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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OBAL PARIS

파리의 지붕

19세기 중반부터 변하지 않고 파리의 풍경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온 파리의 지붕에 관한 이야기.

On March 25,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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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하면 떠오르는 색은 단연 ‘파리의 지붕 색’이다. 한국 사람 눈에는 그저 푸른색, 파리지앵에게는 잿빛으로 보이는 오묘한 색. 세계는 지금 그 잿빛에 빠져 있다.

파리 하면 떠오르는 색은 단연 ‘파리의 지붕 색’이다. 한국 사람 눈에는 그저 푸른색, 파리지앵에게는 잿빛으로 보이는 오묘한 색. 세계는 지금 그 잿빛에 빠져 있다.


파리 지붕이 오늘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19세기 중반 조르주 외젠 오스만(Goorges Eugène Haussmann)이 도시계획을 펼치면서다. 당시 아연과 구리 등 가볍고, 절단이 편리하며, 가격이 저렴한 소재가 파리 지붕을 만드는 데 쓰였다. 질서정연하고 조화로운 파리 지붕의 모습은 이렇게 해서 탄생하게 된 것.

그 아름다움과 역사적 가치는 세계적으로도 인정받아 201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제작의 편리함 덕분에 지붕을 최대한 평평하게 만들어 그 아래에 다락방 같은 거주 공간을 설치할 수도 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바로 ‘하녀들의 방’이라 불리는 지붕 밑 방이다. 단열이 잘 안 돼 여름에는 덥지만 겨울에는 춥고, 엘리베이터가 서지 않아 걸어 올라가야 한다. 조건이 열악하다 보니 집세가 저렴한 편이라 대부분 가난한 학생들과 젊은이들이 많이 빌리는 공간이다. ‘지붕 밑 방 시인’이라는 표현이 생겼을 정도로 폴 오스터를 비롯한 많은 작가가 무명 시절에 이 값싼 지붕 밑 방을 거쳐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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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 막 정착한 이방인에게 하늘이 가까운 지붕 밑 방은 매력적인 안식처다. 파리의 거리는 이방인들에게 유독 거칠고, 차갑고, 소란스럽다. 행인들은 불친절하고, 시가지에서는 소음 때문에 소리를 질러야 옆 사람과 겨우 대화를 이어갈 수 있다. 차분하고 고요한 나만의 공간이 심적으로 더 절실해질 수밖에 없다. 필자도 파리에서 하루를 마무리하고 집에 돌아오면, 자연스럽게 창문을 열고 발도 못 디딜 좁은 테라스에 매달려 휴식을 취하곤 했다. 파리 생활이 길어질수록 혼자만 아는 차분한 공간을 많이 알게 됐는데, 그 대부분은 대학 건물의 옥상이나 사무실 건물의 테라스 등 높은 곳에 있는 공간이다.

그런 지붕의 매력에 푹 빠진 파리지앵들은 필자가 처음도, 마지막도 아닐 것이다. 프랑스의 아주 작은 시골 마을에서 나고 자란 시몽 노게라(Simon Nogueira)는 18살에 처음 파리로 이사했다. 그 역시 도시의 번잡스러움에 질렸을 때 자연스럽게 동네 성당 건물을 기어 올라가봤다고 한다. 그때를 시작으로 오늘날까지 7년간 그는 거의 매일 파리 지붕 위를 산책한다.

지붕 위를 오르는 방법은 의외로 쉬운데, 파리의 아무 건물이든 벨을 누르고 주민인 양 꼭대기 층까지 걸어 올라간 다음, 열린 창문을 통해 지붕 위로 올라가면 된다. 물론 경찰이나 불만을 품은 주민들에게 당장 내려오라는 경고를 받을 수는 있다. “하지만 가끔은 지붕 밑 방 주민들에게 초대받아 커피를 얻어 마시거나 오랫동안 지붕 위에서 대화를 나눈 적도 있다. 좁다란 지붕에 정원을 가꾸고, 심지어 벌을 키우는 사람도 있다. 파리 지붕 위는 파리의 거리와는 또 다른 새로운 세상이다”라고 노게라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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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지붕 위를 산책하는 사람들이 있다. 도심의 구조를 활용해 재주를 넘거나 기어오르는 행위를 ‘프리런’이라고 한다.

파리 지붕 위를 산책하는 사람들이 있다. 도심의 구조를 활용해 재주를 넘거나 기어오르는 행위를 ‘프리런’이라고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노게라는 “고양이에겐 지붕 위와 담벼락 위가 통로의 일부인 것처럼, 내게도 지붕과 벽을 타 넘는 것이 파리의 평평한 대로를 활보하는 것보다 자연스러운 일이다”라고 말한다. 노게라처럼 도심의 구조를 활용해 재주를 넘거나 기어오르는 행위를 ‘프리런’이라고 한다. 그는 자신과 같은 열정을 나누는 젊은이들과 함께 프랑스 프리런 패밀리(France Freerun Family)라는 단체를 만들어 활동 중이고, 7세부터 58세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에게 프리런 기술을 가르치고 있다.

노게라 같이 특별한 재주가 있지 않아도, 남모르게 지붕을 오르고, 파리 지붕의 잿빛에 반한 사람은 많을 것이다. 프랑스의 유명 작가 실뱅 테송(Sylvain Tesson)도 젊은 시절 파리 지붕에 몰래 올랐고, 일러스트 작가 파브리스 무아노(Fabrice Moineau)도 파리 곳곳의 지붕에 매달려 시간을 보내며 놀라울 정도로 정교한 수채화 작품을 남겼다. “파리 지붕 색깔이 우중충하고 단조로운 잿빛이라 말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 파리의 지붕만큼 미묘하고 풍부한 농담과 색조를 자랑하는 것도 세상에는 드물다.” 무아노의 말처럼 강렬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예민한 예술적 감성을 자극하는 것이 파리의 잿빛 지붕만이 간직한 매력이다.

글쓴이 송민주

글쓴이 송민주


현재 프랑스에서 사회학을 전공 중이다. <Portraits de Se′oul>의 저자이며,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서로 다른 문화를 소개하는 일을 사랑한다.

CREDIT INFO

에디터
하은정
송민주
사진
시몽 노게라
2019년 03월호

2019년 03월호

에디터
하은정
송민주
사진
시몽 노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