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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는 없다

On May 30, 2018 0

2018 평창 동계 올림픽에서 은메달이라는 쾌거를 이룬 4인승 봅슬레이 팀 ‘브레이크맨’ 김동현(32세)의 꿈은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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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인승 봅슬레이 팀은 지난 2월 막을 내린 2018 평창 동계 올림픽에서 1~4차 시기 합계 3분 16초 38을 기록하며 은메달을 땄다. 그동안 유럽과 미주의 전유물이었던 썰매 부문 메달을 아시아에서 처음 가져온 순간이다.

봅슬레이 팀은 2인승 팀 원윤종-서영우에 푸시맨 전정린과 브레이크맨 김동현이 가세해 완성됐다. 김동현은 본래 파일럿(봅슬레이 운전) 포지션이지만 브레이크맨으로 전향해 맹활약을 펼쳤다. 185cm에 달하는 건장한 체격을 지닌 그는 훈훈한 외모의 소유자였다.

“봅슬레이 팀 4명이 함께 다니다 혼자 있으니까 어색해요. 역시 동료들이 있어야 든든하죠.”

실제 김동현은 팀의 분위기를 띄우는 ‘활력소’다. 김동현 덕분에 원윤종, 전정린이 봅슬레이에 입문했으며, 선수촌 분위기도 수평적으로 바뀌었다. 봅슬레이 팀에서 최고 경력을 자랑하는 그는 선배들이 후배한테 빨래를 시키는 행위 등을 금지하면서 선수 개인의 시간을 지켜주고 있다고.

해맑은 웃음으로 주변을 밝게 하는 김동현이지만 그에겐 남들이 모르는 노력이 숨어 있다. 선천적으로 양쪽 귀가 들리지 않는 청각장애 3급이었던 그는 어린 시절 입술의 움직임을 읽는 구화술로 대화를 나눴다. 어머니의 헌신적인 도움으로 장애인 학교 대신 일반 학교를 다니며 공부했고 일반 전형으로 연세대학교 체육학과에 입학했다. 장애인 체육에 관심이 많아 캐나다로 유학을 떠나려고 준비하던 중 운명처럼 봅슬레이 선수를 뽑는다는 공고가 그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제가 경험해서일까요? 진로를 장애인 체육 쪽으로 정하고 유학을 준비하던 중에 봅슬레이 선수를 찾는다는 공고를 봤어요. 호기심에 참가했는데 덜컥 서울시 대표가 됐고 얼마 후 국가대표 선발전에 나갔어요. 그리고 월드컵, 올림픽에 연달아 출전했죠. 당시 국내에 봅슬레이 경기장이 없어서 일본 나고야에서 국가대표 선발전을 치렀는데 봅슬레이를 타는 게 즐거웠어요. 사람의 첫인상이 중요하듯이 운동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봅슬레이의 첫인상이 좋았고 점차 그 매력에 빠지게 됐어요.”

김동현이 참여한 국가대표 선발전에 MBC <무한도전> 팀도 참가했다. <무한도전> 멤버들이 봅슬레이를 타며 고통스러워한 기억이 떠올라 그의 “즐거웠다”는 반응이 의아했다.

“원심력과 중력 때문에 아플 수 있는데, 아픔보다 즐거움이 더 컸어요. 음… 안전벨트 없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느낌? 파일럿으로 출전했는데 제가 운전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도 재미있었죠. 당시 한국엔 경기장이 없어서 봅슬레이 주행을 할 수 없으니까 자동차 운전을 하면서 ‘나는 지금 봅슬레이 훈련 중이야’라고 생각하곤 했어요.”

김동현이 은빛 질주를 펼친 알펜시아 슬라이딩 센터는 2016년 10월 완공됐다. 이전까진 봅슬레이를 타려면 해외 훈련을 떠나야 했다. 국내에서는 어떤 훈련을 했을까?

“경기장은 주행하는 데 도움이 돼요. 그런데 스타트에는 썰매를 빠르고 강력하게 밀고 나갈 파워와 스피드가 필요해요. 그래서 웨이트 트레이닝과 육상 훈련을 하고 영화 <국가대표>에서처럼 맨땅에서 바퀴 달린 썰매를 밀면서 훈련했어요. 그땐 선수들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훈련비용을 충당했어요. 저는 입시 과외를 하고 피트니스센터에서 헬스트레이너도 했죠. 올림픽 유치가 확정되고 후원사가 생겼는데 올림픽이 종료되면서 계약도 끝났어요. 또 다른 도움의 손길이 필요해요. 지금처럼 훈련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 감사한 마음으로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자신을 사회적 빚이 많은 사람이라고 표현한 김동현은 귀에 꽂혀 있는 장치 인공와우를 가리키며 이를 통해 소리를 듣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2007년 어렵게 모은 돈으로 오른쪽 귀에 인공 달팽이관 이식 수술을 받아 한쪽 귀로 세상을 듣다가, 후원의 손길이 이어져 2011년 나머지 한쪽 귀도 수술을 받았다.
“봅슬레이가 단체 운동이니까 다른 선수들의 소리를 들어야 해요. 많은 분의 도움으로 소리를 듣게 됐고 메달리스트가 됐죠. 제가 사회에 갚아야 할 빚이에요. 수술을 마치고 바람 소리가 처음 들리는데 신세계였어요. 곧바로 친구하고 월미도로 여행을 떠났고 바다를 보면서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엄마, 파도 소리가 들려’라고 했더니 어머니가 펑펑 우셨어요.”

어머니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김동현이 존재했다. 그가 청각장애 때문에 위축될 수도 있었지만 밝은 에너지를 지닐 수 있었던 건 어머니의 노력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사랑이 넘치시는 분이에요. 어머니는 제가 한 학년씩 올라갈 때마다 담임선생님을 찾아가 ‘동현이를 잘 부탁한다’고 하셔야 했지만 저를 끝까지 일반 학교에 다니게 하셨죠.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구화술도 익히게 도와주셨어요. 덕분에 지금처럼 성장할 수 있었어요. 어머니의 영향으로 저 역시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런 측면에서 지금도 제 꿈은 ‘현재 진행 중’인 상태죠.”

김동현이 감사한 마음을 품고 있는 또 한 사람은 봅슬레이 스켈레톤 국가대표 팀 이용 감독이다. 버선발로 뛰어다니며 후원사를 물색해 훈련 환경을 조성한 것은 물론, 평창 동계 올림픽 당시 4인승 봅슬레이 팀이 편안한 마음으로 경기에 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봅슬레이 2인승 대표 팀이 6위로 부진해 선수들이 위축돼 있을 때 농담을 건네며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유도해 선수들이 긴장할 틈을 주지 않은 것. 그 결과 선수들은 부담을 덜고 경기에 나설 수 있었다. 김동현에게 이용 감독이 어떤 존재인지 묻자 그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이용 감독님은 한배를 탄 사람이에요. 저희를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애쓰신 분이죠. 2년 동안 집에서 주무신 날이 한 달이 채 안 될 거예요. 보통 조직은 상하관계가 뚜렷해서 윗사람은 지시하고 아랫사람은 따르기 마련인데 감독님은 수평적인 관계를 만들고 선수들이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 해주셨어요. 감독님이 없었다면 메달도 없었을 거예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감사드릴 분이 많은 것 같아요.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고 좋은 성적으로 보답할 거예요.”

김동현의 다음 목표는 캐나다 휘슬러에서 열리는 2019 봅슬레이 스켈레톤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실력을 재입증하는 것이다. 언젠가는 지도자로 활약하길 바라고 스포츠 외교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10년 뒤 그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김동현의 꿈이 꿈틀거리고 있다.

2018 평창 동계 올림픽에서 은메달이라는 쾌거를 이룬 4인승 봅슬레이 팀 ‘브레이크맨’ 김동현(32세)의 꿈은 현재 진행형이다.

Credit Info

에디터
김지은
사진
김정선
의상협찬
자라
헤어
승현(더 세컨)
메이크업
주시연(더 세컨)

2018년 05월호

이달의 목차
에디터
김지은
사진
김정선
의상협찬
자라
헤어
승현(더 세컨)
메이크업
주시연(더 세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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