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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정의 Make over

메이크업을 마친 그녀가 옷을 갈아입고 카메라 앞에 섰다. 환한 조명이 그녀를 비췄고, 셔터가 터졌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중견 여배우의 새로운 모습이다.

On August 11,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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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기다리고 있을 때쯤 벙거지 모자를 푹 눌러쓴 수수한 차림의 한 여자와 대로변에서 눈이 마주쳤다. 배우 황석정과의 첫 만남이었다. “태어나서 화보 촬영이라는 건 처음 해본다”며 수줍게 웃었다. 촬영하는 동안에도 그녀는 카메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한참 동안 들여다봤다. 마흔을 훌쩍 넘겨 찾아온 전성기가 여전히 꿈만 같다고 했다.

황석정으로 말할 것 같으면 tvN 드라마 <미생>에선 깐깐한 재무부장을 연기했고, KBS 일일 드라마 <가족을 지켜라>에선 조리장으로 열연 중이다. 그래도 누군지 모르겠다고? MBC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의 유일한 여성 무지개 회원으로, <라디오스타> <힐링캠프> <택시> 등 쟁쟁한 예능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출연했고, 현재는 케이블 방송의 토크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하는 예능 대세녀다. 여기에 그녀는 반전 매력도 지녔다.

‘서울대 출신’에 심지어 뒤늦게 연기하고 싶어 입학한 학교가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란다. 마흔이 넘어 주목받기 시작한 황석정의 화려한 스펙이다. 스펙도 스펙이지만 그녀의 진짜 매력은 따로 있다. 리얼 예능 속 그녀는 자연스러움 그 자체다. 집에는 신었던 양말이 나뒹굴고, 화장기 하나 없는 민낯으로 하품하는가 하면, 부스스한 머리카락을 애완견 대박이의 빗으로 빗는 일도 여과 없이 전파를 탔다.

여배우의 필수 스킬로 손꼽히는 가식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털털함이다. 그런 그녀와 함께한 촬영이니 어색하거나 데면데면할 리 만무할 터. 자정 넘어서까지 진행된 촬영임에도 스튜디오에는 19금 토크, 아니 39금 토크가 난무했고,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석정씨’라는 호칭은 어느새 ‘석정 언니’가 됐다.  

<나 혼자 산다> 첫 출연 방송이 나가고 반응이 대단했어요. 여배우치고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모습 때문에요.
저와 알고 지내는 사람들은 저의 실생활이 훨씬 더 충격적이라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별다른 반응은 없었어요.(웃음) 어머니는 제게 관심이 통 없으셨는데 요즘은 직접 프로그램 모니터링도 해주세요. 저는 원래 예능인이 아니잖아요. 한 번도 다른 사람을 웃기려고 작정해 방송을 한 적은 없어요. 평소 모습, 평소 생각을 이야기했을 뿐인데 되레 사람들이 재미있어 하더라고요.

예능에 출연하게 된 계기는요?
광규 형(배우 김광규) 덕분이에요. 작년에 드라마 <참 좋은 시절>에서 광규 형과 친해졌는데 술자리에서 사람을 한 분 소개해주시더라고요. 나중에 알고 보니 그분이 <세바퀴>의 작가였던 거예요. 그 작가에게 “황석정이라는 친구가 있는데 정말 재밌다”고 저를 추천하셨대요. 그런 인연으로 <세바퀴>에 출연하게 됐고, 방송을 본 <나 혼자 산다> 제작진에서 연락이 왔어요. 처음에는 정식 회원이 아니었는데, 방송이 나간 후 반응이 좋아 정회원을 하게 됐고요. 제가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하게 되니까 광규 형이 첫마디로 “야, 네가 여기까지 올 줄 몰랐다. 정말 대단하다”라고 하면서 웃으시더라고요.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으실 것 같아요.
어릴 적부터 외모가 예쁜 과라기보다는 털털한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저를 부담 없이 생각한 동성 친구들이 저를 많이 좋아했던 것 같아요. 특히 제 주변에 배우가 많잖아요. 여자라면 누구나 예뻐 보이고 싶어 하는데 배우들이면 더 하지 않겠어요? 연기자 생활 하면서 알게 된 까다롭기로 유명한 언니들도 저를 예뻐하시더라고요. 아마 경쟁 상대는 아니라는 생각 때문 아닐까요?(웃음)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는 없었나요?
당연히 많았죠. 특히 툭 튀어나온 광대뼈가 너무 싫었어요. 한예종에 입학하고 처음으로 대학교 오리엔테이션을 갔던 날이 아직도 생각나요. 전공별로 버스에 탑승하는데, 안내하던 친구가 저더러 대뜸 “여기 연기과 버스인데요” 하는 거예요. 대꾸도 안 하고 자리에 앉았더니 “연출과시구나?” 하더라고요. 저 같은 외모의 연기과 학생이 있을 리 없다고 생각한 거겠죠.(웃음) 여배우의 역할이라는 게 지극히 한정돼 있어요.

예쁜 순정녀이거나, 팜파탈. 저는 그 틈에서 역할이 없었죠. 그래서 절망감도 컸어요. 나도 얼마든지 신데렐라, 백설공주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더라고요. 어딜 가도 “넌 여배우 얼굴이 아니야”라는 이야기만 들었으니까요. ‘아, 평범하게 생겼더라면 덜 힘들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늘 가슴속에 있었어요. 어쩌면 오늘 저의 화보 인터뷰는 예쁘지 않은 여자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지도 몰라요. ‘황석정 같은 여자도 얼마든지 예뻐 보일 수 있고 이렇게 매거진 화보도 찍는다’는 걸 보여줄 수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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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에 한예종까지 접수한 스펙이 화제가 됐어요. 국악에서 연기로 왜 전향한 거예요?
어려서부터 사회성이 부족했어요. 어울려 놀고 싶긴 한데 붙임성 있는 성격이 아니라 늘 외톨이였죠. 그래서 연기를 선택하게 된 것 같아요. 사실 제 성격에는 혼자 묵묵히 연습해 결과물을 내놓는 악기가 더 맞았죠. 그런데 무대 위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함께 연기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아, 나도 저기에 속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예전에 사회성이 부족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요.
연기를 시작하면서 바뀐 거예요. 집안 형편이 어려웠고,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저는 한 살 터울의 여동생을 늘 업고 다녔어요. 집안일도 많이 했고요. 친구들은 부모님의 품 안에서 다 누리며 살고 있는데 저는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이 서러웠죠. 마흔이 훌쩍 넘어 이웃집 아이가 장난감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걸 한참 동안 쳐다봤던 기억이 나요. ‘나는 대체 왜 태어났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크면서 그런 부분을 스스로 치유하려 노력했고, 그 일환 중 하나가 연기였던 거죠. 오늘의 나를 만든 건 ‘결핍’이라는 말이 딱 맞아요.

막상 연기를 시작하고 후회하지 않았나요?
한 번 선택한 일에는 후회를 하지 않아요. 어떤 길을 가든 계속 하다 보면 언젠가는 답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거든요. 국악과에서 계속 피리를 했으면 편한 인생을 살았을지도 몰라요. 당시엔 관현악단에 들어가라고 추천도 해주셨는데, 막상 평생을 그렇게 살아야 하나 생각하니까 잠이 오지 않더라고요. 연기로 전향한 후 ‘힘들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일 거예요.

1년 반 동안 하루에 천 장씩 포스터를 붙이는 게 제 일이었거든요. 경제적으로나 체력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었죠. 그래도 행복했어요. 나에게 주어진 아주 사소한 역할도 제겐 무척 소중했고요. 애초에 전 사람들에게 주목받고, 박수갈채를 받는 연기자를 꿈꾸지 않았어요. 연기라는 건 사람을 연구하고, 내가 이해한 캐릭터를 표현하고, 또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무대에 올리는 거잖아요. 무대 자체가 하나의 사회예요. 혼자 하는 데 익숙했던 제가 꿈꾸는 세상이었던 셈이죠. 인생은 원래 자신이 무엇을 꿈꾸는가가 가장 중요한 법이잖아요. 원래는 잘 웃지도 않고 표현도 없는 아이였는데 성격이 바뀌더라고요.

부모님이 무척 반대하셨을 것 같아요.
특히 어머니의 실망이 무척 컸어요. 어머니는 음악이 꿈이었지만 결혼해 아이 낳고 살림하느라 꿈을 포기하셨거든요. 자신이 못 다한 꿈을 자녀들이 대신 이뤄주길 바라셔서 오빠와 저, 동생 삼남매에게 음악을 시키셨어요. 그런데 오빠는 은행원을 하다 그만두고 식당을 하고 있고, 동생은 유학을 포기하고 결혼하더니 교회에서 피아노 반주를 하며 지내고 있어요. 결국 누구도 음악의 길은 가지 않은 셈이죠.

어릴 적 황석정의 꿈은 뭐였나요?
어린 황석정에게 꿈은 사치였어요. 집안 환경이 저를 그렇게 만들었죠. 아버지는 인민군 군악대에서 10년간 계시다가 거제 포로수용소에서 남한으로 전향해 카바레 밴드마스터로 일하셨고, 음악의 꿈을 못 이뤘던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원망했어요. 그러고는 그 스트레스를 제게 푸셨던 거예요. 저는 그런 엄마를 지독히도 미워했죠. 분명히 계모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마흔 넘어서까지 엄마를 용서하지 못하고 대화를 거의 안 했어요. 그러면서도 마음이 너무 괴로워 ‘엄마를 이해하게 해달라’고 기도도 많이 했죠.  

 
지금은 어머니와의 관계가 괜찮아졌나요?
연기하면서 생각이 바뀌었어요. 엄마를 엄마로 보지 않고, 그냥 연극에 등장하는 하나의 인물로 놓고 보게 된 거예요. 그러고 나니 엄마 마음이 이해되더라고요. 똑똑했고 꿈이 많았지만 결혼하면서 포기하게 되고, 어려운 살림살이를 이어가려 악다구니 쓰면서 아등바등 살아온 한 여인. 그 여인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더라고요. ‘내가 만약 그 여인이었다면 달랐을까?’ 자신이 없더라고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마음이 편해졌어요. 그리고 엄마한테 편지를 쓰며 사랑한다고 말했어요. 그동안 잘못한 것은 최선을 다해 갚겠다는 말과 함께요. 태어나서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던 말이었죠. 그때 엄마가 “내가 태어나서 기적이라는 걸 경험하는구나”라고 하시더라고요. 애교 많은 딸은 아니지만, 지금은 신용카드 드리면서 사고 싶은 것 사시라고 말하는 딸이 됐죠.(웃음)

연기자로서도 성숙할 수 있는 계기였네요.
‘연기는 공감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공감의 폭을 넓히려면 역사를 알아야겠다고 생각했죠. 개인의 역사와 시대의 역사를 알면 공감하기 쉬워져요. 엄마가 그토록 미워했던 외할머니를 이해하려면 외할머니가 살아온 일제강점기를 알아야 하고, 엄마가 원망한 아버지를 이해하려면 아버지가 살아온 6·25를 알아야 하는 거죠.

어쩌면 제가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이 때문일 거예요. 사실 3~4년 전부터 역사 공부 모임에 나갔어요. 생각보다 우리가 잃어버린 역사가 너무 많더라고요.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우리 역사 되찾기 운동’에 힘을 보태고 싶어요.

이제는 사랑해야 할 때가 아닌가요?(웃음)
한예종 2학년 때가 첫 연애였는데 그때 이후로 연애를 쉬어본 적이 거의 없어요. 아빠를 사랑하다 보니까 아빠 닮은 남자에게 끌리는 것 같아요. 외롭고 쓸쓸했던 아빠처럼 자꾸만 슬픈 남자에게 끌린다는 게 문제죠.(웃음) 그동안 저는 사랑을 한 게 아니라 ‘양육’을 했던 것 같아요. 나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남자가 있으면 거절을 잘 못했거든요. 애를 한 100명은 낳아서 키운 것 같네요.(웃음) 굳이 이상형을 꼽으라면 눈이 예쁜 남자요. 자꾸 김광규씨 어떻냐고 물어보시는데 광규 형 눈에는 매력이 없어요.(웃음) 말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눈에서 영혼이 느껴지는 사람이 좋아요.

지금이 인생에서 최고의 황금기 아닌가요?
이제 시작이에요. 지금 예능으로 부각됐지만, 잘나가는 예능인이 인생의 목표는 아니잖아요. 연기가 직업이긴 하지만 세상에서 연기를 가장 잘하는 사람이 되는 것도 인생 목표는 아니에요. 목표가 아닌 목적이 있는 삶을 살기 원해요. 누구든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꾸준히 가다 보면 가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는 때가 온다고 봐요. 그러면 그때 도리와 양심에 어긋나지 않게 행동하고 싶은 바람이에요.

제가 이번 화보 인터뷰에 응한 것도 저 같은 트라우마나 고민이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드리고 싶어서였어요. 제 나이에, 저처럼 생긴 사람이 TV에 나와서 ‘귀엽다, 매력 있다, 팜파탈이다’라는 말을 듣는다는 게 흔한 일은 아니잖아요. 조금 못생기고 나이 좀 들었으면 어때요? 스스로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걸 항상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제가 할 수 있는 한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고 싶어요.
 
 
촬영이 끝나고 그녀를 비추던 화려한 조명은 꺼졌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밝게 빛났다.

CREDIT INFO

취재
정희순 기자
사진
하지영
스타일리스트
김지연
헤어
수안(샬롱드뮤사이),
메이크업
주정하(샬롱드뮤사이)
2015년 08월호

2015년 08월호

취재
정희순 기자
사진
하지영
스타일리스트
김지연
헤어
수안(샬롱드뮤사이),
메이크업
주정하(샬롱드뮤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