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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내의 모든 것>·<키친> 민규동·홍지영 감독의 무비 아틀리에

흥행 감독으로 부상한 민규동과 충무로의 몇 안 되는 재능 있는 여류 감독 홍지영이 13년째 공동으로 연출 중인 작품이 있다. ‘가족’을 주제로 한 이 영화는 로맨스와 드라마, 코미디와 판타지를 넘나들며 최근 ‘이사’라는 사건을 통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그 예고편을 살짝 공개한다

On October 16, 2013

수납에 올인한 작업실
독서광에 영화광, 심지어 수집광인 감독 부부가 만난 만큼 짐이 어마어마했다. 복도와 거실, 화장실까지 수납장을 안 짜 넣은 공간이 없고, 벤치와 침대 등 틈이 보이는 가구에는 모두 수납 기능을 추가했다. DVD 대여점을 연상시키는 공간은 민규동 감독의 작업실로 공간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문을 없애고 가벽 형태의 붙박이장을 만들었다. JB퍼니처.

화이트 컬러와 원목 가구가 잘 어우러져 편안해 보이는 거실. 천장에 스크린과 빔프로젝터를 설치해 ‘가족 영화관’이면서 가끔 이불을 깔고 네 가족이 나란히 누워 자는 ‘가족 침실’이기도 하다. 왼쪽에 보이는 넉넉한 사이즈의 원목 테이블은 민규동 감독의 보물 1호. 가족이 함께 둘러앉아 책을 읽고, 영화를 본다. 부부에게 ‘제2의 고향’인 프랑스 파리의 전경이 담긴 그림 paris blues그림닷컴.

영화판에서, 삶의 동지를 만나다
시작은 영화였다. 웬만한 남자보다 더 호방한 성품을 지닌 홍지영과 여자보다 더 섬세한 감정의 소유자 민규동은 한 신문사에서 운영하는 문화센터에서 영화 제작에 관한 수업을 듣다가 처음 만났다. 서로 자신에게 없는 부분을 가져서일까, 언뜻 보기에 부조화한 이 커플은 혹독한 영화판에서 평생 동지로 살 것을 약속했고 결혼하고 한 달 만에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다. 파리에서의 생활은 달콤했다. 신혼이었고 뚜렷한 목적도 기약도 없었기에. 3년 정도 살다 보니 ‘생존’ 불어는 눈에 띄게 늘었고, 생활이 익숙해지는 게 느껴지자 곧장 짐을 싸서 한국으로 돌아왔다. 두 명의 젊은 감독에게 프랑스는 자극제가 되었다. 이후 제목을 말하면 누구나 알 만한 영화를 몇 편이나 만들었으니까. 민규동의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내 아내의 모든 것>과 홍지영의 <키친> <무서운 이야기> 등이 대표적이다. 누가 부창부수 아니랄까 봐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와 <키친>은 나란히 59회, 60회 베를린 영화제 ‘Culinary Cinema’(음식과 환경을 소재로 한 영화를 선정해 상영하는 비경쟁 부문) 섹션에 초청되기도 했다. 집안에 감독이 둘이나 있으니 실제 삶도 영화와 비슷하게 흘러가지 않을까? 민규동은 감독의 처지를 ‘마찰적 실업’이라고 표현했다. “이해받지 못하면 유지하기 힘든 직업이죠. 수입이 일정치 않고 영화가 잘 안 되기라도 하면 그 고통을 가족이 고스란히 감내해야 하니까요.” 단, 일에 대한 평가에서는 서로에게 냉정한 편이다. 물론 사람인지라 저항도 해보고 상처도 받는다. 하지만 결국 가족이기에 이해하게 된다고.

1 붙박이장을 파티션 삼아 주방과 다이닝 룸을 분리했다. 오픈형 수납장에는 장식성 소품을 넣고, 도어형 수납장은 어쩌다 사용하는 물건 위주로 정리했다. 주방 살림은 단출한 편인데, 부부 모두 커피를 워낙 좋아해 커피머신이 주방 한편을 확실하게 차지했다. 화이트 주방에 어울리는 그린 포인트 캡슐 커피머신 치보 카피시모.
2 카페 같은 다이닝 룸. 벤치형 식탁 의자는 모두 수납을 겸하고 있으며, 덴마크 구비(GUBI) 사의 펜턴트 조명이 원목 테이블과 잘 어울린다.
3 민규동 감독과 홍지영 감독이 이제껏 만든 작품의 포스터를 연대기별로 정리해 아트월을 만들었다.

남편 같은 아내, 홍지영
묘하게 이사 날짜가 영화 <결혼전야> 제작 시기와 맞물렸다. 홍지영은 남편이 민규동이기에 마음 놓고 이사를 맡길 수 있었다고 했다. “오히려 남편이 저보다 여성적이고 섬세하죠. 영화에서도 잘 드러나는데, 드라마의 디테일이나 감정 챙기는 부분은 배울 점이 많아요.” 반면 홍지영은 대담하고 즉흥적이다. 민규동의 말에 따르면 자신과 달리 풍류가 집안에서 자라서 긍정적이고 현실을 즐길 줄 안다고. “살면서 수많은 선택의 순간이 주어지잖아요. 그때마다 제가 선택하는 기준은 딱 하나예요. 재미있는가 없는가.” 그런 의미에서 영화 작업은 재미있다고 했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판타지를 내포하고 있어요. 제가 직접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어서 좋고, 관객들에게 대리만족을 주는 데서 오는 희열도 있죠.” 그녀가 영화를 통해서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 역시 ‘재미’다. 자신이 영화를 만들면서 행복했던 것처럼 관객 역시 재미있게 봐주었으면 하는 것. 한편 아이 이야기를 꺼내는 ‘엄마’ 홍지영은 신중했다. 그녀가 데뷔작을 준비했을 때 첫째 주홍이는 5살로 한창 엄마가 필요한 시기였다. 불안했고 갈등할 수밖에 없었다. “저 자신에게 수없이 되물었어요. ‘만약 내 딸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이런 역할 갈등으로 고민한다면 나는 뭐라고 대답할까?’ 이렇게요.” 홍지영은 영화판을 떠나는 것 대신 자신의 방식대로 아이를 이해시키기로 했다. 물론 처음에는 아이도 엄마도 힘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해의 깊이도 깊어졌다. 그녀는 큰애에게 전집을 사준 적이 없다고 했다. 알고 보니 주홍이 방에 빼곡히 꽂혀 있는 책은 그녀가 직접 서점에서 일일이 고른 것들이라고.

로맨틱한 호텔 같은 부부 침실. 특수한 부부의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해 싱글 베드 2개를 나란히 놓고 조명을 독립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했다. 벌집을 연상시키는 구조적인 패턴의 민트 스프레드 달앤스타일.

아내 같은 남편, 민규동
4백50만 명이 본 로맨틱 코미디 <내 아내의 모든 것>은 대한민국 ‘아내’의 외로움을 잘 이해한 영화라는 찬사를 받았다. 아내 홍지영이 얼마나 많은 조언을 해준 걸까? 하지만 예상 밖의 답변이 나왔다. “영화 속 정인이(임수정 분)는 바로 저예요. 나이 들어서 침묵하고 우울하고 누군가 봐주기를 기대하는 모습은 저와 닮았어요.” 그리고 그는 자신을 ‘조(躁)’보다 ‘울(鬱)에 가까운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유전적 요인이 큰 것 같아요. 아버지는 어렸을 때부터 검소함이 몸에 밴 분이셨어요. 감정을 표출하는 것보다 참는 것에 더 익숙하셨죠.” 민규동은 영화를 만들려면 왕성한 욕구를 갖고 살아야 한다고 했다. 1999년 <여고괴담 2>로 데뷔해 지금까지 굵직한 작품만 따져 10여 편 만들었으니까 적어도 2년에 1편씩은 꾸준히 작업한 셈. 그가 유년 시절부터 꾹 눌러야 했던 욕구를 영화를 통해 하나씩 표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작품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의 4만 분의 1 정도 표현한 것이라고 했다. “영화는 어쩔 수 없는 운명적인 힘이 있어요. 오래전부터 치밀하게 계획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즉흥적인 작업도 많죠. 그냥 물 흐르듯 그렇게 영화를 만들 생각입니다.” 덧붙여 그는 영화를 통해 궁극적으로 얻고 싶은 것은 ‘행복’이라고 했다. “짧은 인생임에도 사람은 살면서 시스템과 관습, 선입견 등의 장애물에 괴로워합니다. 영화를 통해 어떻게 하면 그들을 구원할 수 있을까 생각하죠.” 요즘 민규동은 1940년대 해방 공간을 다룬 액션 누아르를 준비 중이다. 시대극은 또 새롭다고 했더니 뭐가 어울릴지 이것저것 다 해볼 작정이란다.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의 명장면 중 하나로 꼽히는 류승룡과 임수정의 유원지 회전목마 데이트 신에 나오는 샹송은 민규동 감독이 직접 작곡한 것이다. 사진은 민규동의 작업실에서 발견한 영화 <무서운 이야기 2> 클래퍼 보드.

아이와 마주보기
며칠 전에 주홍이가 수학 시험에서 65점을 받아왔다. 초등학교 3학년인데 65점은 좀 심하지 않느냐는 지인들의 염려와 달리 아빠는 틀린 개수만큼 딸에게 선물을 주었다. 자식에게 관대할 수 있는 부모가 몇이나 될까? 그들의 교육관이 궁금해졌다. “교육관이란 게 딱히 없어요. 아이들이 어떤 길을 선택하건 지지해줄 뿐이죠. 아이들 인생이니 엄마 아빠의 욕심을 채우면 안 되잖아요.” 주홍이의 이과적인 지능은 아직 미완성일지 몰라도 예술가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답게 글쓰기에 남다른 소질을 보인다. “일곱 살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영화 캐릭터를 가지고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정도의 수준이더니 이제는 창조도 할 줄 알죠.” 정적인 큰아이와 달리 네 살배기 이솔이는 음악만 나오면 어깨를 들썩인다. “또래에 비해 말은 늦은 편인데 흥이 많아서인지 노래는 곧잘 따라 해요. 리듬을 탈 줄 알더라고요.” 부부가 자식을 인격체로 인정하는 것처럼 아이들 역시 엄마 아빠가 하는 일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었다. “저희는 아이에게 엄마 아빠가 시간을 낼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충분히 자신을 사랑해주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해요. 그러려면 우리가 하는 일을 설명해줘야 하죠. 자주 말로 설명해주기도 하지만 우리가 만든 영화를 같이 보고, 영화제에 초대받으면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엄마 아빠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직접 보여주기도 해요.” 한번 영화를 시작하면 2~3개월간은 물리적인 시간을 내기 힘들지만 작업이 끝나면 만회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 그리고 서로 교대로 작업하는 경우가 많아 엄마 아빠가 동시에 부재하는 경우는 없다고.

도서관을 연상케 하는 주홍이의 작업실. 서가는 앞뒤 두 줄, 미닫이문처럼 책장에 레일을 달아 공간을 두 배로 활용할 수 있게 했다.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의 자작나무 책상 무니비, 꽃을 표현한 추상화 그림닷컴.

주홍이와 이솔이가 함께 쓰는 침실에 달린 아크릴 소재의 팬던트 조명. 아이들이 어디서든 밝은 불빛 아래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집 안 구석구석에 간접조명을 달았다

주홍이와 이솔이의 침실. 거실의 원목 테이블이 아빠의 보물 1호라면 주홍이의 보물 1호는 이층 침대다. 새집으로 이사 오면 이층 침대를 갖게 해달라고 얼마나 졸랐는지 모른다고. 원목 이층 침대 플렉사, 키즈용 자작나무 책상과 의자 무니비.

CREDIT INFO

기획
이미주
사진
홍상돈
인테리어 스타일링
박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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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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