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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On June 12, 2018 0

<효리네 민박> 속 이효리 부부의 생활이 안정적인 삶의 모습으로 느껴지고, 영화 <리틀 포레스트> 주인공의 생활은 인간이 온전한 존재가 되기 위한 과정으로 보인다. 직업과 일의 개념이 달라지고 있다. 우리는 일을 꼭 해야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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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축'. '회사'와 '가축'을 합쳐 만든 일본의 인터넷 은어로 소설가인 아즈치 사토시가 처음 사용했다고 알려진 단어다. 2000년대 초반 일본에서 직장인들의 애환을 풍자하는 '사축 동화'가 트위터를 통해 인기를 끌며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고전 동화를 패러디한 잔혹 동화의 일종인 사축 동화의 내용을 살펴보면 이렇다. '정직원이 되고 싶은 인어공주가 마녀를 찾아갔습니다. 인어공주가 "마녀님, 저 정직원이 되고 싶어요"라고 소원을 비니 마녀가 "그러면 우리 회사로 이직해. 대신 너의 목소리를 받아 가마"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인어공주는 정직원이 되었지만 월급은 내려가고 야근수당은 나오지 않았고 휴일도 사라졌습니다. 목소리를 잃어 노동청에 신고하지도 못하게 된 인어공주는 사회의 거품이 되어 사라졌습니다.'

이후 이를 주제로 한 다양한 콘텐츠가 온·오프라인으로 퍼졌고, 지금은 한국에서도 '사축'이란 단어를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출근충' '직장충' 등과 함께 직장인을 비하하거나 직장인 스스로 신세를 한탄하기 위한 자조적인 단어로 사용된다. 일찍이 유대인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자신의 저서 <인간의 조건>에서 '이성적 동물'이었던 인간이 근대에 접어들며 '노동하는 동물'로 전락했다고 언급한 것을 보면 직장인을 '사축'이라 부르는 것이 새로운 현상만은 아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전국 306개 기업을 대상으로 진행한 '2016 신입 사원 채용 실태 조사'에 따르면 대졸 신입 사원의 1년 이내 퇴사율은 27.7%. 매년 청년 실업률의 수치가 경신되는 상황에서 대졸 취업자 4명 중 1명이 일 년 안에 회사를 떠난다는 것은 결코 적은 수가 아니다.

세계적인 경기 침체 속에서 최초로 부모 세대보다 못 사는 세대라 불리는 지금의 2030세대, 일명 '밀레니얼 세대'가 치열한 입시 전쟁과 고통스러운 스펙 쌓기, 그리고 로또에 당첨되는 운으로 취업의 문턱을 넘어서며 획득한 직장인의 삶을 이렇게 쉽게 포기하는 이유는 뭘까?

퇴사를 꿈꾸는 세대

베이비부머 세대의 자식 세대인 밀레니얼 세대는 1980년대 초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이들로 중·고등학교 때 치열한 입시 경쟁에 노출된다. 입시 전쟁의 승자로 명문대에 입학해도 경쟁은 끝나지 않는다.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는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시작된다. 토익 점수와 사회 봉사활동, 어학 연수 등으로 좀 더 나은 능력을 쌓아도 몇 년을 노력해야만 넘을 수 있는 취업의 문턱. 그만큼 절실해질 수밖에 없다.

고생 끝에 손에 넣은 직장인의 지위이지만, 시간과 비용, 그리고 노력을 투자해 쌓은 스펙은 실무에서 아무 소용이 없다. 거기에 매일 쏟아지는 생소한 업무에 야근은 일상이 된다. 그에 더해 행해지는 상사의 인격 모독적 발언과 심심찮게 벌어지는 성희롱의 해결 방법은 결코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았고 힘겹게 습득한 스펙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난제인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입 사원들은 서서히 자신만의 회사 생활 노하우를 습득한다. '넌시눈(넌, ◯◯ 눈치도 없냐)'이나 '월급 루팡(회사에서 하는 일 없이 월급만 축내는 직원)'을 자처하며 자신의 상사를 닮아가는 것이다. '포기하거나 도망가면 실패하는 것'이라는 사회 풍조 안에서 승진이나 이직을 위해 버티는 것 외에는 직장인들에게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과감히 사표를 던지고 회사를 나와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는 젊은 세대가 늘어난 것이다.

2016년 화제가 된 '퇴사 학교'는 '꿈을 찾는 어른이들의 학교'를 모토로, 퇴사를 준비하며 부딪히는 경제적 현실과 경력 단절, 그리고 다른 분야에 도전하며 생기는 막막함을 서로 공유하고 돕기 위해 당시 직장인이던 장수한 대표가 설립했다. 이곳에서는 어떠한 직업을 갖기 위한 수단이 아닌, 어떠한 직업을, 왜 가져야 하는지, 혹은 일은 왜 해야 하는지와 같은, 직업 선택에 있어 좀 더 본질적인 문제를 토론한다. 진로를 선택하기 전,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공부에 쫓겨 미처 고민하지 못했던 부분을 어른이 된 후 뒤늦게 고민하는 것이다. 이렇게 '퇴사'라는 과감한 결심을 하는 직장인들이 있는 반면,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고 직장과 개인의 일상 속에서 행복을 찾고자 하는 직장인도 있다. 이들이 추구하는 것은 바로 '워라밸'이다.

탕진잼, 무민세대…

밀레니얼 세대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일과 생활의 균형이다. 일명 '워라밸'. '내 집 장만의 꿈'을 이루는 것이 인생의 목표였던 부모 세대와 달리 소유보다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밀레니얼 세대는 회사의 이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지 않는다. 미래의 안정을 확보하기 위해 현재를 희생하지도 않는다. 이들은 더 이상 일에서 자아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이미 깨달았다.

최근 몇 년간 이런 밀레니얼 세대를 설명하는 키워드로 '개인주의' '욜로족' '탕진잼(재물 따위를 흥청망청 다 써서 없앤다는 뜻의 '탕진'과 재미를 뜻하는 '잼'을 합친 신조어로 소소하게 탕진하는 재미를 일컫는 말)' 등이 사용됐다. 모두 조직보다 개인이 먼저이고 미래보다 현재를 즐기자는 의미가 담긴 단어들이다. 이후 한 단계 더 나아가 최근에는 이들을 일컬어 '무민 세대'라 한다. 한자 '없을 무(無)'와 '의미'라는 뜻의 영어 단어 '민(Mean)'의 합성어인 '무민'은 말 그대로 '의미 없음' 이란 뜻으로 느긋한 라이프스타일을 즐기는 핀란드의 만화 캐릭터 이름과도 같다. '무의미에서 의미를 찾는 세대'라는 뜻의 무민세대. 이는 치열하게 경쟁하며 바쁘게 살아온 젊은 세대가 무자극, 무맥락, 무위 휴식 등에서 안정을 찾는 것으로, 지난해 유행한 '슬라임'이나 몇 년째 인기인 '컬러링북'도 이러한 현상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일본의 정신과 의사인 이즈미야 간지는 저서 <일 따위를 삶의 보람으로 삼지 마라>에서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것은 인생이나 세상을 향해 '의미'를 추구하는 방향을 드러내는 일이며 이 방향성은 '마음'이 일으키는 '사랑'의 작용"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마음이 머리의 분별을 떠나 사랑을 지니고 사물을 마주할 때, 우리는 반드시 대상에서 '미'를 발견하고 또한 그곳에 '진리'가 있다는 사실을 직관한다. 살아가는 일에 의미를 느끼는 순간은 이처럼 사랑의 경험에 의해서도 빚어진다" 라고 말했다. 어렵게 들리지만 노동보다 예술 활동이 인간답게 사는 방법이며 결과물보다는 과정 속에서 인간이 인간다움을 느낀다는 것이다.

혹독한 직장 생활에 지쳐 자살을 시도하게 된 주인공이 초등학교 동창을 만나 직장을 그만두고 삶의 전환점을 맞이한 일본 영화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처럼 회사 밖으로 나와야만 보이는 풍경이 있다. 현대사회에서 인간은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놓여 있다. 노동하는 인간으로서의 삶을 그저 탓하고만 있기엔 시간이 아깝지 않나. 사회가 요구하는 직장인, 회사원으로서 틀에 박힌 생활을 하느라 지나쳤을지도 모르지만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삶의 방식은 다양하다. 직장 생활이 힘에 부치고 괴롭게만 느껴진다면 잠깐 멈춰 아무것도 하지 않은 '무민'의 삶을 느끼며 스스로를 비워보는 게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무민' 간접 체험 예능과 영화

판타지일 뿐이지만, '무민'을 간접체험하고 싶다면.

1 JTBC <효리네 민박>
특별한 경제 활동 없이 소소한 일상을 보내는 가수 이효리·이상순 부부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인기 예능 프로그램. 노래가 부르고 싶을 땐 노래를 부르고 그림을 그리고 싶을 땐 그림을 그리고, 반려동물들과 낮잠을 자고 싶을 땐 제주도의 따뜻한 햇살 아래서 잠을 청하는 이효리의 모습이 화려한 메이크업을 하고 무대에서 춤을 추던 그녀의 모습보다 더 행복해 보인다.

2 tvN <숲 속의 작은 집>
자극적인 것 하나 없이 단지 소지섭과 박신혜의 소소한 하루를 날것 그대로 보여주는 나영석 PD의 예능 프로그램. 인적이 없는 작은 숲 속의 집에서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건들만 갖춘 채 제작진이 제시하는 행복 미션을 수행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면 우리가 얼마나 빠르고 복잡한 환경에 익숙해져 있는지 깨닫게 된다.

3 영화 <리틀 포레스트>
한 끼의 식사를 차리기 위해 농사부터 시작하는 주인공 혜원. 각박한 도시 생활을 잠시 접고 고향으로 내려가 농사를 지으며 단지 하루 세 끼를 먹기 위해 사는 혜원의 모습을 보면 음식과 먹는 것의 의미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게 된다. 잠시 쉬어 가는 것은 결코 포기가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위한 준비라는 메시지도 위로가 된다.

4 영화 <하와이언 레시피>
낯선 곳에서 느끼는 음식과 사람의 의미를 그렸다. 느릿느릿 여유 있게 사는 하와이 호노카아 마을에 우연히 체류하게 된 주인공 레오. 도시에서 온 이방인 레오는 어느새 느긋한 마을 분위기에 동화된다. 낯선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비로소 알게 되는 인생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

<효리네 민박> 속 이효리 부부의 생활이 안정적인 삶의 모습으로 느껴지고, 영화 <리틀 포레스트> 주인공의 생활은 인간이 온전한 존재가 되기 위한 과정으로 보인다. 직업과 일의 개념이 달라지고 있다. 우리는 일을 꼭 해야만 할까?

Credit Info

에디터
김안젤라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2018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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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안젤라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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