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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윤의 길

지난해에 만난 이상윤은 상냥하고 똑똑했다. 일 년 만에 다시 만난 그에게서 그땐 미처 몰랐던 깊이가 느껴졌다.

On November 11, 2016

 


“나이를 먹을수록 깊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일 년 전, 그러니까 tvN 드라마 <두번째 스무살>을 막 끝낸 이상윤은 이렇게 말했다. 20대를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30대가 달라지고, 30대를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40대의 삶이 결정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그는 어떻게 나이 먹을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악역을 맡고 싶다”고 했던 그가 일 년 만에 선택한 작품은 KBS2 <공항 가는 길>이다.

이번 드라마에서는 <두번째 스무살>의 ‘츤데레’ 순정남과는 사뭇 다른 유쾌하고 반듯한 성격의 캐릭터 ‘서도우’를 맡았다. 아내, 딸과의 단란한 가정생활 중 충격적인 사건을 계기로 혼돈에 빠지는 그 앞에 나타난 ‘최수아(김하늘 분)’로 인해 인생에 변화가 생기는 인물이다. ‘이상윤표 악역’을 기대했던 기자에게는 다소 밋밋한 결과지만 아무렴 어떠랴. ‘여심 스틸러’ 이상윤의 컴백은 누구보다 반갑다.

<공항 가는 길>은 로맨스와 불륜의 기로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드라마다. 결혼한 두 남녀가 ‘서로에게 바라지 않기’ ‘만지지 않기’ ‘헤어지지 않기’를 약속하지만 거부하려야 거부할 수 없는 서로를 향한 강렬한 이끌림을 드라마틱하게 그려내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 방송 전 만난 이상윤은 그동안 보여준 키다리 로맨스와는 차원이 다른 로맨스를 연기할 생각에 들뜬 모습이었다. 업그레이드된 ‘이상윤표 멜로’를 기대하라고 말하는 그의 눈빛이 ‘악역’을 찬양하던 그때보다 더 빛났다.

“지금까지는 주로 가방끈이 긴 역할을 맡았어요. 실제 저는 굉장히 소탈하고 친근한데 말예요. 악한 역할도 해보고 싶어요. 욕심도 나고요. 그런데 이번에도 로맨스 드라마네요.(웃음) 많은 분이 ‘이번에는 어떤 멜로를 보여줄 거냐’고 물어요. 솔직히 고민이 많았습니다. 한 살 더 먹었고 그 사이에 생각보다 많은 인생 경험도 했어요. <공항 가는 길>의 ‘서도우’는 현실에는 없을 것 같은 아름다운 사랑을 꿈꾸는 인물이에요. 그래서 지난 일 년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감성 표현에 집중하려고 해요. 자연스러움 속에 멋이 있는, 더 깊어진 멜로를 보여주려고 합니다.”

“악역을 연기해보고 싶다”던 그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심지어 딸도 생겼다. 결혼한 여자가 전남편과 낳은 아이의 따뜻하고 자상한 새아빠다. 이상윤에게는 낯설 수밖에 없다.
“아빠 역할은 처음이에요. ‘아이를 잃은 새아빠’라는 설정이 이 드라마에서, 또 제 캐릭터의 감정선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고민을 많이 했어요. 실제로 딸이 없다 보니 간접 경험을 통해 감정을 이해하려고 했죠. 주변 사람들이 자식을 대하는 모습과 자식을 통해 느끼는 감정을 보고 들으면서 저만의 감정으로 소화하려고 했어요. 제 부모님을 떠올리기도 했고요.”

동시간대에 방송 중인 SBS <질투의 화신>, MBC <쇼핑왕 루이>와 경쟁을 부추기는가 하면 경쟁작의 주인공인 조정석, 서인국과 비교하는 미디어 틈에서 스스로 중심을 지키려고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시청률이라는 숫자보다 자기만의 색깔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저희 작품이 유독 좋은 작품이라고 말할 순 없죠. 모든 작품에 제작진과 스태프, 배우들의 공이 들어갈 테니까요. 다만 드라마의 색깔, 캐릭터의 색깔로 차별화가 될 거 같아요. <질투의 화신>과 <쇼핑왕 루이>가 톡톡 튀는 밝은 느낌이라면 저희는 따뜻한 느낌이죠. 제가 맡은 캐릭터도 그들과는 다르게 차분하죠.”

‘차별화 전략’의 결과는 성공적이다. 시청자는 이상윤의 연기 변신에 박수를 보냈고, 아련한 눈빛으로 연기하는 진한 멜로에 ‘심쿵’하고 있다. 김하늘과의 케미는 기대 이상이다. 결혼한 두 남녀가 서로에게 이끌리는 아슬아슬한 상황을 숨을 멈추고 보게 되는 것, 망 봐주고 싶을 정도로 아름답게 그려지는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 이상윤은 이 모든 게 “대본의 힘”이라고 말했다.

“데뷔한 지 10년 됐지만 쪽대본 현장이 아닌 경우는 처음이에요. 시청자의 반응에 따라 대본이 수정되기도 하고 흐름이 바뀌기도 하던 전작들과는 확실히 다릅니다. 첫 촬영 때부터 6부 최종본이 나왔을 정도로 탄탄하게 구성되었죠. 갑작스럽게 해외 촬영을 해야 할 때는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을 분명히 알고 연기할 수 있기 때문에 좋아요. 그래서 보는 분들도 흐름을 잘 따라오는 것 같고요.”

이상윤의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던 김하늘이 말을 보탰다. 차분하고 다소곳한 목소리가 드라마 속 ‘최수아’와 똑같았다.
“처음에 대본을 받았을 때는 ‘이런 감정을 내가 잘 소화할 수 있을까’ 싶었어요. 상대 배우와의 합도 중요했고, 잘못하면 시청자가 공감할 수 없는 짙은 농도의 대사가 많았죠. 다행히 대사, 연출, 연기라는 작품에 필요한 삼박자가 잘 맞아 떨어지는 것 같아요.”

이상윤은 애드리브를 즐기는 배우는 아니다. 대본에 충실한 배우다. 작가가 두 손 두 발 다 들 정도로 열정적으로 대본을 분석하고 상대 배우와 합이 맞을 때까지 연습, 또 연습하는 연습벌레다. 드라마 촬영 현장을 찾았을 때, 기자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리허설에 매진하는 그를 볼 수 있었다.

“그동안 맡았던 역할들이 워낙 차분하고 반듯했기 때문에 애드리브를 할 만하지 않았어요. 드라마 <라이어 게임>에서 만났던 조재윤 형님처럼 애드리브로 작품을 풍성하게 하는 배우들을 보면 부러워요. 저도 경험을 쌓다 보면 애드리브도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동안 모범생 캐릭터를 주로 맡아 색다른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은 연기적 갈증이 있기도 해요. 어느 배우나 마찬가지일 거예요. 다양한 상황이나 캐릭터에 대한 욕심은 누구나 있죠.”

결혼한 두 남녀가 서로에게 이끌리는 감정을 묘사한 <공항 가는 길>을 이야기하면서 ‘불륜 미화’ 논란을 빼놓을 수는 없다. 제작진은 두 번째 사춘기를 겪는 남녀의 운명적 만남을 이야기한다고 했지만 시청자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김철규 PD 역시 극 중 이상윤과 김하늘을 ‘애매한 관계’라고 규정했다. 지치고 힘든 순간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위로받게 되는 경우를 그린 작품이라며 단순히 ‘불륜’으로 치부되기엔 두 남녀의 관계가 생각보다 따뜻하다는 것. 이상윤 역시 그 점에 공감했다.

“감독님 말씀처럼 관계는 애매해요. 두 사람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불륜’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로맨스’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최대한 거부감 들지 않게 하기 위해 감정선을 조절하며 연기하려고 해요. 그 외에 예쁜 장면은 제작진이, 공감 가는 대사는 작가님이 만들어주시는 거죠. 나머지는 받아들이는 분들의 판단에 맡겨야 하고요.”


8회에선 격정 키스신이 그려졌다. 서로를 향한 감정을 처음으로 드러낸 장면. 두 사람은 휘몰아치는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 수위 높은 키스신이었다. 이에 대한 시청자의 반응은 엇갈렸다.

“지금까지의 내용으로 봐서는 두 남녀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위로가 되는 따뜻한 드라마였으면 해요. <공항 가는 길>이 애초에 기획했던 색깔이 묻어나는 결말을 원하죠. 그런데 저도 어떻게 끝날지 몰라 궁금하네요.(웃음) 어떤 결말이든 아름다운 결말이길 바라요. 아마 모든 분의 바람이겠죠?(웃음)”

첫 방송 후 지인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딸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는 친구들의 응원 메시지가 이상윤에게는 연기할 수 있는 큰 힘이 됐다.
“가장 먼저 온 문자 메시지는 ‘네 부인 왜 그러냐’는 반응이었어요. 저와 딸에게 하는 행동이 이해가 안 된다면서 분노하더라고요.(웃음) 그런 반응 하나하나가 어떻게 연기해야 할지에 대한 길잡이가 되죠. 여자친구인 유이 씨도 첫 주부터 열심히 모니터도 하고 재미있게 봐주고 있어요. 저와 (김)하늘 씨의 모습이 질투 난대요. 그 정도로 저희가 연기를 잘한 거겠죠?”

여자친구 이야기를 물었을 때 엉뚱한 말로 회피하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대중의 시선과 판단에서 자유로워진 게 분명했다. 문득 결혼에 대한 생각을 밝히던 일 년 전이 떠올랐다.
“주변 친구들 대부분이 결혼했어요. 결혼 생각이 간절해지는 요즘이죠.(웃음) 생각해보니 지금 아이를 낳아도 아이가 스무 살 때 제가 환갑이더라고요. 그래서 고민이에요. 되도록 마흔 전에는 결혼하고 싶어요.(웃음)”

이상윤에 대한 편견은 누구나 비슷할 것이다.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한 연예계 대표 브레인으로 꼽히는 이상윤. 별안간 등장한 그는 곱상하게 생긴 똑똑한 배우로 불렸다.
“저 머리 안 좋아요. 잔머리 굴리는 데 가장 많이 쓰는 것 같아요.(웃음) 어릴 때는 제 머리가 좋은 줄 알았는데 지금은 기억력이 많이 쇠퇴했죠. 이래서 공부는 어릴 때 해야 하나 봐요.”
대학교를 졸업하기까지 10년이 걸렸다. 연예인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에 학업을 포기하고 연기에 매진할 법도 한데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이유가 있었다.

“졸업은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졸업장을 받는 것보다 시작한 일을 마무리 짓는 데 의미를 두었죠. 물리학을 전공했지만 연기 쪽으로 대학원을 갈 수도 있을 거고요. 고민이 많았지만 결론은 하나였죠. 졸업을 하자. 서울대학교 출신 감독님들과 여러 번 작업을 했어요. 학벌의 덕을 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해요. 학연 때문에 캐스팅된다기보다 서울대 출신 배우라서 느낄 수 있는 고충을 더 잘 이해해주시더라고요. 서울대생의 한계를 잘 알기 때문에 조언을 해주기도 하고요.”

서울대생 브레인에게도 한계나 단점이 있다는 말이 왠지 반갑게 들렸다. 드라마 속 상황이나 대사를 감성이 아닌 이성으로 접근하게 된단다. 연기자로서는 치명적 단점이 될 수 있을 게다.

“연기를 하면서 최선을 다해도 안 되면 인정하는 법을 배웠죠. 연기가 적성에 맞지 않아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어요. 성격 탓에 남 앞에서 연기하는 것을 부끄러워했었죠.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씩 극복한 것 같아요. 해야만 해서 해봤고, 막상 해봤더니 재미있고, 그러니까 더 재미있게 하는 법을 배우는 식으로 조금씩 변화해왔죠.”

촉망받던 서울대생에서 연기자가 됐을 때, 스스로 한계를 인정하기가 쉽지 않았을 게다. 포기하고 싶던 순간을 이겨낼 수 있었던 건 스스로를 내려놓았기 때문이다.
“자신에게도 한계가 있다는 걸 받아들여야 더 큰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한 번도 실패해본 적이 없던 몇몇 대학교 동기들은 실패를 하면 보통 사람들보다 더 좌절하고 힘들어하더라고요. 저는 실패를 해봤기 때문에 더 단단해진 것 같아요.”

‘서울대’나 ‘브레인’이라는 타이틀을 떼고 본다면 이상윤의 매력은 뭘까?
“전에도 얘기한 적이 있는데 ‘내 매력은 뭘까’를 계속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연기나 역할도 중요하지만 매력 있는 연기자가 되고 싶어 노력하고 있어요. 중년에게서 느껴지는 중후하고 포근한 매력을 갖고 싶어요. 어떻게 늙어야 매력적일까 고민하고 있죠.”

배우가 되지 않았더라면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그는 “아마 특별할 것 없는 삶을 살고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성인이 된 후 성격이 바뀌긴 했지만 인생이 180도 달라지거나 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계속 공부를 했을 거고 아마도 연구실에서 일하고 있지 않을까요.(웃음)”
이상윤은 높은 시청률을 원하지도, 시청자의 열광적인 반응을 원하지도 않았다. ‘좋은 작품’ ‘좋은 연기’라 평가받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소박하지만 결코 작지 않은 꿈을 꾸고 있는 이상윤의 <공항 가는 길>을 응원한다.

 

CREDIT INFO

취재
이예지 기자
사진제공
제이와이드 컴퍼니
2016년 11월호

2016년 11월호

취재
이예지 기자
사진제공
제이와이드 컴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