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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횡단열차와 겨울 바이칼 탐방 여행’을 위한 사전 브리핑 ➎

시베리아의 푸른 눈 '바이칼 호'의 겨울 풍경

On February 20,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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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칼 호 사자바위 빙상 투어.

바이칼 호 사자바위 빙상 투어.


바이칼의 겨울은 2월이 절정
바이칼 호수의 겨울은 2월이 절정이다. 절정이란 말은 2월에 얼음이 가장 두껍게 언다는 뜻이다. 기온은 1월이 연중 가장 낮지만 얼음의 두께는 2월에 최고에 달한다. 물의 양이 많아 어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호수에 파도가 치는 것도 한 이유다. 얼음의 두께는 보통 40㎝~1m가량인데, 위치에 따라 1.5m 두께로 어는 곳도 있다.
바이칼 호 인근 이르쿠츠크의 기온을 보면 1월의 평균 최저/최고 기온은 영하 23℃/영하 13℃, 2월은 영하 22℃/영하 10℃다. 3월부터 기온이 올라가지만 얼음은 5월이 되어야 다 녹는다. 호수 북쪽에서는 6월 초순까지도 얼음을 볼 수 있다.

호수가 얼기 시작해 얼음 위로 차가 다닐 때가 되면 얼음길 위에 무게와 속도 제한을 나타내는 붉은색 둥근 테의 교통 표지판이 세워진다. 우리가 흔히 도로에서 보는 것이다. ‘10/10’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는데 10t 이하의 차량만 다닐 수 있고, 시속 10㎞ 이하의 속도로 다니라는 표지다.

세계에서 가장 깊고 물이 많은 호수
‘바이칼’이란 말은 부랴트인의 언어인 타타르어로 ‘풍요로운 호수’라는 뜻이다. ‘샤먼의 바다’라는 의미도 있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바이칼 호를 ‘북해(北海)’라고 불렀다. 바이칼 호수는 세계 담수의 20%를 저장하고 있는 거대 호수다. 또한 40m 깊이까지 들여다볼 수 있을 정도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투명도를 갖고 있다.

담수 호수의 표면적만으로 볼 때는 캐나다와 미국에 걸쳐 있는 오대호 중 하나인 슈피리어 호가 가장 넓지만 바이칼은 수심이 워낙 깊어서 담수량 면에서 세계 최대다(주 : 슈피리어 호–면적 82,367㎢, 평균 수심 147m, 최고 수심 406m, 수면의 해발 고도 183m. 바이칼 호–면적 31,494㎢, 평균 수심 730m, 최고 수심 1,637m, 수면의 해발 고도 435m). 표면적은 슈피리어 호가 2.6배가량 넓지만 담수량은 바이칼 호가 슈피리어 호의 약 두 배다. 바이칼 호의 표면적은 남한 면적 99,720㎢의 약 3분의 1에 달한다.

소금 호수를 포함해 호수의 크기를 말한다면
1 카스피 해(염호), 2 슈피리어 호(담수호), 3 빅토리아 호(담수호), 4 아랄 해(염호) … 8 바이칼 호 순이다. 바이칼 호는 육지와 육지 사이에 깊숙이 박아놓은 쐐기 같은 모양이다. 길이 636㎞, 최장 너비 70㎞, 최단 너비 27㎞로 한 시 반 방향으로 길쭉하다. 이르쿠츠크에서 65㎞가량 떨어져 있는 바이칼 호수 변의 리스트비얀카라는 곳에 가면 바이칼 호수 생태 박물관이 있다. 이곳에서 호수의 단면도를 보면 호수 속의 지형을 짐작할 수 있다.  

훈제 오믈.

훈제 오믈.

훈제 오믈.

바이칼 호 생태 박물관의 네르파 얼음집 모형.

바이칼 호 생태 박물관의 네르파 얼음집 모형.

바이칼 호 생태 박물관의 네르파 얼음집 모형.

바이칼 호 얼음길 위의 교통 표지판 옆에 선 필자.

바이칼 호 얼음길 위의 교통 표지판 옆에 선 필자.

바이칼 호 얼음길 위의 교통 표지판 옆에 선 필자.

바이칼 호 알혼 섬의 통나무집.

바이칼 호 알혼 섬의 통나무집.

바이칼 호 알혼 섬의 통나무집.

바이칼의 명물, 오믈
바이칼 호에는 이곳에서만 사는 고유의 생물이 많다. 호수 속에는 52종의 어류가 사는데 이 중 27종이 고유종이며 가장 유명한 것이 연어과에 속한 ‘오믈(omul)’이다. 연어과라고는 하지만 연어처럼 크지는 않고 중간 크기의 고등어나 청어만 하다. 맑은 대구탕처럼 끓여서 먹고 튀겨 먹거나 구워 먹기도 하는데 훈제 오믈이 가장 인기라고 한다.

2013년 가을, 이르쿠츠크에서 포트 바이칼까지 가는 바이칼 관광열차를 처음 탔을 때 내 앞자리에 젊은 러시아 여인 두 명과 여자 어린이 하나가 앉았다. 두 여인은 자매고 어린이는 언니의 딸이었다. 기차가 출발한 후 한참 지났을 때 그들은 갖고 온 훈제 오믈을 꺼내놓고 먹기 시작했다. 지켜보니 목 부분부터 껍질을 쓱 벗겨 속살을 맛있게 먹었다. 껍질은 손끝에서 쉽게 벗겨졌다.

조금 후에 보니 열차 안에서 승무원 복장을 한 여자가 훈제 오믈을 들고 다니며 팔았다. 크지 않은 것이었는데 한 마리에 100루블이라고 했다. 2013년 당시 루블 환율은 1:33으로, 2017년 1월 현재의 환율인 1:19보다 두 배(1.7배) 가까이 되던 때다. 1:33이면 우리 돈 3,300원쯤 되는 셈이니 싼 편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현재 환율로는 1,900원인 셈이다.

자매 중 동생이 영어를 좀 할 줄 알아 몇 마디 나누었다. 호주에 가서 1년 반가량 젖소 농장에서 축산 공부를 했다는 그녀는 이르쿠츠크 인근에 산다고 했다. 자기는 훈제 오믈을 가장 좋아한다며 지역의 특산물이라고 할 수 있는 오믈을 자랑했다. 바이칼 호 주변 지역에 사는 러시아인들에게 오믈은 가장 흔하고 친근한 생선이다.같이 간 한국 여행객 중에도 훈제 오믈을 사 먹은 이들이 있었는데, 비릿한 냄새 때문인지 여자들은 대개 입에 대지 않았다. 나는 먹는 데 별 저항을 느끼지 않았다.

바이칼 물범, 네르파
또한 바이칼 호에만 사는 고유종의 하나로 ‘바이칼 물범’으로 불리는 네르파를 빼놓을 수 없다. 민물 물범인 네르파는 몸길이 1.1~1.4m, 무게 50~130㎏으로 조금 작은 물범인데 이 호수 북쪽에 약 6만 마리가 서식한다고 한다. 수명이 길어 50년 넘게 사는 네르파가 관찰되기도 한다. 다양한 물고기를 먹고 살지만 주식은 ‘갈랴만까’라는 바이칼 호에서만 사는 어종이다.

갈랴만까는 몸길이가 15~20㎝가량이고 수온이 낮은 수심 200~500m 지점에 서식한다. 그래서 어부들의 그물에는 잘 잡히지 않는다고 한다. 비타민 A가 풍부한 지방이 몸 전체의 30%에 달해 햇빛을 받으면 뼈와 가시만 남고 녹아 없어지는 특이한 물고기다.

네르파는 새끼 때는 흰색이었다가 자라면 회색이 섞인 짙은 밤색으로 변하는데 겨울에는 얼음 속에 집을 짓고 산다. 주로 바이칼 호 북쪽 무인도 주변에 집단으로 서식하기 때문에 사람에게 발견되는 일은 매우 드물다. 여름철이 되면 간혹 바이칼 호 중간쯤에 위치한 알혼 섬 인근까지는 내려오는 일이 있다. 이곳 주민들 중에서도 네르파를 직접 본 사람은 흔치 않아서 바이칼 호 원주민들은 네르파를 본 것만으로도 운이 좋을 징조로 여긴다고 한다.

이르쿠츠크에서 가장 가까운 바이칼 호수 마을인 리스트비얀카의 바이칼 호수 생태 박물관에 가면 수족관에 있는 두 마리의 네르파를 볼 수 있다. 물속의 네르파는 몸이 풍선같이 부풀려진 것처럼 보였다. 네르파가 겨울을 나는 얼음집의 모형도 볼 수 있다. 러시아 정부는 네르파를 멸종위기종으로 분류해 엄격하게 보호하고 있다.

바이칼 호 빙원 위에 솟아 오른 얼음 조각들.

바이칼 호 빙원 위에 솟아 오른 얼음 조각들.

바이칼 호 빙원 위에 솟아 오른 얼음 조각들.

빙상 투어 중 얼음 위의 오찬.

빙상 투어 중 얼음 위의 오찬.

빙상 투어 중 얼음 위의 오찬.

바이칼 호의 유명한 샤먼 바위인 부르한바위.

바이칼 호의 유명한 샤먼 바위인 부르한바위.

바이칼 호의 유명한 샤먼 바위인 부르한바위.

우아직을 타고 얼어붙은 바이칼 호수 위를 달려가며 경험하는 빙상 투어.

우아직을 타고 얼어붙은 바이칼 호수 위를 달려가며 경험하는 빙상 투어.

우아직을 타고 얼어붙은 바이칼 호수 위를 달려가며 경험하는 빙상 투어.

한민족 시원설의 근거는?
바이칼 호와 관련해 언제나 빠지지 않는 얘기 중 하나가 한민족(韓民族) 시원설이다. 한민족의 뿌리가 이곳에 있다는 것인데, 이 같은 바이칼 호 한민족 시원설은 과연 근거가 있는 것인가?
이 시원설은 한민족과 같은 몽골로이드 계통 민족의 발원지가 바이칼 호수 주변이라는 설(추측)에서 기인한다. 오래전 바이칼 호 주변은 지금처럼 춥지 않아서 고대 인류가 곳곳에 부족을 이루고 살았으나 신석기시대에 기후 변화로 인해 이 지역에 살던 고아시아족의 일부가 만주를 거쳐 한반도까지 내려왔다는 것이다.

아메리칸 인디언의 조상이 시베리아에서 건너간 몽골족의 일파라는 설이 오래전부터 잘 알려 진 것처럼 바이칼 호 주변이 세계 여러 민족의 발원지라고 보는 이들이 많다. 교육방송 EBS가 2005년 10월 3일 방영한 <한민족 뿌리 탐사, 바이칼을 가다>를 보면, DNA 등 유전적 계보에 있어서 바이칼 호 주변에 사는 몽골족의 일파인 부랴트족과 한민족이 유사점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방송의 내용은 부랴트족과 한국인, 일본인이 인종적으로 비슷하다는 내용이다.

우리나라 학자들이 오래전부터 바이칼 호 주변에 주목하는 것은 인종적 특징 외에도 샤머니즘적 관습과 설화의 유사성 때문이다. 돌무덤과 솟대, 오색 천들로 꾸며진 우리나라의 성황당과 유사한 세르게(몽골에서는 어워) 같은 것들이 이 지역 샤머니즘의 특색을 이룬다. 인당수에 몸을 던진 효녀 심청의 이야기라든지 선녀와 나무꾼의 설화가 이곳에서도 거의 비슷한 내용으로 구전되어 내려온다. 다만 선녀와 나무꾼은 ‘선녀와 사냥꾼’으로 내용이 조금 다를 뿐이다.

효녀 심청의 설화와 비슷한 이 지역의 설화는 다음과 같다. 바이칼 호 알혼 섬 근처에 물결이 거친 곳이 있는데 예로부터 이곳을 지나는 상인들이 항해의 안전을 빌기 위해 때때로 처녀를 희생 제물로 바쳤다. 그런데 제물로 호수에 빠진 한 처녀가 금빛 비늘을 가진 물고기로 환생해 신들의 세계인 바이칼 호에서 살게 되었다는 전설이다.

선녀와 사냥꾼의 설화는 우리의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와 매우 비슷하다. 옛날 옛적에 한 사냥꾼이 알혼 섬에서 바이칼 호수에 내려앉는 백조들을 발견했다. 그런데 이 백조들이 호수에 내려앉자마자 아름다운 처녀로 변하더니 옷을 벗고 목욕을 하는 것이 아닌가? 숨어서 몰래 이 광경을 보던 사냥꾼은 처녀들의 아름다움에 반해 한 처녀의 백조 옷을 감추었다. 이 처녀는 하늘로 돌아가지 못하고 사냥꾼과 결혼해 11명의 자녀를 낳아 길렀다. 이 11명이 부랴트족의 선조가 된다. 그런데 행복하게 살던 어느 날 아내가 사냥꾼에게 백조 옷을 한 번만 입게 해달라고 조른다. 사냥꾼은 이제 나이도 들었고 아이가 11명이나 되는데 무엇이 걱정이랴 생각하고 아내에게 숨겨두었던 옷을 내준다. 옷을 입은 아내는 백조로 변했고 연기가 빠져나가는 유르타(부랴트족의 천막처럼 생긴 통나무집)의 천장 구멍을 통해 하늘로 날아가버렸다는 설화다.

한편, 바이칼 호 주변이 고구려 민족의 원조인 코리몽골족의 발상지라는 주장도 있다. 바이칼 호 인근의 코리족의 일파가 동진하여 부여족과 고구려족의 시조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동몽골 지역에 전해 내려오고 있다는 어느 학자의 조사 결과도 있다. 어느 것도 정설은 아니지만 관련성을 무시할 수도 없다.

살아 있는 철도 박물관, 환바이칼 관광열차 구간
‘환바이칼 관광열차’라는 게 있다. 한국식 이름이다. 이름만 들어서는 바이칼 호수를 한 바퀴 도는 열차로 착각하기 쉽지만 사실 호수 서쪽 일부 구간을 운행하는 관광열차로, 원래는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한 구간이었다. 영어로는 ‘Circum-Baikal Railway’다.

1950년대에 바이칼 호수의 물이 북극해로 빠지는 앙가라 강에 수력발전용 댐을 건설하면서 이르쿠츠크에서 앙가라 강을 따라 바이칼 호 입구의 포트 바이칼 역에 이르는 철로가 물에 잠기게 되었다. 그래서 횡단철도의 노선이 바뀌었다. 그 때문에 잠기지 않은 서쪽 구간은 자연 폐선로가 되었는데 바이칼 호수 변의 옛 철로를 지나면서 보는 풍광이 워낙 아름다워 찾아오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관광열차가 운행되기 시작했다.

현재 환바이칼 관광열차가 운행되는 구간은 포트 바이칼 역에서 슬류지얀카 역까지로 길이는 약 100㎞다. 수준급의 최신형 관광열차로 단장한 것은 근년의 일이다. 슬류지얀카 역과 포트 바이칼 역 사이에는 현재 통근 열차가 정기적으로 운행되고 있다. 이르쿠츠크 역에서 슬류지얀카 역을 거쳐 포트 바이칼 역까지 운행되는 관광열차는 ‘바이칼 익스프레스’라고도 불린다. 익스프레스라고 하지만 관광열차가 이동하는 호수 변 구간의 속도는 시속 20㎞. 중간 중간 걷기도 하고 휴식도 취한다.

러일전쟁 발발 직후인 1904년 2월, 얼음 위에 깔린 레일 위의 화차를 말이 끌고 있다.

러일전쟁 발발 직후인 1904년 2월, 얼음 위에 깔린 레일 위의 화차를 말이 끌고 있다.

러일전쟁 발발 직후인 1904년 2월, 얼음 위에 깔린 레일 위의 화차를 말이 끌고 있다.

빙상 투어를 하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시베리아의 미녀.

빙상 투어를 하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시베리아의 미녀.

빙상 투어를 하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시베리아의 미녀.

러일전쟁 중에는 얼음 위에 레일 깔아 운행하기도
모스크바에서 이르쿠츠크까지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연결된 것은 1898년. 이듬해 1899년에는 이르쿠츠크에서 바이칼 호 입구 포트 바이칼 역까지의 철로도 완공되었다. 호수 반대편에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작된 철도가 탄호이까지 연결돼 있었다. 바이칼 호수는 동쪽의 블라디보스토크와 서쪽의 모스크바에서 시작된 횡단철도의 중간 연결 지점이었다. 그런데 호수 서북쪽 포트 바이칼 역에서 건너편 탄호이까지 호수 서쪽을 돌아 철로를 연결하는 공사가 험난한 지형 때문에 속도를 내지 못했다.

가파른 경사면과 돌출된 절벽, 바위 무더기, 호수로 이어지는 수많은 골짜기 등으로 철로를 놓기에는 부적합했지만 러시아의 최고 전문가와 외국(이탈리아, 알바니아, 그리스, 터키, 오스트리아, 일본, 중국 등)의 기술자들을 불러들이고 시베리아 유형수들까지 공사에 동원해 마침내 1905년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연결 부분 260㎞(포트 바이칼~미소바야 구간)를 완공했다. 비용도 다른 노선 평균에 비해 2.5배가량 들어갔다. 그래서 환바이칼 철도 구간을 두고 ‘러시아의 철제 혁대에 물린 황금 버클’ 또는 ‘황금 걸쇠’라고 부르기도 했다.

양쪽의 철로가 연결되기 전인 1900년부터 1905년까지는 바이칼 역에서부터 호수 건너편에 있는 미소바야 역까지 배에 레일을 깔아 열차를 싣고 다닐 수 있는 ‘열차 페리’를 운행했다. 당시로선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쇄빙선인 ‘바이칼호’가 호수로 들어왔다. 영국에서 제작된 ‘열차 페리’였다. ‘바이칼호’가 호수를 건너는 데 보통 3시간 반 정도 걸렸다고 한다. 쇄빙선이어서 얼음 두께 70㎝까지 깰 수 있었지만 그 이상일 때는 운행하지 못했다. 그럴 때는 얼음 위로 마차를 이용해 승객과 짐을 반대편 역까지 옮겼다.

그러던 중 1904년 2월 러일전쟁이 터졌다. 일본은 러시아가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완공하고 나면 전쟁에 이기기 어렵다고 보고 서둘러 전쟁을 일으켰던 것이다. 다급해진 러시아는 1904년 2월 28일부터 3월 25일까지 약 한 달간 포트 바이칼에서 건너편 최단거리에 있는 탄호이까지 40㎞의 바이칼 호수 얼음 위에 레일을 깔고 열차를 운행한 일도 있었다. 얼음 위 레일의 기관차와 객차, 화차는 각각 분리하여 말이 끌었다. 기관차는 무게 때문에 대차를 분리하여 이동시켰다. 그러나 무게 때문에 얼음 아래로 가라앉은 기관차도 있었으며 그 장면이 사진으로 남아 있다.

결국 일본의 예측대로 전쟁은 시베리아 횡단열차 완공(1905년 10월) 전에 일본의 승리로 끝났다. (일본은 러일전쟁 기간 중 러시아 함대를 감시하기 위해 울릉도와 독도 등에 망루를 세웠고, 이때 독도를 시마네 현에 편입시켰다. 일본의 독도 침탈은 바로 러일전쟁을 치르기 위한 필요성 때문이었다.)

당시 바이칼 호수에는 기차를 실어 나를 수 있는 쇄빙선 바이칼호와 일반 여객 화물선 앙가라호 등 두 대의 대형 선박이 호수 양쪽을 오가며 운행됐는데, 바이칼호는 내전 때인 1918년 백군에 가담했던 체코군이 쏜 포에 맞아 침몰됐고, 앙가라호는 화를 면해 현재 이르쿠츠크 인근 앙가라 강변에서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역사적 유적지가 된 관광열차 구간
환바이칼 관광열차 구간에는 39개의 터널(당초에는 40개)을 비롯해 교량 등 400여 개의 구조물이 있다. 모든 토목 구조물이 석재와 금속으로 건설되었는데 터널 공사는 모두 수작업으로 이뤄졌다.

터널을 뚫고 폭파하는 과정에서 중상자들과 사망자들도 많이 나왔다. 강추위 속에서 교각 공사를 하다가 미끄러져 떨어져 사망한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이 구간을 ‘가장 큰 공동묘지’라고 부르기도 했다. 지금은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닌 예술적 구조물들로 인해 역사적·건축학적 유적지라고 불리며 살아 있는 철도 박물관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며 철로를 따라 트레킹을 하는 사람도 많다. 철도를 놓으면서 이 구간의 강어귀, 계곡, 호숫가 등에서 21개의 고고학적 현장이 발견되기도 했다.

알혼 섬과 빙상 투어
바이칼 호수의 26개 섬 중 유일하게 사람이 사는 섬인 알혼 섬은 면적 730㎢로 크기가 제법 크다. 우리나라 울릉도(72㎢)의 10배, 제주도(1,847㎢) 40%의 크기다. 알혼 섬에 도착한 다음 날에는 사륜구동차인 우아직을 타고 신령한 바위로 알려진 부르한바위를 거쳐 사자바위 등이 있는 알혼 섬 서쪽의 얼어붙은 호수 위로 섬 북단 하보이곶까지 둘러보는 빙상 투어를 하게 된다.

같은 호수 위지만 얼음이 투명한 곳도 있고, 눈에 덮인 곳도 있으며, 깨진 유리창 또는 상어 이빨 같은 커다랗고 뾰족한 얼음 조각이 삐죽삐죽 길게 늘어선 곳도 있다. 깎아지른 절벽으로 된 하보이곶 아래는 겨우내 쌓이면서 조금씩 녹은 눈이 군데군데 커다란 고드름 동굴을 만들어놓아 장관을 이룬다. 대개 이곳의 얼음 위에서 간단한 점심 식사를 하게 된다. 이때 얼음 위에 장작으로 작은 불을 피우고 차를 끓이는데 그렇게 끓인 차 맛 또한 일품이다. 광활한 바이칼 호수 위의 빙상 투어는 어느 곳에서도 맛보지 못하는 겨울 바이칼 투어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 3월호에는 <우먼센스> 주최로 2월 10일부터 7박8일간 진행되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로 가는 얼음왕국 바이칼 탐방 여행’의 이모저모를 사진 화보로 실을 예정이다. 이어 4월호부터는 7월 22일 출발하는 ‘몽골-바이칼 여름 특선 여행(7박8일)’을 위한 사전 지면 브리핑이 이어지며 3월과 4월에 걸쳐 ‘몽골-바이칼 인문 및 여행지 설명회’를 서울문화사 별관 강당에서 개최할 계획이다

  • 여행 문의 및 예약 
  • 바이칼BK투어(주) 02-1661-3585

CREDIT INFO

취재·사진
이정식(<우먼센스> 발행인)
2017년 02월호

2017년 02월호

취재·사진
이정식(<우먼센스>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