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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예능 대세

내가 젤 잘나가!

예능 프로그램에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얼굴들이 대거 등장했다. 미지근한 캐스팅이라 생각했는데 웬걸, 그들의 한마디 한마디에 모두 빵빵 터졌다.

On April 07, 2015

손호준 ‘효과’

수줍은 미소에 자꾸만 눈길이 간다. 잘생긴 얼굴에 겸손함까지 갖춘 근래 보기 드문 청년 손호준. 그의 참 매력은 <삼시세끼-어촌편>에서 시작됐다. 탈세 논란으로 하차한 장근석을 대신해 투입된 것인데, 나영석 PD의 입장에선 그야말로 신의 한 수였다. 불쌍해 보이는 쪼그려 앉기, 장화 신은 고양이 뺨치는 맑은 눈빛, 선배님들 앞에서 바짝 얼어 있는 모습까지 그만의 묵묵함은 예능에서 튀어 보이려는 여느 스타들과는 다른 신선함이 느껴졌다. 뒤에서 조용히 설거지를 도맡고 남몰래 걸레질을 한다. 요즘 애들답지 않게 선배 어려운 줄도 알고 일도 잘하는 그는 선배들의 사랑을 독차지한다. 이게 바로 그의 매력이 아닐까? 뚝딱뚝딱 자기 일을 해내는 묵묵한 모습 말이다. <정글의 법칙>에 출현한 그는 불 붙이기는 물론이고 작살을 만들어 바로 물고기도 잡아와 스태프들 사이에서 ‘리틀 김병만’이라고 불렸단다. 이렇게 출연하는 예능마다 최고 시청률을 갱신하는 덕에 예능에서는 ‘손호준 효과’라는 말까지 나왔다고. 예능 관계자들과 시청자의 호평이 이어지는 걸 보면 그의 예능 진출은 어쩌면 운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양평이 형’이라 불리는 사나이

한국 생활 20년째인 양평이 형은 정말 부자일까? 만나자마자 물었다. 예능 프로그램에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얼굴들이 대거 등장했다. 미지근한 캐스‘장기하와 얼굴들’의 맏형이자 기타리스트로 활동하는 양평이 형의 본명은 하세가와 요헤이.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다른 출연자들이 그를 ‘양평이 형’이라 불러 팬들에겐 더 친근하다. 오죽하면 인터뷰 내내 그를 양평이 형이라 불렀을까? 사실 ‘요헤이’를 한문으로 쓰고 한국식으로 발음한 것이 바로 ‘양평’이란다. 그를 친형제처럼 아낀다는 선배 가수 김창완은 그에게 ‘김’이라는 성까지 붙여줬다. 그래서일까? 그를 원래 한국 사람 ‘김양평’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도 그럴 것이 “안녕하세요” 하고 첫인사를 건네는 그의 말투에 전혀 어색함이 없다. 그가 <무한도전>에서 보여준 수줍은 미소를 아직도 기억하는 팬이 많다. 일본 유명 배우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며 ‘양평이 형이 엄청난 부잣집 아들’이라는 말이 떠돌기도 했다. 게다가 가수 김C가 방송에서 “양평이 형의 일본 별장의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욕조에 ‘장기하와 얼굴들’ 멤버가 다 들어가고도 남는다”라고 말해 궁금증을 자아냈다. “부자냐고요? 그냥 일본의 외곽 도시에 아버지 별장이 있는데, 규모가 좀 돼요(웃음). 아버지가 여행을 좋아하셔서 해외에도 맨숀을 구입해놓으셨고요. 도쿄에 있는 아버지 집은 커다란 방 하나짜리 아파트예요. 지금 제가 살고 있는 집도 원룸이고요. 레코드판 더미 때문에 발 디딜 틈도 없는 곳인걸요.” 그는 얼마 전까지는 <장기하의 대단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양평 LP바’라는 코너를 진행했다. 그 코너에선 양평이 형이 소장하고 있는 LP(아날로그 레코드) 음악을 틀어주곤 했는데 지글거리는 LP 소리에 매료된 시청자가 많아 무려 2년 넘게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음악이 좋아 무작정 한국에 왔고 그가 소장한 LP판이 한때 1만여 장이었다는 이야기에, ‘지독히 한길만 파는 외골수인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런 그와 화보 촬영을 진행하려니 걱정이 앞선 것도 사실. 하지만 촬영이 시작되자 그는 모델 못지않은 포스를 풍겼다. 생각해보니 그는 일본 톱 배우 부부의 아들이다. “한국에서도 유명 연예인의 자녀들이 한 번씩 방송에 나오고 그러잖아요. 부모님이 유명한 배우다 보니 어린 제게도 매스컴의 관심이 쏠렸었죠. 가끔 부모님과 함께 외출할 때면 파파라치가 지겹게 따라붙기도 했어요. 그래서 어릴 적엔 카메라를 무척 싫어했죠.” 그의 아버지는 일본의 유명 배우 류 라이타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배우 이순재 정도의 일본 국민 배우다. 1966년 일본 드라마 <이것이 청춘이다>로 데뷔해 <별의 금화>(1995), <케이조쿠>(1999), <닥터 코토 진료소>(2003) 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했으며 최근까지도 인기 드라마의 주연 배우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지금은 연예계에서 은퇴한 그의 어머니도 일본의 톱배우였던 나츠 케이코다. “부모님의 실체(?)가 한국 대중에 알려진 게 3~4년밖에 안 됐어요. 굳이 밝히지 않았던 건 ‘부모님 힘으로 여기까지 온 것 아니냐?’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아서였어요.” 그럼에도 그가 음악인의 길로 들어선 건 부모님의 영향이 크다. 어릴 적 그의 부모님은 엘비스 프레슬리와 비틀스 음악을 즐겨 들었고 그가 대학 입시에 실패했을 때 아버지는 “스물다섯 살까지는 매달 입금해줄 테니 뭔가 재미있는 일을 해라”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레코드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5년간 줄곧 음악만 들었다고 한다. “이 얘기를 하면 사람들이 ‘좋겠다’면서 부러워해요. 하지만 전 어깨가 무거웠어요. ‘뭔가 해야 하는데…’ 하는 중압감이 상당했거든요. 아버지가 주신 돈으로 기타를 샀고 음반을 하루에도 몇 장씩 사 모았어요. 대학을 포기하고 나서 ‘음악이 내 길인가 보다’ 하고 일본에서 밴드 활동을 시작했죠.” 양평이 형이 한국에 온 지는 올해로 꼭 20년째. 우연히 ‘신중현과 엽전들’ ‘산울림’의 음악을 들은 것이 발단이었다. 밴드 활동을 하겠다거나 음반 프로듀싱을 하겠다는 하는 구체적인 계획도 없었다. 무작정 한국으로 왔다. 그런 그가 ‘황신혜 밴드’ ‘강산에 밴드’ ‘뜨거운 감자’의 기타리스트를 거쳐 지금은 한국의 대표적인 록 밴드 그룹 ‘장기하와 얼굴들’의 멤버로 활동하며 앨범을 직접 프로듀싱까지 한다. 그의 이 특별한 스토리는 지난해 5월 일본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달, 그 번역판이 한국에서도 출간됐다. “엄마가 책을 보시고는 ‘재밌네’ 하고 한마디 하시더라고요. 생각해보면 음악은 제 운명이었던 것 같아요. 처음 기타를 잡기 시작한 게 중학교 2학년 무렵이거든요? 그 무렵 엄마가 유명한 점술가에게 제 사주를 보신 적이 있어요. 그 사람 말이 제 생년월일시에 돼지가 세 마리나 겹쳐 팔자가 아주 좋다고 했대요. 그러면서 ‘한국에 가서 평생 음악을 할 아이다’라고 했다는 거예요. 너무 신기하죠? 심지어 서른 살 이후로는 쭉 상승세를 탈 거라고도 했다는데, 신기하게도 딱 서른 살 때 ‘뜨거운 감자’에서 활동하게 됐어요. 이후부턴 아버지께 용돈도 조금씩 보내드렸고요.” 이라 생각했는데 웬걸, 그들의 한마디 한마디에 모두 빵빵 터졌다.

양평이 형에게 한국살이는 어떨까? 그는 한국 문화의 가장 큰 특징으로 ‘의리’를 꼽았다. “일본에서는 클럽에서 공연을 하면 밴드가 직접 티켓을 팔아야 해요. 관객이 적으면 밴드가 손실을 메워야 하죠. 한국의 클럽 공연 문화를 접했을 때 놀란 건, 관객이 없으면 오히려 가게 주인이 밴드에게 ‘손님이 없어 미안하다’고 한다는 점이에요. 1996년도에 압구정동의 한 가게에서 공연을 하려고 했는데 제가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정부가 가게 영업을 정지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적이 있어요. 그랬더니 가게 주인이 그날 아예 가게 문을 닫고 비공개 공연을 준비해줬어요.웬만큼 ‘의리’가 없다면 하기 힘든 결정이죠.” 한번은 양평이 형이 심하게 아팠던 적이 있다. 급히 응급실에 가야 했는데,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진료비가 만만치 않았다. 그때 그를 병원에 데려간 친구는 ‘일본인이라 비용이 걱정된다’며 의료진에게 직접 제과점 빵을 돌렸다. 딱한 사정을 들은 병원에선 그를 배려해줬고 그때 ‘한국인의 정’이라는 게 뭔지를 새삼 깨달았다. “일본인이라는 사실을 숨긴 적도 있어요. 레코드판을 구입하러 갔을 때죠. 외국인인 게 티가 나면 바가지를 쓸 확률이 높잖아요. 그래서 가게에 들어선 순간부터 말수를 줄이고 ‘네’ ‘아니오’ ‘얼마예요?’라는 말만 했어요. 옆에서 일본인이 된통 바가지 쓰는 거 보면서 모르는 척한 적도 있어요.(웃음) 한국어는 어떻게 익혔냐고요? 메뉴판을 잘못 봐서 매운 육개장을 먹고 크게 탈이나고 나니까 ‘한국어 빨리 배워야지 안 되겠다’ 싶던데요? 생명의 위협을 느껴봐야 정신이 번쩍 든다니까요.” 양평이 형의 나이는 올해로 마흔다섯. 화려한 싱글이다. “사람이 사는 건 3만 일 정도라고 해요. 나이 들고 생각해보니 고작 3만 일 동안 사는데 못 해보는 일이 없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예전에는 창피하다, 부끄럽다는 이유로 물러선 적이 많았는데 최근에 달라지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예능에 출연한 것도 그 때문이에요. 그전에는 ‘무슨 음악 하는 사람이 예능을 해?’ 하고 콧방귀를 뀌었는데 이제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이것저것 해보려고요.” 요즘들어 부모님 생각도 자주 난다. 세월은 그렇게 철부지 양평이 형을 성숙하게 만든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부모님이 저를 불러 물으시더라고요. ‘너는 같이 살면서 사이 안 좋은 것과 따로 살면서 사이좋은 것, 둘 중 뭐가 좋으니?’ 하고요. 저는 ‘따로 살면서 사이좋은 게 좋다’고 대답했어요. 그때부터 부모님이 따로 사셨죠. 그런데 제 스무 번째 생일날 두 분이 똑같은 질문을 또 하시는 거예요. 그러면서 ‘이제 이혼해도 괜찮니?’ 하고 물으셨어요. 저는 그때까지 부모님이 이혼하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예요.” 양평이 형은 그것이 부모님이 자신을 사랑하는 방식이었다고 말한다. 이제 두 분 모두 일흔을 넘긴 나이. 아버지는 재혼하셨고 혼자이신 어머니는 한 달에 한 번꼴로 한국의 아들을 만나러 오신다. “어머니는 보통 어머니들과 확실히 다른 분이세요. 아버지가 재혼하신 새어머니와도 친구처럼 지내시거든요. 개인적으로 통화도 하시는데 ‘이런 남자랑 어떻게 살았어요?’ 하고 농담도 주고받으신대요. 저까지 넷이 함께 식사도 하고 그래요. 어머니는 제게 인생의 선배님이에요. 보통 엄마들은 아들에게 ‘하지 말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저희 어머니는 ‘일단 해봐’ 하고 격려해주는 분이죠. 예전엔 몰랐는데 제 이상형도 결국 엄마 같은 여자인 것 같아요.” 이상형 이야기가 나온 참에 좋아하는 여자가 어떤 스타일인지 물었다. 갑자기 그가 “이건 매우 중요한 얘기”라며 진지한 표정이 되었다. “통통한 여자가 좋아요. 그리고 평온해 보이는 여자요. 연애 경험이 많은 여자면 더 좋겠어요. 연애에 대한 로망이 너무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니까요. 하나만 더요. 음악과 여행을 좋아하는 여자요. 말해놓고 보니 너무 많네요.(웃음)” 나이 들면서 생각도, 취향도 변했다지만 그에게도 한 가지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음악에 대한 열정이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2집 앨범 타이틀곡 ‘그렇고 그런 사이’를 프로듀싱할 때 있었던 일이에요. 저는 ‘에이스톤’이라는 키보드로 녹음하고 싶었는데 그 키보드가 마침 망가진 거예요. 하는 수 없이 다른 키보드로 녹음을 했는데 사람들의 반응은 꽤 괜찮았죠. 마음에 안 들어 한 사람은 저와 기하뿐이었죠. 접속 불량인가 싶어 잭 부분을 면봉으로 계속 닦았는데 소리가 나는 거예요! 신기한 게 뭔 줄 아세요? 녹음 끝나고 그 키보드가 다시 망가졌어요.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곡을 위해 잠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 거죠.” 진지하면서도 유쾌한 이 남자. 양평이 형의 기적도 계속된다.

 

단발머리의 강균성

지난 1월, 강균성이 속한 실력파 보컬 그룹, ‘노을’은 긴 공백기를 깨고 컴백했다. 가요계가 아니라 예능계에서 홈런을 친 것. 단발머리의 그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공손한 자세로 고개를 푹 떨군 채, 진지한 사죄를 반복한다. 바로 항공기 회항 사건을 패러디한 것. 이를 계기로 강균성은 예능계의 블루칩으로 주목받게 된다. 심지어 본업인 가수로 돌아가 무대 위에 선 그가 조금이라도 고개를 숙일라치면 관객들은 이내 폭소하기 일쑤였다. 사랑 노래를 부르던 보컬 그룹의 멤버가 예능계를 휩쓸 줄 누가 알았을까? 그런 의미에서 강균성은 예능 PD들 사이에선 물건 중에 물건이다. 그는 <안녕하세요> <라디오스타>를 기점으로 <세바퀴> <코미디빅리그> <무한도전> <위기탈출 넘버원> <마녀사냥> 등 다양한 예능을 차례로 섭렵 중이다. 이제 고정 프로그램까지 생긴 어엿한 예능인이다.


 

잊을 수 없소 엠버

에프엑스의 엠버는 인형같이 어여쁜 바비들 사이에서 단연 돋보였다. 남자 같은 헤어스타일이지만 다른 멤버만큼 어여쁜 미모를 지닌 그녀. 최근 그녀는 군대 예능 프로그램 <진짜사나이> 여군 특집 2에 출연해 예능 대세 라인에 합류하게 됐다. 그녀를 예능 스타로 만든 건 눈물을 쏟으며 소대장에게 서툰 한국어로 버벅거린 끝에 뱉은 말, “잊으시오” 때문이었다. 난데없는 사극 말투에 함께 출연한 배우 김지영 역시 웃음을 참지 못했다. 엠버의 “잊으시오” 발언 동영상은 SNS에서 엄청난 조회 수를 기록했다. 그녀의 덕인지 거의 끝물이라고 혹평받던 <진짜사나이>는 다시금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유격 훈련장에서 선글라스를 벗은 ‘꿀성대’ 교관에게 한눈에 반한 소녀 같던 모습. 보이시한 외모에 가려 있던 그녀의 여성스러움은 그야말로 반전이었다. 그녀에 대한 편견은 눈 녹듯 사라졌다. <4가지쇼>에선 프로그램에 출연해 짧은 머리와 바지를 고집하는 이유까지 공개해 팬심이 더 두터워졌다. 심플하면서도 털털한 라이프를 선호한다는 것. 그녀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빛을 보긴 했지만 본업을 소홀히하지 않았다. 곧바로 솔로 앨범을 공개하고 가수 활동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그녀만의 개성을 지키면서 말이다.


 

탐나는 이규한

그동안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실장이나 상무 캐릭터를 도맡아왔았던 그가 반듯한 이미지를 버리고 예능이라는 판에 뛰어들었다. <라디오스타>에서 진심으로 그를 탐내던 윤종신은 결국 그를 자신의 회사로 데려온다. ‘미스틱89 그리고 가족’으로 둥지를 옮긴 그는 본격적인 예능 활동을 시작했다. <정글의 법칙> <우리 동네 예체능> <나 혼자 산다> <무한도전> <진짜사나이 2> 등에 연이어 출연하면서 존재감을 키웠다. <마녀사냥>에서는 중3 때 클럽 출입을 시작한 클럽의 황태자였다고 밝혀 주목을 끌었다. “탈모가 진행 중이다” “8세 연하의 여자친구와 1~2년 사이에 결혼할 생각이다” 등 다른 연예인들과는 사뭇 다른 솔직하고 당당한 발언들이 인상적이었다. 여자친구 이야기를 할 때마다 환하게 웃는 이규한은 자신의 사생활을 거침없이 털어놓는 당돌함으로 시청자들의 호감을 샀다.


 

위 아래 완벽 하니

중독성 있는 멜로디가 인상적인 ‘위아래’로 단번에 가요계를 뒤흔든 EXID. 멤버 중에서도 하니는 늘씬한 기럭지와 하얀 피부, 청순한 외모로 성형 의혹에 휩싸일 정도였는데, 2013년 <블라인드 테스트 180도>에서 CT 촬영을 자처해 자연 미인임을 입증했다. 외모와 달리 그녀의 성격은 의외로 솔직하고 털털했다. <런닝맨>에 출현해 옆자리의 유재석은 아랑곳하지 않고 트림을 했고, ‘폭풍 빵 먹방’과 함께 입을 벌리고 잠드는 등 그야말로 내숭이라곤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녀의 시원털털한 모습은 이미 다른 예능 프로그램에서 입증된 바 있었다. 영화 <맨발의 기봉이>의 기봉이부터 이선균, 안성기, 신문선의 성대모사를 선보이며 완벽히 망가졌다. 발가락으로 셀카를 찍는 그녀 모습에 많은 시청자들이 폭소했다. 그녀의 매력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과거 JYP 연습생 시절, 걸그룹 데뷔가 좌절되자 중국 유학길에 올랐던 그녀. IQ 145에 중국어와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명석한 두뇌를 가진 수재 다. 어여쁜 미모에 똑똑하기까지 하니 이런 다재다능한 매력으로 미뤄볼 때, 그녀의 인기는 ‘반짝’이 아닌 ‘롱런’이 될 것만 같다.

CREDIT INFO

취재
정희순, 손혜지
사진
박원민,그라치아,YNB엔터테인먼트, SM엔터테인먼트, 미스틱엔터테인먼트, 예당엔터테인먼트
스타일리스트
박미영, 박경민
의상협찬
지오송지오, 타미힐피거, 헤지스, 세라, 나무하나, 리바이스
2015년 04월호

2015년 04월호

취재
정희순, 손혜지
사진
박원민,그라치아,YNB엔터테인먼트, SM엔터테인먼트, 미스틱엔터테인먼트, 예당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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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영, 박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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