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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생긴 것이 좋아

예쁘지 않아도 패션의 주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승승장구하는 고프코어(Gorpcore) 신드롬.

On March 22, 2018


1 세련된 옐로 컬러 윈드브레이커 10만9천원 아디다스 오리지널스. 2 3가지 컬러가 조화된 로고 프린트 레더 백팩 95만5천원 MCM. 3 투박한 멋이 담긴 미래적인 디자인의 스니커즈 가격미정 루이비통.


요즘 SNS나 블로그 속 스트리트 패션을 보면 눈을 의심케 하는 순간을 종종 목격한다. 낚시 갈 때나 입을 법한 주머니가 여러 개 달린 베스트에 바닥을 쓰는 롱스커트를 입은 옷차림에 '좋아요'를 누른 숫자가 어마어마하다. 여자 한 명은 족히 더 들어갈 커다란 아노락에 백팩을 걸치거나 힙색을 어깨에 두른 패피들의 사진 밑에는 브랜드를 묻는 질문 세례와 함께 조회 수는 또 어찌나 높던지….

바람막이, 플리스 집업 점퍼, 낚시 재킷, 투박한 등산화, 테바 샌들, 패니 백 등 캠핑이나 아웃도어와 관련된 '못생긴 옷들'이 뜨고 있다. 야외 활동을 할 때 먹는 견과류 간식인 그래놀라(Granolas), 귀리(Oats), 건포도(Raisins), 땅콩(Peanuts)의 머리글자를 딴 약자로 '고프코어(Gorpcore)'라고 부르는 이 트렌드는 정장 위에 플리스 점퍼를 입거나 양말에 스포츠 샌들을 신는 등 패션과는 담쌓은 듯 보이는 아이템을 그저 무신경하게 걸쳐 입는 것이 포인트. 언제 어디서나 고기능성 등산복 스타일을 고수하며 눈총 받던 아웃도어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던 시절의 중·장년층의 모습과도 묘하게 오버랩된다.

패션 테러리스트라고 놀림 받던 이 기묘한 아이템들이 패션의 범주로 용인된 것은 콧대 높은 럭셔리 하우스들이 전통을 고수하는 대신 변화와 파격을 주도할 새로운 수장을 내세우고부터다. 발렌시아가가 대표적이다. 스트리트 감성이 짙게 드리운 뎀나 바잘리아가 이끄는 발렌시아가는 2017 F/W 시즌부터 특유의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스타일을 내던진 고프코어 룩의 정석을 보여준다. 말끔한 슈트에 선명한 컬러의 아웃도어 점퍼를 매치하거나, 우아한 드레스에 투박한 플랫폼 클로그를 신은 기묘한 조합을 선보였다. 한술 더 떠 최근 선보인 자신의 브랜드 베트멍의 F/w 컬렉션에서는 청바지를 거꾸로 입고 투박한 운동화를 매치한 뒤 스카프로 목과 머리를 감싼 맥락 없는 스타일로 다음 시즌까지 고프코어 트렌드가 계속 될 것을 예고했다.

빈티지와 클래식을 감각적으로 녹여낸 독특한 디자인으로 '열일' 중인 알렉산드로 미켈레의 구찌도 마찬가지. 2018 프리 폴 컬렉션에서는 광택 있는 화려한 의상에 볼캡과 투박한 양말, 등산화를 짝지은 고프코어 룩으로 정점을 찍었다. 최고급 소재와 장인 정신을 내세워 패션계를 지배해온 럭셔리 브랜드에서 내놓은 전례 없던 룩은 새로운 시대를 자극하며 트렌드를 만들어냈다.



1 다양한 룩에 포인트를 더하는 블랙 볼캡 9만8천원 럭키슈에뜨. 2 컬러 블록이 돋보이는 크록밴드 클로그 5만6천9백원 크록스. 3 시스루 소재의 핑크 컬러 윈드브레이커 가격미정 엠포리오 아르마니.


발렌시아가에서 선보인 이케아 장바구니를 패러디한 백과 양말 그리고 신발을 결합한 삭스 슈즈, 구찌 로고 장식의 패니 백 등 변화된 하이패션 아이템은 패션계의 주류로 성장한 밀레니얼 세대를 장악한 것. 이들의 영향으로 구찌와 발렌시아가는 지난해 영국의 패션 전문 온라인 미디어 BOF(Business of Fashion)와 미국의 쇼핑 검색 플랫폼 리스트(Lyst)가 선정한 가장 인기 있는 브랜드에 나란히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지금껏 눈 흘기며 개탄하던 아재 패션, 그러니까 만장일치 '×표'를 받던 촌스럽고 감각 없는 옷차림이 못생겼다는 이유로 사랑받는 날이 올 줄이야.

아무리 예쁜 것도 오래 보면 식상해져서일까? 좀 더 새로운 이미지에 탐닉하며 개성 표현에 더 후한 점수를 주는 시대다. 자신만의 확실한 개성이 있다면 못생겨도 패셔너블하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말이다. 누가 봐도 멋진 옷 대신 그저 그런 평범한 옷인 놈코어 룩과 운동복 차림의 애슬레저 룩, 어딘지 모자라 보이는 스타일인 너드 룩의 맥락을 이어받아 작정하고 엇나간 룩으로 못생김을 연출한 고프코어가 주목받는 이유다.

하지만 추하게 보일수록 멋져 보인다 해도 동네 백수나 등산복 입은 아줌마처럼 보이는 건 용납할 수 없다. 몸에 완벽히 피트되는 슈트에 윈드브레이커로 포인트를 주거나, 매끈한 라인의 펜슬 스커트에 컬러 톤을 맞춘 양말과 운동화를 고르는 등 사실은 '신경 써 고른' 포멀한 아이템과 고프코어 아이템을 적절히 버무리는 것이 스타일링 비법.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고급 실크 소재의 드레스에 완벽한 재단의 재킷 대신 쨍한 컬러의 윈드브레이커를 걸친 쪽이 훨씬 근사해 보이는 게 요즘이다. 그래서일까? 보기 좋은 떡만 먹기 좋은 게 아니라고 말하며 틀에 박히지 않은 새로운 아름다움을 탐닉하는 이 신박한 트렌드가 점점 더 좋아진다.

CREDIT INFO

에디터
정소나
사진
김정선
사진제공
쇼비트, 럭키슈에뜨, 루이비통, 아디다스 오리지날스, 엠포리오 아르마니, 크록스, MCM
2018년 03월호

2018년 03월호

에디터
정소나
사진
김정선
사진제공
쇼비트, 럭키슈에뜨, 루이비통, 아디다스 오리지날스, 엠포리오 아르마니, 크록스, M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