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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그 이상의 류승룡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아 누구에게나 편안한 동네 아저씨, 배우 류승룡에게서는 딱 그런 기운이 느껴졌다.

On February 15,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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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예술대학 연극과를 나와 연극으로 배우 활동을 시작한 류승룡이 대중에게 알려진 것은 <난타> 멤버로 활동하면서부터다. 이후 장진 감독이 연출한 연극 <서툰 사람들>(2007), 영화 <박수칠 때 떠나라>(2005), <거룩한 계보>(2006), <퀴즈왕>(2010) 등에 출연해 자주 얼굴을 비치면서 대중에게 눈도장을 찍었는데, 주로 강한 인상에 걸맞은 포스 있는 캐릭터를 맡았다. 그런데 그는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2012)에서 그간 보여주던 캐릭터와 다른 모습으로 등장한다. 치명적인 매력의 카사노바 ‘장성기’ 역을 맡아 예상이 어긋나는 타이밍에 유머러스한 멘트를 던지면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른바 ‘류승룡표 코미디’는 그에게 씌워져 있던 매서운 이미지를 희미하게 만들었다.

‘류승룡표 코미디’는 진화해 올해로 이어진다. 그는 해체 위기의 마약반 5인방이 범죄 조직 소탕을 위해 위장 창업한 마약 치킨이 일약 맛집으로 입소문을 타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코믹 수사극 <극한직업>에서 특유의 엇박자 코미디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실적은 바닥이지만 언제나 목숨을 걸고 수사에 나서는 마약반의 좀비 반장 ‘고 반장’ 역을 맡아 시도 때도 없이 웃음을 선사한다.

“우리 영화는 한 사람이 유난히 웃기는 게 아니라 다 같이 웃기는 코미디예요. 합동 조합 코미디라고 할까요? 이런 대본은 처음이라서 신선했어요. 조연으로 등장하는 배우 신하균, 오정세의 한마디에도 웃음 포인트가 있으니까요. 시나리오를 읽을 때부터 많이 웃었어요. 대개 시나리오를 읽을 땐 이미지를 그리는 정도인데 어느 순간 제가 연기를 하고 있더군요. 그때 확신했죠. ‘아, 내가 잘할 수 있는 작품이구나’라고요.”

그러나 류승룡은 실은 자신은 코미디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오히려 어렵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 상황 자체가 재미있어야 웃음의 오차 범위를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코미디는 어떤 장르보다 정교한 계산이 필요하고 더 많은 고민이 더해져야 하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그에겐 코믹 유전자가 내재돼 있음이 분명했다. 인터뷰하는 동안에도 그는 진중함과 유머러스함을 작두 타듯이 오갔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대학 시절에도 특기를 ‘코미디’라고 했다. 코믹 연기의 역사가 짧지 않다는 것이다.

극에서 류승룡이 가장 자주 하는 대사는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갈비인가, 치킨인가?”다. 마약 조직을 소탕하기 위해 잠복 수사 중인 것을 잊고 치킨집 운영에 올인하는 마약반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사다. 관객의 뇌리에 박힐 묘수가 필요한 대사였는데, 그는 그것을 한 번에 해냈다.

“운명처럼 다가온 대사였어요. 영화 속에 등장하는 톤이 시나리오를 받자마자 했던 톤이에요. 여러 톤을 고민해봤는데 마땅히 떠오르는 게 없어 처음 읊은 그대로 대본 리딩을 했어요. 제 대사를 들은 이병헌 감독이 굉장히 재미있어 해서 그대로 하게 됐죠. 되돌아보면 장진 감독과 10개의 작품을 함께 하면서 대사를 맛깔스럽게 표현하는 ‘말맛’을 배웠어요. 장진 감독 덕분에 코미디 연기를 할 수 있었죠.”

이병헌 감독에 대한 칭찬이 이어졌다. <극한직업>은 혼자 소화할 수 없는 구성력과 아이디어, 출연 배우의 케미까지 견고하게 설계돼 웃길 수밖에 없었다는 것. 이 때문에 현장에서 배우의 애드리브가 거의 없었고 이병헌 감독의 디렉션에 따라 시나리오대로 촬영했단다.

“이병헌 감독은 정말 독특해요. 모니터 앞에 앉아 거의 움직이지 않고 목소리도 작아요. 그 모습을 보면 ‘내가 지금 잘못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어 긴장하게 돼요. 어떤 때는 조는 것 같기에 몰래 사진을 찍어 이성민과 신하균에게 보여줬어요. 그랬더니 비슷한 사진 10장이 되돌아오더군요. 자고 있는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게 시그너처였어요. 나른한 천재라는 생각을 했죠. 특히 오정세 배우를 캐스팅한 것이 감독님의 혜안인 것 같아요. 이름을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터지는데, 이건 굉장한 능력 아닌가요? 대단한 배우예요.”

함께 출연한 이하늬, 진선규, 이동휘, 공명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모두 자신이 더 돋보이려고 욕심을 내지 않고 서로를 배려하고 위했다고. 그런 팀워크가 있었기에 코미디가 가능했다는 것. 또 배우 모두 자신의 몫을 고스란히 해냈기에 누구 하나가 두드러지지 않았단다.

“현장에서 최대한 조언을 아끼려고 했어요. 무한한 잠재력이 있는 친구들이니까 편안하게 연기할 수 있게 해주고 싶었죠. 영화에서 이 친구들은 제게 대들고, 반장 앞에서 서로 싸우죠. 그런 분위기가 나오려면 실제로도 제게 장난을 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공명 배우가 저하고 딱 24살 차이가 나는데 처음엔 제 앞에서 바짝 긴장하더라고요. 나중엔 저를 끌어안을 정도로 편하게 지냈어요. 선배님이라고 하다가 형님이라고 부르더니 나중엔 아빠라고도 하더군요. 정말 귀엽지 않나요?”

극에서 극한 직업으로 마약반 형사와 치킨집 사장이라는 자영업자가 다뤄졌는데, 류승룡이 업으로 삼고 있는 배우 또한 극한 직업 중 하나로 통한다. 빈번하게 밤을 새우고 일하는 시간이 일정하지 않아 생활 리듬이 깨지기 일쑤다. 또 굉장히 큰돈을 벌기도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다반사다. 그러나 류승룡은 배우를 극한 직업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저는 가진 것에 비해 누리는 게 많아요. 공부나 기술과 달리 연기는 시간과 열정을 투자한 만큼 보답이 돌아오지 않아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육체적 소모는 누구나 겪는 정도의 힘듦이라고 생각해요. 세상에 쉬운 일이 있나요? 절대평가를 하면 모든 직업이 극한 직업이잖아요. 다만 이성을 가지고 감정을 세공해 장면에 맞는 최상의 감정으로 연기하는 것은 매번 어려워요. 감정에는 절대적인 정답이 없으니까요.”

배우는 비워내는 동시에 채워야 하는 직업이라는 설명이 더해졌다. 민첩하게 사람의 마음을 읽고 세상을 담을 준비가 돼야 한다는 것. 그렇게 매번 새로운 캐릭터를 만드는 것에 지칠 법도 한데 결국 모두 인간 류승룡 안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메소드 연기도 있지만 자신으로부터 시작되는 연기도 있어요. 저는 후자예요. 제가 할 수 없는 경험을 한 인물을 재창조해야 하는데 대부분 ‘류승룡이 저 시대에 저런 상황에 처했다면 어땠을까?’라고 생각하면서 시작해요. 그래서 캐릭터 창조에 대한 스트레스는 거의 없죠. 그것보다는 작품에서 캐릭터가 보여줘야 하는 감정을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하는 중심을 잡는 것이 어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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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천명의 나이가 되니 인생에서 속도도 중요하지만 방향도 중요하고 쉼표도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이런 게 나이가 드는 증거인 것 같아요.

알고 보면, 다도 하는 남자

인터뷰 후 류승룡은 기자에게 직접 만든 명함꽂이를 선물했다. 한 달 전부터 직접 나무를 손질한 뒤 ‘류승룡’이라고 적힌 불도장을 찍어 만들었단다. 손수 정성스럽게 손질했을 모습이 상상돼 곧바로 포장을 풀어 꺼내 보이자, 그는 매끄러운 나무보다는 나무의 결이 살아 있는 것이 더 멋있다며 교환해주는 친절함까지 보였다.

“한 달 전부터 어떤 선물이 좋을까 고민했어요. 데스크가 있으니까 명함꽂이가 적당하겠다고 생각했죠. 자연보호를 이유로 현재는 수입이 금지된 ‘엔(YEN)’이라고 불리는 베트남산 장미목으로 만들었어요. 명함꽂이 뒤편에 ‘류승룡’이라는 불도장을 찍어 크레디트도 새겼죠. 마음에 드시나요? 목공을 하면 정신을 집중하고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더군요. 그래서 취미로 삼게 됐어요.”

목공을 시작하게 된 건 다도의 영향이 크다. 커피보다는 차를 마시는 것을 좋아해 즐기다 보니 찻잔을 만들고 싶었다고. 그렇게 찻잔을 만들기 시작해 서빙 보드, 도마, 티 테이블을 만드는 것으로 이어졌다. 어느새 13개에 달하는 테이블을 만들었고, 작은 소품들을 지인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이 다도가 미친 영향이다.

“건강 때문에 술과 담배를 끊고 차를 마시기 시작했어요. 따뜻한 물이 몸에 좋기도 하고, 이뇨 작용과 릴랙싱하는 효과가 있어서 차를 자주 마실수록 좋다고 하더군요. 생잎을 증열하고 비비고 건조시킨 황차 계열의 우롱차를 가장 좋아해요. 차를 즐기다 보니 궁금한 것이 생겨 한국문화정품관의 선생님에게 차의 역사, 산지, 성분, 효능에 대해 배우기도 했어요.”

차에 대한 전문 지식을 지닌 그는 잠복근무 촬영 신이 많아 밤샘 촬영이 잦았던 <극한직업> 현장에서 티 테이블을 차리기도 했다. 이하늬는 한 인터뷰에서 류승룡의 티 테이블에 앉아 도란도란 차를 마시다가 촬영을 하러 가곤 했다며, 그 덕분에 회식을 하지 않고도 친하게 지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현장에서 다도를 한 건 처음이었어요. 촬영 때문에 전라남도 광양에 갔는데 근처에 하동군이라고 차를 만드는 제다가 유명한 곳이 있어요. 그곳을 정신없이 돌아다니면서 차를 한가득 샀죠. 그러곤 현장에서 차를 끓여줬는데 배우들이 좋아하더군요. 밤샘 촬영을 할 땐 각성 작용이 있는 홍차를 주로 끓여줬어요. 꾸러미를 들고 다니면서 녹차, 백차, 보이차를 마실 수 있게 했죠. 그 이후로 이하늬, 진선규 배우가 다도의 세계에 발을 들였어요.”

다도와 목공을 취미로 하는 그의 또 다른 취미는 트레킹이다. 걷는 것을 좋아해 국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자연경관을 즐기고 있다. ‘떠나지 못할 이유가 더 생기기 전에’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이 모인 ‘여행대학’을 통해 젊은 여행가들을 사귀기도 했다.

“제주 올레길을 좋아하는데 최근 도로가 포장되고 카페가 생기면서 예전 같은 정취가 사라져서 아쉬워요. 점점 더 구석진 곳으로 들어가서 걷고 있어요. 저는 섬도 좋아해요. 우리나라에 섬이 몇 개인지 아시나요? 4,000개가 넘는데 그만큼 아름다운 곳이 많다는 의미예요. 해마다 울릉도에 가고, 통영이나 여수에서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기도 해요. 섬에 갈 때마다 철칙이 있는데 반드시 그 지역 민박집에서 머물고, 밥집에 가고, 특산물을 사요. 현지인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공정 여행이 제가 지향하는 바이기 때문이에요. 또 지리산 둘레길, 삼척의 해파랑길, 부산 이기대 둘레길을 좋아해요. 특히 이기대 둘레길은 굉장히 예뻐요.”

류승룡은 설 연휴에 방송을 앞두고 있는 EBS 다큐멘터리 <백두대간 문화유산을 찾아서>에 출연해 진주, 밀양, 속초 등 전국 각지를 찾았다. 무등산 정상에 오르고, 지리산 3대봉 중 하나인 노고단 정상에 오르면서 지역의 지형과 산세, 문화가 어떻게 발현됐는지 살펴봤다.

“가장 먼저 출연한 방송 프로그램이 EBS <한국기행>이었어요. 그때부터 다큐멘터리 쪽에서 왕왕 연락이 와요. 제겐 일종의 선물 같은 개념이에요. <한국기행> 출연 당시 제주 올레길을 걸으며 어머니, 할머니들과 만났어요. 해녀 어머니가 모는 스쿠터에 타기도 했는데 제겐 어른들에게 인생의 지혜를 배운 경험으로 남았어요. 한 시간만 함께 있으면 어떤 책을 정독해도 배울 수 없는 삶에 대해 배우게 되죠.”

류승룡은 올해 ‘하늘의 명을 깨닫는 나이’라고 해서 ‘지천명’이라 불리는 50세가 됐다. 그는 요즘엔 나이에 0.7을 곱한 수가 시대에 맞는 실제 나이라며 세월이 흘러 한 살씩 먹는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른의 의무>라는 책에 ‘말을 적게 하고 잘난 척하지 말고 항상 기분 좋은 상태를 유지해라’라는 말이 나와요. 과거에는 스쳐 지나갈 수 있는 문구였을 텐데 외울 정도로 기억에 남더군요. 나이가 들었다는 게 실감됐죠. 또 인생에서 속도도 중요하지만 방향도 중요하고, 쉼표도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내가 편해야 나를 보는 사람들도 편하다는 걸 알았죠. 웬만하면 다툼을 만들지 않고 잘못하면 빠르게 사과하는 태도를 가지려고 하고요. 이런 게 나이가 드는 증거인 것 같아요.”

류승룡은 <극한직업>을 촬영할 때 ‘우리 인생의 6개월이라는 중요한 시간’이라는 생각을 하며 행복하게 찍으려고 노력했단다. 그가 행복해야 동료들도, 나아가 관객도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단언컨대 <극한직업>에서 보여준 그의 노력은 결실을 이뤘다.

CREDIT INFO

에디터
김지은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제공
2019년 02월호

2019년 02월호

에디터
김지은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