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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없는 남자’ 김기열의 ‘개콘 後’ 네 번째

객석에 앉아보니…

오늘은 어쩌면 읽는 독자에게도, 또 글을 쓰는 나에게도 조금은 진부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바로 <개그콘서트>의 코너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방송되는지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On October 17, 2013

일단 내가 웃기고 팀원이 웃는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PD를 포함한 제작진 전체는 물론 모든 동료가 공감하고 웃어줘야 한다.

오늘은 어쩌면 읽는 독자에게도, 또 글을 쓰는 나에게도 조금은 진부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바로 <개그콘서트>의 코너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방송되는지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정말 질문을 많이 받고, 진짜 많이 했던 얘기이지만 칼럼을 연재하면서 한 번쯤 해야 되는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달의 주제로 정해보았다.
이미 여러 차례 말했던 것처럼, <개그콘서트>(이하 <개콘>)의 개그맨들은 고작 3분의 공연을 위해 일주일 내내 머리를 싸매며 회의하고, 연습한다. 좀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일주일에 3분 알차게 일하고 출연료를 받아가는 것이기도 하다. 시급으로만 치면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고소득 직종’인 셈이다. 하하. 하지만 이건 말 그대로 ‘지나치게 긍정적인 생각’일 뿐이다. <개콘>만 해도 기본적으로 하나의 코너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3단계의 관문을 거쳐야 한다. 우선 제작진의 ‘검사’를 통과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이전에 볼 수 없던 새로운 코너가 필요한데, 이 작업은 순전히 노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서 일차적인 난관에 부딪힌다. 이 과정에서의 고민과 경쟁과 피 말리는 아이디어 전쟁은 굳이 글로 쓰지 않아도 아시리라 생각된다.
그럼, ‘웃기기’란 쉬운 일인가? 일단 내가 웃기고 팀원이 웃는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PD를 포함한 제작진 전체는 물론 모든 동료가 공감하고 웃어줘야 한다. 거의 매일 함께 생활하는 개그맨들, 일명 ‘선수들’ 앞에서 개그를 한다는 것은 가끔 가족 앞에서 개그를 하는 것처럼 민망한 일이다. 게다가 ‘선수들’은 새로운 개그를 선보이면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각자 나름대로 다음 상황이나 설정, 대사를 생각하면서 본다. 그 ‘예상’을 뛰어넘는 반전의 묘(!)가 있어야 하는데, 이건 정말 큰 난관이다.
대부분 개성이 강하고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들이라 누구 하나 사람 좋게 웃어주는 법이 없다. 그 자리에서 재미있다, 없다를 말하는 것은 기본이요, 오히려 자기네들끼리 토론하듯이 평가하는 상황이 벌어지면 무안할 때도 많다. 그중 ‘침묵’으로 반응하는 케이스가 가장 난감하다.
이렇게 어려운 단계를 통과하고 나면 1천 명의 관객이 기다리고 있다. 전국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새 코너에 공감하고 웃어줄지 공연 전까지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그나마 위안을 받는다면 ‘개그는 공정한 게임’이라는 것이다. 웃기면 전파를 타고, 웃기지 않으면 편집된다. 심플하고 간단한 룰이다. 이는 다른 어떤 프로그램도 가지지 못한, 개그 프로그램만의 매력과 장점이 아닐까? 1천 명 관객을 웃긴 뒤에는 5천만 시청자가 남아 있다. 안방에 앉아 시청하는 전 국민에게 ‘개그’를 심사받는 것이다.
어렵사리 3단계까지 마쳤다고 치자. 여기서 끝일까? 아니다. 이제 그 3단계 과정을 매주 반복하는 일이 남았다. 지난주에 재미있었던 만큼 이번 주도 웃겨야 하고, 그다음 주에는 더 재미있어야 한다. 자칭타칭 ‘아이디어 뱅크’라는 나 역시 올해 상반기에만 20개 가까운 코너가 ‘론칭’에 실패했다. (이렇게 개그에 대해 많이 고민하는 나를 ‘네 가지’ 코너에서 몇 주째 방청석에 앉혀놓다니!)
그렇다고 시청자와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잘 봐달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난 개그맨이 되기 전에 40가지가 넘는 직업을 전전했다. 그렇기에 새벽 일찍부터 일하는 환경미화원, 한여름 뙤약볕 아래서 도로포장을 하는 공사장 인부들, 그리고 마감 기한이 한참 지나도록 원고를 주지 않는 나 때문에 애가 타는 담당 기자까지, 모두가 나름의 자리에서 만만치 않은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냥 이름 조금 알린 개그맨이라고 해서 유명인 행세나 하고, 적당히 타성에 젖어 개그하고(코너가 지겹다고 폐지하라는 말이 제일 무섭다), 행사 몇 번 하며 호의호식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얘기하고 싶었던 걸까? 당장 웃음으로 위안을 줄 수 없다면 진솔한 글로라도 독자들에게 위안을 주고 싶었다. 그래도, ‘감동 주는’ 개그맨보다는 여전히 ‘웃기는’ 개그맨이고 싶다.

개그맨 김기열은…
2005년 KBS <개그사냥>이라는 개그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TV에 첫 출연한 뒤 <개그콘서트>까지 진출, 데뷔에 성공했다. ‘두분토론’ ‘까다로운 변선생’ ‘소심지존 기열킹’ ‘뿌레땅뿌르국’ ‘네 가지’ 등 30개가 넘는 코너에 출연했으며, 드라마 <그대를 사랑합니다> <아이리스 2>로 연기자 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현재 두 번째 싱글 앨범 <너를 봄>을 내 가수로도 영역을 넓히는 ‘만능 엔터테이너’-라고 본인이 말하고 다님.

CREDIT INFO

기획
김은향
글,사진
김기열
2013년 07월호

2013년 07월호

기획
김은향
글,사진
김기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