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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 작가 된 '코리아 그랜마' 박막례

On July 05, 2019

2남 4녀 중 막내딸로 태어나 ‘막례’라는 이름을 얻은 박막례 할머니는 ‘치매 위험’ 진단을 받고 인생의 전성기를 맞았다. 그야말로 9회 말 2아웃에 홈런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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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 유튜브 열풍이 시작될 무렵, 그러니까 유튜버는 '끼' 있는 인플루언서나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할 때 '코리아 그랜마'가 나타났다. "염병하네!"라며 구수한 사투리를 내뱉고, 흥이 넘칠 땐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아이스크림은 팥 맛이 제일인 박막례 할머니는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1947년생인 박막례 할머니는 어느 날 병원을 찾았다가 "치매가 올 가능성이 높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언니들이 치매로 고생하는 것을 본 할머니는 겁을 먹었고, 손녀 김유라 씨는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평생 아버지, 남편, 자식들 때문에 허리가 굽도록 일만 한 할머니를 위해 여행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선뜻 휴가를 허락하지 않는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카메라를 챙겨 호주로 향했다. 처음 시작은 가족들이 두고 볼 수 있는 영상을 만드는 것이었는데, 그중 한 영상이 화제가 됐다. 이름하여 '치과 들렀다 시장 갈 때 하는 메이크업'이다. 할머니의 '겟 레디 위드 미(Get Ready With Me, 따라 하기)' 영상인데 인기 급상승 영상 순위에 오르며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이후 '코리아 그랜마' 박막례 할머니는 인기 유튜버가 됐다.

콘텐츠 생성은 손녀 김유라 씨가 맡았다. 여행, 일상, 요리, 메이크업 등으로 카테고리를 나눴고, 종류는 점점 더 세분화되고 있다. 현재 구독자는 92만 6,567명, 최다 조회 수는 455만 9,542회다. 할머니는 호주, 일본, 유럽 등을 누비며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박막례 할머니의 각종 국수 레시피가 '황금 레시피'로 통한다. 광고업계에서는 블루칩이 됐고 유튜브 CEO 수잔 보이치키와 구글 CEO 선다 피차이가 할머니에게 만남을 청하기도 했다.

여자라는 이유로 공부할 기회도 없이 집안일만 했고, 남자 잘못 만나 죽어라 일만 해 스스로 '평생 일만 할 팔자'라고 생각했던 할머니의 인생은 하루아침에 뒤바뀌었다. 소주처럼 쓰고 솜사탕처럼 달았던 73년의 인생을 도서 <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에 담았다. 손녀 김유라 씨의 도움을 받아 박막례 할머니와 이메일 인터뷰를 진행했다.


도서 <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를 출판하셨어요.
진짜 내 이야기가 글씨로 옮겨져 있다는 게 믿기지가 않아요. 책을 보면 시방 내 인생이 이렇게 뒤집어졌다는 생각이 들어. 우리 유라가 내 이야기를 듣고 글로 옮겨 책을 만드느라 고생했지. 우리 편(팬)들이 "할머니의 책을 읽고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라고 할 땐 그저 고마워요.


20대부터 70대까지의 삶을 들려주셨어요. 여자가 글을 알면 결혼해 집을 나간다며 딸은 공부시키지 않는 아버지 이야기와 사업하다 사기를 당한 사연까지. 웃다가 울면서 책을 읽었어요.
지난 내 인생은 돌아보기 싫을 정도로 힘들었어요. 책에 차마 쓰지 못한 이야기도 많지. 그래도 천천히 돌이켜보면 그 힘든 인생을 확 뒤집은 게 유라랑 함께 간 호주 여행이야. 그래서 그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그래도 글을 못 배운 것은 아쉬워.


책 전반부의 할머니 인생 이야기가 기억에 남아요. 결혼 3개월 만에 집을 나간 남편을 대신해 가장 노릇을 하셨죠?
우리 친정은 일꾼들을 데리고 살았는데 결혼하고 보니 똥꾸녕 찢어지게 가난한 거예요. 그것도 모자라 남편이 집에 안 붙어 있고 나를 피해 다니니까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지. 남자하고 살면 항시 마음이 불안한데 남편도 결국 바람나서 나갔어. 아주 죽고 없어져버리니까 마음이 편해. 남편 데리고 살면 손해야. 아침에 일어나면 밥해줘야 되고 빨래해줘야 되고 옷 다려줘야 되고 밤에는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도 못 보고 스포츠를 틀어야 하잖아. 나는 다음 생엔 결혼 안 하고 기계랑 살 거야. 삼성이 독일에 보내줬는데 기계가 다 해주더라(할머니는 유럽 최대 가전 전시회 <IFA 2018 삼성> 행사에 참석했다). 기계는 말도 없고 일을 다 도와주고 조용하고 바람도 안 피우니까 같이 살면 좋을 것 같아.


하늘에 계신 남편에게 하시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하늘에 있는 영록이 아빠, 당신이 죽어 내 마음이 편하다가도 당신이 불쌍해. 이 좋은 세상을 두고 먼저 가서 불쌍해. 인간아, 그러니까 나한테 잘했으면 지금 같이 비행기 타고 하늘을 날아다녔을 텐데. 그 하늘에서 펑펑 후회해라. 그리고 양심이 있으면 하늘에서 유라랑 나랑 잘되게 기도해라잉? 우리 수영이(딸) 장사도 잘되게 해주고! (할머니가 30년 가까이 운영하던 식당은 막내딸이 물려받았다. 노가다, 파출부, 과일장사, 꽃장사, 식당 등 각종 일을 하며 산 할머니는 딸이 자신처럼 평생 일만 하고 살까 봐 걱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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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언제 뒤집어질지 몰라요. 이 할머니 인생도 70살부터였잖아요.
그러니까 사람마다 인생이 꽃피는 시기가 다르다고 생각하고 긍정적으로 살아요.

그러고 보니 원조 워킹맘입니다. 홀로 3남매를 키우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게 한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남편 없이 혼자 애 셋을 키우면서 한 번도 포기할 생각은 안 했어요. 내 옷을 안 사고, 그렇게 좋아하는 단감도 하나 사 먹지 않고 10원, 100원씩 아껴서 우리 새끼들을 키웠지요.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렇게 버텼나 몰라. 삶이 너무 고단할 땐 자판기 커피를 한 잔 뽑아 의자에 탁 앉아서 '내 삶이 왜 이렇게 고꾸라졌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도 아이들을 키워냈으니까 내가 자랑스러워. 우리 애들이 어렸을 때 많은 것을 해주지 못해서 아직도 미안해.


그래서 40살이 넘은 아들딸에게 장난감을 선물하셨죠?
예전에 우리 집에서 시장엘 가려면 문방구를 지나야 했는데, 그 앞을 지날 때면 애들이 장난감을 사달라고 졸랐지. 그런데 애들을 집으로 끌고 왔어. 내 몸이 부서져라 일했는데도 아이들 밥 먹이고 학교에 보내는 게 벅찼으니까요. 우리 큰아들은 종이 박스를 주워서 딱지를 만들고, 자동차 장난감을 좋아하는 둘째 아들과 옷 입히는 인형을 좋아하는 막내딸은 베개를 가지고 놀았어요. 근데 지니(키즈 크리에이터)네 가서 그 많은 장난감을 보니까 만감이 교차하더라고요. 내가 몸은 늙었어도 마음은 청춘이거든. 우리 애들도 마음은 학생 때 그대로일 것 같아서 장난감을 받아 와 애들한테 선물로 줬지. 우리 새끼들은 선물 받고 그 자리에선 아무 말도 못 하더니 밤에 "엄마, 잊지 않았어요? 장난감을 사줘서 고마워요"라고 하더라고.


그렇게 키운 아들이 낳은 딸 유라 씨와 처음으로 자유 여행을 떠나셨어요. 유라 씨는 할머님의 첫 경험을 함께한 손녀네요.
나는 장사할 때 정말 바빠서 일만 하느라고 다른 할매들처럼 손자, 손녀를 예뻐하지 못한 게 늘 아쉬웠어요. 그런데 유라는 그것을 서운해하지도 않고 항시 나를 챙겨줬어. 나는 유라가 손녀 같지 않고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구 같아. 누가 "할머니랑 손녀는 전생에 소꿉친구였을 것 같다"고 하던데 그 말이 맞는 것 같아.


유라 씨가 영상 제작을 결심한 계기는 '치매 위험 진단' 때문이었죠?
솔직히 치매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을 듣고 무서웠어요. 우리 언니들이 치매에 걸려 그게 얼마나 무서운 병인지 알고 있었으니까요. '나는 일만 열심히 하고 살았는데 그게 잘못 산 건가'라는 생각도 하고 '자식들한테 피해주기 싫은데 치매에 걸리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생각을 했지.


유튜버 활동을 하시면서 무서움이 조금은 사라지셨죠?
유라한테 유튜브랑 인스타그램을 배우고, 스마트폰을 다루는 법도 배웠어. 하나씩 배우다 보니 할 수 있는 게 많아져 좋아요. 여행을 가는 것도 좋아요. 새로운 경험은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해. 몰랐던 세상을 알고 나면 내가 10년은 젊어진 거 같아요. 우리 가족들은 내가 새로운 경험을 하니까 좋아하고 건강관리를 잘해서 더 많은 것을 경험하라고 응원해줘. 또 모르는 사람들이 내 '편(팬)'이라면서 나를 반갑게 맞아주는 것도 신기하고요.


유튜브 CEO 수잔 보이치키가 할머님을 보려고 한국을 찾아왔어요.
유튜브 사장님이 한국에 온 건 최초라고 했는데, 나를 보기 위해 왔대. 수잔이 걸어오는데 유튜브 속에서 본 사람이 튀어나와서 걸어오니까 너무 신기했어. 유튜브 하면서 연예인을 많이 봤는데 권상우 이후로 그렇게 떨린 적은 없었지.


구글 CEO 선다 피차이와도 만나셨죠?
유튜브를 하면서 전 세계를 날아다닐 줄 누가 알았어요? 평생 구경도 못 할 줄 알았던 미국엘 갔는데 구글 직원이 우리를 뒤로 부르기에 뭔 일이 난 줄 알고 가슴이 쿵쾅거렸어. 그런데 구글 사장님이 나를 좋아해서 보고 싶다고 했대. 그때 '우리 유라가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어떤 영상을 찍을지 고민했는데 이제 다리 뻗고 자겠네'라고 생각했지요. 구글 사장님은 나의 이야기가 어떤 사람보다 더 많은 영감을 준다고 했어요. 그때 내 인생이 얼마 안 남았지만 지금보다 더 열정적으로 살겠다고 결심했지.


두렵더라도 재미있는 일을 시도하고, 실패해도 시원하게 웃는 모습이 청춘들에게 위로가 되고 용기를 줘요.
나보다 더 똑똑한 젊은 친구들인데 이 할머니가 무슨 힘이 되겠어. 그래도 이야기해주고 싶은 것은 할머니가 70년을 넘게 살다 보니 인생은 언제 뒤집어질지 모른다는 거예요. 인생이 망했는지는 관 뚜껑을 덮을 때 판단하고 지금은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고 살아봐요. 이 할머니 인생도 70살부터였으니까 사람마다 인생이 꽃피는 시기가 다르다 생각하고 긍정적으로 살아. 힘내자 편들아!


할머님께 '도전'은 어떤 의미인가요?
그냥 하는 거지. 어렸을 땐 일만 하느라고 도전할 새가 없었어. 새벽 4시에 일어나 하루 종일 손님들에게 내어줄 반찬 걱정을 했으니까요. 도전할 일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아주 감사한 일상이야. 유라가 호주에 가자고 했을 때 과감하게 딸에게 식당을 맡기지 않았다면 이런 인생을 살지 못했을 거예요. 그래서 기회가 오면 나는 무조건 도전이야. 우주여행도 할 수 있어. 참, 그래도 무서운 건 못 하겠더라.


73년의 인생, 어떤 삶이었나요?
진짜로 썩은 콩나물 같은 인생이었어. 근데 지금은 부침개처럼 뒤집어졌어요. 나는 젊은 시절로 돌아가라고 해도 안 돌아갈 거야. 늙은 지금이 좋거든요. 얼마 남지 않은 내 인생만 생각하고 살고 싶어.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데 유라랑 유튜브를 하면서 여행을 많이 다니니까 얼마나 좋아? 그리고 내가 영상을 올릴 때마다 우리 편들이 "할머니 사랑해요"라고 댓글을 달아줘서 행복해요. 우리 편들에게 너무 감사해.


박막례 할머니는 처음 가본 프랑스 파리에서 바게트를 먹다 이가 빠졌을 때 깔깔 웃었다. 스위스에서 마운틴 카트를 타다가 넘어져 다친 할머니를 보고 손녀 유라 씨가 울먹이자 "다친 것도 추억이야. 내가 도전했다가 생긴 상처라 괜찮아"라고 말했다. 삶이 고단했던 어린 막례는 70살이 넘어서야 꽤 멋진 인생을 살기 시작했다. 이렇듯 인생이란 한 치 앞을 모르는 것이다. 대한민국 평범한 할머니의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위로다.

2남 4녀 중 막내딸로 태어나 ‘막례’라는 이름을 얻은 박막례 할머니는 ‘치매 위험’ 진단을 받고 인생의 전성기를 맞았다. 그야말로 9회 말 2아웃에 홈런을 날렸다.

Credit Info

에디터
김지은
사진제공
위즈덤하우스, 최승광(STUDIOESKEY)
발췌도서
<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위즈덤하우스)

2019년 07월호

이달의 목차
에디터
김지은
사진제공
위즈덤하우스, 최승광(STUDIOESKEY)
발췌도서
<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위즈덤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