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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3년’ 무용가 홍신자·사세 부부 가을날의 인터뷰

황혼 결혼 3년째다. “흘러가는 대로 산다”는 아내와 “둘이기에 더욱 자유롭다”는 남편은 아침으로 빵과 치즈를 먹고, 점심으로 청국장을 먹는다. 낮 12시, 집 마당 테이블에 햇살이 내려앉았다. 바람 따라 들리는 풍경 소리가 가을스럽다.

On December 13, 2013

두 사람의 만남은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에서 열린 전시회에서 처음 만난 이후 호남지방 여행 중 우연히 재회했다. 그러고는 제주도와 남해 여행을 함께 다녔다. 그해 두 사람은 제주도에서 부부의 인연을 맺었다


이곳은 무용가 홍신자(73세)가 15년 전에 지은 집이다. 사람들이 쉽게 찾지 못하게 마을 안쪽, 명상하기 좋은 곳에 터를 잡았다. 그사이 홍신자는 미국, 인도 등지에서 수년씩 머물렀다. 머물고 싶은 곳이 내 집인 예술가다운 삶이다. 그런 그녀에게 이 안성 집은 베이스캠프 같은 곳이다.

50여 년 전 우연한 기회에 전라남도 나주에서 4년간 생활한 것을 계기로 한국 문화를 접한 사세(72세, 전 한양대 석좌교수) 교수는 이후 한국과 독일을 오가며 한국학을 공부하고 독일 대학에서 한국학을 가르쳤다. 그리고 정년퇴임 후인 2006년 한국에 정착했다. 그동안 전남 담양의 한옥과 서울 강북의 한옥에서 한국을 만끽했다. 요즘 그는 글을 쓰고 번역하고, 한지에 수묵화를 그리며 지낸다. 막걸리를 좋아해 한자리에서 세 병은 거뜬하다.

“제주도를 떠나 안성에 온 지 1년쯤 됐어요. 조용하고 좋아요. 저 앞에 있는 방이 내 서재고 우측에 있는 방은 부엌이에요. 뒤에 본채는 우리가 자는 방, 그 2층은 게스트하우스예요. 옆에 있는 방은 신자의 작업실, 좌측 사랑채는 신자가 명상하는 방이에요.”(사세 교수)

사세 교수는 감기에 걸렸다고 한다. “어젯밤 기온이 12℃였어요. 전기장판을 아직 고치지 않아서 조금 추웠어요.” 곧 겨울맞이 채비를 단단히 할 생각이다. 홍신자는 스낵과 치즈, 커피 그리고 볶은 콩을 내어온다. 동서양이 어우러진 다과상이다. 그러곤 앞마당에서 빨래를 널기 시작한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다.

어떻게 한국과 인연을 맺었나요?
생각해보면 운명이 내게 호의적이었죠. 우연히 한국에 와서 전혀 다른 문화와 마주했는데 그 당시 한국은 유럽 사람들에게 미지의 땅이었고, 오늘날과 달리 한국 문화를 소개한 책조차 전무했기에 조금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한국 문화와 조우했습니다.

1966년 그 당시 장인(전처의 아버지)이 우리 가족에게 한국으로 와서 기술중학교와 고등학교 설립을 도와달라고 부탁했어요. 우리는 2년 동안 전라도 나주에서, 이어서 2년 동안 서울에서 1970년까지 살았어요. 그 당시 서울은 4백50만 명이 사는 잠자는 숲 속의 공주 같은 도시였어요.

이방인의 눈에 비친 1960년대의 한국 문화는 어땠나요?
한국에서 보내는 4년 동안 나는 이 낯선 문화를 이해하려고 애썼어요. 나와 다른 사고와 생활 방식에 매료되어 친구들이 들려주는 설명과 해석을 열심히 들었지요. 한글과 한자를 배우기 시작했고, 여러 대학과 공공 도서관에서 한국 문화 관련 자료를 읽기 시작했어요.

독일로 돌아갔을 때에는 내가 한국 문화 관련 공부를 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졌어요. 결국 대학원을 졸업할 때 서독 최초로 한국학 박사학위를 받았어요. 교수 생활을 하다가 은퇴 후 한국으로 들어왔지요. 내 생애 마지막을 아내와 함께 이곳에서 보낼 겁니다.

최근 <민낯이 예쁜 코리안>(학고재)이라는 책을 펴냈는데요, 한국 문화에 관한 대중적인 에세이는 처음이죠?
지금까지 몇 권의 학계 논문을 냈지만 결국 교수들끼리만 공유돼죠. 지난 50년 동안 책을 통해 한국을 공부하기보다 체험하며 공부했어요. 그 세월 동안 한국이 어떤 변화를 겪었고, 그 방향은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 이방인의 눈에 비친 모습을 말하고 싶었어요.

한국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인가요?
외국인들에게 ‘우리'라는 말을 강조하면 도망가요. 한식, 한옥, 한글 모두 훌륭하지만 ‘세계에서 유일하다'고 말하면 국가주의에 경도된 듯 보입니다. 실제로 정부에서는 ‘한국 제일’ ‘우리 제일’이라고 홍보하지만 한국 문화는 세계적이지 않아요. 전 세계 다른 문화처럼 어떤 특색을 가진 똑같은 문화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한국 문화는 분명 재미있는 문화지만 다른 문화에 비해 특별히 우수하다는 생각은 버려야 해요.

과도한 국수주의가 문제네요.
맞아요. ‘5천 년 역사’는 멋진 말이지만 과학적으로 증명해내야 해요. 이런 걸 과도하게 자랑하면 밖에서는 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어요. 과장하지 말고 좀 더 체계를 갖춰 외국인에게 한국사를 사실적으로 소개하는 편이 좋지요.

한국 문화의 어떤 면이 재미있나요?
이곳은 기독교가 아닌 불교와 유교의 나라였지요. 그래서 사고와 행동이 아주 달라요. 그리고 1970년대 말부터 시작된 한국의 발전도 흥미롭지요.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갑자기 바뀌고 전통 문화도 없어졌어요. 근데 지금은 어떤가요? 돈과 여유가 생기니 그때 그 시절, 즉 농부의 모습을 갈망해요.

텃밭을 가꾸고 전원생활을 즐기고 자연을 찾죠. 게다가 그 비약적인 발전은 전 세계적으로 전무후무해요. 빠른 시간 내에 오지 마을까지 전기가 들어오고 휴대폰도 보급됐지요. 시골과 도시의 차이점이 거의 없어요.

빠르게 획일화됐다는 의미네요?
그래서일까요, 사람들의 행동이 조금은 야누스적이에요. 아는 사람들에겐 아주 친절하지만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친절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요. 늙은 사람에게는 시간이 있을 때만 친절하죠. 특히 서울 생활은 재미없어요. 뭐든 빨리빨리, 지하철에서는 서로를 밀기도 하죠. 1960년대 후반 제가 한국말을 공부할 때 ‘bye’의 다른 말이 ‘슬슬 가세요’ 혹은 ‘살펴 가세요’였어요. 한데 너무 빨리 갔어요. 좋은 습관을 새길 새도 없이 너무 빨리 변해버렸죠.

한옥 마니아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한옥의 아늑한 마당이 매력 있어요. 넓지 않고 아담해서 집 안도 밖도 아닌 그 느낌이 좋아요. 전통 한옥은 나무, 흙, 돌 등으로 만들었죠. 건강에도 좋고 분위기도 좋아요. 많은 친구들이 내 집에 와서 “아늑하다” “마음 편하다”라는 얘기를 했어요. 한옥을 만드는 재료들이 자연에서 얻은 것이기 때문일 거예요. 그 집에 거주하는 사람도 자연의 일부죠.

한복도 즐겨 입으시죠?
아름답고 편해요. 한데 아주 재미있는 현상이 있어요. 한복이 아름다운 우리 옷이라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입지 않아요. 한복을 입는 부류는 두 부류예요. 아주 진보적인 아티스트, 아주 보수적인 할아버지요. 이상한 현상이죠. 잘 입지도 않는 옷을 어떻게 외국에 자랑할 수 있겠어요.

잔치 문화도 그래요. 예전에는 씨름대회, 소싸움, 윷놀이 등 볼거리가 많았죠. 추수철엔 추수감사절을 지내고 한 해를 보내면서 그리고 새해를 맞이하면서 전통 놀이가 가미된 잔치를 했지요. 지금은 어때요? 페스티벌은 많지만 그 내용은 먹고 마시고 떠드는 것뿐이에요. 관광객에게서 돈 좀 벌겠다고 난리예요.

아침 8시 반에 일어나요. 신자는 더 일찍 일어나 명상을 하죠. 그런 다음 함께 아침을 준비합니다. 빵과 커피, 과일로 간단히 먹지요. 점심과 저녁은 한식으로 먹어요. 물 조금 넣고 묵은지와 고등어를 넣어 끓이면 아주 맛있는 수프가 완성되죠. 나머지 시간은 공부합니다. 책 읽고 번역하고 그림을 그리죠. 그리고 새벽 1시쯤 잠이 들어요.


한국어는 어렵지 않나요?
한국어는 어렵고, 한문은 어렵지 않아요. 한글은 새로운 단어가 나오면 무슨 뜻인지 파악할 수 없지만 한자는 한 글자만 알아도 그 의미가 추측이 돼요. 한국 사람은 한문이 필요 없다고 말하지만 아니에요. 한자는 1천5백 년 이상 한국 문화 속에 있었으니까 외국어가 아니라 한국어의 큰 범주 안에 있다고 봐야 해요. 자기 문화를 알게 하려면 한자와 한문 교육을 해야 합니다.

독일이 그리울 때는 없나요?
독일이 그리운 게 아니라 손자들이 그리워요. 아직 돌이 지나지 않은 손자부터 서른다섯 살 먹은 손자까지 있어요. 그래서 1년에 한 번씩 독일에 갑니다.

안성에서의 생활은 만족스러운가요?
천천히 생활하기에 좋아요. 여기 오는 사람은 이유가 있어서 오는 사람들이에요. 서울과 꽤나 떨어져 있으니까요. 이웃이 대부분 농민들이에요. 외출하는 길에 인사도 건네고, 옛날 방식으로 물건도 주고받지요. 감자와 고구마도 한 소쿠리 가져다줘요. (사세 교수)

이곳 생활은 보다시피 평화롭고 안정돼 있지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서울 갈 일이 생기는데 그것 자체가 스트레스예요. 차에서 내려 콘크리트 건물과 빠른 걸음으로 무표정하게 걷는 도시 사람들을 보면, 내가 여기 또 왜 왔나 싶어요. 몇 년 뒤에는 제주도에서 살 겁니다. 아직 서울에 올 일이 많아 제주도에 사는 것이 불편하더라고요.(홍신자)

제주도의 어떤 점이 매력적인가요?
제주도는 빛이 달라요. 유럽 지중해의 느낌과 비슷하죠. 그리고 동서남북이 아주 달라요. 산에 올라가면 500m마다 꽃도 다르고 풀도 다르고 분위기도 달라요. 그 변화가 기가 막혀요.

신혼인 만큼 아내에 대해 얘기 좀 해주세요.(웃음)
하하하. 얼굴 좀 보자! (빨래를 널고 있는 홍신자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신자는 활발하고 아이디어가 많고 인생의 깊이도 있어요. 같이 있으면 아이디어가 많이 떠올라요. 난 좋은 데는 이유가 없어요. 신자가 좋은 이유도 그냥 좋아요. 한 사람일 때보다 두 사람이면 더 자유롭게 살 수 있어요. 서로에게 배경이 되잖아요. 우리는 작은 집안일도 함께 해요. 요리도 빨래도 함께 하죠. 이야기하면서 빨래를 널면 재미있어요. 그래서요, 늙으면 결혼해야 해요. 등 긁어줄 사람이 필요하죠.

결혼 이후 달라진 점이 있나요?
우리는 30년 동안 신혼생활을 즐기자고 약속했어요. 27년 남았네요. 다 마음먹기 나름이에요. 사람은 경험에 따라 변화해요. 결혼을 하면 서로가 변화하는 것을 보게 되죠. 보통 주부들은 “네가 하라” “이렇게 하라” “왜 그렇게 안 했니?”라고 말해요. 서로 변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어요. 결혼 후에 저는 조금 조용해졌어요. 예전에는 지금보다 술도 많이 마시고 수다스러웠죠. 서울에 있는 친구들이 술을 마시고는 밤늦게 전화를 해요. 그러곤 대뜸 “나와, 술 마시자!” 하죠. 한국의 정이겠죠. (사세 교수)

동반자가 생긴 것이죠. 혼자보다는 둘이 낫잖아요. 우리는 늘 함께 있고, 함께 나눠요. 결혼 후 집에 있는 시간이 늘었어요. 안성에 사니까 찾는 사람도 덜하고요. 편안하고 집중되는 삶이에요.(홍신자)

‘한잔하자’는 친구의 전화가 아쉽지는 않나요?
하하. 그럴 때는 1시간 반 동안 버스 타고 서울에 가서 마시면 되지요. 예전에 종로구 팔판동의 한옥에서 살 때는 밤늦게 술을 자주 마셨지만 지금은 밤늦게 공부만 합니다. 여기 안성 막걸리가 맛이 괜찮아요. 소주보다 막걸리, 맥주, 와인을 좋아해요. 소주는 취하느라 마시잖아요. 많이 마시는 게 재미있지 취하는 건 재미없어요. 대신 삼겹살을 좋아하는 친구와 술 마실 때 조금 마셔요. 술안주요? 김치와 두부면 최고!

여생을 한국에서 보낸다고 들었어요.
나는 백인이고, 유렵에서 왔고, 학자이고 또 나이가 많고. 그것뿐이에요. 그것 외엔 한국인과 다를 게 없어요. 한국 사람처럼 한국에 사는 것일 뿐.

자기 관리는 어떻게 하세요?
뭐든 넘치는 건 안 해요. 과식, 과로, 폭주를 안 하죠. 잠도 부족하거나 넘치지 않게 적당히 자죠. 평생 컨트롤하는 삶이죠. 저희는 밥을 먹을 때 반찬도 하나 혹은 두 가지에 간단히 먹어요. 오늘 아침에는 감기에 걸려 입맛이 없는 남편에게 김치죽을 만들어줬죠. 죽을 끓이다가 김치와 된장을 약간 넣어서 만들었어요.

저는 평생 명상은 했어요. 명상 속의 생활이고 생활 속의 명상이죠. 명상은 내 삶의 순간순간을 깨닫게 하고 의미 있게 하죠. 우리는 순간순간 놓치며 살잖아요. 명상을 하면 그 순간에 집중할 수 있어요. 이끌려가는 삶이 아니라 내 삶을 주체적으로 만들어주죠. (홍신자)

최근 여행한 곳이 어딘가요.
결혼 후 신자 따라 인도에 처음 가봤어요. 매력적이었어요. 한국 문화와도 깊은 연관이 있지요. 아내는 인도를 편식해요. 뉴욕에서 성공적으로 데뷔한 뒤 허한 마음을 인도에서 3년간 머물면서 달래기도 했죠. 인도 수교 40년을 맞아서 이번 주에 인도 공연을 하기도 해요.

저는 어느 나라든 그 나라의 특색을 보는 게 재미있어요. 방글라데시, 미국, 인도 다 다르잖아요. 특히 좋아하는 나라 없이, 내가 있는 그 자리가 좋아요.

마당을 둘러보았다. 텃밭이 있고, 곳곳에는 두 사람의 취향이 느껴지는 소품들이 저마다의 위치에서 위트 있게 포즈를 취하고 있다. 부부는 그렇게 생애 마지막까지 자연 속에서 자연스럽게 함께할 것이다.

CREDIT INFO

취재
하은정
사진
안호성
2013년 11월호

2013년 11월호

취재
하은정
사진
안호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