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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세 연상 회장과 재혼해 1천억대 회사 주인 된 현대판 신데렐라 풀 스토리

시험관 시술로 쌍둥이 출산 후 35세 연상인 79세 회장과 결혼한 40대 여성이 1천억원대 회사의 주인이 되어 화제다. 하지만 그녀의 이력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현재 장남은 그녀를 불법 시술로 아이를 낳았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는데….

On November 15, 2013


현대판 신데렐라인가, 막장 드라마 주인공인가
올해 초 한 코스피 상장사의 주식 변동이 화제가 됐다. 1970년 판지 제조업체인 영풍제지를 창업해 40년 넘게 이끌어온 이무진(79세) 회장이 지난해 말 자신이 보유한 회사 주식 1백13만8천4백52주(51.28%)를 35세 연하의 부인 노미정(44세) 부회장에게 통째로 넘겨준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노 부회장은 하루아침에 이 회사의 최대 주주가 됐다. 이전에 자신이 갖고 있던 주식 9만6천7백30주(4.36%)를 합해 영풍제지 지분 55.64%를 확보했다.

언론에서는 노 부회장을 ‘현대판 신데렐라’라고 부르며 화제의 주인공으로 묘사했다. 재계에 이름이 알려진 바 없는 40대 여성이 어느 날 갑자기 중견 기업의 오너가 됐으니 그럴 만도 하다. 2012년 말 기준 영풍제지의 자산 총계는 1천2백12억원이다. 매출액 1천1백34억원에 영업이익이 1백65억원에 이르는 알짜 기업이다. 보통 ‘가업 승계’라면 회장의 직계 자녀를 먼저 떠올리기 마련인데, 두 아들보다 나이가 한참 어린 후처가 그 자리를 차지한 경우는 흔히 볼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노 부회장은 또 ‘주식 배당 여성 부호’ 명단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재계 포털 사이트인 재벌닷컴이 올해 3월 5일 마감 기준으로 집계한 상장사 보유 주식 배당금 순위에서 여성 중 5위를 차지했다. 1위는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 2위는 홍라희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 3위는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부인 김영식씨, 4위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동생 최기원씨였다. 유력 재벌가 여성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셈이다.

노 부회장이 받은 총 배당금은 24억원에 이른다. 주당 배당금이 2천원으로 책정되면서 고액의 배당금을 받게 됐다. 배당금 2천원은 지난해 주당 2백50원에 비해 8배나 많다. 그가 최대 주주로 올라서자마자 배당률이 큰 폭으로 상승해 거액을 손에 쥐게 된 것이다. 여기에다 월 급여액이 1억4천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기업 CEO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만한 큰 금액이다.

올해 상반기에 등기이사인 이 회장과 노 부회장에게 지급된 급여가 1인당 평균 8억5천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년도 상반기 평균 임금 2억2천3백만원보다 278%나 증가한 수치다. 직원 평균 급여와 비교하면 28배나 많다. 주식 배당금과 급여만 놓고 봐도 어림잡아 연수입이 40억원을 넘어선다. 명실상부한 ‘여성 갑부’의 탄생이다.

상장사 부회장인데도 이력은 아직도 베일에 싸여 의문
이처럼 화제를 몰고 온 인물인데도 노 부회장의 이력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 있다. 그의 존재가 처음 외부로 알려진 것은 지난해 3월 말 영풍제지 2011년 사업보고서 공시를 통해서다. ‘임원 및 직원 현황’에서 부회장으로 그의 이름이 올랐다. 하지만 노 부회장 개인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었다. 출생 연월(1969.04), 담당 업무(경영 총괄), 재직 기간(1월) 등이 기재돼 있지만 다른 임원들과 달리 주요 경력은 공란이었다.

상장 기업 부회장을 맡게 됐는데도 이력을 알 수 있는 정보는 사실상 전무했다. 부회장에 오른 후 그는 영풍제지 주식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지난해 8월 22일부터 29일까지 노 부회장이 매수한 이 회사 주식은 9만6천7백30주(4.36%)로 15억원어치에 이른다. 이 사실을 공시한 자료에서도 그의 이력에 대한 정보는 없었다. 다만 당시 최대 주주였던 이무진 회장과의 관계를 ‘친인척’이라고 게재했다.

올해 1월 3일 최대 주주가 된 사실을 뒤늦게 알린 ‘주식 대량 보유상황 보고서’에도 이렇다 할 정보가 없다. 노 부회장의 주소가 ‘경기도 구리시 수택동’이라는 게 새롭게 밝힌 정보의 전부다. 지난 8월 14일 공시된 영풍제지 반기보고서에서는 주요 경력으로 ‘백석대학교 대학원 수료’가 추가됐을 뿐이다. 불과 1~2년 만에 40대 여성 CEO로 성공 신화를 쏘아 올린 그는 과연 어떤 인물일까?


회장 장남 “아버지 재산 노리고 우연 가장해 접근”
취재 과정에서 기자는 노 부회장이 올해 3월 법원과 검찰에 고소·고발된 사실을 확인했다. 고소·고발자는 이 회장의 장남으로 2002~09년 영풍제지를 경영한 이택섭(56세) 전 대표였다. 이 전 대표는 “노 부회장이 재력가인 아버지의 재산을 노리고 접근한 뒤 불법적으로 시험관 아기 시술까지 받아 쌍둥이 자녀를 낳았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어머니는 큰 충격에 빠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정체불명의 노 부회장이 쌍둥이 자녀를 앞세워 회사까지 손아귀에 넣었다”고 주장했다.

이 전 대표가 고발장과 소장을 통해 밝힌 내용은 한 편의 ‘막장 드라마’를 연상시킨다. 이에 따르면, 노 부회장은 2008년경 서울의 한 호텔 중식당에서 이 회장을 처음 만났다. 당시 이 회장은 이 호텔의 피트니스 클럽 회원이어서 운동을 하기 위해 자주 드나들었다. 노 부회장이 이 사실을 알고 재력가인 이 회장의 재산을 노려 지배인의 소개를 받는 형식으로 우연을 가장해 35세나 연상인 이 회장에게 접근했다는 것이다.

노 부회장은 첫 만남이 있은 지 얼마 되지 않을 무렵부터 이 회장의 아이를 갖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이 회장이 고령인 데다 정관수술까지 받은 상태여서 자연 임신이 불가능했다. 그러자 시험관 아기 시술이라는 의학적 방법까지 동원해 임신을 시도했다. 마침내 2008년 10월경 서울의 한 종합병원 불임클리닉에서 산부인과 전문의 김아무개씨에게 받은 시험관 아기 시술로 임신에 성공했다.

이 전 대표가 고소·고발을 한 대목이 여기에 있다. 당시 이 회장은 이아무개씨와 법적으로 혼인 상태에 있었다. 정자를 기증한 이 회장의 배우자 이씨의 서면 동의 없이 시험관 아기 시술을 한 것은 생명 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이 전 대표는 시술을 한 의사 김씨도 고소·고발했다. 당시 이 회장에게 노 부회장이 아닌 실제 부인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서면 동의 없이 시술을 해줬을 개연성이 크다고 본 것이다. 설령 사실을 몰랐다 하더라도 관련 서류 제출을 통해 손쉽게 사실 파악을 할 수 있었는데도 확인 절차를 게을리한 채 섣불리 시술을 시행한 과실이 있다는 주장이다.

이와 관련해 당초 이 회장과 노 부회장은 서울의 한 다른 병원에서 시험관 아기 시술을 받으려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담당 의사가 두 사람의 나이 차이가 크다는 점을 보고 정상적인 부부 사이가 맞는지 의심해 가족관계증명서 등 혼인 관계를 증명할 수 있는 서류를 제출할 것을 요청했고 그 바람에 시술이 무산됐다는 것이다.

‘불륜 후 쌍둥이 출산’ 알게 된 부인, 충격으로 자살
노 부회장은 이듬해인 2009년 7월 쌍둥이 남매를 출산했다. 하지만 이 회장의 부인 이씨와 장남 이 전 대표는 이러한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 회장은 줄곧 이씨와 같은 집에 살고 있었고, 이 회장이 정관수술까지 받았기 때문에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이었다. 2010년이 돼서야 부인 이씨는 남편이 노 부회장과 외도 끝에 쌍둥이 남매를 낳은 사실을 알게 됐다.

이씨는 이 회장의 두 번째 부인이다. 이 회장은 첫 번째 부인 박아무개씨와의 사이에 5남매를 뒀지만 1974년 이혼하고 이씨와 재혼했다. 이 회장과 이씨 사이에는 자식이 없었다. 이씨는 아이를 갖기를 원했지만 임신하지 못했다. 결혼한 지 2년 후에야 불임의 원인이 남편의 정관수술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후로 이씨는 5남매를 친자식처럼 키웠고, 자식들도 이씨를 친어머니로 여기고 따랐다고 한다.

그런 이씨에게 남편이 막내딸보다 여섯 살이나 어린 여자와 살림을 차리고 병원 시술까지 받아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다. 큰 충격을 받은 이씨는 얼마 후 수면제 3백 알을 삼키는 방법으로 자살을 시도했다. 의식을 잃어 병원 중환자실로 실려 갔지만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하지만 퇴원 후 줄곧 우울감에 빠져 지냈다. 이씨는 몇 달 뒤인 5월 초 자택에서 욕실 문고리에 넥타이로 목을 매 다시 한 번 자살을 시도했고 결국 목숨을 잃었다.

이 전 대표도 52세나 어린 배다른 동생들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이씨의 삼우제 날이 돼서야 모든 정황을 알게 됐다. 이 전 대표는 어머니 이씨와 특히 각별하게 지냈다고 한다. 이 전 대표 부인이 시어머니인 이씨와 함께 집안 대소사를 챙겼고, 이 전 대표 가족이 이씨를 모시고 해외여행도 다녀오곤 했다. 이씨의 장례도 정성껏 치렀다. 그런 어머니의 죽음이 노 부회장 때문이었다는 생각에 이 전 대표는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고 한다.

노 부회장은 상중에도 백화점으로 쇼핑을 가는가 하면, 이씨가 생전에 타던 고급 외제 승용차와 패물을 물려받았다고 한다. 노 부회장은 이씨가 세상을 떠난 지 1년 남짓 지난 2011년 6월에 이 회장과 혼인신고를 했다. 이는 그동안 언론에서 노 부회장이 2008년에 이 회장과 결혼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한 내용과 다른 사실이다. 당시는 이 회장의 부인 이씨가 살아 있을 때였다. 이 회장과 노 부회장 사이는 불륜이었다.

40억원 부동산 증여받고 회사 경영권까지 차지
이씨가 세상을 떠난 이후 노 부회장의 재산이 하나둘씩 불어나기 시작했다. 정식으로 결혼하기 전인 2010년 4월과 12월에 이 회장으로부터 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198㎡(60평형)대 아파트 두 채, 결혼 후인 2012년 5월에 서울 광진구에 있는 231㎡(70평형)대 아파트 한 채 등 시가 40억원에 이르는 부동산 소유권을 증여받았다. 구리시 아파트는 올해 초 노 부회장이 최대 주주가 됐다고 알린 공시 자료에 올라온 주소지이며, 광진구 아파트는 현재 이 회장과 노 부회장이 살고 있는 곳으로 알려졌다.

노 부회장은 이 회장이 소유했던 부동산 상당수를 넘겨받은 것은 물론, 2011년 1월 영풍제지의 부회장에 오른 데 이어 지난해 말 주식까지 전부 물려받아 회사의 경영권을 차지하게 됐다. 이 회장의 장남인 이 전 대표는 2009년 3월에 6년 동안 맡아온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면서 보유하고 있던 주식 6만66주(2.71%)를 전량 매각해 현재 지분이 하나도 없다.

이 전 대표는 잠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있으면서 추후 다시 경영에 참여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더 이상 기회는 오지 않았다. 둘째 아들 이택노 전 상무도 2009년 3월 등기이사로 이름을 올렸지만 2012년 3월 임기가 만료되면서 역시 임원직에서 물러났다. 이 전 대표는 “노 부회장의 친인척들이 비서실과 핵심 부서에 책임자로 들어와 회사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밝혔다.

일부 언론에서는 이 회장이 두 아들의 경영 능력을 시험해본 후 최종적으로 노 부회장을 선택했으며 실제로 경영 실적이 좋아졌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이 전 대표는 지난해 영풍제지의 영업 실적이 좋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노 부회장의 경영 능력과는 무관한 결과라고 반박했다.

지난해 공장에 소각 보일러가 신설돼 그동안 낭비되던 폐열을 다시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원가 절감 효과를 가져왔는데, 소각 보일러 신설은 노 부회장이 경영에 참여하기 훨씬 전에 결정된 사안이라는 것이다. 또 2010년과 2011년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면서 올렸던 제품 단가를 지난해 원자재 가격이 예전의 절반 수준으로 하락했는데도 그대로 유지했다고 한다. 결국 노 부회장이 원가 절감의 수혜를 입은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노 부회장에게 여러 차례 연락했지만 답변 없어
이 전 대표가 고소·고발한 내용과 그의 주장은 과연 사실일까? 기자는 노 부회장이 출근한다는 영풍제지 서울 사무실로 여러 차례 전화를 걸었다. 10월 10일 오후 전화를 받은 비서실 직원에게 기자 신분을 밝힌 후 ‘노 부회장과 통화하고 싶다’고 하자 “자리에 안 계신다”고 했다.

‘이택섭 전 대표가 고소·고발한 것과 관련해 물어볼 것이 있다고 전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기자의 연락처를 남기자 “직접 통화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본사로 연락하면 통화할 수 있느냐’고 물어보자 “본사로 연락해도 통화하기 어려울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기자는 ‘메시지를 꼭 전해달라’고 거듭 부탁했다.

다음 날인 10월 11일 오전에 다시 전화를 걸자 이번에도 비서실 직원이 받았다. 이 직원은 ‘메시지를 전달했느냐’는 질문에 “통화가 안 돼서 전달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재차 ‘노 부회장과 통화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느냐’고 물었지만 “통화가 어렵다”는 답변만 반복했다.

같은 날 오후 또 한 번 전화를 걸어 확인하자 “문자를 보냈다”고만 했다. 다시 ‘고소·고발 건으로 그러는데 노 부회장이나 이 회장과 통화할 수 없느냐’고 요청했지만 역시 “직접 통화하기는 어렵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노 부회장의 휴대전화도 연락이 닿지 않아 문자메시지를 남기기도 했다. 본사와 서울 사무실로 ‘고액 임금과 배당금에 대해 물어볼 것이 있다’며 담당 책임자인 박아무개 상무와 통화하고 싶다는 뜻도 전했다. 하지만 노 부회장은 물론 박 상무로부터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CREDIT INFO

기획
장은성
취재
안성모
사진
시사저널
2013년 11월호

2013년 11월호

기획
장은성
취재
안성모
사진
시사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