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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의 수영

On May 16, 2019

‘30’이라는 숫자는 특별하다. 처음도 마지막도 아닌 이 애매한 나이는 불안감과 기대감을 모두 품고 있다. 수영은 이제 서른 살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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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다른 길에 있다고 느끼는 순간이었어요.”

지금으로부터 2년 전, 10년간 함께한 ‘소녀시대’가 아닌 최수영으로서 홀로서기를 시작한 수영은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을 때 영화 <막다른 골목의 추억>을 만났다. 베스트셀러 작가 요시모토 바나나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한일 합작 영화로, 수영은 일본 나고야로 유학 간 연인을 만나러 갔다가 연인 ‘태규(안보현 분)’에게 새 연인이 생긴 것을 알고 이별을 맞이하는 ‘유미’ 역을 맡았다. 그녀는 지난해 일본에서 영화를 촬영하며 인간 수영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흔히 사춘기는 청소년기에 겪는 것이지만 저는 어른이 돼서 사춘기를 겪고 있었어요. 익숙한 환경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그때 만난 작품이었는데, 작품을 핑계로 제 자신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어요.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아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시간이었어요.”

그녀에게 가장 위로가 됐던 것은 원작 속의 한 문장이었다. ‘너는 그 자리에서 큰 원을 그리면 된다. 그 사람이 그 원에서 뛰쳐나갔을 뿐이다.’ 이 문장은 수영이 의연해질 수 있는 힘이 됐다.

“어렸을 때는 서른 살이 되면 제가 완성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30대 수영’에게 멋지고 근사한 필터를 씌웠던 거죠. 멋진 카페에서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고, 후배들에게 동경의 눈빛을 받는 모습을 상상했어요. 그런데 막상 서른 살이 되니 바뀌는 게 없더군요. 저는 여전히 인정받고 싶어 고군분투 중인 여자거든요. 서른 살도 완성이 아니라 과정 중 하나라고 생각하니 모든 게 쉬워졌어요. 타인을 의식하지 않고 도전할 수 있게 됐죠.”

극에서 유미는 믿었던 연인의 변심에 절망하지 않고 이별에 좌절하지 않는다. 나고야의 막다른 골목에서 마주한 카페 겸 게스트하우스 ‘엔드포인트’에 머물면서 카페 점장 ‘니시야마(다나카 스케 분)’를 만나고, 동네 사람들의 호의를 받으며 그곳의 일상에 자연스레 녹아든다. 니시야마와 깊은 우정을 나누는 유미는 이별의 상처를 치유받고 또 니시야마를 위로하는 사람이 된다.

수영은 유미가 겪는 성장통을 담백하게 그려내는데, 가수로서 10년의 활동을 마무리하고 배우로서 새 출발을 하는 수영 역시 성장통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유미는 평범하게 자란 친구예요. 저 역시 모진 풍파 없이 자랐어요. 극에서 유미가 ‘큰 아픔을 이겨내고 보니 뉴스에 나오는 흉측한 이야기들이 흉측하게만 느껴지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어요. ‘사건 속의 사연’을 보는 여성이 된 거죠. 저도 유미와 비슷한 생각을 했어요. 예전엔 ‘사람들이 왜 나를 싫어할까?’라는 생각을 주로 했다면, 이젠 우리 모두의 삶이 다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나를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죠.”

수영은 SM엔터테인먼트 연습생 자격으로 일본의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해 12세에 일본에서 데뷔했다. 그로부터 6년 후인 2007년 ‘소녀시대’로 국내에 데뷔했고 영화 <순정만화>(2008)를 시작으로 드라마 <내 생의 봄날> <38사기동대> <밥상 차리는 남자> 등을 거쳐 주연배우로 발돋움했다.

18년 동안 가수와 배우를 병행한 그녀에게 각양각색의 평가가 이어진 것은 당연지사. 가창력이나 연기력은 물론, 말 한마디나 말투, 외모, 옷차림이 평가 대상에 오르기도 했다.

“그동안 모든 사람의 공감을 얻기 위해 해명하며 살아왔어요. 그런데 이젠 나답게 행동하려고 해요. 의연함이 생기기도 했지만 문화가 변했다는 것을 느껴요. 최근 연예인들은 굳이 ‘모범 답안’에 따르지 않고 자신의 아이덴티티에 따라 행동하고 말하죠. 대중들은 그 모습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요. 저 역시 대중의 평가를 보고 ‘나를 그런 느낌으로 보시는구나’라고 받아들이고 있어요.”
 

저는 지금 ‘수영’이 어떤 사람인지 알리는 과정에 놓여 있어요.
예전엔 ‘소녀시대’란 타이틀이 있었기 때문에 제가 대중에게 어떻게 보일지 의식하고 고민했어요.
하지만 이젠 꾸미지 않은 진짜 수영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지울 수 없는 이름 ‘소녀시대’

수영은 10년 만에 자신과 같은 나이 또래의 캐릭터를 맡았다. 열아홉 살엔 <순정만화>에서 고등학생으로 출연했고, 29살엔 <막다른 골목의 추억>에서 서른 살의 평범한 여성이 됐다. 시간이 흐른 만큼 캐릭터가 변했고 인간 최수영도 변화했다.

“가장 달라진 것은 얼굴?(웃음) 장난이고요.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열아홉 살 수영은 기회에 조바심을 냈다면 스물아홉 살 수영은 지금이 아니어도 또 다른 기회가 올 것이라고 생각하죠. <순정만화>에 출연했던 당시 저는 꿈이 많았어요. 하지만 경험이 쌓이고 제가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을 구분하고 현실을 인정하니까 있는 그대로의 제 자신을 사랑하게 되더군요. 반대로 변하지 않은 것은 선하고 옳은 것을 좇으려 한다는 점이에요.”

수영은 만약 열아홉 살로 돌아간다면 좀 더 진지하게 연예인이란 직업의 무게를 생각하고 싶다. 연예인의 말 한마디가 대중에게 끼치는 영향력을 마음에 새기겠단다.

“저는 대중의 주목을 받는 사람이 하는 말 한마디가 갖고 있는 영향력을 몰랐어요. 그래서 유독 오해를 많이 받았죠. 주어진 상황에 맞춰 열심히 했는데 결과적으론 저를 보호하지 못한 일이 됐죠. 한땐 ‘내가 이렇게 욕먹을 정도로 불손한 의도를 가진 적이 있었나? 사람들은 수영이 해야 되는 말을 정해놓은 게 아닐까?’라고 생각한 적도 있어요. 사랑받으려고 애썼지만 때로는 관심이 두려웠어요. 두려움 때문에 잠적 아닌 잠적을 한 적도 있고요.”

이따금씩 흔들리는 그녀를 지탱해준 것은 ‘소녀시대’ 멤버들이다. 짧게는 10년, 길게는 15년 동안 함께한 그녀들은 동료이자 친구다. 같은 시간을 공유한 그녀들끼리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이 있단다.

“저는 인간관계가 좁고 깊은 편인데, 신기하게도 멤버들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같은 감정을 느껴요. 우리는 같은 시간을 겪었고 견뎠으니까요. 그래서인지 멤버들이 시사회에 왔을 때 큰 힘이 됐어요. 영화를 본 멤버들의 반응요?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없고 ‘와! 무비 스타 떴다. 영화 주연배우다’라고 하더군요. 긴장이 한순간에 풀어졌죠.”

최근 수영은 미국 진출에 도전하며 미국에서 활동 중인 티파니를 만나 시간을 보냈다. 인터뷰 전날에도 새벽 1시까지 대화를 나눴다는 두 사람은 주로 ‘커리어’에 대한 고민을 공유한다.

“티파니는 제가 위축될 때마다 용기를 줘요. 그녀는 ‘나는 일을 하는 서른 살의 여성이야’라는 마인드를 갖고 있는데, ‘이쯤이면 사람들이 우리에게 기대하는 모습과 다른 모습을 보여줘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도록 도와줘요. 어제도 늦게까지 티파니와 대화를 나누면서 자신감을 얻었어요.”

수영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그녀가 ‘소녀시대’란 타이틀을 내려놓으면서 했을 고민이 느껴졌다. 홀로서기에 도전하면서 ‘걸 그룹 수영’과 ‘배우 수영’ 사이에서 어떤 포지션을 취해야 할지 생각했을 것이다. ‘걸 그룹 출신 배우’라는 타이틀 역시 그녀가 뛰어넘어야 할 숙제다.

“요즘엔 오디션을 보는 배우이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아이돌이라서 많은 기회가 주어지지만 아이돌이라서 할 수 없는 것들이 있거든요. 걸 그룹이라서 좀 더 쉽게 연기에 도전할 수 있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감사해요. 하지만 조심스럽게 이야기하자면 아무리 노력해도 뛰어넘을 수 없는 벽이 있는 것 같아요. 걸 그룹 출신 배우라서 맡을 수 없는 캐릭터가 존재하거든요. 저 역시 서른 살의 여배우가 맡는 역할을 제가 맡는다고 상상했을 때 그려지지 않는 경우가 있어요.”

하지만 장벽의 모든 원인이 아이돌이기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스스로에게 문제가 있을 수도 있고, 그동안 출연한 작품 속 이미지가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저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원인이 하나는 아니겠죠. 임시완 씨나 도경수 같은 친구들처럼 아이돌과 배우 활동을 자유자재로 하는 경우도 있잖아요. 제가 고민하고 노력해서 넘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미래엔 어떤 역할에도 어울리는 배우가 돼야죠.”

이런 고민 때문에 <막다른 골목의 추억>을 만난 것이 고맙다. 이 작품 하나로 이미지가 바뀔 수 있다고 기대하진 않지만 변화를 위한 작은 발걸음이 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많은 분이 영화를 보지 않아도 괜찮아요. ‘수영이 이런 영화에 출연했네?’라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으니까요. 제게 다양한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릴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요.”

그녀는 현재 ‘수영’이라는 배우를 정의하는 과정에 놓여 있다. 지난 일 년 동안 영화 3편과 드라마 1편을 촬영했고, <90년생 최수영>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쉬지 않고 활동했지만 아직까진 ‘소녀시대’란 타이틀이 더 크기 때문이다.

“제게 배우로서 어떤 가치관을 갖고 있느냐고 물으시는데, 대답하기 어려워요. 저는 지금 수영이 어떤 사람인지 알리는 과정에 있거든요. 예전엔 제가 어떻게 보일지 이미지를 생각하면서 공항 패션까지 고민했어요. ‘소녀시대’란 타이틀이 있었기 때문에 예능 프로그램에서 더 열심히 했고요. ‘소녀시대’가 출연한 예능 프로그램이 시청률 1위를 해야지’라는 목표 의식이 있었거든요. 지금은 혼자 활동하니 꾸미지 않은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해요.”

수영은 영화를 만드는 과정이 좋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하나의 스토리를 완성하는 것이 즐겁고 그 과정에서 쌓이는 유대감이 매력적이다. 그래서인지 <막다른 골목의 추억>으로 부산국제영화제 레드카펫에 섰을 때 감회가 남달랐단다.

“‘소녀시대’로 활동하면서 큰 무대에 선 적이 많은데도, 굉장히 떨렸어요. 제가 레드카펫 위를 걷고 있을 때 우리 영화를 소개하는 MC의 목소리가 들려왔는데 기분이 묘했죠. 겉으론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론 ‘어머, 웬일이야. 어떻게!’라면서 소리를 질렀어요. 소녀처럼 행복했어요.”

배우로서 연기를 하지만 가수로서 ‘소녀시대’로 무대에 서는 것을 제쳐둔 것은 아니다. 멤버들이 따로 활동하다 1990년대 아이돌 ‘HOT’나 ‘젝스키스’ ‘god’처럼 다시 뭉쳐 무대에서 더 큰 에너지를 내고 싶은 마음이다.

“새 소속사를 만날 때 제가 내세운 계약 조건은 ‘소녀시대 활동은 제 결정에 따른다’는 것이었어요. ‘소녀시대’가 없는 제 모습을 상상한 적이 없어요. 2년 동안 춤을 추지 않아 몸매까지 바뀌었는데, 슬슬 다시 춤을 춰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수영은 훗날 무대 위에 서 있는 자신을 상상하면 자연스레 ‘소녀시대’ 멤버들과 함께 있는 모습이 떠오른다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포기하고 싶어도 끝까지 노력하겠단다. ‘소녀시대’로 팬들 앞에 섰을 때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 그녀는 지금 ‘소녀시대’ 수영이 아닌 수영으로 완성되고 있다.

‘30’이라는 숫자는 특별하다. 처음도 마지막도 아닌 이 애매한 나이는 불안감과 기대감을 모두 품고 있다. 수영은 이제 서른 살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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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지은
사진제공
영화사조아

2019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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