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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 없는 준우씨

상큼하면서 달달하다. 겉은 바삭하지만 속은 부드럽다. 음식 이야기가 아니다. 서른세 살 보통 남자 준우씨의 얘기다.

On August 07,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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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약속 시간보다 20분이나 일찍 도착했다. 흰색 셔츠에 청바지. 군더더기 하나 없이 기본에 충실한 차림이다. 화면으로 볼 때보다 훨씬 큰 키에 호리호리한 체격, 트레이드마크인 턱수염이 인상적인 박준우다. 표정 하나, 말투 하나도 흐트러짐이 없다. 그래서 더 보는 이를 긴장하게 만드는 사람이랄까? 처음엔 그랬다.

“김풍 형과 함께 라디오 생방송을 다녀왔어요. 오늘 홍대 앞에서 인터뷰가 있다고 했더니 풍이 형이 데려다줬어요. 저는 2004년에 딱 두 번 운전해 본 이후로 한 번도 운전해본 적이 없어요. 그 때 한 번 크게 사고가 날 뻔 했거든요. 그날 이후론 쭉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살고 있죠.”

두 사람은 <냉장고를 부탁해>를 인연으로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됐다. 언뜻 보면 둘의 성격은 정반대다. 김풍이 가볍고 유쾌하다면 박준우는 진중하고 결코 허투루 말하는 법이 없다. “제가 원래 낯가림이 심해요. 혈액형도 트리플 A형이라 엄청 소심하죠. 알고 보니 김풍 형도 저와 비슷한 성격이더라고요. 형과는 방송에서 보이는 것처럼 평소에도 티격태격하면서 지내요. 형이 방송에서 말한 ‘있어 보이는 요리의 정보’는 대부분 제가 알려준 겁니다. 꼭 촬영 전날 전화해서 이것저것 물어봐요. 아니, 그럴 거면 로열티를 내든가!(웃음)”

김풍의 본업이 만화가인 것처럼 박준우 역시 정식 셰프는 아니다. 서촌에서 디저트 카페를 운영하긴 했지만, 그마저도 정리하는 중이라고 했다. 그에게 ‘셰프’라는 이미지가 박힌 것은 <냉장고를 부탁해>의 공이 크겠지만,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2012년 올리브TV <마스터 셰프 코리아>(이하 <마셰코>)라는 프로그램에서 시작됐다. <마셰코>는 참가자들을 모집해 요리 경연을 벌이고 우승한 사람에게 3억원의 상금을 주는 형식의 프로그램이다. 당시 그는 아쉽게 준우승을 차지했지만, 그때 이후 요리 채널에 종종 출연하며 인지도를 높였다.

“사람들 앞에서 요리를 하니까 저를 ‘셰프’라고 생각하는 분이 많아요. 하지만 저는 셰프가 아니에요. ‘티비쿡’이죠. 한마디로 방송용 요리를 하는 사람이에요. 원래 영미권에서는 사용하는 단어인데 한국에선 사용하지 않다가 제가 처음 썼어요. 방송에 나와 요리를 하면서 셰프는 아니라고 하니까 사람들이 생소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TV에 출연하기 전까지 그는 신문에 글을 쓰는 기자였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조그만 식음료 전문 신문사에서 취재 기자로 활동했다. 원래는 시인이 되고 싶었지만 생활비를 벌기 위해 선택한 일이라고 했다. 그러던 차에 <마셰코>라는 프로그램을 알게 됐고, ‘한번 지원이나 해보지 뭐’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출연하게 됐다. 그때는 그것이 자신의 인생을 바꿔놓을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고 한다.

“원래 먹고 마시는 걸 좋아했어요. 푸드 전문 기자로 활동했을 때 맛있는 음식을 참 많이 먹으러 다녔죠.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이 요리하는 것도 좋아하잖아요. 저도 딱 그랬어요. 샐러드, 파스타, 스테이크, 샌드위치 같은 걸 혼자 요리해 먹곤 했죠. 요리는 제 취미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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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박준우라는 사람을 처음 알게 된 것도 바로 그 프로그램이었다. 그때만 해도 박준우의 캐릭터는 ‘까칠남’ 그 자체였다. 요즘 TV에서 볼 수 있는 ‘허약한 캐릭터’ 따위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시절이었다.

“그때 담당 PD와 사이가 별로 안 좋았어요. ‘대체 저 PD는 왜 나한테 이거 해라 저거 해라야?’라고 생각했죠. 나중에 방송의 생리를 알고 난 뒤엔 제작진의 말을 상당히 잘 듣습니다.(웃음) 하지만 방송은 여전히 어려워요. 김풍 형이나 최현석 셰프는 타고난 방송인인 것 같아요. 방송에 가장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은 바로 저와 이연복 셰프님이죠.(웃음)”

말은 그렇게 하지만, 그는 전문 셰프들 사이에서 그에 못지않은 실력을 발휘하는 중이다. 프로그램에서 최고참급인 이연복 셰프도 그를 두고 “요리사가 할 수 없는 접근을 해서 가끔씩 깜짝 놀란다”고 말할 정도다.

“방송에서 하는 요리는 모두 유럽 스타일을 지향하는 편이에요. 만들 땐 주가 되는 맛과 그걸 뒤에서 받쳐주는 두세 가지 미세한 맛을 표현하려고 노력하죠. 영화로 치면 주연과 조연의 관계라고 보시면 돼요.”

박준우가 만드는 요리는 예쁘고 맛있기만 한 줄 알았는데 체계적으로 맛을 계산해 구성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놀라웠다. 박준우식 요리는 상당히 섬세하다. “외식할 때나 취재할 때 파인다이닝을 선호하는 취향이 있어요. 그래서인지 요리를 낼 때도 그런 플레이팅을 흉내 내게 되는 것 같아요. 글씨는 참 못 썼는데 학창 시절에도 조소 시간만큼은 칭찬을 받았어요. 20대 때 잠깐 조각을 공부한 적도 있고요.”

서른셋 박준우의 지난 생활은 일반인들보다 버라이어티하다. 부모님을 따라 벨기에에서 10년 넘게 생활했고, 그중 1년은 파리에서 살았다. 대학에선 현대어문을 공부하다 조각을 했고, 언젠가 한번은 연극 공부를 한 적도 있다. 무작정 파리에 가서 와인을 배우기도 했다. 대부분 1년을 채 못 넘기고 그만뒀지만 말이다. 본격적으로 생활 전선에 뛰어든 후에는 벨기에에서 통역사 일을 하다가 한글로 글을 쓰는 직업을 찾고 싶어 무작정 한국에 왔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기자가 됐지만 그마저도 월세와 관리비를 감당하기 힘들어 서른이 다 되도록 부모님께 손을 벌리고 살았던 못난 아들이란다.

“부모님이 걱정을 많이 하셨죠.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해보는 것은 좋지만, 이제 정신을 차릴 때도 되지 않았니?’ 하고 넌지시 말씀하셨어요. 부모님은 평범한 분들이세요. 특이한 점이 있다면 과거에 록과 무용을 하셨다는 거죠. 그래서 그나마 예술적인 감수성으로 저를 이해해주셨던 것 같아요.(웃음)”

그랬던 그가 방송 일을 시작하고 삶이 바뀌었다. 방송을 시작한 지 올해로 4년 차이니 다른 일들보다는 꽤 오래해온 셈이다. “지금은 부모님께 용돈을 드릴 수 있는 상황이 됐지만, 오히려 ‘네 처신이나 잘해라’라고 말씀하세요. 그래도 걱정만 했던 아들이 방송에 나오는 게 신기하고 뿌듯하신가 봐요. 벨기에에서 꼬박꼬박 방송 모니터링을 해주시더라고요. TV에 한창 나오다 뜸해지면 ‘이제 방송 안 하니?’ 하고 조심스레 물어보시기도 했어요.”

이전까지 다른 이를 인터뷰할 줄만 알았지 자신이 인터뷰에 응하는 인터뷰이가 된 것도 신기한 일이었다. 그렇게 박준우의 생활은 이전과는 180도 달라졌다. 그는 이 모든 상황이 어색하기만 하다고 했다. “새로운 사람을 쉽게 만날 수 있어 즐겁기는 한데, 한편으론 부담도 돼요. 이제는 사람들이 ‘셰프니까 당연히 요리를 잘하겠지’, ‘방송인이니까 매너가 좋겠지’ 하고 기대하니까요.”

박준우는 가리는 음식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도 그에 대한 오해 중 하나다. 매운 음식, 살아 있는 무언가를 먹는 것을 끔찍이 싫어한단다. 한국인의 매운맛이라는 ‘신라면’도 버겁고, 소주 한잔과 어울리는 산낙지나 활어회도 피한다. 음식에 대한 호불호가 분명하듯 사람에 대한 기준도 명확하다.

“솔직한 사람을 좋아해요. 물론 솔직함 뒤에 숨어 무례하게 행동하는 사람은 싫죠. 가식적인 사람도 싫어해요. 강자 앞에서 약하고, 약자 앞에서 강한 사람이 제일 나쁘다고 생각해요. 이런 기준으로 생각해보면 김풍 형은 제가 좋아하는 부류에 속해요. 가식이 없거든요. 다른 사람 입장을 생각할 줄 아는 선한 사람이죠. 이연복 셰프님은 제가 존경하는 분이세요. 요리의 대가임에도 한참 어린 후배들을 챙겨주시는 따뜻한 분이시거든요.”

박준우는 자신도 약자를 생각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여태껏 손목에 세월호 사건을 기억하기 위한 노란 고무 팔찌를 차고 다니는 것만 봐도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실은 이 팔찌를 주신 분에게 호감이 생겨서 많이 고민했어요. 팔찌를 차면 계속 그 분 생각이 났거든요. 팔찌의 진짜 의미는 잊게 되는 것 같아 한동안은 빼고 다녔어요. 그런데 어느 날 ‘세월호 형제자매’라는 분들이 제게 엽서 한 장을 전해주시더라고요. 잊지 않고 팔찌를 차주어 감사하다면서요. 그걸 보고 눈물이 핑 돌아서 쉽게 팔찌를 뺄 수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계속 차고 다니고 있어요.”

요즘은 방송 일이 바빠 예전처럼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닐 수 없다는 사실이 아쉽다. 취미였던 요리도 이제는 일이 돼버려 취미를 잃은 것 같은 기분이란다. “‘티비쿡’으로 남는 게 제 꿈은 아니에요. 그걸 알면서도 방송을 계속하는 건 슬프게도 결국 돈 때문인 것 같아요. 예전에 신문사를 다닐 땐 한 달 꼬박 일해서 겨우 1백만원 정도의 돈을 벌었어요.

그래서 어떻게든 다른 매체에 외고를 쓰려고 아등바등 살았죠. 월세 내고 관리비 내고 나면 남는 게 없었거든요. 요즘요? 그때에 비하면 많이 벌죠. 하지만 여전히 일산에 있는 9평짜리 오피스텔에 살고 있어요. 이런 말 해도 되나? 보증금 1천만원에 월세 50만원짜리죠. 하루빨리 저금해 전셋집으로 옮기려고요. 그 돈만 모이면 방송이고 뭐고 다 그만둘 거예요.(웃음)”

솔직하고 담백하다. 박준우도 30대를 지나는 여느 남자들과 비슷한 고민을 안고 산다. 하지만 욕심은 없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 잘하는 일을 찾아 묵묵히 걸어가는 방법을 그는 이미 알고 있다. 실제로 <냉장고를 부탁해>에 출연한 뒤 그가 운영하던 서촌의 디저트 카페는 줄을 서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유명세를 탔다. 돈 욕심이 났다면 어떻게든 가게를 확장했겠지만, 그는 ‘쿨하게’ 가게도 정리했다. 욕심 있는 사람이 할 만한 행동은 아니다.

“요즘 재미를 붙인 건 라디오 방송이에요. 매주 목요일마다 MBC 라디오 <허경환의 별이 빛나는 밤에>에 나가고 있는데 갈 때마다 설레요. 사실 제가 어릴 적부터 라디오를 하루 종일 끼고 살 정도로 마니아였거든요. 아무래도 낯을 가리는 성격 때문에 가족 같은 분위기의 라디오를 좋아하나 봐요. 먹는 얘기, 음식 얘기도 좋지만 이와 관련된 사람 사는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그러고 보니 중저음의 목소리도 매력적이다. 본 요리보다는 디저트에 가깝고, 독한 술보다는 달콤한 와인이 어울리는 남자다.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욕심 부리지 않는 사람,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아도 만족하는 사람요. 그런 거 있잖아요. 아침에 일어나면 커피나 차를 마시고 집안일을 좀 하는 거예요. 씻고 난 뒤 밖으로 나가 잠시 산책하고 집으로 돌아와 글을 쓰는 거죠. 지루하면 라디오를 듣거나 술을 마실 거예요. 그러려면 일단 월세 걱정 없는 전셋집을 구해야겠죠?(웃음) 한 달 생활비가 50만원 필요하다면 딱 그 정도만 벌러 다니고 게으르게 살 거예요.”

CREDIT INFO

취재
정희순 기자
사진
박원민
스타일리스트
김소영
어시스턴트
김여정
헤어&메이크업
조진희
2015년 08월호

2015년 08월호

취재
정희순 기자
사진
박원민
스타일리스트
김소영
어시스턴트
김여정
헤어&메이크업
조진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