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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동식 소통

김제동은 ‘분명했다’. 아니다 싶으면 목소리가 커지고, 강자 앞에선 더 날이 선다.

On May 31, 2017

 

사람들이 제 정치 성향을 두고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엔 관심 없습니다. 
민주공화국에서 한 개인이 정치적 성향을 갖는 건 당연하다 생각하고,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니까요. 
국민 개개인이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소신껏 드러내는 게 헌법 정신에 부합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김제동은 꼬장꼬장하지만 밉지 않은 말투를 가졌다. 묵직한 목소리는 아니지만 귀 기울이게 하는 힘이 있다. 에둘러 말하는 법 없이 콕 집어 말하는 습관 덕분에(?) 간혹 오해와 논란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타협’은 없다.
JTBC <김제동의 톡투유-걱정 말아요 그대>(이하 <톡투유>)가 방송 100회를 맞은 날 김제동을 만났다. <톡투유>는 김제동이 국내 곳곳을 다니며 시민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는 프로그램이다. 금세 막을 내릴 줄 알았던 프로그램을 100회까지 이끌고 온 것도 모자라 시청률까지 급상승 중이다. 유명 패널도 없고, 스타 가수도 없지만 그 중심엔 ‘입담꾼’ 김제동이 있다.
“100회라고 해서 특별히 감회가 남다르진 않습니다. 소중한 한 회, 한 회가 모여 100번째 회를 하는 것뿐이에요. 그만큼 제게는 모든 방송이 의미 있고 함께 대화했던 한 분 한 분이 소중하다는 뜻입니다. 거의 모든 사연이 기억에 남아요. 길치라서 힘들어하셨다는 시내버스 운전기사님은 지금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하고, 하교 후 교복 차림으로 친구들과 왔던 학생들도 기억에 남고요. 정규 교육 과정 속에서 공부하고 있지 않지만 예쁜 꿈을 꾸고 있는 친구들의 안부도 궁금합니다. 관심 분야인 아나키스트에 대한 이야기를 해도 되는지 모르겠다고 고민을 털어놓으신 어머니와 아드님도 기억나고요. 그 모자의 이야기는 편집됐는데, 그때도 저는 그렇게 말했던 것 같아요. ‘이야기하는 건 자유니까 편하게 하라’고요. 그러고 보니 그동안 <톡투유>에서 엄청 많은 이야기를 했네요.”


김제동이 이번엔 손석희와의 일화를 꺼냈다. 사실 <톡투유>는 손석희가 탐냈던 프로그램. 전국을 다니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전국 <뉴스룸>’ 같은 걸 기획했던 손석희가 마이크를 김제동에게 넘겼다고 하는데 두 사람이 주고받은 대화 내용이 재미있다.
“손석희 사장에게 최근에 감사하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어요. 프로그램이 100회까지 올 수 있었던 게 모두 본인 덕분인 것 같다고 하시더군요.(웃음) 물론 손 사장의 격려 덕분이지만, 제작진의 공이 99%라면 손석희 사장의 공은 1%입니다.(웃음) 손석희 사장이 ‘사람들의 아름다운 눈빛을 꼭 지켜주고 싶게 만드는 프로그램’이라는 평도 해주셨습니다. 그만큼 우리가 더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말이겠죠.”


사실 김제동은 말을 하는 사람이다. <윤도현의 러브레터>에서 ‘말 잘하는 사람’으로 데뷔해 그동안 <해피투게더> <힐링캠프> 등을 거쳐왔다. 말 한마디로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말 한마디로 박수를 이끌어내고 공감을 얻는 사람이 김제동이다. 이렇듯 말하기 좋아하는 그가 <톡투유>에서만큼은 화자가 아닌 청자가 된다.
“그동안은 제가 참 말이 많았죠. <톡투유>를 하면서 배운 건 말을 줄일 줄 알게 됐다는 겁니다. 지난 몇 달간 광화문 광장 등에서 제일 많이 떠든 놈이 저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적어도 <톡투유>에서만큼은 말을 줄이고 듣는 입장입니다. 듣는 즐거움이 뭔지를 알게 된 것 같아요. 이제는 4시간 동안 말 한마디 하지 않아도 입이 간지럽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있을 때 훨씬 더 많은 게 보이더라고요.”
김제동의 목소리가 커졌다. “사람들이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할 수 있는 공간이 왜 <톡투유>뿐이고, 왜 김제동뿐인지 답답하고 분하다”고 했다.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취지의 말이었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사람들이 왜 광화문 광장에 갔겠어요. 목소리를 내고 싶으니까 간 겁니다. 할 말을 하고 싶으니까요. <톡투유>도 마찬가집니다. 사람들이 모여 주제를 만들고, 그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죠. 제가 완전한 인간이 아니듯 <톡투유>에 오는 분들도 모두 완전한 인간이 아닙니다. 그래서 좋아요. 누가 어떤 이야기를 해도 되니까 ‘이 순간만큼은 천국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하죠. 이곳은 단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불안과 고민을 해소해나가는 곳인데, 혹시라도 제가 초심을 잃고 누군가를 가르치려 할까 봐 조심스럽기도 합니다. 저는 해결책을 제시하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김제동에게 ‘표현’은 시작이고 끝이다. 특정 정치인을 향한 거침없는 발언들, 군 생활 당시 겪은 부조리한 일들에 대한 폭로…. 그에게 ‘말’에 얽힌 일화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몇 차례 구설에 올랐고, 덕분에(?) 몇몇 프로그램에서는 하차해야 했다. 혹자는 그의 이런 행보를 두고 “주목받고 싶어서 하는 행동”이라고 꼬집는가 하면, 혹자는 “사이다 발언”이라고 칭찬하기도 한다.
“사람들이 제 정치 성향을 두고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엔 관심 없습니다. 민주공화국에서 한 개인이 정치적 성향을 갖는 건 당연하다 생각하고, 또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방송인이 매체를 통해 그 성향을 드러내는 게 옳은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각자가 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하고요. 그런데 헌법 어디에도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지 말라고 하는 구절은 없지 않습니까. 오히려 국민 개개인이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소신껏 드러내는 게 헌법 정신에 부합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김제동은 대화 내내 헌법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꺼냈다. “헌법에 그런 내용이 있습니까?” “헌법에서 하지 말라고 합니까?”라고 되묻곤 했다. 헌법에 관한 이야기라면 몇 시간이고 지치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작년에 어떤 판사분이 모 신문에 쓴 헌법과 관련된 칼럼을 보고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어요. 헌법 조문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죠. ‘누구든지’ ‘예외 없다’와 같은 평등을 강조한 표현들이 좋았어요. 특히 37조 1항에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는 내용이 있는데 정말 좋았습니다. 마치 연애편지 같지 않나요? 여기에 적어놓지 않았다고 해서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다라는 뜻으로 들렸죠.”


비교적 솔직하게,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 김제동에게 ‘영창 발언 논란’에 대해 물었다. 김제동이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군 사령관 부인을 아주머니라고 불러 영창에 다녀왔다”고 밝히자 구 새누리당 백승주 의원이 진상 조사를 요청한 사건이다. 당시 김제동의 거짓말 논란으로 번졌고, 김제동은 공식 석상에서 “나를 증인으로 불러 진상 조사를 하라”고 강하게 대응했다. 혹시나 불편해하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자신에 대한 곡해나 오해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에둘러 물었다. 돌아오는 답변이 김제동스럽다.
“돌려 말하지 않겠습니다. 사람들은 제가 거짓말했다고 단정 짓는 것 같은데, 저는 충분히 말해줄 수 있습니다. 물론 만나서 이야기하면 더 자세하게 이야기해줄 수 있겠지요. 결론부터 말하면 영창에 대한 발언은 모두 사실입니다. 그날 그 자리에서 그분들과 무슨 게임을 했는지까지도 정확하게 기억납니다. 거짓말을 한 부분이 있다면 ‘아주머니’라고만 발언한 거예요. 그때 저는 ‘어머니’와 ‘아주머니’를 번갈아 썼던 것 같거든요. 국정감사에서 불러주면 이런 이야기를 다 하려고 했는데 안 불러주더라고요. 언젠가는 꼭 짚고 넘어가고 싶은 부분이었습니다.”
김제동은 억울한 듯 잔뜩 찡그린 표정을 지었다. 한숨을 푹 쉬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저에 대한 판단은 전적으로 보는 사람들의 자유입니다. 저를 오해하시는 것도, 제 의도를 곡해하시는 것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마음속에 저에 대한 이미지를 정해놓고 보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제 이미지를 국한시키다 보면 고정관념이 생길 수밖에 없거든요. 사람들의 반응이 너무 부담스럽게 느껴질 때는 고소나 고발로 조치를 취하고 있어요. 인격 모독 같은 건 용납할 수 없거든요. 저도 저를 지킬 권리가 있지 않습니까? 합법적이지 않은 세력과 타협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가장 궁금한 건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그의 생각이었다. 지난해 겨울,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졌을 때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을 앞장서서 외친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이 구속 수사를 받고 있는 지금 그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조심스러워 보였지만 역시 할 말은 했다.
“사실 저는 박 전 대통령과 소통이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그분의 이야기를 잘 들어보고 싶어요. 그동안 이야기하시는 걸 본 적이 없으니까요. 지금도 하고 싶은 말은 수십 가지 있지만 굳이 말하지 않겠습니다.” 


연예계 대표 노총각으로 꼽히는 김제동은 어느새 투사 이미지를 덧입었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광화문 광장으로 뛰쳐나갔고, 그곳에서도 어김없이 마이크를 잡았다. 촛불집회에 종종 모습을 드러내던 그가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이 결정되던 날에는 정작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헌법재판소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는지 다 지켜봤습니다. 결정이 난 순간, 제 몫이 다 끝난 것 같았습니다. 마지막 촛불집회 위원회에서 참석을 요청해왔지만 거절했어요. 국민이 이룬 성과고 축제의 장인데 제가 공을 받는 게 불편했습니다. 파티에까지 참석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아마 유일하게 나가지 않은 촛불집회일 거예요.”
어쩌면 그가 노총각 딱지를 떼지 못하는 이유가 이런 정치적 행보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과감하고, 도전적이고, 정의 실현을 위해 앞장서는 그의 열정이 누군가에게는 부담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이제는 사람들도 그에게 “결혼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치를 하라”고 등을 떠미는 분위기다.
“투사 이미지가 강해서 결혼 이야기가 쏙 들어간 게 아니고요, 이제 사람들이 지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생각보다 제 결혼에 관심이 없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결혼 안 하신 분도 많습니다. 마치 결혼이 정규 교육 과정인 것처럼 그려지는 분위기인데, 결혼을 안 하면 안 되는 것처럼 이야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알아서 잘 하겠습니다.(웃음)”
떠나는 김제동에게 다시 한 번 물었다. “그래서 언제쯤 결혼 소식을 들을 수 있을까요?” 그가 새초롬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제가 알아서 한다니까요!” 그다운 우문현답이다.

CREDIT INFO

에디터
이예지
사진제공
베이직하우스, JTBC
2017년 05월호

2017년 05월호

에디터
이예지
사진제공
베이직하우스, JT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