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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그룹 이재현 회장의 사모곡

만성신부전증으로 3년 전 신장 이식 수술을 받은 CJ그룹 이재현 회장. 그의 어머니 손복남 CJ 고문이 지난해 12월 급성 뇌경색으로 쓰러져 아직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On February 29, 2016

뇌경색으로 쓰러진 어머니 기억 되살리려 양복 입고 면회

만성신부전증으로 지난 2013년 8월 아내 김희재 여사의 신장을 공여받아 이식 수술을한(본지 2013년 10월호) 이재현 CJ그룹 회장에게 또다시 시련이 닥쳤다. 파기환송심에서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은 나흘 후인 지난 12월 19일, 팔순의 나이에도 정정하던 어머니 손복남 CJ그룹 고문이 급성 뇌경색을 일으키며 쓰러진 것이다. 손 고문은 삼성가 맏며느리로 이재현 회장과 이미경 부회장의 어머니이다. 그는 남편인 고 이맹희 CJ 명예회장이 동생(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에게 후계자 자리를 내준 뒤 집을 떠나자 홀로 시부모님을 모시고 삼남매를 키우며 현 CJ그룹의 기틀을 세운 인물로 평가받는다.

서울대병원과 CJ 측에 따르면, 손 고문은 지난해 6월 척추압박골절로 서울대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입원 치료 중이던 12월 19일 뇌경색을 일으켰다. 퇴원을 불과 하루 앞둔 날이었다. 손 고문은 이날 저녁 6시경 식음을 전폐한 채 힘들어하는 이 회장을 찾아가 “기운 내거라. 같이 살아야 되지 않겠니. 식사를 좀 하거라”고 격려했다. 그러나 자신의 입원실로 돌아간 지 2시간여 만에 급성 뇌경색으로 쓰러졌고 MRI 촬영을 한 의료진은 왼쪽 뇌로 올라가는 혈관이 꽉 막힌 상태였다고 전했다. 다행히 혈전을 제거하는 응급조치를 받아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으나 워낙 고령인 데다 뇌경색 정도가 심해 후유증이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CJ 측 관계자는 “현재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고 언어 표현도 안 되는 상태”라고 말했다.

손 고문이 쓰러졌다는 소식에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것은 이 회장이었다. 지난해 8월 부친상을 당했을때 감염우려 때문에 상주 노롯조차 하지 못했던 그였다.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이 가시기도 전에 어머니마저 쓰러지자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오열했다고 한다. 그는 소식을 접하고 즉시 응급실로 어머니를 찾아가겠다며 자신의 병실을 나섰지만, 면역 억제 치료를 받고 있는 이 회장은 감염 우려가 높아 응급실 환경이 위험할 수 있었다.또한 아픈 어머니를 본 이 회장의 건강 상태가 악화될 수 있다는 이유로 의료진이 병문안을 만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장이식 수술 후 쇠약해진 이 회장.

신장이식 수술 후 쇠약해진 이 회장.

신장이식 수술 후 쇠약해진 이 회장.

재벌가에 소문난 각별한 모자지간

의료진이 첫 면회를 허용한 것은 지난해 12월 27일이었다. 손 고문은 그사이 중환자실에서 집중치료실을 거쳐 일반 병실로 이동했다. 이 회장은 자책감에 괴로워하던 모습과 달리 막상 어머니를 뵙자 의외로 차분하고 담담하게 “어머니, 저는 별일 없이 밥 잘 먹고 있으니 어머니도 빨리 일어나세요”라며 뺨을 어루만져주었다고 한다.10여 분간 어머니 곁에 머물던 그는 “또 올게요”라는 인사를 남기고 병실을 나왔다. 어머니 앞에서는 태연한 척했던 이 회장은 병실 문을 나서자마자 흐느껴 울었다고 한다. “나 때문에…”라며 말을 잇지 못하고 한참을 오열하는 모습이 병원 관계자들의 눈에 띄기도 했다. 현재 손 고문은 뇌경색 이후 음식을 전혀 삼키지 못해 코로 미음을 제공받으며 음식 섭취 기능을 회복해가는 중이다. 그러나 뇌기능 손상은 피할 수 없어 여전히 사람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며 본인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분간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이 회장은 주 4~5회 가량으로 어머니 면회 횟수를 늘렸다. 특이한 것은 가끔 이 회장이 양복을 입고 어머니 병실을 찾는다는 점이다. 또 휠체어를 타고 왔다가도 어머니 병실 앞에 이르러서는 부축을 받고 일어나 “어머니, 저 왔어요~” 하며 애써 걸어 들어간다고 한다. CJ 관계자는 “환자복 위에 양복을 차려입기에 왜 그러시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하면 어머니 기억이 돌아오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서…’ 하시더랍니다. 백발의 환자인 현재의 모습보다 깔끔한 양복을 입고 출퇴근하던 아들의 모습이 더 익숙할 것이라는 생각에 묘안을 내신 겁니다”라고 말했다. 앞서 의료진은 “남아 있는 뇌세포를 자극하면 인지 기능이 돌아오는 데 도움이 되니 가족들이 노력해달라”고 조언했다. 이 회장은 자신의 건강과 법적 처지 등으로 이동이 자유롭지 못하지만 어머니 면회만큼은 거르지 않으려 애쓰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덕분인지 손 고문이 다른 가족은 몰라봐도 이 회장만큼은 알아보는 듯한 반응을 보인다고. 이회장이 가면 밝은 모습으로 웃기도 하고 아들이 잡은 손을 만지는가 하면 헤어질 때 포옹하면 등을 토닥토닥 두드리는 등 친밀한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다. 또 무슨 말을 하고 싶은 듯 “쎄, 쎄”라고 외마디 소리를 내며 의사표현을 하려고 노력하는 등 적극적인 반 응을 보인다고 한다.


이 회장과 손 고문의 모자 사이는 워낙 각별하기로 유명하다. 이 회장의 아버지인 고 이맹희 CJ 명예회장이 오랜 기간 집을 비우면서 모자는 서로 의지하며 지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한때 삼성그룹 내 17개의 직함을 가지고 ‘리틀 총수’로 불리던 고 이맹희 명예회장은 아버지 고 이병철 회장과의 갈등으로 주요 직책에서 멀어졌고 해외로 나갔다. 1960년생인 이 회장은 이로 인해 10대 중반부터 아버지의 부재를 겪었다. 어머니와 가족을 자신이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과 자립심을 체득하게 됐다. CJ 관계자는 “이 회장은 재벌가에서 흔한 해외 유학 한 번 하지 않았다. 권유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어머니 곁을 떠날 수는 없다’며 본인이 고사했다”라고 전했다.

손 고문은 남편의 부재 속에 삼성가 장손인 이 회장을 바르게 키우기 위해 엄하게 아들을 교육시켰다고 한다. ‘항상 겸손해라’ ‘스스로 너의 능력을 입증해라’ 그리고 ‘일 처리를 함에 있어 치밀하게 준비하되 행동할 때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라’ 등은 이 회장이 어머니 손 고문으로부터 자주 들은 이야기다. 이 회장 역시 이 같은 어머니의 뜻을 거스르는 법이 없이 항상 귀담아 듣고 실천하는 효자였다고. 그는 1984년 김희재 여사와 결혼한 이후에도 “조부모님과 어머니를 모두 모시고 살겠다”며 분가하지 않고 1987년 이병철 회장, 2000년 박두을 여사가 별세할 때까지 함께 살았다.
 

이재현 회장과 손복남 고문

이재현 회장과 손복남 고문

이재현 회장과 손복남 고문

현재 이 회장의 건강 상태는?

지난해 9월경 신장 이식 거부 반응을 보였던 이 회장은 현재 수술 후 2년이 넘었음에도 여전히 외부 감염 때문에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가 다른 신장 이식 환자들에 비해 특히 회복이 더디고 어려운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이 회장은 자식이나 부모가 아닌 생물학적으로 남남인 아내로부터 신장을 공여받은 ‘비혈연 간 이식’을 받았다. 이 때문에 다량의 면역억제제를 사용해야 하는데, 이는 곧 약물로 면역 작용을 억지로 떨어 뜨리는 것이다. 따라서 외부 감염에 언제든지 노출될 수 있다. 게다가 근육과 말초신경이 죽어가는 유전병인 CMT(샤르콧 마리 투스)를 앓고 있는 이 회장이, 면역억제제에 대한 과민 반응을 일으키며 치료를 어렵게 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이 회장의 건강이 아직까지 완전히 회복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신장 이식수술 후 안정화 치료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점이 원인이라는 것이 의료진의 설명이다. 이 회장은 수술 후 채 1년이 지나지 않은 지난 2014년 4월 30일 구속집행정지 연장신청이 불허되면서 약 2개월간 감옥에 수감된 바 있다. 재수감 직후 이 회장은 급성설사와 거부반응 초기증상 등을 보여 응급실로 이송되는 등 위기를 겪기도 했다. CJ 관계자는 “50대 신장이식 환자의 평균 기대여명은 11.2년에 불과한데 기대여명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것이 수술 후 초기의 안정화 치료”라며 “신체적,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가 지속될 경우 이식 받은 신장이 망가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재현 회장 사건은 현재 대법원 재상고심 중에 있다. 매출 1조원 대 식품기업 제일제당을 20배 규모 이상문화콘텐츠기업으로 탈바꿈시킨 이재현 회장. 그에게도 봄은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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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맹희 CJ명예회장과 손복남 고문의 신혼 초 모습. 첫째 딸인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을 안고 있다.

고 이맹희 CJ명예회장과 손복남 고문의 신혼 초 모습. 첫째 딸인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을 안고 있다.

손복남 고문은 누구?

1933년생. 이화여대 교육학과를 졸업했으며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첫째 아들, 고 이맹희(1931~2015)씨와 결혼, 삼성가 맏며느리로서의 삶을 살아왔다. 농림부양정국장과 경기도지사 서리 등을 지낸 뒤 1961년부터 안국화재 사장을 맡았던 고 손영기씨의 딸이다. 1970년대 중반 남편인 고 이맹희씨가 아버지와의 오해 및 갈등으로 삼성그룹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주로 해외에 체류하자 혼자 묵묵히 삼남매를 길러내며, CJ그룹 오너 삼남매에게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그녀는 남편의 부재 속에서도 시부모님이 돌아가실 때까지 장충동 본가에서 모시고 살았다.

삼성그룹에서 분리 독립한 CJ제일제당은 손복남 고문이 증여 받은 안국화재 주식이 모태가 되었다. 1990년대 중반 신세계와 제일제당의 계열사 분리 당시에도 손 고문이 보유하고 있던 안국화재의 지분과 삼성 및 이건희 회장이 보유하고 있던 제일제당의 주식을 맞교환하면서 계열 분리를 완성했다. 이후 손 고문은 장남인 이재현 회장에게 제일제당의 주식을 전부 증여해 현재 CJ그룹 지분 구조의 토대를 닦았다고 한다.

CREDIT INFO

취재
서미정 기자
사진
서울문화사 DB, 일요신문사
2016년 03월호

2016년 03월호

취재
서미정 기자
사진
서울문화사 DB, 일요신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