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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전문 변호사 이명숙의 ‘사랑과 전쟁’스물일곱 번째

계모 콤플렉스

On November 22, 2013


누구나 어려서부터 <신데렐라> <콩쥐팥쥐> <심청전>을 읽고 자란다. 자녀에게 조금만 가혹하게 굴면 ‘계모 아니냐?’는 말을 하고, TV 속 드라마에서도 냉랭하고 철면피 같은 어머니는 늘 ‘계모’로 지칭되는 새어머니였다. 그 때문에 누구나 생모가 아닌 새어머니에 대해서는 신데렐라의 계모, 콩쥐의 계모인 팥쥐어멈, 심청전의 뺑덕어멈을 떠올리곤 하는 것이다.

현실에서 새어머니들은 어떨까? 과연 이들은 동화나 드라마 속의 계모처럼 전처소생 자녀들을 무작정 미워하고 눈엣가시로만 여기는, 천하에 악독한 사람들이기만 할까?

A씨는 2009년 베트남에서 열 살 연상의 한국인 B씨를 소개받아 결혼식을 올린 뒤 3개월 후 서울로 와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봉제 공장을 운영하고 있던 남편은 전처와 이혼한 뒤 20대 초반의 아들과 고등학교 2학년인 딸을 데리고 혼자 살고 있었던지라 30대 중반이던 A씨는 결혼과 동시에 막냇동생뻘인 남매의 새어머니가 되었다.

한국말을 못해서 처음엔 말도 통하지 않았지만, 아침이면 남편을 따라 봉제 공장에 출근해 다른 직원들과 함께 봉제 일을 도왔고, 직접 식사를 준비해 공장 직원들과 함께 먹는 등 헌신적으로 집안일과 공장일을 도왔다. 그렇게 열심히 한 덕에 결혼한 지 두어 달 되자 남편의 부채도 조금씩 갚아나가게 되었다.

문제는 남편이었다. 워낙 성격이 포악하고 거칠 뿐 아니라 술을 좋아했다. 화가 나거나 술에 취하면 A씨뿐 아니라 전처소생의 자녀들까지 추운 한겨울 밤에 얇은 속옷 차림으로 쫓아낸 뒤 새벽녘에야 문을 열어주는가 하면, 망치든 칼이든 손에 잡히는 대로 던지고 휘두르곤 했다. 여권도 잘라 버리고 지갑이나 가방도 수시로 가위로 잘라 버렸고, 침을 뱉고 욕을 하는 상황이 수시로 되풀이됐다.

A씨는 어려서부터 폭력적이고 다혈질인 아버지와 함께 살아온 남편의 두 아이가 측은했다. 진심으로 아이들에게 더 잘해주게 되었고, 친어머니 이상으로 많은 정을 주고 서툰 한국말로 위로해주곤 했다. 어쩌면 동병상련(同病相憐)이라고, 거친 남편이며 아버지인 B씨에게 상처를 받는 피해자들 간의 이심전심이었는지 서로 미워하고 원망할 수 있는 사이임에도 A씨와 두 남매는 서로를 위로해주는 사이가 되었다.

그렇게 5년간 결혼생활을 하던 A씨는, 어느 추운 겨울밤 남편의 심한 구타를 피해 집을 나와 식당에 취직한 뒤 이혼소송을 하게 되었다. 두 남매는 아버지 몰래 새어머니인 A씨에게 전화를 해서 위로의 말을 전해주었고, A씨 또한 집에 남은 남매가 걱정되어 몰래 만나 밥도 사주고 학원비도 챙겨주곤 했다. 남매에게 새어머니는 이혼 후 연락 한 번 없는 친어머니나 함께 살고 있는 친아버지보다 훨씬 더 부모 같은 존재였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이들은 그 어떤 가족보다 끈끈한 사랑으로 엮여 고단한 오늘을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 이 변호사의 어드바이스
    이혼소송이라는 게 그렇다. 나이가 많든 적든, 사회적 지위가 있든 없든 간에 새어머니, 새아버지임에도 친부모 이상으로 정을 나누며 서로를 끔찍이 위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행여 자신이 아이를 출산하면 전처소생 자녀들과 자신의 아이를 차별할까 걱정되어 불임수술을 받은 초혼의 아내를 만난 적도 있고, 갓난아이 때부터 키워준 새어머니를 친어머니로 알고 자란 전처소생 자녀들이 새어머니와 아버지의 이혼소송에서 새어머니와 함께 살겠다고 탄원서를 작성해 법원에 제출하는 경우도 있었다. 재혼한 남편과 사별한 뒤 전처소생 자녀들을 헌신적으로 양육하거나 입양한 자녀를 훌륭히 키워내는 새어머니들도 많다.

    모든 새어머니를 <신데렐라>와 <콩쥐팥쥐>, <심청전>에서 보여주는 계모들과 동일시하면 안 된다. 법적으로는 친아버지의 처인지라 인척에 불과할 뿐 아무런 혈연관계도 없고, 서로 간에 상속도 되지 않고, 한집에서 생계를 같이 하지 않는 이상 부양의무도 없어 완전히 남남이 되어버리는 새어머니와 전처소생의 자녀 관계이지만 현실 속에는 생모·생부보다 더 끈끈하고 위안이 되는 아름다운 관계도 많다. 중요한 것은 어떤 가치관과 인간성을 지녔는지, 타인에 대한 배려와 사랑이 있는 사람인지가 더 중요하다. 이혼과 사별, 재혼이 많아지는 세대인 만큼 이제는 계모에 대한 선입견에서 벗어나야 할 때다.

글쓴이 이명숙 변호사는…
23년 경력의 이혼·가사 사건 전문 변호사로 현재 KBS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 2>의 자문 변호사로 활약하고 있다.

CREDIT INFO

기획
하은정
일러스트
정대영
2013년 11월호

2013년 11월호

기획
하은정
일러스트
정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