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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 사람 송새벽

영화 <진범> 개봉을 앞두고 만난 송새벽은 꽤나 진지했다. 물 한 잔을 벌컥벌컥 들이켜더니 먼저 물었다. “이 영화 어때요?”

On August 08,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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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새벽은 연기를 잘하는 배우다. 봉준호 감독의 <마더>로 데뷔한 그는 <방자전>에서 미친 존재감을 발산했다. 어눌한 말투에 소심한 성격이지만 독특한 성적 취향을 드러내는 '변학도' 역을 맡아 충무로를 사로잡았다. <위험한 상견례>에선 일편단심 한 여자만 사랑하는 '현준'을 연기하며 또 다른 면모를 보여줬고, 드라마 <나의 아저씨> <빙의>에선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메소드 연기를 선보였다. 어떤 옷을 입혀도 자기 몸에 꼭 맞게 재단해내는 능력을 지닌 그는 천생 배우다.

그의 19번째 영화 <진범>은 살해당한 여자의 남편 '영훈(송새벽 분)'과 용의자의 아내 '다연(유선 분)'이 마지막 공판을 앞두고 서로를 향한 의심을 숨긴 채 함께 그날 밤의 진실을 찾기 위해 공조하는 내용을 그린 추적 스릴러다. 단편 데뷔작 <독개구리>로 스릴러 역량을 발휘한 고정욱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자 제11회 미쟝센 단편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과 제2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관객상을 받은 작품이다. 살해된 여성의 남편 역을 맡은 송새벽은 초췌해 보이기 위해 일주일 만에 7kg을 감량했고, 첫 촬영날 전 스태프와 함께하는 MT를 제안했다. 영화 촬영을 잘 마치고, 잘 개봉하고,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한 그의 열정이었다.


살해당한 여자의 남편이 진범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 처음 대본을 봤을 때 어떤 느낌이었나요?
처음엔 '무슨 이런 대본이 다 있지?' 싶었어요. 연극적인 요소가 많아 희곡 한 편을 보는 기분이었죠. 빠른 전개, 속도감, 쫀쫀한 구성도 인상적이었어요. 이런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는데, 남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느낌이었죠. 옆집에서 일어난 일을 지켜보는 기분이었달까요. 상황이 너무 사실적으로 묘사돼 있었거든요. 감독님이 진짜 일어날 법한 이야기를 생동감 있게 그리기 위해 수십 번의 고증을 거쳤다고 해요. 가장 소름이 돋는 건 시나리오를 다 읽을 때까지 진범이 누구인지 몰랐다는 거예요. 마지막에 진짜 범인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 '으악' 했죠. 힘은 들겠지만 용기를 갖고 도전해볼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기혼이기 때문에 누군가의 살해로 아내를 잃은 남편의 심정에 더 공감했을 것 같아요.

미혼이었다면 감독님이 저에게 대본을 주셨을까요? 이 영화는 유부남 배우가 찍어야 합니다.(웃음) 저는 주인공과 나이대도 비슷해요. 그래서인지 자연스럽게 감정이입이 되더군요. '만약 내 아내가 그렇게 됐다면…' 하고 상상하게 되더라고요. 끔찍해요. 아마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폐인이 되겠죠.


그래서 폭풍 다이어트를 한 건가요? 초췌한 비주얼을 위해서?
맞아요. 아내가 살해당한 후 무기력해진, 삶에 의욕이 없는, 수척해진 남편의 모습을 만들고 싶었어요. 촬영일까지 남은 기간이 짧아 일주일 만에 7kg을 뺐죠. 무엇보다 감독님이 원했습니다. 거의 안 먹었어요. 죽지 않을 정도로만 먹으면서 몸을 혹사시켰죠. 그러다 보니 예민해졌고, 예민해지니 음식이 잘 넘어가지도 않더군요. 스트레스받을 땐 일부러 '먹방'을 찾아봤어요. 눈요기라도 하려고요. 그렇게 눈으로 먹고 나면 기분이라도 조금은 풀리더라고요. 그 일주일, 그리고 촬영 내내 힘들었지만 스크린 속 모습을 보니 빼길 잘한 것 같아요.


영화 속 어눌한 말투도 인상적이었어요.
아내가 그렇게 하루아침에, 그것도 누군가에 의해 죽으면 어떨까를 생각해보니 아무것도 하기 싫을 것 같았어요. 아마도 말도 하기 싫은 무기력한 상태에 빠지지 않을까요? 그래서 말을 하는 듯 안 하는 듯 연기했어요. 의욕 없는 남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살이 빠지면 성대도 빠지나 봐요. 목소리가 갈라지는데, 오히려 그게 더 큰 효과를 준 것 같아요.


촬영하기 유독 힘들었던 장면이 있나요?

아내가 살해된 집을 청소하는 장면이 가장 힘들었어요. 아내의 흔적을 지우는 모습…. 실제로도 살해당한 사람의 가족이 직접 그 집을 청소하고 정리한다고 하더라고요. 굳어버린 피를 지우는 가족의 심정이 오죽하겠어요. 그걸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어요. 털썩 주저앉아 엉엉 울었습니다. 그 장면을 촬영하는 게 감정적으로 너무 힘들었어요.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믿음'인 것 같습니다. 실제 송새벽은 사람을 잘 믿는 편인가요?
제가 조금 바보 같은 구석이 있어요. 낯을 좀 가리긴 하지만 친해지면 마음을 다 열어요. 그냥 믿어버리죠. 너무 믿었던 터라 뒤통수 맞았던 경험도 있고요. 그 후론 사람을 만날 때 조심스러워졌어요. 본의 아니게 거리감을 두게 된달까요. 다만, 지나간 것은 지나간 거니까 잊으려고 해요. 다시는 그런 일이 안 생기길 바랄 뿐이죠. 좋은, 비싼 경험 했다고 치면 되니까요.


상대역으로 나온 유선 씨와의 호흡은 어땠나요?
이번 작품에서 처음 만났는데 마치 많은 작품을 함께 한 것처럼 편안했어요. 제가 워낙 낯을 많이 가리는데 먼저 손을 내밀어주셨죠. 처음 만난 날 8시간 동안 수다를 떨었다고 하면 믿어지나요? 각자의 연애, 결혼, 육아 이야기를 했죠. 지금은 옆 동네 누나 같아요.(웃음)


MT도 다녀왔다고 들었어요.
두 번이나 다녀왔어요. 첫 촬영날 한 번, 마지막 촬영날 한 번. 배우, 스태프와 빨리 친해져야 한다는 생각에 제가 먼저 제안했어요. 그렇다고 영화 이야기만 했던 건 아니에요. 오히려 게임하느라 바빴습니다. 진실 게임, 마피아 게임, 007 게임…. 배우끼리 마피아 게임을 하니까 정말 못 맞추겠던데요? 열연했죠.(웃음) 그렇게 MT를 다녀온 게 많은 도움이 됐어요. 아쉬운 마음에 마지막 촬영날 또 MT를 다녀왔는데, 조만간에 한 번 더 가려고요. 삼세번은 해야 하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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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에 출연한 이후 동네에 자주 가는 식당 주인 할머니가 "너 배우였냐"고 하시더라고요.
늘 낮에 와서 밥을 먹고 가니까 백수인 줄 아셨나 봐요. 괜히 으쓱해지더라고요.
드라마의 매력을 처음 느낀 순간이었죠. 식당 할머니가 알아봐주셨을 때 행복했어요.(웃음)


과거 인터뷰에서 배우로서 행복한지 묻는 질문에 (10점 만점에) 4점을 주었어요. 지금은 어떤가요?
그때보다는 행복 지수가 높아진 것 같아요. 데뷔 초에 코미디적인 이미지로 소비가 많이 되면서 다양한 연기에 대한 갈증이 높았다면 지금은 그보다 스펙트럼이 넓어졌다고 생각하거든요. 들어오는 대본만 봐도 그래요. 예전엔 코믹한 캐릭터만 들어왔다면 지금은 여러 가지 역할이 들어오죠. 이렇게 다양한 대본을 받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이젠 제가 꼭 뜻한 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알아요. 제가 하고 싶다고 다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은 10점 만점에 5.5점 정도는 되는 것 같아요.


영화에서 드라마로 활동 반경이 넓어진 것도 영향을 주었겠죠(송새벽은 지난해 데뷔 20년 만에 처음으로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 출연했다)?
맞아요. 동네에 자주 가는 식당이 있는데 어느 날 할머니가 "너 배우였냐"고 하시더라고요. 늘 낮에 와서 밥을 먹고 가니까 동네 백수인 줄 아셨나 봐요.(웃음) 드라마를 보신 모양이에요. 그때 괜히 으쓱해지더라고요. 그동안 드라마의 템포를 따라갈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에 영화에만 출연했었는데…. 드라마의 매력을 처음 느꼈죠. 식당 할머니가 알아봐주셨을 때 행복했어요.(웃음)


드라마…. 해보니까 어떻던가요?

드라마만의 힘이 있더라고요. 감독님과 배우들이 너무 좋아서 해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빙의>도 마찬가지예요. 드라마 팀들과는 아직도 단체 카톡방에서 안부를 주고받아요. 그만큼 팀워크가 좋았다는 뜻이겠죠? 아마도 일 년에 절반 정도를 매일 보고, 힘든 그 시간을 공유했기 때문에 끈끈해지는 것 같아요.


그럼 앞으로 드라마에서도 자주 볼 수 있겠네요?
그런데 역시 그 템포를 따라가기가 쉽지는 않더라고요.(웃음) 제가 워낙 느린 사람인 데다 반응에 민감하지 않아 드라마가 힘든 부분이 있어요. 하지만 이제 겨우 두 작품 했을 뿐이니, 점점 나아질 것으로 생각해요. 언제든 좋은 제안을 주시면 감사한 마음으로 드라마에 참여할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빙의>부터 <진범>까지 어두운 장르가 이어지고 있네요. 의도한 건가요?

시기가 맞은 것 뿐이지 의도한 건 아니에요. 시나리오나 극본을 보고 '하고 싶다' 생각이 들면 선택하는 식이죠. 장르가 어떻고, 캐릭터가 어떻고, 밝고 어둡고, 그런 걸 고려하지 않아요. 또 뭔가 계획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배우는 특히 더더욱요. 그럼에도 해보고 싶은 연기가 있다면 단연, 멜로입니다.(웃음)


연기… 왜 해요?
저도 늘 고민하는 점이에요. 연기를 하는 이유가 과연 나를 위한 것인지, 관객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내 옆에 있는 누군가를 위한 것인지…. 때론 오롯이 나를 위한 일인 것 같다가도 관객들이 좋아하는 걸 보는 게 좋아서인 것 같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음… 결국 관객인 것 같아요. 사람들이 제 연기를 보고 조금이라도 위안을 받고 공감한다면 그것만큼 의미 있는 일이 어디 있을까 싶어요. 누군가 제 연기에 점수를 매겨보라고 하는데…. 그건 무의미한 일이죠. 전 그저 관객분들에게 "잘 봤다"는 말을 듣고 싶어 연기할 뿐이거든요.


'송귀재'라는 별명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해요?
과찬입니다. 괜히 겸손 떠는 게 아니라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귀재'라뇨. 저보다 연기 잘하는 배우가 얼마나 많은데요.


스케줄이 없을 땐 뭘 하며 지내나요?
몇 해째 제주도에 살고 있어요. 시끌벅적한 도시가 싫어 시골을 동경했고 그러다가 제주도로 완전히 이사했어요. 아직까지는 큰 불편함 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쉴 땐 집 주변에 있는 오름에 가요. 날씨가 좋을 땐 꽃구경을 하기도 하고요. 매일 가는 곳인데도 갈 때마다 달라서 좋아요.


그러고 보니 SNS를 안 하는 몇 안 되는 연예인입니다.
그런 거에 관심이 없어요. 인터넷 기사 댓글도 잘 안 보는 편이죠. 싸이월드, 미니홈피 시절엔 조금 하긴 했지만…. (웃음) 일부러 안 하는 건 아니에요. SNS를 하려면 사진도 멋들어지게 잘 찍어야 하는데 전 그런 것도 잘 못해요. 그래서 시작을 안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럼 뭘 제일 잘해요?

그나마 제가 할 줄 아는 건 연기예요. 엄청 잘하는 것 같지는 않고…. 그럭저럭 하는 정도랄까요. 대학 시절 철학을 전공했는데 그때 했던 공부가 연기에 도움이 되는 거 같기도 하고요.


봉준호 감독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어요. 송새벽이 연기를 하게 해준 감독이죠.
이번에 영화 <기생충>으로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연락을 드렸어요. 진심으로 기뻤습니다. 감독님과는 종종 연락하는 사이예요. 안부를 묻는 문자메시지에 늦더라도 꼭 답장을 해주시는데, 그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최근에도 <마더> 팀원들이 모임을 가졌더라고요. 이번엔 촬영 때문에 함께하지 못했지만 일 년에 한두 번 정도는 꼭 만납니다. 10년 동안 주기적으로 만나는 게 결코 쉽지 않은데… 제가 작업했던 작품들 중 유일한 것 같아요. 그만큼 작품에 대한, 사람에 대한 애정이 크다는 말이겠죠.


올해도 절반이 지났어요. 하반기에는 어떤 모습을 볼 수 있을까요?

영화 <특송>을 촬영 중이에요. 촬영을 마치면 크리스마스가 되겠네요. 아마도 열심히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면서 마무리하게 될 것 같아요. 큰 사고 없이 잘 마쳤으면 좋겠어요.


송새벽은 영화에 대한 애착과 연기를 향한 애정을 열심히 토해냈다. 와다다다 쏟아냈다가 숨을 고르기를 몇 차례. 그러다가 또 기자에게 의견을 되묻곤 했다. 아무튼 그 열정만큼은 "인정!"이다.

CREDIT INFO

에디터
하은정
취재
류지은(프리랜서)
사진제공
리틀빅픽쳐스
2019년 08월호

2019년 08월호

에디터
하은정
취재
류지은(프리랜서)
사진제공
리틀빅픽쳐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