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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둘째 딸 민정씨 해군 입소하던 날

‘재벌가 딸=공주님’이라는 편견은 이제 버려야 할 것 같다. SK그룹 최태원 회장의 둘째 딸인 민정씨의 ‘해군 입대’라는 이색적인 행보 덕분이다. 흔히 말하는 재벌 3세, 그것도 아들이 아닌 딸이라서 더욱 이목을 끈 최민정씨의 해군사관학교 입영 현장을 동행했다.

On October 06, 2014


지금까지 이런 재벌 딸은 없었다. SK그룹 최태원 회장과 아트센터 나비의 노소영 관장의 금지옥엽 둘째 딸인 최민정(23세)씨가 해군 장교가 되기 위한 사관후보생 모집에 지원해 당당히 합격했다.

민정씨의 해군 사관후보생 지원 소식이 알려지며 관심을 모은 건 지난 8월 초. 그녀는 지난 4월 진행된 117기 해군 사관후보생 모집에 조용히 지원했으며 필기시험과 면접, 신체검사를 모두 거친 후 SK그룹 홍보실을 통해 장교 지원 사실을 알렸다. 해군 측은 8월 29일, “최민정씨가 9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뚫고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다”고 발표했다.

재벌 2세와 3세들의 병역 기피가 만연한 상황에서 재벌 오너 일가 최초의 예비 여군 장교가 탄생한 것이다. 이는 주로 가족이 경영하는 중소 계열 사업체를 물려받거나 명품 숍, 레스토랑, 갤러리 등을 운영하는 재벌가 여성의 보편적인 모습과 비교해도 눈에 띄게 파격적인 행보이기에 대중의 큰 관심을 끌었다.

입영식에는 엄마 노소영 관장과 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들이자 노 관장의 동생인 노재헌 변호사가 동행했다.


그리고 화창한 가을 햇살이 내리쬐던 지난 9월 15일, 민정씨는 가족들의 응원 아래 경남 진해 해군사관학교(교장 이기식 중장)에 입영했다. 민정씨는 지난 8월 정몽준 전 새누리당 대표의 둘째 딸 결혼식에서 포착됐을 때와 달리 짧은 쇼트커트 헤어로 등장해 시선을 끌었다. 허리까지 내려오던 긴 생머리를 훈련을 받기 위해 싹둑 자른 것. 짧게 자른 머리만 보아도 군에 입대하는 그녀의 다부진 각오와 강단이 엿보였다.

이날 입영식에는 엄마 노소영 관장이 함께해 딸의 도전을 응원했으며, 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들이자 노 관장의 동생인 노재헌 변호사도 먼 길을 동행해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외삼촌 노재헌 변호사는 스물셋 어린 나이인 조카와 헤어짐이 아쉬운 듯 진한 포옹을 나누며 입소를 응원했다.

꼭 닮은 외모로 환한 웃음을 보이며 친구처럼 대화를 나누던 어머니 노 관장과 민정씨는 헤어짐이 아쉬운 듯 포옹을 여러 차례 나누며 깊은 모녀의 정을 보여줬다. 노 관장은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다른 훈련생의 부모들처럼 휴대폰을 손에 들고 사진을 촬영하며 딸의 새로운 출발을 추억으로 남겼다. 씩씩한 딸이 자랑스러운 듯 흐뭇한 미소를 짓는 한편으론 연약한 딸을 걱정하는 아련한 눈빛도 문득문득 엿보였다.

꼭 닮은 외모로 환한 웃음을 보이며 친구처럼 대화를 나누던 어머니 노 관장과 민정 씨는 헤어짐이 아쉬운 듯 포옹을 여러 차례 나누며 깊은 모녀의 정을 보여줬다. 노 관장은 무거운 짐을 들고 동료들과 발걸음을 옮기는 민정씨의 뒷모습에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이날 노 관장과 민정씨 모녀는 화려하고 도도한 재벌가 사람들답지 않은 소탈한 모습으로 눈길을 끌었다. 두 사람은 대형 세단이 아닌 국산차 카니발을 타고 해군사관학교에 도착했다. 또한 자신들에게 쏠리는 언론의 관심이 다른 훈련생과 가족들에게 피해가 될까봐 조심스러워하는 모습이 역력했으며, 그런 이유로 취재진과의 인터뷰도 정중하게 거절했다.

단정한 블랙 정장에 굽 낮은 구두를 신은 노 관장과 편안한 줄무늬 셔츠에 바지를 입은 민정씨, 모녀의 패션도 수수하기 그지없었다. 특히 노 관장은 화려한 명품 핸드백이 아닌 국내 브랜드의 가죽 백팩을 직접 메고 다니며 딸을 살뜰히 챙겼다.

취재진의 접근을 막으려는 특별한 노력을 하거나 비서 혹은 관계자들의 보호도 받지 않았다. 분위기를 고려해 “인터뷰를 못 한다”고 말하면서도 “어디에서 오셨냐?”며 취재진의 수고를 걱정하고 친절한 미소를 지었다.

입영식 마지막 순서로 민정씨를 비롯한 사관후보생들이 무대 위에 순서대로 올라가 가족을 향해 큰절을 올리고 숙소로 향했다. 부모님에게 입영 전 마지막 인사를 전하는 시간이었다. 딸이 절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며 지켜보던 노 관장은 무거운 짐을 들고 동료들과 발걸음을 옮기는 민정씨의 뒷모습에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귀하게 키운 자식을 군대에 보내는 심정은 어느 부모나 똑같겠지만, 스물셋 꽃다운 딸을 극한의 훈련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막상 떠나보내려 하니 안타까운 것도 당연지사. 딸 앞에선 담담한 척하던 노 관장의 얼굴에서 아쉬움이 느껴졌다.

딸과의 헤어짐을 뒤로하고 차로 이동하는 노 관장에게 “서운하지 않느냐?”고 묻자 그녀는 애써 눈물을 참는 듯 잠시 숨을 고르더니 “서운하죠”라고 짧게 답했다. 그리고 응원의 말을 부탁하자 “(딸 민정 외에 후보생들도) 다들 잘하고 무사히 마치기를 바랍니다. 파이팅!” 하며 씩씩하고 담대한 어머니의 모습을 보였다. 민정씨의 강인함은 어머니 노소영 관장에게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하는 짐작이 드는 장면이었다.


민정씨는 앞으로 11주간 해군 장교로서 가져야 할 강인한 체력과 인내력 배양, 기본 소양 교육 등 힘든 훈련 과정을 견뎌내야 한다. 이번 임관 평가에서는 전투수영 평가 과정에서 비상 이함, 구명정 승선 등 종합 생존 훈련을 시범 평가하는 등 전보다 강도 높은 훈련이 이뤄질 것이라는 게 해군사관학교 측의 설명.

이 모든 과정을 무사히 수료하면 11월 28일로 예정된 임관식에서 소위로 임관하며 3년간 해군 장교로 복무하게 된다. 군 관계자에 따르면 민정씨는 직접 배를 타고 국가 안보의 최일선에 나서 국토를 방위하는 ‘함정과’에 지원했다.

해군 관계자는 “여성은 보통 육상 근무를 지원하는데, 배를 타려고 하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라며 “장교는 통상 1년 단위로 보직 변경 신청을 할 수 있어 차후에 담당 업무를 바꿀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로써 민정씨는 육군 대장 출신인 외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군에 입대하게 됐고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좋은 사례이자 진취적 여성의 아이콘으로 주목받게 됐다. 하지만 이를 두고 재계에서는 그리 놀랄 일이 아니라는 분위기다. 이유인즉, 민정씨가 워낙 어려서부터 자립심이 강하기로 유명했다는 것.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관장의 1남 2녀 가운데 둘째로 태어난 민정씨는 베이징대 광화관리원대(경영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재원이다. 그녀는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유복한 환경에서도 대학 시절 부모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거의 받지 않고, 한국 학생을 대상으로 한 입시학원에서 강사 등으로 활동하고 장학금으로 학비를 마련할 만큼 강한 독립성을 보였다고 전해진다.

또 한 인터뷰에 따르면 민정씨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대통령의 손녀이자 재벌가의 딸인 것이 족쇄같이 느껴져 일부러 부모 몰래 강남의 레스토랑, 편의점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노 관장에게 들킨 일화도 있다고. 하지만 이렇듯 어디로 튈지 모르는 딸의 독립적 행동을 엄마인 노 관장은 나무라지 않고 지켜보며 격려해준 것으로 전해진다.

노소영 관장과 남동생 노재현 변호사 등 가족들과 담소를 나누는 민정씨.


민정씨는 대학에 다니던 2010년에는 중국과 한국의 상생 관계를 도모하기 위해 NGO인 ICU를 직접 세웠다. 또 ‘한국과 중국을 연결하는 징검다리가 되고 싶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아버지 회사에 들어가지 않고 스스로 중국 관련 사업을 창업했다.

민정씨는 해군 입대 전 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 이종식, 소셜커머스 위메프 창립 멤버들과 함께 국내 제품을 중국 온라인 소비자들에게 판매하는 벤처기업 ‘판다코리아닷컴’을 세우고 부사장으로 활동해왔다.

이 같은 민정씨의 진취적인 마인드는 중국과의 경제 교류에서 다양한 역할을 해온 외할아버지 노태우 전 대통령과 한중 문화 활동에 앞장서온 어머니 노 관장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노 관장은 노 전 대통령이 북방정책으로 한중 수교를 추진한 이후 그 뜻을 이어받아 한중문화센터를 운영하는 등 양국 간 문화·경제 교류에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민정씨는 2012년 노 관장과 함께 한국과 중국 대학생이 참가하는 ‘2012 상생 영 리더십 포럼’을 개최하며 든든한 지원군 노릇을 톡톡히 하기도 했다.

민정씨는 아버지 최태원 회장에게도 특별한 딸인 것으로 전해진다. 평소 두 사람이 그 어떤 부녀보다 많은 대화를 나누며 애틋한 유대 관계를 갖고 있었다는 것. 특히 두 사람은 동일한 인물을 역할 모델로 삼고 있을 만큼 가치관 측면에서 큰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국방부에 따르면 민정씨는 이번 해군 사관후보생 선발 면접 때 섀클턴의 리더십에 감명받아 해군에 지원했다고 밝혀 좋은 평가를 받았다.

최 회장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후폭풍이 한창이던 2009년 초 사내 방송에 출연해 그해 경영 방침을 소개하며 섀클턴의 이야기를 다룬 책인 <인듀어런스>의 내용을 발표 자료로 사용했다.


입영 직전 민정씨는 아버지 최 회장을 만나 “잘 다녀오겠다”는 인사도 전했다. 재계 소식통에 따르면 민정씨는 추석 연휴 직후 홀로 경기도 의정부시 의정부교도소에 수감 중인 아버지를 찾아가 작별 인사를 나눴다. 민정씨는 15분 정도 그곳에 머무르며 안부를 전했고, 최 회장은 평범하지 않은 길을 택한 딸에 대한 세간의 관심을 걱정하면서도 딸의 선택에 대해 자랑스러워하고 적극적으로 격려했다고 한다.

한편 최 회장은 지난 2013년 1월 횡령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아 구속 수감됐으며, 지난 2월 대법원에서 형이 최종 확정돼 현재 의정부교도소에 1년 8개월 넘게 수감 중이다. 지난 5월에는 지난해 받은 보수 3백1억원 중 세금을 제외한 1백87억원 전액을 청년실업 해소를 위한 사회적 기업 활동에 기부한다고 밝혀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CREDIT INFO

취재
이현경
사진
강민구
취재협조
해군사관학교 정훈공보실
2014년 09월호

2014년 09월호

취재
이현경
사진
강민구
취재협조
해군사관학교 정훈공보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