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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봉사상 대상 수상자 조원숙 씨

봉사하면서 내 마음이 씻김 받는 기분

4천5백30명. 조원숙 씨가 10년 동안 공들여 씻긴 환자의 수다. 2006년부터 무연고 환자들에게 무료 목욕 봉사를 해온 그녀의 노고에 서울시는 올해의 봉사상 대상 수여로 존경을 표했다.

On December 26,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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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016년 서울시 봉사상 시상식이 열렸다. 소외된 이웃과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꾸준히 봉사하는 시민과 단체를 대상으로 한 시상식은 1989년부터 28년째 이어져오고 있다. 올해의 상은 어려운 이웃 수백 쌍의 무료 결혼식을 진행하고 수재민·이재민에게 무료 급식 봉사를 한 70대 이은홍 씨, 소외 어르신에게 봉사활동으로 웃음을 찾아준 헬스리더 봉사단 등 총 21명의 시민과 단체에게 돌아갔다. 서울 본사랑교회 담임이자 교회공익실천협의회 대표인 김화경 목사의 아내 조원숙(57세) 씨는 수상자 중 단 한 명에게 주어지는 대상을 받았다. 대상이 봉사의 가치에 순위를 매긴 결과는 아니겠지만, 적어도 노고의 크기를 가늠하는 기준은 될 것이다. 제 한 몸 챙기기도 바쁜 각박한 시대에 10년간 5천 명에 가까운 이들을 정성껏 씻긴 이의 넉넉함은 어느 정도인 걸까? 조원숙 씨를 직접 만나보았다.

서울시 봉사상 대상을 수상한 소감이 어떤가요?
실감이 잘 안 났어요. 처음에는 봉사 대상자들이라는 줄 알고 그냥 “아, 네에.” 그랬죠. 너무 덤덤하니까 전화하신 분이 재차 말씀하시더라고요. “이거 서울시에서 한 명만 드리는 대상입니다.” 믿어지지가 않다가 곧 부끄러웠어요. 제가 무슨 수고를 했다고…. 지금도 그래요. 저보다 묵묵히 봉사하시는 분도 많은데 인터뷰까지 하려니 쑥스럽네요.

서북병원에서만 10년 동안 계속해서 봉사를 해오신 건가요?
네. 10년 전 샘물교회에서 호스피스 교육을 받았는데 첫 봉사 장소가 바로 서북병원이었어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원래 호스피스 교육을 받았는데 목욕 봉사를 하시게 된 계기가 있나요?
막상 서북병원에 가보니 호스피스 봉사자는 꽤 많은데 목욕 봉사자가 부족하더라고요. 서북병원이 시립이라 무연고 환자가 많아요. 보호자가 없으니 당연히 씻길 인력도 부족했던 거죠. 게다가 목욕이 힘든 일이라 한 분당 네 명은 있어야 수월하거든요. 그래서 저와 같이 배치받은 분들 중 네 명이 한 조로 목욕 봉사를 자원하게 됐어요. 저는 시아버님이 뇌졸중으로 누워 계실 때 시어머님을 도와서 몇 년간 목욕을 시켜드린 경험이 있어요. 정말 힘든 일이라는 것도 잘 알기 때문에 더 경험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10년 전, 봉사를 시작하신 이유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그때가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어요. 교회는 개척한 지 얼마 안 돼 성도는 적고, 벌이는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상황에서도 남편은 목사 일 말고도 교회공익실천협의회 일 때문에 바쁘니, 몸도 마음도 좀 지쳐 있었어요. 그때 진지하게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더군요. 내가 어느 날 갑자기 죽는다 생각하고 인생을 돌아보니 이 땅에서 한 일이 전혀 없는 거예요. 최소한 뭔가 하나라도 의미 있는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신문에서 호스피스 봉사 안내 기사를 보게 된 거죠.
 

가뜩이나 힘들 때 봉사로 돌파구를 찾는다는 게 참 어려운데 그걸 해내셨네요.(웃음)
남편 영향도 좀 있었어요. 남편이 봉사하는 교회공익실천협의회가 교회의 불법이나 불의를 퇴치하고자 하는 곳이거든요. 교회에도 숨은 비리가 많은데 개선하는 건 어려워요. 남편은 여러 곳에서 힘든 싸움을 하느라 바쁜데 저만 무기력하게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죠. 제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고 시작한 게 목욕 봉사였어요.

목사님은 열혈 행동파이신가 보군요?(웃음) 그래서 봉사를 시작하고 상황에 변화가 있었나요?
무기력증에 우울증까지 있었는데 봉사를 시작하고 나서는 누군가를 돕는 일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는 거예요. 육체적으로는 힘들어도 신이 나고 보람도 컸어요. 환자분들이 감사해하는 걸 보면서 저도 감사했고요.

혹시 중간에 그만두고 싶은 적은 없으셨나요?
왜 없었겠어요.(웃음) 젤 어려운 게 저희 집에서 서북병원을 가려면 차를 세 번이나 갈아타야 하는 거였어요. 몸이 정말 힘들 때는 가기 싫은 적도 많았죠. 근데 안 가면 다른 사람이 고생하니까…. 같이 하는 봉사다 보니 누가 빠지면 그만큼 다른 사람들이 힘들어져요. 서북병원 봉사자협회 회장님이 저랑 같은 봉사조인데 봉사자들을 직접 차에 태우고 다니세요. 저도 도움을 받고 있고요. 그런 분이 상을 받으셔야 하는데…. 제가 더 부끄럽지요.

그동안 돌보신 환자 중에 특별히 인상적이었던 분이나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나요?
할머니 한 분이 계셨어요. 치매 환자셨는데 언제나 생글생글 웃는 얼굴이셨죠. 그분을 보는 모든 사람이 기분이 좋아지는 미소였어요. 지금도 그분을 떠올릴 때마다 그 미소가 생각나며 저도 모르게 웃게 돼요. 반대로 폭력적인 분들도 계세요. 원래 성격이 아니라 병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거라 가슴이 아프죠. 저는 여자라서 주로 머리 쪽을 씻기는데 환자분이 갑자기 팔을 휘두르거나 할 때 그냥 얻어맞는 일도 종종 있어요. 지금은 피하는 요령도 많이 생겼답니다.(웃음)

봉사를 언제까지 할 생각인지 계획이 따로 있으신가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작은 정성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어요. 몸을 깨끗이 한다는 게 정화의 의미도 있는 거라 저도 함께 치유받는 느낌이 들거든요. 의식을 잃어가는 환자분이 저희가 씻겨드린 다음 날 돌아가셨을 때는 마지막 가는 길을 정화시켜드린 거라고 스스로 위로도 하고요. 언젠가는 저도 이분들과 같은 상황이 올 거란 생각도 하죠. 노화나 병이라는 게 맘대로 조절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마음을 단련하는 거죠.

마지막으로 여쭐게요. 봉사란 어떤 의미일까요?
봉사는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 하는 거 같아요. 예전에는 봉사하시는 분들이 그렇게 이야기할 때마다 형식적인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제가 해보니 그 얘기가 진리였어요. 봉사를 하면 정말로 제 마음이 편하고 기쁘거든요.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고, 또 즐거운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CREDIT INFO

취재
김선영(프리랜서)
사진
민기원
2016년 12월호

2016년 12월호

취재
김선영(프리랜서)
사진
민기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