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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니까, 성현아

On December 02, 2019

인터뷰 도중 그녀에게 두 번의 전화가 걸려왔다. 저녁을 같이 먹을 수 있는지 묻는 아들의 전화였다. 성현아는 아들을 생각하며 오늘도 다시 힘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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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 드페이, 셔츠 원피스 코스, 앵클부츠 렉켄.


사생활 이슈로 한동안 대중의 곁을 떠났던 성현아가 새로운 출발선 앞에 섰다. KBS joy <무엇이든 물어보살>, SBS 플러스 <밥은 먹고 다니냐?>, MBN <모던패밀리> 등 예능 프로그램에 잇달아 출연한 것을 시작으로, 12월에 방송될 TV조선 예능 <손맛 전수 리얼리티-백년의 맛, 후계자들>(이하<백년의 맛, 후계자들>)에 고정 출연하며 활동에 박차를 가하는 것. 노포 식당에서 비법을 전수받고 최종 후계자로 선정된 1인의 창업을 지원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그녀는 도전자 중 한 명으로 나서 최종 후계자로 발탁되기 위한 미션을 수행한다.

성현아가 방송에 출연했다 하면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를 하고, 관련 기사에 수많은 댓글이 달린다. 익명의 누군가는 그녀에게 연예인이 아닌 다른 직업을 가지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활동을 이어가는 이유는 단 하나다. 아들을 위해서다.


오랜만에 활동하는 모습을 봐요.
계속 쉰 건 아니에요. 지난해 KBS2 드라마 <파도야 파도야> 출연 후 1년간 공백기를 가졌어요. 차기작이 예정돼 있었는데, 작품이 엎어졌죠. 쉬지 않고 활동하고 싶었는데 마음처럼 쉽지 않더라고요. 그렇게 다음 작품을 기다리다 1년이 지났고, 가만히 기다리기만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시작했군요.
무엇이든 도전해보자는 생각이었죠. 곧 리얼리티 예능 <백년의 맛, 후계자들>이 방영돼요. 데뷔 후 처음으로 출연한 리얼리티인데 수십 대의 카메라가 하루 종일 저를 찍는 게 어색하고 어리둥절하지만 재미있어요. 새벽 4시에 집을 나서 인천에 있는 소머리국밥집으로 출근하고, 다음 날 새벽 2시에 귀가해요. 소머리의 털을 벗기고, 비계를 떼는 작업을 한 뒤 장작불을 때서 소머리국밥을 끓이다 보면 하루가 금세 가요. 처음엔 메이크업하지 않은 민낯에 머리는 하나로 질끈 묶고 카메라 앞에 서도 괜찮을까 걱정했는데, 정신없이 일하다 보면 금방 까먹게 되더라고요.


고된 일일 거라는 직감이 들어요.
솔직히 힘들긴 하지만 몸이 힘든 것은 괜찮아요. '배우 성현아는 힘든 일을 하지 못할 것 같다'는 인식을 없애고 싶어요. 오랫동안 방송 활동을 쉬면서 제가 연예인이라는 생각이 사라졌거든요. 실제로 저는 궂은일도 잘하고, 일주일 내내 같은 옷을 입고 동네를 돌아다니기도 해요. 조만간 한 방송사와 함께 유튜브 방송을 시작해요. TV를 통해 비치는 모습이 아닌 저의 실제 모습을 더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활동에 박차를 가하는 이유가 뭔가요?
생존형 배우니까요. 내 가족, 내 피붙이 하나를 지켜야겠다는 마음이라 절박해요. 제가 얼마나 더 방송 활동을 할 수 있을지 모르니까 기회가 있을 때 열심히 하자는 생각도 하고요. 초등학교 1학년인 아들이 엄마를 보지 못한다고 투정 부릴 땐 마음이 아프지만 어쩔 수 없죠.


생활고로 어려움을 겪었다고 고백했죠?
4년 전인 2015년 한때의 이야기예요. 남편 없이 아이와 단둘이 남았는데 당시 제 손엔 월세 보증금 700만원이 전부였어요. 어느 날은 앞날이 막막해 어찌할 도리가 없어 길바닥에 앉아 울었죠. 가수 위일청의 아내와 친분이 있는데 저를 많이 도와주셨어요. 용돈을 주기도 하고 폭염에 선풍기 하나 없이 지내는 저희 모자에게 선풍기를 가져다주기도 했죠. 또 위일청은 행사 스케줄이 생기면 저를 행사 MC로 일할 수 있게 하면서 도와줬고요.


그동안 모은 재산이 없었나요?
많은 돈을 모았었죠. 배우 활동을 하면서 번 수입으로 외제 차를 타고 내 집도 있었어요. 그런데 경제권을 남편에게 맡겼던 게 문제였어요. 무언가 잘못됐다는 걸 알았을 땐 이미 늦었죠. 꾸준히 활동해서 이제는 경제적인 어려움은 없어요. 아직까지 대출이 있지만 월세에서 전세로 이사를 가기도 했고요.


남편이 원망스러웠겠어요.
제가 바보 같았던 거죠. 제가 처한 상황을 누군가의 탓으로 돌리고 싶진 않아요. 어떤 것이든 내가 선택한 일이니까 나의 잘못도 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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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트 모조에스핀, 슈트 휴고보스, 사이하이 부츠 레이첼 콕스, 이어링 밀튼아티카.


성현아는 2007년 한 살 연하의 사업가와 결혼한 뒤 3년 후인 2010년 이혼했다. 같은 해 여섯 살 연상의 사업가와 재혼해, 2012년 아들을 출산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의 사업 실패로 별거 생활을 시작했고, 2017년 남편과 사별했다.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일을 겪었어요. 인고의 시간을 어떻게 견뎠나요?
잘 버텼어요. 그때는 힘들었지만 지금은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추억이 됐어요. 그 시간이 후회되냐고요? 전혀요. 결혼하지 않았다면 우리 아이를 만나지 못했을 테니까요.


재혼을 빠르게 결정한 이유가 무엇이었나요?

남편이 원했고, 저는 정이 그리웠어요.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많은 돈을 벌 때 행복하지 않았거든요. 당시 제게 가장 큰 문제는 외로움이었어요. 그래서 남편에게 정을 주고 모든 것을 내줬는데,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벌어진 거죠.


선택에 대한 수업료를 크게 지불했어요.

어느 누구도 나를 책임질 수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부부일지라도 각자의 라이프가 있어야 건강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나는 상대의 생활을, 상대는 나의 생활을 존중하면서 각자 맡은 일에 충실하고 책임질 줄 아는 관계가 이상적이죠.


그 와중에 억울한 일도 있었습니다(성현아는 2013년 3차례의 성관계 후 5,000만원을 받아 성매매 알선 혐의로 기소돼 벌금형을 선고받았으나, 약 3년 동안의 법정 공방 끝에 2016년 혐의를 벗었다).

이야기를 시작하면 할 말이 많지만 언급하고 싶지 않아요. 분명한 것은 무죄로 결론났다는 거예요. 지나간 과거를 흘러가게 두고 싶고 대중에게 잊히길 바라요. 하지만 아직까지 방송이나 대중이 '배우 성현아'에게 궁금한 건 과거인 것 같아요. 쉬지 않고 활동을 하는 게 아니다 보니 방송에 출연할 때마다 같은 질문을 받죠. 답을 피할 순 없어서 방송에서 말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답해요. 매체를 통해 노출되는 인생이 제 인생의 전부는 아니에요. 일일이 해명하고 하소연할 수 있지만 변명처럼 보일까 봐 말을 아껴왔어요. 그런데 제가 방송에서 한 단편적인 말들이 모여 기사화되고, 수많은 댓글이 달려요. 특히나 가족에 대한 이야기나 '감성팔이 한다'는 내용의 댓글을 보면 마음이 아프죠.


댓글을 일일이 찾아보나요?
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저도 사람이라 보게 돼요. 응원의 메시지도 있지만 안 좋은 내용이 많아요. 오랫동안 연예인으로 살면서 겪은 일이라 면역력이 생길 법도 한데, 잘 되지 않더라고요. 짊어지고 가야 한다고 생각하다가도 속상해하고 무너지곤 하죠.


악성 댓글에 힘들기도 할 것 같아요.
억울한 부분도 있고 화가 나서 고소하려고 했던 적이 있어요. 저를 도와준 변호사가 안타까워하면서 재판 내용을 공개하고 더 이상 사실과 다른 댓글로 고통받지 말라고 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고소하지 않았던 이유는 또 사건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예요. 그냥 제가 신경 쓰지 않으면 되죠. 요즘엔 포털 사이트의 '클린봇' 기능을 활용해요.


여전히 '배우 성현아'하면 루머, 스캔들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습니다.
아직까지 대중이 저를 보고 다른 것을 떠올릴 수 없기 때문이죠. 결국 제가 잘해나가야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아쉬운 건 과거에 묶이는 것 같다는 거예요. 때로는 걸어 나가고 있는 절 누군가가 뒤로 잡아당기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저를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을 충분히 알지만 열심히 노력하니까 여러 가지 기회가 주어져 포기하기엔 이른 것 같아요. 끝까지 매달려도 안 되면 그때 포기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해요.


지나온 시간, 어떻게 기억되나요?
많은 것을 잃었지만 가장 큰 것을 얻었어요. 아이와 세상의 이치, 평온한 마음을 갖게 됐으니까요. 물론 마음이 흔들릴 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그럴 때마다 흔들렸다면 저는 일상생활을 하지 못했을 거예요.


어떻게 중심을 잡았나요?
"엄마는 강하다"는 말처럼 아들을 생각하면서 힘을 냈어요. 저는 인생의 절반을 살았지만 아이는 이제 시작이니까 제가 힘을 내야죠. 엄마가 연예인이라서, 혹은 아이가 선택하지 않은 상황이 아이에게 장애물이 되는 상황은 막고 싶어요.


'성현아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불이익을 당할까 봐 걱정하는 거죠?

제가 방송 활동을 열심히 하는 이유는 지금과 다른 평가를 받고 싶기 때문이에요. 적어도 성현아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앞길이 막히게 하지 말자는 사명감이 있거든요. 어떤 분들은 먹고, 입고, 운동하고, 방송 활동도 하는 제게 "할 것은 다 하고 산다"고 하는데, 엄마는 그래야 해요. 내 아이가 있는데 마냥 우울하게 있을 순 없잖아요. 제 꿈은 그저 아이를 키우며 행복하게 사는 것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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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우스 딘트, 팬츠 자라.

블라우스 딘트, 팬츠 자라.

걸어 나가고 있는 저를 누군가 뒤에서 잡아당기는 것 같아요.
매체에 노출되는 인생이 제 인생의 전부는 아니에요. 이제 과거는 흘러가게 두고 다시 시작하고 싶어요.


인터뷰 도중 그녀의 아들에게 전화가 두 번 걸려왔다. 오늘 엄마의 귀가 시간은 언제인지, 저녁은 함께 먹을 수 있는지 묻는 전화였다. 그녀는 아들의 살가운 물음에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통화 내용으로 짐작하건대 다정한 아들 같아요.
아이가 태어난 후 '연예인 성현아'에서 '인간 성현아'가 된 것 같아요. 하나부터 열까지 제 손을 거치지 않은 게 없을 정도로 소중하게 키웠어요. 한 달 동안 산후 도후미에게 아기를 돌보는 노하우를 배운 후 혼자 씻기고 재우고 밤새워 이유식을 만들며 키웠어요. 잠을 못 자는 게 힘들었지만 그래도 행복했어요. 아들은 나의 모든 시름과 고민을 잊게 해주는 존재였거든요.


엄마, 아빠 중 누구를 닮았나요?
아들은 엄마를 닮는다고 해요.(웃음) 요즘엔 음악에 관심이 많아요. 저와 함께 JTBC 예능 <슈퍼밴드>를 보다가 기타와 드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거든요. 드럼 학원을 보내고, 기타의 기초를 배우려면 화성학을 공부해야 해서 피아노 학원에도 보내고 있어요.


아들의 교육에 최선을 다하는 열혈맘이군요.
예전엔 다른 아이들처럼 수학·영어·축구 학원에 보냈어요. 그런데 이젠 아이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게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연예인이 된다고 하면 어떻게 할 거예요?
말릴 거예요. 연예인이란 직업을 가지면 감성적으로 예민해지고 평범한 삶을 살기 어렵잖아요.


엄마에게 어떤 아들인가요?
엄마를 끔찍하게 생각하는 아들이에요. 요즘엔 스케줄이 바빠 자주 못 보는데 "엄마, 오늘도 촬영해? 미팅도 해? 엄마가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라면서 귀여운 투정을 부려요. 다만 철이 일찍 든 것 같아 미안해요.


어떤 것 때문에요?
아빠 이야기를 할 때요. 몇 년 전까지 아빠에 대한 대화를 피했는데 이젠 그러지 않거든요. 어느 날 아들이 제게 "아빠가 엄마한테 화내서 마음에 들지 않았어"라는 말을 했어요. 그래서 "그래도 아빠는 너를 많이 사랑하셨어. 아빠가 있었으면 좋겠어?"라고 물었더니 아들은 "응. 그런데 아빠는 다시 돌아올 수 없잖아. 새아빠는 우리 아빠가 아니야"라고 답했어요. 아빠와 함께 노는 친구들이 부럽기도 할 텐데 내색하지 않더라고요. 엄마를 생각하는 성숙한 아들이죠.


또다시 사랑을 하고 가정을 이루고 싶나요?
더 이상 결혼이라는 제도에 얽매이고 싶지 않아요. 아들에게 동생을 만들어주지 못하는 건 아쉽지만 지금도 충분해요. 아들에게 세상에 다양한 가족 형태가 있고, 우리는 둘이 가족이니까 행복하게 살자고 이야기해요.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워킹맘의 일상은 어때요?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요. 아침에 일어나 아들을 학교에 보내고 식사와 간식을 준비한 후 스케줄을 소화해요.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다음 날 아들의 학교 준비물을 챙기고 집안일을 하죠. 이럴 땐 친정이 없는 게 아쉬워요. 지난 4월에 아버지가 노환으로 돌아가셨거든요. 새어머니와 경북 상주에 집을 짓고 사셨는데, 새어머니가 살뜰하게 돌봐주신 덕에 주무시다가 편안히 돌아가셨어요. 아직까진 허전하지만 대전에 언니가 살고 있어 괜찮아요.


어떤 엄마가 되고 싶나요?
책임감 있는 엄마요. 어렸을 땐 친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두 번의 재혼을 한 아버지가 이해되지 않았어요.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아버지는 아버지만의 삶이 있었고, 그러면서도 자식들에 대한 책임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20살에 데뷔해 대학에 가지 않은 제게 여러 차례 대학 진학을 권유하셨어요. 아마도 대학까지는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저도 아버지처럼 책임을 다하는 엄마가 되고 싶어요. 아들이 인생을 살며 마주할 풍파를 최대한 잔잔하게 넘을 수 있게 돕는 엄마이고 싶고요.


만약 타임머신이 있다면 어느 순간으로 가고 싶나요?
지금이 좋아요. 지나온 삶은 그냥 지나간 채로 둬야죠. 여러 가지 일을 겪었지만 그 경험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거예요. 제 인생의 보물 같은 아들도 만나지 못했을 거고요.


가장 행복한 순간은 언제예요?
일과를 마치고 맥주 한 캔을 마실 때요. "오늘도 잘 지나갔다"는 생각이 들면서 행복해요.


성현아는 아들과 같은 디자인의 신발을 함께 신고, 아들이 좋아하는 돼지갈비를 먹으며 소소한 일상을 얘기하는 게 행복하다. 그녀는 오늘도 엄마라서 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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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트·벨트 모두 자라, 앵클부츠 H&M, 이어링 밀튼아티카.

인터뷰 도중 그녀에게 두 번의 전화가 걸려왔다. 저녁을 같이 먹을 수 있는지 묻는 아들의 전화였다. 성현아는 아들을 생각하며 오늘도 다시 힘을 낸다.

Credit Info

에디터
김지은
사진
김정선
스타일링
위스타일(Ouistyle)
헤어&메이크업
준호&송유미(에스휴)

2019년 12월호

이달의 목차
에디터
김지은
사진
김정선
스타일링
위스타일(Ouistyle)
헤어&메이크업
준호&송유미(에스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