사람들로도 가득하다. 이제 그녀는 누구도 아닌 스스로를 믿기로 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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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에디터
하은정
사진
이대원
2019년 12월호

2019년 12월호

에디터
하은정
사진
이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