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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그룹 현재현·이혜경 회장 부부

경영권 전쟁 & 제3의 남자

60여 년간 제과·시멘트·건설·금융 분야에서 이름을 날렸던 동양그룹이 끝내 해체 수순에 들어갔다. 주요 계열사의 법정관리가 시작되고 현재현 회장 등 총수 일가의 지분은 공중 분해됐다. 무리한 사업 확장과 가족 간의 알력, 그리고 잘못된 경영 판단 등이 겹치며 일찌감치 그 뿌리가 흔들리고 있었던 것이다.

On November 15, 2013


우리나라 재계에도 꽤 많은 사위들이 있고 실제 처가 회사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들은 어디까지나 ‘백년손님’일 뿐 그 주인이 된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부계 승계 관습 덕분에 자식 대(代)에 가서야 성(姓)이 바뀌는 경우가 있을 뿐이다.

동양그룹 현재현 회장은 이런 점에서 기린아다. 그의 조부는 고려대 총장, 부친은 이화여대 교수를 지낸 괜찮은 가문이다. 본인도 서울대 법대 3학년 때 사법고시에 합격할 정도로 앞길이 창창했다. 그런 그가 1976년 동양그룹 이양구 회장의 장녀 이혜경씨와 결혼했다. 중매였다. 이 회장이 그가 만든 ‘황금의 제국’의 관리인으로 현 회장을 택했기 때문이다. 1977년 29세의 검사 현재현은 검사로서의 명예 대신 ‘황금의 길’을 택한다.

백년손님 사위에서 기업 오너로 변신
1979년에는 미국 유학을 떠나 스탠퍼드 대학에서 국제금융을 전공하면서 금융과 인연을 맺는다. 이양구 회장은 광복 후 남한 최초 외상 거래로 행상을 했던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금융을 보는 눈이 있었던 셈이다. 더욱이 당시 그룹의 주력이었던 시멘트 산업은 대규모의 자본 투자가 필요한 업종이다. 금융이 중요하다는 데 장인과 사위는 꽤 의기투합했던 모양이다.

현 회장은 스탠퍼드 유학 시절을 늘 자랑스러워했다. 귀국 후에도 동문회장을 맡는 것은 물론, 재벌 회장임에도 스탠퍼드 출신이라면 흔쾌히 만남을 가졌다. 현 회장의 세 자녀는 물론 최측근으로 알려진 노영인 전 부회장, 전상일 전 부회장 등도 모두 스탠퍼드 출신이다.

유학을 마친 사위를 장인은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1983년 동양시멘트 사장이 됐고, 곧이어 일국증권(현 동양증권)을 인수하며 금융업의 기반을 만들었다. 1986년에는 장인인 이양구 회장이 있는데도 동양증권 회장에 올랐다. 창업 회장이 2세와 같은 직함을 갖는 것은 재계에서는 상당히 이례적이다. 아직도 일부 그룹에서는 창업 세대가 살아 있으면 2세들은 부회장 명함 이상을 파지 않는다.

1989년 이 회장이 별세하자 현 회장은 그룹 회장직을 승계하고 동양베네피트생명보험(현 동양생명)을 세운다. 이후 동양캐피탈, 동양오리온투자신탁 등의 금융 계열사가 차례로 추가된다. ‘현재현 시대’의 동양그룹의 신 성장 동력은 제과도, 시멘트도 아닌 금융업이 됐다.

그룹 회장이 된 이후 현 회장은 ‘백년손님’ 아니, ‘관리자’가 아닌 그만의 제국, 주인을 꿈꾼다. 이는 회장으로 취임 후 12년 동안 차곡차곡 회사 지분을 늘려간 데서 확인된다. 1998년에는 그룹 주력사인 동양시멘트에서 현 회장의 지분률은 8.33%, 부인 이혜경씨의 10.74%에 이은 2대 주주다. 다만 장모인 이관희 여사의 3.6%, 처제인 이화경(현재 오리온그룹 부회장)씨 몫인 6.94%를 합하면 이때에도 여전히 제국의 주인은 ‘이씨’였다.

하지만 탁월한 두뇌를 지닌 현 회장의 행보는 지능적이었다. 외환위기로 경영이 어려워지자, 동양시멘트는 대규모의 전환사채(CB)와 해외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발행한다. 채권이지만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유사 주식이다. 2000년 현 회장은 CB, BW를 주식으로 바꿔 부인을 제치고 동양그룹 단독 기준 최대 주주에 오른다. 이때부터 현씨와 이씨의 지분은 20%대에서 거의 평형을 이뤘다. 그런데 2005년 5월 현 회장은 저울의 추를 바꿀 승부수를 띄운다. 현 회장이 동양레저라는 개인회사를 통해 그룹 경영을 단숨에 움켜쥔 것이다.

동양레저는 이때 동양메이저뿐 아니라 동양증권 지분도 대거 사들여 최대 주주가 된다. 종합하면 그룹의 지주회사가 동양메이저에서 동양레저로 바뀐 것이다. 이 당시 동양레저는 현 회장이 30%, 아들 현승담씨가 20%, 동양캐피탈과 동양메이저가 각각 35%, 15%의 지분을 가졌다. 그런데 2006년에는 지배구조가 현 회장 80%, 현승담씨 20%로 바뀐다. 황금의 제국 옥좌에 ‘현재현’이란 이름 석 자가 깊이 새겨진 것이다.

동양그룹 사태로 피해를 입은 개인 투자자들이 여의도 국회의사당 인근에서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주부로 살던 오너 딸 이혜경 부회장 갑작스레 경영에 참여
하지만 50년간 제국의 주인이었던 이씨의 반격이 이때를 계기로 시작된다. 2006년 현 회장이 동양레저를 통해 그룹을 손에 넣자, 부인인 이혜경씨가 2007년부터 동양메이저 부회장으로 경영에 참여하기 시작한다. 이전까지는 이관희 여사와 함께 등기임원을 맡아오기는 했지만, 비상임인 고문직일 뿐이었다. 경영 전반을 파악하기는 어려운 자리였다. 그런데 느닷없이 직접 경영을 챙기겠다고 회사로 뛰어든 것이다.

남편에게 그룹을 맡긴 채 30년간 가사에만 전념하던 50대 주부가 갑자기 경영에 나선 점은 이례적이다. 그리고 2008년 문제의 ‘김철’이란 인물이 동양그룹에 등장한다. 2009년 현 회장의 측근 3인방으로 불리는 노영인 부회장, 윤여헌 사장, 추연우 부사장이 물러난다.

이 부회장이 경영 일선에 나선 이후 이른바 ‘뜬 회사’가 동양네트웍스다. 온라인을 비롯한 각종 신사업을 내세운 이 회사는 동양 속의 작은 동양이라고 불릴 만하다. 2007년부터 매출과 이익이 급성장하고, 2012년에는 이 부회장까지 등기임원으로 경영에 참가한다.

현 회장의 움직임도 잇따랐다. 올 초 티와이머니대부라는 회사가 동양네크웍스의 3자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해 1대 주주가 된다. 이 회사는 현 회장이 80% 지분을 가진 사실상 개인 회사다. 이 부회장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유상증자 직후 현 회장과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온 이충환 대표가 물러난다. 그리고 동양네트웍스를 ‘김철 단독대표 체제’로 만든다. 김철 대표는 이 부회장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아들이든 딸이든 다음 대에 넘어가면 ‘현씨’가 될 수밖에 없는데, 경영에 뛰어든 지 5년밖에 안 된 이 부회장이 어떻게 이처럼 선 굵은 행보를 보였을까?

사실 동양그룹을 창업한 이씨 일가의 여성 파워는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80세가 넘은 이관희 여사는 아직도 서남재단을 이끌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자랑한다. 오리온그룹의 실질적 총수인 이화경 부회장은 오리온이 동양그룹에서 분리되기 전부터 부사장으로 경영 일선에서 뛰었고, 분리 이후에는 부회장으로서 경영을 최일선에서 챙겼다.

현재 지분율도 이화경 부회장이 14.5%, 남편인 담철곤 회장이 12.92%로 차이가 있다. 담 회장이 이 회장에게 ‘꼼짝 못한다’는 사실은 재계에서 공공연한 비밀이다. 최근 동양네트웍스에 빌려주기는 했지만 이관희 여사의 오리온 지분율도 2.66%에 달한다. 덕분에 오리온은 아직도 확실히 ‘이씨의 제국’이다.

현재현·이혜경 부부가 그룹 후계자를 두고 의견이 엇갈렸다는 관측도 있다. 그룹 후계자로 현 회장은 큰딸인 현정담 상무를 밀고, 이 부회장은 아들인 현승담 대표를 염두에 뒀다는 소문이다.

누나인 현정담 상무가 그동안 승진 속도 등에서 동생인 현승담 대표를 다소 앞서왔으나, 동생인 현 대표가 지난 6월 김철 대표와 함께 동양네트웍스 대표이사 자리에 먼저 오르면서 후계구도에 미묘한 기류가 형성되었다. 이와 관련해서도 부부는 두 남매보다 더한 신경전을 벌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동양시멘트가 법정관리를 신청한 지난 10월 1일 전략기획본부 김봉수 상무가 전격 해임된 것도 김철 대표의 입김이 작용한 것이라는 소문도 있다. 김 상무는 현정담 상무의 남편으로, 현 회장의 맏사위가 된다.

현승담 대표와는 호형호제하며 동양네트웍스에서 ‘경영 멘토’ 역할까지 자처하는 사이라고 알려진 김 대표는 현 상무와는 줄곧 대립각을 세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김철 대표가 동양네트웍스를 통해 소규모 IT 기업 인수를 시도할 때 이를 무산시킨 사람이 현 상무 라는말이 있을 정도로 양측은 보이지 않는 파워 게임을 벌여왔다.

현 회장+큰딸 vs 이 부회장+장남  
부자일수록 재산다툼이 더 치열하기 마련이다. 그나마 삼성이나 CJ처럼 경영이 안정된 회사라면 별 탈 없을 수가 있지만, 동양은 그렇지 못했다. 현 회장이 자신의 지분을 본격적으로 늘려가던 외환위기 직후, 동양그룹은 이미 심각한 상황이었다.그룹 지주사인 (주)동양(옛 동양메이저)의 1997년 자기자본은 4천1백78억원, 부채는 1조5천6백98억원이다. 400%가 넘는 부채 비율이다.

2002년에는 자본 잠식에 들어가고, 2004~05년에 부채 비율은 절정에 달한다. 이때는 동양레저를 통한 현 회장의 그룹 점령 작업이 한창 이뤄지던 때와 일치한다.운 좋게도 2005년부터 증시가 급등하기 시작하고, 동양증권의 이익도 덩달아 크게 증가한다. 경기 호황 덕에 동양생명의 이익도 고공행진을 이어간다. 이들 두 회사는 2009년까지 연간 1천억~2천억원의 이익을 동양그룹에 안겨준다.

그런데 동양그룹의 운은 여기까지였다. 2008년 글로벌 경영 위기, 2010년 유럽 재정 위기가 잇따라 터지면서 동양그룹 실적은 다시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동양증권과 동양생명의 실적도 내리막으로 치닫는다. 

더군다나 이때 현 회장은 일생일대의 실수를 범한다. 야심차게 유전사업에 뛰어들었으나 7천억원이라는 손실을 입고 사업을 접어야 했다. 이를 계기로 그룹 최대 현금 창출원이던 동양생명이 떨어져 나가면서 그룹 유동성도 꼬이기 시작했다.그런데 이 와중에도 총수 일가는 금융계열사 자금을 끌어와 사업 확장을 계속한다.

자본금 10억원으로 설립한 티와이머니대부는 2010년 10월 27일 동양파이낸셜대부 채권영업사업부문을 3백16억원에 인수했다. 금융계열사의 돈을 끌어와, 침몰하는 동양그룹 내 알짜 자산들을 동양네트웍스로 사서 모았다.

하지만 내부 알력과 경영 실패로 그룹이 좌초 위기에 처하자 총수 일가는 동양네트웍스라는 탈출선에 알짜 자산을 싣고 몸을 뺄 준비를 한 것이다. 동양네트웍스와 동양시멘트가 기존 경영진이 유임될 법정관리 신청을 한 데 대해 시장이 의심스러운 눈으로 본 까닭도 여기에 있다.

어쨌든 한때 재계 순위에 들며 이름을 날렸던 동양그룹은 부부와 자녀 간의 경영권 다툼 등으로 이제 60년 전통의 간판을 내리고 법원의 회생 절차만을 기다리고 있다. 부부싸움의 결말치고는 너무나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이양구 창업주 부인인 이관희 여사(가운데) 생일 모임에 참석한 두 딸과 사위들.
이혜경·현재현 동양그룹 회장 부부(왼쪽), 이화경·담철곤 오리온 회장 부부.(오른쪽)


이혜경 부회장이 영입한 38세 숨은 실세 김철은 누구?
동양그룹이 무너지는 과정에서 김철(38세·사진) 전 동양네트웍스 대표는 그룹 구조조정 등에 깊숙이 개입한 ‘숨은 실세’로 지목됐다. 오너 일가도 아니고 학력이나 경력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이었다.

그는 지난 10월 17일 국회 정무위원회의 금융위원회에 대한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한국예술종합학교를 한 학기 다니고 중퇴했다”고 학력을 밝혔다. 그는 박민식 새누리당 의원이 “(30대에) 동양그룹 사장으로 채용된 것을 국민이 쉽게 납득하겠느냐”고 하자 “대학 못 나오면 대표 맡으면 안 되느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그는 논란 이후 홈페이지에 “저는 부끄럽지만 학창 시절 공부를 제대로 한 적이 없다”며 “주변에 학벌 좋고 능력 좋은 분들이 너무나 많았기에 나서기도 부끄러웠고 어딘가 기사라도 뜨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곤 했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의 부인인 이혜경 부회장의 사람으로 분류된다.

그는 지난 10월 8일 언론에 배포한 자료에서 “솔본미디어라는 회사 대표로 재직했고, 계열사인 포커스신문사 주최 행사에서 디자인에 관심이 많은 이 부회장을 처음 만났다. 인테리어와 디자인 관련 업무를 통해 자연스럽게 동양그룹 입사 추천을 받았다”고 밝혔다.

김철 대표는 솔본미디어 재직 시 다양한 사업을 추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라는 미국 여행 잡지의 라이선스를 사들여 <포커스신문>에서 재창간을 주도했다. 이 내부 관계자는 “김 대표는 자신을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이라고 소개하며 이 대표와 같이 재계 미술 모임에 나가기도 했다”고 전했다. 또한 카페 사업도 추진했다. 김 대표는 인천국제공항 내 ‘웰즈 허브라운지’ 영구임대사업권 획득에 나섰다.

하지만 여행 잡지 사업은 6개월 만에 정리한 데다 웰즈 허브라운지 사업도 진척이 없자 김 대표는 결국 2008년 말 솔본미디어에서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이후 그는 동양 이 부회장의 눈에 들어 입사 4년 만인 지난해 7월 동양네트웍스 대표가 되는 초고속 승진을 이어갔다. 동양그룹 일각에서는 현 회장과 부인 이 부회장의 사이가 벌어지면서 김 전 대표의 역할이 커졌다는 말이 나온다.

현 회장은 장인의 사업을 물려받아 부인과 장모 등에게 지분율에서 밀렸지만, 2000년대 중반 금융계열사를 인수하면서 지분을 늘려 1대 주주로 올라섰다. 경영자로 영입한 사위가 오너가 된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이 과정에서 2대 주주로 내려앉게 된 이 부회장과 미묘한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동양네트웍스는 법정관리를 신청한 후 김 대표를 법정관리인으로 선임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하지만 법원은 김철 대표를 회생절차에서 배제했다.

동양그룹 지배구조

CREDIT INFO

기획
장은성
취재
홍길용
사진
시사저널
2013년 11월호

2013년 11월호

기획
장은성
취재
홍길용
사진
시사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