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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숙 변호사의 사랑과 전쟁 서른아홉 번째

현대판 홍길동

On December 19, 2014


아이가 태어나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누가 아이의 엄마인지’는 쉽게 알게 된다. 10개월 동안 임신한 산모로 있었고 출산까지 했으니까. 하지만 아빠가 누구인지는 오직 엄마만이 알 수 있다. 그런데 시대가 변하고 정조관념이 바뀌다보니 여러 명의 남성과 동시에 만나는 여성들도 있게 마련이고, 결혼 후에도 배우자가 아닌 다른 이성과 사귀면서 임신까지 하는 경우도 빈번히 나타나곤 한다. 그런데 우리 민법은, ‘임신은 우리 사회에서 성관계를 허용하는 부부지간에만 하는 것’과 ‘결혼한 남녀는 부부사이에만 성관계를 하고 임신하는 것’을 전제로 만들어져 있다. 그래서 혼인기간 중에 태어난 아이는 당연히 남편의 아이로 법이 강제해 버렸고, 이로 인해서 또 다시 분쟁이 발생하곤 한다.

최근 남편과의 이혼소송으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유명 앵커의 경우, 이혼소송 중 남편 강씨가 내연녀와의 사이에서 딸을 출산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충격을 주었다. 사실 이 문제를 푸는 법적 절차는 꽤나 복잡하다. 내연녀가 싱글이라면, 강씨가 이혼한 후 아이의 출생신고를 하면 된다. 하지만, 내연녀가 유부녀라면 자동으로 내연녀의 남편이 이 아이의 법률상 아버지가 된다. 내연녀 남편 입장에서는 느닷없이 낯모르는 아이의 아버지가 되는 날벼락을 맞게 되는 것이다.

한씨가 그런 경우였다. 아내와의 오랜 갈등 끝에 당분간 떨어져 있기로 하고 해외근무를 자청한 한씨는, 미국에서 3년을 혼자 지내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무 연락이 없던 아내로부터 ‘가족관계등록부에 딸이 태어난 것으로 출생신고를 할테니, 가정법원에 소송을 해서 이혼도 하고, 아버지와 딸관계가 아니라는 판결을 받아달라’는 요지의 이메일을 받았다. 사연인즉슨, 국내에 남아 있던 아내가 다른 남자와 동거를 시작했고, 그 사이에 아이가 태어나자 동거남의 아이로 출생신고를 하기 위해 이혼을 요구한 것이었다. 남남처럼 지내는 부부라고해도 우리 민법상 태어난 아이는 남편의 아이로 출생신고를 할 수 밖에 없으니 할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동거하고 있던 아이의 친아버지는 법적인 아버지가 되지 못하고, 법률상의 남편만 아내가 출산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 버리는 것이 현실이다. 아내의 외도도 분노할 일인데, 아내의 외도로 태어난 아이가 법적으로 억울하고 울화통이 터질 일이다. 게다가 ‘내 아이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려면 법원에 소송까지 해야 하니 기가 막힌 노릇인 셈이다. 혼인신고가 되어 있지 않은 남녀간에 태어난 아이들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태어나면서부터 분노와 분쟁의 한가운데로 내몰린다. 그리고 세월이 한참 흐른 후에서야 정체성을 찾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현대판 홍길동이 늘어가는 세태가 안타까울 뿐이다.

  • ※이 변호사의 어드바이스
    민법 제844조 제①항은 ‘혼인 중에 포태한 자는 부의 자로 추정한다’고 규정되어 있고, 제②항에서는 ‘혼인관계 종료일로부터 3백일 이내에 출생한 자는 혼인 중에 포태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규정한다. 그래서 이혼신고를 한 날로부터 300일 이내에 태어난 아이는 무조건 전남편의 아이로 추정되어 버린다. 이를 부인하는 방법은 전남편이 아이가 태어난 사실을 안 날로부터 1년 이내에 가정법원에 ‘친생부인의 소’를 제기하여야만 가능하며, 다른 방법으로는 불가능하다. 물론 전남편은 뒤늦게라도 외도한 아내와 상대 남성을 상대로 간통으로 고소하고 손해배상청구도 할 수 있고, 아내와 이혼소송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억울함은 평생 동안 무엇으로도 위로받기 어려울 것이다.

 

글쓴이 이명숙 변호사는…
24년 경력의 이혼·가사 사건 전문 변호사로 현재 KBS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 2>의 자문 변호사로 활약하고 있다.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과 대한변호사협회 부협회장을 맡고 있다.

CREDIT INFO

기획
정희순
일러스트
김민아
2014년 12월호

2014년 12월호

기획
정희순
일러스트
김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