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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전증 남편 위해 신장이식

CJ 이재현 회장 부인 김희재씨 심경 “내 몸이 건강해 아들 대신 신장 기증할 수 있어 감사”

지난 7월 18일 탈세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만성신부전증으로 형집행정지를 받고 수술대에 올랐다. 신장 이식이 필요한 상태로 공여자는 그의 부인 김희재씨였다. 5시간에 걸친 수술은 성공적이었으나 이 회장과 부인 김씨는 회복 과정에서 급성 거부반응이 나타나거나 폐렴과 같은 감염병에 걸릴 수 있어 예의 주시하고 있다. 갑작스러운 남편의 구속과 이어진 신장 이식 수술 등 일련의 일들을 겪으며 이회장의 부인 김희재씨의 심경은 과연 어땠을까?

On October 14, 2013

5시간의 수술을 마치고…

폭풍처럼 검찰 수사관들이 들이닥쳤다. 자택 압수수색.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신문과 방송은 연일 남편 이재현 CJ그룹 회장(53세)의 이름과 얼굴을 대서특필했다. 그렇게 한 달 뒤 남편은 검찰에 출두, 10시간이 넘는 조사를 받았고 곧 구속 수감됐다. 건강하기라도 했으면 견뎌내려니 하겠지만 유전병에 만성신부전까지 앓는 남편. 잘잘못을 떠나 그를 지켜보는 부인 김희재(53세)씨의 마음속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구속 후 병이 악화된 이 회장은 구속집행정지 상태에서 신장이식 수술을 받았다. 이 회장에게 신장을 준 이는 다름 아닌 부인 김씨였다. 수술을 받은 지 2주가 지나 3주를 향해 가는 시점. 비교적 건강이 많이 회복된 김씨와 서면을 통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수술을 앞두고 “자꾸 감성적이 돼”라고 말하는 남편에게 그녀는 “내 신장이 50년 있던 몸에서 다른 몸으로 가 일한다는 게 의학적으로 어떻게 이뤄지는 걸까? 참 신기하지?” 하는 식으로 일부러 엉뚱한 이야기를 했단다. 그렇게라도 해야 분위기가 무거워지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그만큼 이 회장을 둘러싼 개인적·사회적 상황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수술 경과는 어떠신지요?
5시간에 걸친 대수술이었지만 무사히 잘 마쳤습니다. 남편은 건강 상태가 많이 악화된 상황이었는데도 잘 버텨줘 무척이나 다행스러웠습니다. 현재 특별한 징후 없이 저와 남편 모두 회복되고 있습니다. 저는 건강 체질이라 2주 지나니 거의 회복됐어요. 그러나 남편은 수술이 잘 끝났어도 회복하는 과정에서 급성 거부 반응이 나타나거나 폐렴 같은 감염병에 걸릴 수도 있어 모두가 예의 주시하고 있습니다. 부부지만 혈연이 아닌 장기를 이식받았기 때문에 거부 반응이 있을 수 있어 안심할 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수술실에 들어갈 땐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요?
아빠(김희재씨가 남편 이재현 회장을 칭하는 말)에게 신장을 기증한 것을 사람들은 특별한 사건으로 보시는 것 같은데, 저는 아내나 엄마라면 누구나 같은 결정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제 인생에서 제일 인연이 깊은 두 남자(남편과 아들 선호)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니 망설임이 없었어요. 수술에 대한 두려움이 전혀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내 몸이 건강해 신장 기증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다행이라 여겼습니다.
수술 전 이 회장의 상태가 심각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왜 재벌 총수들은 구속되기만 하면 아프냐’는 등 비난을 받기도 했지요.
지금까지 남편의 건강 상태는 회사 비서팀에서도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었을 정도로 철저히 비공개 상태로 치료를 진행해왔습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한 개인의 건강 문제는 지극히 개인적인 사생활의 영역일 뿐 아니라 본인의 건강 문제가 외부에 알려질 경우 기업 경영이나 주가 등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한 남편의 확고한 의지 때문이었습니다. 사회적 분위기가 좋지 않다는 점은 충분히 알고 있었지만 어떤 다른 결정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신부전증 같은 경우 고혈압과 유전병 등으로 투석 치료가 불가능한 상태였기 때문에 유일한 대안인 이식 수술 집행을 위해 날짜를 조율하던 중이었는데…. 공교롭게 검찰 수사 시점과 맞물려 오해를 사게 된 것 같습니다.

이재현 회장은 집에서도 일을 놓지 못하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수시로 서류를 읽고 책도 보고, 또 엔터테인먼트 사업 분야까지 관장하다 보니 영화나 TV를 골똘히 보며 시간을 보낸다고.

아들 선호군의 어린시절, 즐거운 한 때를 보내는 이 회장.


신장 기증 결정 과정이 궁금합니다.
남편의 신장이 계속 안 좋아지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식이란 말을 처음 들은 것은 지난해 8월이었습니다. 누구나 자기에게 닥치지 않으면 막연하잖아요. 처음에는 그저 ‘이식해야 되나 보다’ 정도로밖에 생각하지 못 했지요. 주치의 선생님을 만나 설명을 들으니 처가 4촌까지 가족 가운데 기증자가 없으면 장기이식관리센터에 등록해야 하는데 평균 대기 시간이 5년이나 걸린다고 하더군요. 그날 저녁 집에 돌아와 곰곰이 생각했죠. 기증 후보자는 저랑 아들과 딸, 그렇게 셋으로 하고 친지들에게까지 확대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셋이 모여 의논했죠. 아빠의 상황을 설명하니 애들이 정말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자기들이 기증하겠다고 나서더라고요. 그래서 검사 결과 가장 적합한 사람이 수술을 받기로 했죠. 나중에 알았지만 주치의 선생님은 당초 아들을 염두에 두었다고 합니다. 일단 젊고 체격으로 볼 때 신장도 부인이나 누나보다 클 테고 또한 자식이니 유전자도 거의 일치할 것이기 때문이죠. 의사 입장에서는 환자에게 누가 가장 적합하냐가 중요한 잣대였을 것이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아들을 점찍은 거죠. 검사 결과 역시 아들이 가장 적합하다고 나왔고 저는 두 번째로 나왔어요. 저희는 사전에 상의한 대로 검사 결과 가장 적합한 사람이 기증한다는 데 이의가 없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받는 사람에게 가장 좋은 선택을 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죠. 주치의 선생님은 2013년 상반기 중 이식을 해야 한다고 했고, 이런 사실을 다른 친지들도 알게 된 겁니다. 그게 지난해 여름의 일이었어요. 그렇게 아들이 신장을 떼어주기로 하고 올해 4월 전까지 꼭 수술을 받기로 했는데, 남편 일이 바쁘고 수술 자체에 대한 부담감과 무엇보다 아들에 대한 걱정 등이 겹치면서 계속 미뤄왔던 거죠.

기증자가 아들 선호군에서 부인으로 바뀌었습니다. 처음엔 기증 사실을 숨겼다고 들었는데요?
올해 초였을 거예요. 아들이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으로 들어와 같이 살면서 자꾸 수술 생각이 났어요. 저는 나이에 비해 건강하고 체구도 여자치고는 작지 않기 때문에 ‘나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또 부부끼리 기증하는 사례도 꽤 있다고 들었고요. 그때부터 ‘내가 하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그러면서 혼자 이런 생각도 해봤습니다. ‘드라마처럼 기증자가 누군지 모르게 수술하는 방법은 없을까?’ 남편도 남편이지만 아들이 “왜 엄마가 나서느냐” 그러면 서로 불편할 텐데 어쩌나 하던 차에 검찰수사가 터진 겁니다.

처음 공개하는 두 사람의 연애 스토리

이 회장과 김씨는 1960년생 쥐띠 동갑내기로 대학 시절 모임을 통해 처음 만났다. 이 회장은 고려대학교 법대, 김씨는 이화여자대학교 미대 장식미술과를 졸업했다. 김씨의 모친은 ‘김치박사’로 유명한 김만조씨. CJ의 김치 개발에도 참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도 재벌가와는 분위기가 다른, 평범한 집안으로 볼 수 있다. 최근 이들의 연애 스토리가 새삼 화제다.

이재현 회장이 연애 시절 삼성가 장손이라는 신분을 숨겼다는 얘기도 있던데, 어떤 계기로 알게 되었습니까?
그 부분이 외부에 좀 잘못 알려진 것 같은데, 처음부터 어떤 집안 사람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대학교 2학년 때 고교(서울예고) 친구를 따라 간 연말 모임에서 아빠를 처음 봤는데, 당시 같이 간 친구 서너 명 중 저만 빼고 모두 아빠랑 초등학교 동창이었어요. 그날 처음 본 아빠에 대한 첫인상은 ‘아저씨 같다’는 거였어요. 나이가 동갑인데도 상당히 점잖은 옷을 입고 머리 모양이 너무 단정하니, 정말 아저씨 같은 분위기인 거예요. 그 모임 이후 그날의 무리가 여러 차례 어울려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대학교 4학년 때 처음으로 단둘이 한 번 만났는데, ‘아, 나를 남달리 생각하는구나’라는 느낌을 받긴 했지만 그땐 그게 다였어요. 그 뒤 한동안 연락이 없다가 1983년인가, 대학을 졸업하고 디자인회사에 다니며 유학을 준비하는데 씨티은행 신입사원으로 일하는 아빠와 연락이 닿았습니다. 너무 오랜만이라 만나자마자 서로 반가워하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했어요. 그날부터 1년간 매일 만났습니다. 당시 제가 과천에 살았는데 아빠가 매일 데려다줬어요. 쉬운 일이 아니죠. 진심이 느껴졌고, 그렇게 꾸준하게 저한테 잘해주는 사람에 대한 믿음이 생겼습니다. 당시 몰고 다닌 차가 ‘포니2’였는데, 그때 차에서 들었던 음악이 아직 생생하게 기억나네요.

결혼은 쉽게 이뤄졌습니까?
유학을 준비하던 저에게 아빠가 “미국 가지 마라” 그랬어요. 결국 그게 프러포즈가 되어버렸습니다. 어머님(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장남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 부인, 손복남씨)께서 저에 대해 “어떤 애냐”며 주변에 물어보셨는데 “묻지 말고 그냥 결혼시켜라”라는 답변을 들으셨대요. 그렇게 결혼을 약속하고 나서 얼마 후 어머님이 할머님(이병철 회장 부인, 고 박두을 씨)께 저를 데리고 가셨어요. 그런데 전 할머님이 너무 무서웠습니다. 인상이 좀 강렬하셨거든요. 그런 분이 제게 “머리가 나쁘구나”라고 하신 거예요. 전 그 말이 제가 뭘 잘못해서 하시는 말씀인 줄 착각하고 깜짝 놀라 차를 엎질렀습니다. 나중에 어머님께서 말씀하시길 머리(brain)가 아닌 머리카락(hair)을 말씀하셨던 거라 하시더라고요. 제가 머리카락이 좀 가늘고 숱이 없는 편인데, 그걸 딱 알아보신 거죠.

뭇 여성들의 부러움을 받는, 어찌 보면 ‘신데렐라’ 스토리의 주인공으로 비칠 수 있을 텐데, 대기업 회장 사모님의 실제 생활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어쩔 수 없이 이목을 많이 받기도 하지만, 전 사실 평범하게 살기를 원하고 자식들에게도 특권 의식 같은 게 생기지 않도록 교육해왔습니다. 조금 다른 점이라면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님부터, 어머님, 저희 부부, 그리고 애들까지 4대가 함께 살았던 일인 것 같습니다. 이런 대가족이 요즘에는 흔치 않잖아요. 당시 고모님들(이인희 한솔 고문, 이명희 신세계 회장)과 작은아버님(이건희 삼성 회장) 등 친척들이 항시 찾아와 매일 집안이 북적거렸던 기억이 납니다.
시아버님(이맹희 회장)께서 외국으로 떠나시고 홀로 시부모님(이병철 창업주 부부)을 모시는 시어머님을 옆에서 보필하면서 힘든 점보다는 배울 점이 훨씬 많았습니다. 출퇴근 때마다 할머님과 어머님께 문안인사를 드리는 아빠를 보며 자란 저희 자녀들에게도 그 이상 큰 배움은 없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4대가 같이 살 때는 매일 함께 식사를 해 항상 조심스러웠고 남편은 매일 밤 12시에나 집으로 들어왔죠. 딸(경후)은 어렸을 때 아빠와 함께 외식 한 번 제대로 한 기억이 없을 거예요. 둘째인 아들(선호)이 태어나고 나서부터 비로소 조금씩 우리 가족만의 시간을 갖게 된 것 같습니다. 시어머님께서는 시부모 모시면서 고생도 많이 하셨는데, 저에게 그런 힘든 시절을 겪지 않게 해주신 분이십니다. 한마디로 제가 ‘애처럼’ 살 수 있게 해주신 분이죠.

시어머니에 시할머니까지 봉양하셨으니 이병철 선대 회장 부부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많을 법한데요.
저희 집에는 ‘겸허(謙虛)’라는 글귀가 쓰인 액자가 걸려 있어요. 할아버님이 직접 쓰신 것이라고 해요. 그 글귀는 단지 액자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아빠 마음속 깊이 아로새겨져 있는 할아버지의 가르침이에요. 어딜 가나 겸허를 강조하고, 실천하려고 노력합니다. 할머니는 특히 증손자인 선호를 예뻐하셨습니다. 2000년 아흔여섯을 일기로 돌아가시기 전 한 10년간 심장 문제로 고생하셨는데, 그 기간을 잘 버틸 수 있었던 게 “선호 덕분”이라고 하실 정도였어요. 그런 선호를 데리고 제가 유학을 떠나겠다고 한 번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나 죽기 전에는 안 된다”라고 한마디 하시더라고요. 그러다가 돌아가시기 이틀 전에 선호가 병원으로 인사를 갔더니 유학 이야기를 기억하시고는 “선호야, 할머니 이제 안 되겠다. 너 미국 가도 된다”라고 하셨어요. 그렇게 마지막 순간까지 증손자에 대한 특별한 정을 보이셨던 분입니다.

시누이인 이미경 부회장과는 어떻습니까?
자주 뵙고 대화도 많이 나눕니다. 열정이 넘치고 정이 많으신 분인데, 특히 저희 애들을 자식처럼 아껴주시고 가르침을 주셔서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신혼 시절의 이재현 회장과 부인 김희재씨. 회사일로 늘 바빴던 이 회장이었지만 틈틈이 시간을 내 아이들과 놀아준 자상한 아빠이기도 했다.

경후·선호, 두 자녀 키운 남다른 교육법

김희재씨는 지금껏 ‘평범한 결혼, 조용한 내조 스타일’로 알려져 있다. 이 회장이 본격적인 그룹 경영을 맡았을 당시 밤늦게 직원들을 집으로 데려와 2차 술자리를 갖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도 김씨는 군말 없이 이를 뒷바라지했다는 일화가 전해 내려올 정도다. 두 자녀도 튀는 일 없이 무난하게 잘 자랐다는 평을 받는다. 소리 없이 강한 내조의 비결은 무엇일까?

곁에서 지켜본 이 회장의 경영 수업 과정은 어땠습니까?
잘 알려져 있다시피 아빠는 말단 사원부터 시작해 대리, 과장 등을 모두 거쳤습니다. 첫째 경후가 태어나고 한동안은 대한민국 여느 월급쟁이와 다름없이 매일 밤늦게까지 일했어요. 그때는 서로 얼굴 볼 시간도 없었죠. 고된 과정이었지만, 그 경험이 매우 값졌다고 여기는지 아들 선호에게도 신입사원부터 시작해 일을 차근차근 배우도록 했어요(선호씨는 최근 CJ그룹 2013년 상반기 공채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근무 중이다).

평소 이 회장의 가정에서의 일과가 궁금합니다. 집에 들어오면 주로 어떻게 시간을 보내시는지요?
워낙 집에서도 일을 놓지 못하는 분입니다. 수시로 서류를 읽고 책도 보고, 또 엔터테인먼트 사업 분야까지 관장하다 보니 영화나 TV를 골똘히 볼 때도 있고 그렇습니다. 이제 아이들까지 각자 회사에 입사해 일을 하니 가족이 모일 때도 회사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

최근 이 회장이 수감 중일 때 자주 면회를 간 것으로 아는데, 주로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요?
주로 회사 걱정, 직원들 걱정을 많이 했어요. 직접 임직원들에게 이메일도 썼지만, 직원들이 느꼈을 당혹감과 혼란에 대해 무척 가슴 아파했고, 혹여 회사의 성장이 가로막히지 않을지 등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평소 건강이 좋지 않았던 이 회장을 위해 가정에서 어떻게 건강을 챙겨드렸는지요?
1997년 고혈압으로 약한 뇌졸중이 온 적이 있고, 유전질환(CMT)도 있죠. 그 영향으로 최근 들어 다리 근육이 많이 약해져서 걱정을 많이 하는데, 이 병이 뭘 한다고 해서 나아지거나 하는 것이 아니에요. 개인마다 증세가 나타나는 시기나 속도도 다르고…(CMT, 즉 ‘샤르코-마리-투스’는 신경 근육계 질환으로 손과 발의 근육이 점점 위축되어 힘이 없어져 결국 정상적인 보행이 힘들어지는 유전질환이다. 이재현 회장은 이 병으로 병역을 면제받았으며 50세 이후 다리와 손가락에 급격히 증상이 진행되어 현재 특수 신발 등 보조기구를 통해 보행에 도움을 받고 있다). 신장질환의 경우 저염, 저콜레스테롤, 저열량식으로 꾸준히 관리해왔습니다. 그래도 조금씩 증상이 악화돼 지난해 8월 처음으로 신장이식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 이후로도 상당 기간을 식이요법으로 잘 버텨주신 셈이죠.

이 회장은 회사 경영 등으로 인해 쌓인 스트레스를 주로 어떻게 푸십니까?
2010년 손자가 태어난 이후로는 손자 재롱 보는 게 가장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두 자녀 선호·경후씨를 어떻게 교육시켰는지요?
유학 중이던 두 자녀가 귀국할 때마다 저희 부부는 항상 온 가족이 어려운 이웃을 찾아 봉사활동을 해왔습니다. 어떨 때는 독거노인이나 장애인 요양시설을 찾아 김장을 담그거나 급식을 했습니다. 학업도 중요하지만 항상 어려운 이웃을 돌아볼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자라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었습니다. 자랑하긴 좀 그렇지만 아이들 성격이 정말 좋습니다. 저한테 큰 소리, 볼멘소리 한 번 한 적이 없을 정도예요. 학교도 무난히 잘 다니고 어른들이 원하는 만큼의 공부도 해주고있는 편이에요. 교육방식도 특별할 게 없었습니다. 애들한테 그저 잘 반응하고 대답해준 거, 그게 다인 것 같아요. 4대가 함께 살다 보니 집안 분위기가 엄격했지만, 그래도 애들이 하는 말이나 질문 같은 걸 절대 무시하는 법 없이 귀 기울이고 반응해줬습니다. 애들은 거기에서 ‘아, 내가 존중받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2008년에 딸 경후씨가 결혼했는데요, 그 과정이 궁금합니다.
딸이 미국 컬럼비아대 졸업반 시절, 전화로 마음에 드는 사람을 ‘발견했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마음에 들면 무조건 잡아라”라고 했습니다. 이후 둘이 사귈 때 제가 먼저 미국에 가서 만나봤는데, 처음 만나는데도 처음 같지 않고 너무 편한 거예요. 흠잡을 데가 한 군데도 없었죠. 남편도 미국 출장길에 식사 자리로 불러 사윗감한테 이것저것 물어보더니 합격 사인을 주더군요. 제가 “(둘이) 예쁘지?” 했더니 마지못해 대답한다는 듯 “그러네” 하며 웃더라고요.

미혼인 아들 선호씨는 어떤 사람을 만났으면 하는지요?
저희 부부도 그렇고 딸네도 그렇듯이 서로 잘 어울리고 편안한 사람이면 좋겠어요.

문답이 막바지에 이르니 언뜻 아무 일 없이 행복하기만 한 중년 부인의 인터뷰인 듯싶다. 그러나 김씨 부부의 시련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금 그녀의 기도는 단 한 가지다. “현재로서는 애들 아빠가 건강을 빨리 회복하는 것이 가장 큰 바람입니다. 그 외에 다른 생각은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CREDIT INFO

취재
장은성
사진
<시사저널>, CJ 제공
2013년 10월호

2013년 10월호

취재
장은성
사진
<시사저널>, CJ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