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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다 우리딸

On April 23, 2019

32년 만에 한국 여자 기계체조에 금메달을 안긴 여서정 선수는 ‘도마의 신’이라 불리던 여홍철 KBS 해설위원의 딸이다. 그 아버지에 그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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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홍철 셔츠와 팬츠 모두 지오송지오. / 여서정 원피스 밀로그램, 화이트 가죽 재킷 브쥬.

여홍철 셔츠와 팬츠 모두 지오송지오. / 여서정 원피스 밀로그램, 화이트 가죽 재킷 브쥬.

 

'금빛 부녀' 여홍철과 여서정

지난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제18회 아시안게임에서 여서정 선수가 기계체조 부문 여자 도마 금메달을 확정 지은 순간 현장에서 경기를 중계하던 KBS 여홍철 해설위원이 눈물을 흘렸다. 16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처음으로 출전한 국제 대회인데도 주눅 들지 않고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펼친 '강심장' 딸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여홍철 해설위원은 도마 종목에서 지금도 고난도 기술로 분류되는 일명 '여1' '여2'(두 손을 정면으로 짚고 공중에서 몸을 펴 두 바퀴 반을 비트는 동작) 기술을 개발하고, 1994년 히로시마와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두 차례 금메달을 목에 건 '도마의 신'이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과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도 강력한 금메달 후보로 꼽혔지만 부상과 룰의 변경으로 아쉬운 성적을 거둔 '불운의 선수'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은퇴한 지 18년 만에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자신을 뛰어넘는 고난도의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딸의 모습, 금메달에 입을 맞추며 행복해하는 딸의 표정을 지켜보면서 자기도 모르게 흘린 눈물이었다.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아버지의 못다 이룬 꿈을 대신 이뤄주겠다는 딸. 여홍철·여서정 부녀의 이야기는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최고의 감동 스토리였다.

"서정이의 경기를 예선전부터 결선까지 연이어 중계하는데 너무 떨렸습니다. 긴장을 많이 한 나머지 주변 사람들이 한마디씩 할 정도였죠. 제가 금메달을 땄을 때보다 더 좋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울었던 건…. 서정이가 우니까. 따라 울었던 것 같아요. 딸이 감격해서 우는 모습을 보고 안 울 아빠가 어디 있겠습니까."(여홍철)

"나중에 영상을 보고서야 아빠가 울었다는 걸 알았어요. 아빠도 눈물이 있다는 게 좀 놀라웠고, 그런 아빠를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여서정)

여서정 선수에게 '여홍철의 딸'이라는 수식어는 든든한 버팀목이자 부담이었다. 대한민국 체육계에 한 획을 그은 선배를 아버지로 둔 딸…. 여서정 선수는 "피를 물려받았다"는 말이 가장 싫었다고 했다.

"예전엔 '아빠가 여홍철인데, 나는 뭐지…?' 하는 생각이 많았어요. '피를 물려받았다'는 말이 가장 싫었죠. 내가 흘린 땀과 눈물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겨지는 게 서러웠달까요. 시기하고 질투하는 친구도 있었고, 그런 식의 사람들 관심과 기대가 부담스러워 조금 의기소침했던 것 같아요. 금메달을 따서 그런 건진 모르겠는데, 요즘엔 오히려 즐기고 있어요. 아빠가 여홍철이니까 더 관심을 받는 거잖아요. 질투하던 친구들도 지금은 저를 불쌍하게 여기죠. 세간의 시선이 너무 힘들 것 같대요.(웃음)"(여서정)

딸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여홍철 위원이 입을 열었다. "딸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어쩌면 힘든 시기를 홀로 묵묵히 견뎌온 딸보다 그걸 지켜보는 아버지가 더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딸에게 괜한 부담을 준 것 같아 항상 미안해요. 어려서부터 서정이에게 늘 '이왕 하는 거 잘해야 한다. 어중간하게 해선 이도저도 안 된다'고 말해왔거든요. 저 때문에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들에게 상처받을까 봐 걱정스러웠고, 당당하게 실력으로 승부하면 그런 눈초리도 다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아마 서정이가 이번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따지 못했다면 심리적으로 더 위축됐을 거예요. 금메달을 따서 자랑스러운 마음도 있지만 한편으론 다행이다 싶어요. 지금은 사람들에게 '여홍철의 딸 여서정이 아니라 여서정의 아빠 여홍철로 불러달라'고 부탁한답니다. 서정이도 내심 그래주길 바라는 눈치이기도 하고요."(여홍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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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홍철 슈트 리마조테일러, 슈즈 소보제화. / 여서정 팬츠 자라, 블랙 티셔츠 올세인츠, 슈즈 소보제화.

 

연인보다 달달한 부녀

여홍철은 촬영 내내 딸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때때로 딸의 어깨에 살포시 기대거나 딸의 팔짱을 껴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영락없는 '딸 바보'였다.

"거의 사랑을 갈구하는 느낌이죠? 서정이가 처음 운동을 시작하고 6개월 정도는 위탁가정에서 생활했어요. 체조부가 있는 초등학교 보내려니 집과 너무 멀었고, 마침 아이를 맡아주겠다는 어르신이 있어 믿고 맡기면서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는 강제 이산가족이 됐죠. 그래서 그런지 서정이를 보면 안쓰러워요. 혹시 아프진 않은지, 부상당한 데는 없는지…."(여홍철)

"아빠는 장난이 많아요. 썰렁한 아재 개그도 많이 해요. 하지 말라고 해도 계속하세요.(웃음) 제가 원하는 건 최대한 다 들어주려고 하시는 아빠 덕분에 힘든 훈련도 견딜 수 있는 것 같아요. 이렇게 말하면 조금 오글거리지만, 전 아빠 같은 어른이 되고 싶어요. 늘 자상하게 말 걸어주고, 이해심이 많은 그런 어른요."(여서정)

여홍철 위원에겐 한 가지 바람이 있었다. 그렇다고 특별한 건 아니다. 부모와 자식 사이의 틀을 깬, 친구 같은 아빠가 되고 싶다는 바람. 요즘 아빠들이 꾸는 평범하지만, 가장 어려운 꿈을 그도 꾸고 있었다.

"딸에게만큼은 자상하려고 많이 노력해요. 서정이가 선수촌에서 얼마나 고생하는지를 잘 아니까 집에서만큼은 편하게 쉴 수 있게 해주려고 하죠. 아마 좀 타이트한 엄마와 달라서 더 저를 좋아하는 것일 수도 있어요.(웃음)"(여홍철)

여서정 선수에게 선수촌 생활에 대해 물었다. 외출은 1~2주에 한 번, 새벽에 일어나 운동하고, 아침밥 먹고 학교 가고, 점심 전후에 다시 숙소로 돌아와 밤까지 운동하는 스케줄의 반복이었다. 자유롭지 못한 일상이 스트레스로 다가올 때도 있다. 여서정 선수는 그럴 때 주로 맛있는 걸 먹거나, 다 잊고 자거나, 친구들이랑 수다를 떨면서 이겨낸다고 했다.

"운동선수의 삶이 얼마나 힘든지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처음엔 서정이를 말렸어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는, 일반인은 잘 모르는 아주 험난한 영역이거든요. 특히 여자 선수들은 더해요. 훈련에 대한 스트레스와 먹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를 이겨내야 하거든요. 만약 서정이가 먹는 걸 좋아하는 아이였다면 두 발 벗고 말렸을 겁니다. 큰딸도 운동을 했었어요. 중학교 때까지 컬링을 하다가 팀이 없어지는 바람에 그만두게 됐죠. 지금은 교육학을 전공하는 여대생입니다."(여홍철)

"사실 몸이 힘든 것보다 정신적으로 힘든 게 가장 견디기 어려워요. 뭔가 잘 안 된다거나, 조금이라도 다친다거나 하면 정말 별의별 생각이 다 들죠. 운동하면서 생긴 버릇이 있어요. 배가 불러도 끝까지 다 먹는다는 것. 체중에 대한 압박 때문에 먹고 싶은 걸 자유롭게 먹을 수 없는 환경이거든요. 그래서 뭐라도 먹을 수 있을 때 다 먹어두자는 보상 심리가 발동하는 것 같아요. 지금 가장 먹고 싶은 거요? 아…. 뷔페 가고 싶어요.(웃음)"(여서정)

여홍철 위원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 딸이 잘해내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흐뭇한데 같은 자리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보였다.

"딸이 대견해요. 지금 생각하면 반대하지 말 걸 그랬나 싶기도 하고요. 조금이라도 더 일찍 운동을 시작했다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있거든요. 아내가 선수촌에서 코치로 활동할 때였어요. 그때 서정이가 초등학교 2학년이었는데, 엄마를 따라 선수촌에 갔다가 체조를 따라 하더라고요.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곧잘 따라 하는 걸 보고 '체조 DNA가 있구나' 하고 생각했어요(여홍철의 아내 김채은 씨 역시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체조 부문 동메달리스트다).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한 지 2주 만에 대회에 나갔는데, 성적은 좋지 않았지만 떨지 않고 끝까지 해내는 걸 보고 놀랐어요. 그때 서정이가 입었던 유니폼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니까요."(여홍철)

"제가 왜 체조를 하겠다고 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다른 운동에 비해 신기했던 것 같아요. 공중돌기 하는 모습이 멋있어 보이기도 했고요. 무엇보다 엄마 아빠를 따라 체조 연습장에 자주 갔고, 체육관이 놀이터였어요. 그런 게 영향이 있지 않았을까요?"(여서정)

두 번의 슬럼프, 그리고 금메달

여홍철 위원의 말에 따르면 여서정 선수는 쾌활한 어린이였다.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말광량이였달까. 그리고 정이 많아 주변 사람들에게 퍼주는 성격의 친구였다.

"초등학교 때 엄마가 학교 앞 분식집과 빵집에 돈을 걸어두셨어요. 저 먹으라고 그러셨던 건데 저는 친구들을 다 끌고 갔죠. 친구들이 먹고 싶어 하는 거 다 사주고 그랬어요.(웃음) 덕분에 돈을 너무 빨리 썼다고 엄마한테 혼나기도 많이 혼났죠."(여서정)

"아마도 서정이가 6학년 때였던 것 같아요. 어느 날 갑자기 운동을 안 하겠다는 거예요. 하기 싫어하는데 억지로 시키고 싶지 않아서 '그럼 그만해'라고 했죠. 스스로 목표 의식이 있어서 하는 것과 어쩔 수 없이 하는 건 차이가 아주 크거든요.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서정이가 친구들 사이에서 소위 '왕따'를 당했더라고요. 코치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친구들과는 다른 중학교에 진학한다는 이유로 말예요. 나중엔 다시 관계가 회복되긴 했지만 서정이에겐 굉장히 힘든 시간이었을 겁니다"(여홍철)

슬럼프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이번 아시안게임을 앞두고도 큰 시련이 있었다.

"큰 경기를 앞둔 상황에서 사람들의 기대가 너무 부담스러웠어요. 도마가 무서울 정도였죠. 그동안 운동하면서 쌓인 감정이 한꺼번에 폭발했던 것 같아요. 대회가 다가올수록 점점 더 압박해오는 코치 선생님들도 힘들었고요. 며칠간 고민하다가 부모님께 '그만두겠다'고 말했어요. 엄마가 곧바로 선수촌으로 오셨고, '지금까지 한 것들이 아깝지 않느냐. 사람들 신경 쓰지 말고 너의 페이스를 찾으라'는 엄마의 말에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어요."(여서정)

비 온 뒤에 땅이 굳는 법이다. 여서정 선수가 이겨낸 두 번의 슬럼프가 지금의 금메달리스트를 만들었을지 모른다는 뜻이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한 뼘 더 성장했을 것이고, 더 단단해졌을 것이다.

"운동하면서 가장 좋은 건 메달인 것 같아요. 남몰래 울기도 많이 울고,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괴로운 시간을 이겨내고 얻은 값진 보상이잖아요. 메달을 목에 걸고 있는 것만큼 좋은 것도 없는 것 같아요."(여서정)

"힘든 과정을 겪고 나서 좋은 결과를 얻었을 때의 성취감은 어마어마해요. 모든 운동선수가 그 쾌감을 잊지 못해 힘들어도 또 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저도 마찬가지였고요."(여홍철)

여홍철 위원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선배로서, 그리고 아빠로서 딸이 어떤 선수로 성장했으면 하나요?"

"큰 걸 바라지 않습니다. 지금처럼만 해주면 좋겠어요. 그리고 남들의 말에 크게 상처받지 않는 강한 멘탈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49%의 사람이 나를 싫어하더라도 51%만 나를 좋아하면 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여홍철)

"체조 꿈나무들이 저를 보고 꿈을 키워나갔으면 해요. 그러기 위해선 지금보다 더 열심히 해야겠죠? 다음 경기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그래서 저 지금 태릉선수촌으로 갑니다.(웃음)"(여서정)

인터뷰가 끝나갈 즈음, 여서정 선수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뭐든 말해보라고 했다."'워너원'의 박지훈을 좋아해요. 꼭 한 번 만나고 싶어요." 이번엔 아빠가 말을 보탠다. "박지훈이 누구야?"

아, 이 귀여운 부녀를 어쩌란 말이냐.

32년 만에 한국 여자 기계체조에 금메달을 안긴 여서정 선수는 ‘도마의 신’이라 불리던 여홍철 KBS 해설위원의 딸이다. 그 아버지에 그 딸이다.

Credit Info

에디터
이예지
사진
김정선
헤어&메이크업
주시연(누에베 데 훌리오)
스타일링
전금실

2019년 04월호

이달의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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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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