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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4대 여성 리더 사생활·패션·리더십·정책 엿보기

헌정 사상 첫 여성 대통령의 취임을 앞두고 세계 여성 지도자들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우리나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을 비롯해 주요 20개국(G20) 중 여성 정상이 이끄는 나라는 독일, 브라질, 호주 등이다. 이들이 살아온 인생 스토리와 리더십, 패션, 라이프스타일까지 세계 여성 지도자들을 집중 분석했다.

On October 09, 2013

한국 박근혜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게 붙는 수식어는 무려 5가지다.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 1987년 대한민국 헌법 개정 이후 최초의 과반 득표 대통령, 최초의 이공계 출신 대통령, 부녀 대통령, 독신 대통령이 그것이다. 또한 박 당선인은 퍼스트레이디와 대통령을 모두 수행한 대통령이기도 하다. 그녀는 1974년 어머니 육영수 여사의 사망 이후 1979년까지 5년간 퍼스트레이디 직무 대리를 했다. 그녀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앞으로는 여성들의 역할을 제한해왔던 여러 가지 사회적 제약이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미래 여성 인재 10만 양성 프로젝트, 경력 단절 여성에 대한 전폭적 지원, 출산·육아 부담의 국가 분담, 다자녀·한 부모·다문화 가정에 대한 지원 강화, 일과 가정 양립 등의 약속은 나아가서는 가정과 국민의 행복을 지키는 시대를 열어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2월 25일 제18대 대통령 취임식이 거행될 예정이며, 행사 기획사로는 중소기업이 선정됐다.

리더십 원칙과 신뢰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정치철학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원칙과 신뢰다. 지난 1998년 대구 달성군 보궐선거로 정치권에 입문한 후, 원칙과 신뢰에 대해 수없이 강조하면서 이는 그의 정치적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2004?2006년 한나라당 대표, 2011?2012년 비대위원장으로 활동한 과정에서 시스템이나 기준에 따라 당을 운영하고 이러한 기조를 유지한 것에서 원칙과 신뢰의 이미지가 싹텄다는 평가다.
‘국민과의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것이 그녀의 정치적 소신이며, 이에 따라 2004년 17대 총선과 2012년 19대 총선이 끝난 뒤 공약 이행을 챙김으로써 이러한 이미지를 업그레이드하기도 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세종시 수정안 추진에 대해 “약속을 지켜야 한다”며 원안 고수로 맞서 관철시킨 일은 그녀를 ‘원칙’의 정치인으로 거듭나게 했고, 현직 대통령과의 세종시 대결에서 정치생명을 걸며 보여준 당찬 모습이 ‘대세론’을 일으키며 여권 내 대선주자로 우뚝 설 수 있게 했다는 평가다.

인생 스토리 비운의 퍼스트레이디에서 대한민국 첫 여성 대통령이 되기까지
박근혜 당선인은 1952년 2월 2일 아버지 박정희와 어머니 육영수 사이에서 태어났다. 1963년 아버지 박정희의 대통령 취임 이후 청와대에서 성장했고, 1970년 서강대학교에 입학하여 전자공학을 전공했다. 1974년 어머니 사후부터 1979년 10·26 사건 이전까지 퍼스트레이디의 직무를 수행했고, 10·26 사건 이후 청와대에서 나와 육영재단 이사장과 정수장학회 이사장 등을 맡았다.
1998년 정계에 입문하여 재보궐선거에서 제15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후 제19대까지 5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한나라당 부총재와 대표최고위원을 역임했으며, 2007년 한나라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마했지만 현 대통령인 이명박 후보에게 석패했다. 이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지내면서 2012년 4월 11일에 실시된 제19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승리로 이끌었고, 새누리당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어 2012년 12월 19일에 실시된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통합당의 대통령 후보 문재인을 상대로 약 1백8만 표 차로 승리하여 당선되었다.

관저 청와대 거주, 영부인 집무실은 개편, 여성 경호원 강화
박근혜 당선인은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독신’ 대통령으로, 앞으로 청와대에도 ‘여풍’이 강하게 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박근혜 당선인에 대한 경호와 관련, 청와대 경호처는 당선 확정 시점부터 그녀가 최초의 여성 대통령인 점을 감안해 여성 경호원을 근접 경호에 투입하는 등 국가원수급에 해당하는 전담 경호를 지원하고 있다. 앞서 대선 후보 시절에도 박 당선인은 여성 후보라는 특성을 고려, 덩치 큰 남성 경호원들이 곁에 있을 경우 유권자들에게 위압감을 줄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여경 특공대 출신 여성 경호원이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안전을 책임지도록 했다.
청와대 경호처는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오는 2013년 2월 25일 취임일까지 박 당선인에 대한 경호 안전 임무를 수행하도록 전담 경호대를 편성했다. 전담 경호대는 근접 경호 요원을 비롯해 폭발물 검측 요원과 통신 지원 요원, 보안 관리 요원, 의료 지원 요원, 음식물 검식 요원 등으로 편성됐다. 주요 국제회의나 외국 정상과의 회담 시 박 당선인이 ‘홀로’ 기념사진을 찍는 일도 흔해질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싱글 여성 대통령이라고 해도 의전상으로는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또 박 당선인은 독신 여성이기 때문에 ‘퍼스트레이디’도 없고 ‘퍼스트 젠틀맨’도 없다.
그렇다 보니 영부인을 담당하는 청와대 제2부속실은 아예 없어지거나 기능이 축소될 가능성이 높다. 청와대 본관 1층에 있는 영부인 집무실도 텅 빌 가능성이 커졌다. 박 당선인의 청와대 입성 뒤 최측근으로 항상 머무는 보좌진에도 여성이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청와대 경호단에 여성 숫자가 늘었다. 앞으로는 절반 이상이 여성으로 채워질 가능성도 있다. 박 당선인이 대선 과정에서 세 차례 열린 TV 토론에 들고 왔던 것처럼 대통령이 ‘가방’을 들고 다니는 경우도 종종 목격될 것으로 보인다. 또 대통령 ‘살림 공간’도 독신 여성에 걸맞게 정비하고, 청와대 내에 여자화장실을 더 늘릴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라이프스타일 취미는 독서와 단전호흡, 노래마저 절도 있게 부르는 원칙주의자
박근혜 당선인은 시간 여유가 있을 때는 주로 독서나 단전호흡같이 마음을 다스리는 일에 시간을 많이 쓴다. 지금까지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다. 또 인터넷으로 뉴스를 보거나 트위터에 올라온 글을 읽고, 그녀의 생각을 올리는 일에도 시간을 많이 보내는 편이다. 정치인들 중에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가장 먼저 만들고, 트위터나 페이스북도 먼저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래도 좋아한다. 신곡 중 마음에 드는 곡이 있으면 한 곡만 무한 반복으로 들으며 익히기도 한다. 그렇게 해서 익힌 곡이 오촌 조카 가수 은지원의 노래 ‘나우’ ‘만취 인 멜로디’ 등이다. 랩은 잘 못 부르지만 랩이 아닌 부분은 음정, 박자를 정확히 맞춰 부른다고 한다. 보통 노래를 하다 보면 흥에 겹거나 분위기에 취해 오버도 하는데 그녀는 절대 그런 일이 없다. 초지일관 박자와 음정을 정확히 지켜가며 절도 있게 부른다. 록도 트로트도 발라드도. 음식은 골고루 먹는 편이고 특히 현미밥을 즐겨 먹는다. 아침은 절대 거르지 않는다.

헤어&패션 스타일 의상 디자인과 색상 변화, 올림머리는 고수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옷차림이 최근 달라졌다. 디자인과 색상이 모두 바뀌었다. 새로운 옷차림으로 그녀가 추구하는 정치철학인 ‘안정’과 ‘역동적'인 이미지를 모두 담아내고 있다는 평가다. 당선 전과 달리 그녀는 공식 일정에서 분홍색, 오렌지색, 갈색 등의 밝은 색상 옷을 즐겨 입었다. 대통령 선거 당선 이전에 즐겨 입던 색상은 검은색, 흰색, 짙은 녹색 등 어두운 색상 위주였다. 밝은 색조뿐 아니라 정장 디자인도 변했다. 목까지 올라오는 차이니즈칼라 정장을 선택했다.
최근 중국 정부 특사인 장즈쥔 외교부 상무부부장과의 만남과 대한노인회와 금융연수원 방문 등 1월 들어 연이은 공식 행사에서 그녀는 모두 차이니즈칼라 정장을 착용했다. 가방이나 구두 등 액세서리에도 변화가 생겼다. 이전엔 보기 힘들었던 무늬가 있는 붉은색 가방이나 파스텔 색조의 구두 등을 선택했다.
그녀는 구두와 가방 모두 중저가의 국산 브랜드를 애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전반적으로 수수한 이미지는 여전하다. 수십 년 동안 유지해온 올림머리와 2~3cm의 굽 낮은 구두는 그녀가 추구하는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올림머리는 어머니 육영수 여사를 떠올리게 할 뿐 아니라 우아하고 차분한 이미지를 연출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자칫 밋밋해 보일 수 있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포인트로 브로치를 착용하기도 한다. 브로치는 보는 사람의 이목을 끄는 정치적 효과도 있다.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

현재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지도자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다. 독일 사상 첫 여성 총리, 첫 동독 출신 총리, 첫 과학자 출신 총리인 그녀는 재정과 가족·보건복지 등 소외계층 정책에 성공해 국민적 지지를 받고 있으며, 세계 금융위기 속에서 독일 경제를 안정적으로 이끌었다는 찬사를 받으며 ‘독일판 대처’로 불리고 있다. 그녀는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 골다 메이어 전 이스라엘 총리, 인디라 간디 전 인도 총리 등 세계적인 여성 정치 지도자들과 같은 반열에 올랐지만, 자신을 ‘철의 여인’ 대처 전 영국 총리와 비교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녀의 집무실 책상 위에는 독일 태생으로 러시아 황제 표트르 3세의 왕비가 됐다가 뒷날 여제가 된 예카테리나 2세(1729?1796)의 사진이 놓여 있다. 여자의 몸으로 러시아 근대화를 이끈 그녀를 가장 존경한다고 한다. 메르켈 총리는 미 경제 격주간지 <포브스>가 지난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리스트 중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2010년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부인인 미셸 오바마 여사에게 1위를 한 차례 내준 것 말고는 2006년 이후 6년 동안 줄곧 1위에 올랐다. 한편, 그녀는 정계 입문 15년 만인 2005년 총리에 선출됐으며, 지난 2009년 재선되었고 3선 도전을 앞두고 있다.

리더십 소신과 뚝심과 추진력
메르켈 총리는 무리수를 두지 않고 때를 기다리며, 자기 할 일에 대해 꼼꼼하게 ‘관찰일기’를 쓰며 차근차근 실행해나가는 과업지향형 인물이다. 인기에 영합하지 않고 안정적 리더십, 뚝심, 소신, 철두철미함, 추진력 등으로 소신 있게 밀고 나가는 ‘여전사’ 스타일이기도 하다. 내유외강형 지도자로 이성적 사고가 강점인 메르켈 총리는 집권 이후 10년간 중병을 앓아온 독일 경제를 치유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덕분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전 세계 경제가 휘청거렸지만 독일 경제는 호황을 누렸다.

인생 스토리 목사의 딸로 태어나 어린 시절 꿈은 발레리나
메르켈 총리는 제2차 세계대전 후인 1954년 7월 서독 함부르크에서 개신교 목사의 첫딸로 태어났다. 아버지 호르스트 카스터는 서독의 하이델베르크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한 기독교 사회주의자였다. 그녀가 태어난 지 2개월 된 무렵에 목사인 아버지는 무신론의 국가에 신의 뜻을 전하기 위해 동독 지역인 그의 고향인 브란덴부르크의 조그마한 도시 크비트초프로 이주했다. 안락하고 편안한 생활을 포기하고 이곳으로 왔지만 불행히도 목회 활동은 할 수 없었다. 동독의 공산당 정권이 점점 옥죄어오기 시작했고, 기독교인들은 괴롭힘과 모욕을 당하기 일쑤였다.
메르켈의 아버지는 다시 베를린에서 80㎞ 떨어진 템플린으로 이사했다. 다행히 이곳은 구 동독 공산 정권의 직접적인 통제에서 벗어난 하나의 해방구 같은 지역이었다. 목회관에서 자유로운 토론이 가능했지만, 이곳 역시 밖에서는 감시의 눈초리가 심했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메르켈은 지적 능력과 생존 능력을 쌓아갔다. 어릴 때 꿈은 발레리나가 되는 것이었고 성적은 우수했다. 특히 어학에 재능이 뛰어났다.
이때 닦은 러시아어 실력으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만나면 러시아어로 막힘없이 대화하고, 영어도 유창하게 구사한다. 1978년에 라이프치히대학에서 물리학 공부를 마친 뒤 1990년까지 동베를린의 동독학술아카데미에서 연구 활동을 하고, 1986년 물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77년에는 동독에서 울리히 메르켈과 결혼해 4년 만에 이혼했고, 지금까지도 첫 번째 남편의 성인 메르켈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현재 남편인 요아힘 자우어 훔볼트대 교수와는 아카데미 시절 친구로 사귀기 시작해 17년 만인 1998년에 결혼했다. 메르켈 총리는 자신의 몸에서 태어난 자식은 없지만 자우어 교수와 그의 전 부인 사이에 태어난 장성한 두 아들과 손주가 있다.

관저 관저에 머무르지 않고 집에서 출퇴근
슈프레 강을 끼고 지은 연방 총리 관저 ‘분데스칸츨러암트(Bundeskanzleramt)’는 대통령 관저 가운데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본관 남쪽과 북쪽에 붙어 있는 부속 건물까지 합하면 백악관의 8배나 된다. 이 때문에 ‘콜로세움’이라 부르기도 한다. 독일 통일 후 베를린으로 수도를 옮길 때 4년에 걸친 공사 끝에 2001년 5월에 완공했다. 총리 전용 주거공간은 8층에 있으며, 침실 2개와 화장실, 부엌이 있다. 하지만 침실이 침대 하나만 들여놓을 수 있을 정도로 좁은 편(10평 남짓)이라, 메르켈 총리는 이곳에서 거주하지 않고 예전에 살던 사저에서 생활하며 출퇴근한다. 베를린 시내 중심부 쿠퍼그라벤에 자리한 그녀의 집은 사람이 많이 다니는 중심지이자 관광지다 보니 경호상 문제가 있을 것 같으나, 별다른 차단 없이 경찰 두 명이 집 앞을 지키는 정도로만 경호가 이루어진다. 대신 건너편 박물관 지붕과 곳곳에 감시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


메르켈 총리는 독일에서 이름이 가장 널리 알려진 인물이지만 한편으로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기도 하다. 검소함이 몸에 밴 그녀는 총리가 된 후에도 여전히 경호원 한 명만 데리고 슈퍼마켓에 나타나 식품을 산 뒤 돈을 지불하는 소탈한 모습이 한 시민 기자의 카메라에 잡혀 신문에 보도되기도 했다. 메르켈 총리는 공적인 생활과 사생활을 철저히 구분해 사저에는 절대로 사진기자를 들이지 않는다. 수도인 베를린을 벗어나면 아주 홀가분해한다는 것이 측근들의 말이다. 휴가 때는 산행을 즐기고 술은 붉은 포도주를 선호한다. 베를린의 ‘세 모리스’ 주점은 메르켈 총리의 단골 와인 주점이다. 취미는 바그너의 음악 듣기. 매년 여름에는 남편과 함께 바이로이트에서 열리는 바그너 음악축제에 꼭 참석한다. “지킬 수 없는 것은 약속하지 마라”가 메르켈 총리의 좌우명이다. 물리학자 출신답게 원칙을 중시하는 그녀는 약속 시간을 어기는 것을 싫어한다.

메르켈 총리의 머리를 책임지는 우도 발츠.

헤어&패션 스타일 짧은 금발머리, 재킷+톱+바지+목걸이 스타일
그녀의 헤어스타일에는 큰 변화가 없다. 금발의 짧은 생머리는 그녀를 단정하고 젊어 보이게 하면서 강한 느낌을 준다. 그녀가 단골로 찾는 곳은 ‘우도 발츠’ 미용실이다. 우도 발츠는 70세 노장이지만 아직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메르켈 총리뿐만 아니라 연예인 등 많은 유명인이 그의 단골 고객이다.
메르켈 총리가 즐겨 착용하는 패션 아이템은 재킷과 톱, 바지, 목걸이다. ‘패션 테러리스트’라는 표현을 거침없이 쓰는 디자이너도 있을 만큼 단순하다. ‘메르켈 스타일’이라고도 명명될 정도로 고정된 그녀의 스타일은 단추 3~4개가 기본인 칼라가 좁고 짧은 재킷에 정장 바지, 높지 않은 검정 구두면 완성된다. 비슷한 스타일이지만 색상은 무려 90가지가 넘는다. 메르켈 총리는 베티나 셴바흐라는 디자이너의 옷을 즐겨 입는다. 2005년 첫 총리 도전을 앞두고 처음 만나 지금까지 베티나의 옷을 애용하고 있다. 심플한 라인을 즐기는 베티나의 의상은 아주 비싼 편은 아니다. 재킷 하나에 6백50유로(90만원) 정도다.

브라질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

2010년 10월 31일 대선 결선 투표에서 56%가 넘는 높은 득표율을 기록하며 브라질 사상 첫 여성 대통령이 된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에서 여성 대통령이 나온 것은 왕정이 폐지되고 공화정이 출범한 지 121년 만에 처음이었다. 그만큼 정가와 관가에는 많은 변화가 나타났다. 역대 정부 가운데 가장 많은 여성 각료가 배출되었고, 대통령 전용기 운항에도 변화가 왔다. 조종사는 공군의 남성 장교들이 그대로 맡았지만, 기내 서비스를 담당하는 인력은 여군으로 교체됐다.
호세프 대통령의 등장은 정부 정책에도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왔다. 전임자인 룰라 전 대통령이 ‘대국 브라질’의 기틀을 마련했다면, 호세프 대통령은 각종 정책을 섬세하고 정밀하게 가다듬었다. 호세프는 “배가 고파 먹을 것을 달라고 하는 자식들에게 아무것도 줄 것이 없는 어머니의 심정을 헤아려야 한다”며 ‘브라질 카링오주(Brasil Carinhoso, 포르투갈어로 ‘따뜻한 마음으로 보살핀다’는 뜻)’라는 프로그램을 추진했다. ‘브라질의 어머니’를 모토로 대통령에 당선된 호세프가 ‘브라질을 보살핀다’는 의미를 지닌 정책을 제시한 것이다.
육아·보건 서비스에 초점을 맞춘 이 프로그램은 0~6세 자녀가 있는 극빈층 가정에 매월 70레알(한화 약 3만6천3백원)을 지원한다. 이와 함께 2014년까지 자궁경부암과 유방암의 예방, 진단, 치료를 무상으로 해주는 정책도 구상하고 있다. 그녀는 언론을 접촉하는 것도 달랐다. 언론 노출 빈도수가 적고 대규모 기자회견을 최소화했다. 대신 취임 초기 TV 토크쇼에 출연해 여성 대통령으로서의 일상과 정부 정책, 여성의 지위 향상, 외동딸과 외손자에 대한 생각, 개인적인 버릇 등을 소상하게 밝히며 부드럽고 친근한 이미지를 연출했다. 주부 대상 아침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요리를 직접 만드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호세프 대통령의 TV 출연은 언론과 국민으로부터 신선한 시도로 받아들여져 큰 호응을 얻었다. 2012년 미국 <타임>지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뽑혔으며, 2011년 <포브스> 선정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인’ 중 3위에 오르기도 했다.
한편, 2011년 1월 1일 대통령 취임 이후 남편이 없는 여성 대통령의 의전과 정상 외교 형식을 둘러싸고 많은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브라질은 정-부통령제를 택하고 있어 주요 행사에서 미셸 테메르 부통령이 호세프 대통령을 보좌한다. 호세프 대통령의 국내외 방문 일정에 외동딸 파울라가 수행하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다.

리더십 부드러운 카리스마
강인하면서도 부드럽고 어머니처럼 포근한 호세프 대통령의 리더십은 브라질 국민으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호세프 대통령은 80%에 육박하는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다. ‘호세프 효과’는 풀뿌리 선거 현장에서도 나타났다. 지난해 상파울루 시의원 선거에 나선 여성 출마자는 룰라 정부 때인 2008년보다 76% 이상 증가했다. 전국의 시의원 후보 가운데 여성 출마자 1백40여 명이 ‘지우마’라는 이름을 내걸고 출마하기도 했다.

인생 스토리 반독재 투쟁으로 투옥, ‘철의 여인’
호세프 대통령은 벨루오리존치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불가리아 출신으로, 1920년대에 불가리아 공산당에서 활동하다 탄압을 받아 프랑스를 거쳐 브라질로 이주했다. 아버지가 브라질에 정착한 후로는 법률가 겸 기업가로 성공하여 재산을 모았고, 그런 아버지 밑에서 그녀는 유복하게 자랐다. 그러나 그녀는 사회주의 사상에 심취하기 시작했으며, 1960년대 후반 군사독재 시절 반정부 게릴라 투쟁에 참여했다가 붙잡혀 1970~1972년 수감 생활을 했다. 석방 후 히우그란지두술 주로 이주하여 포르투알레그리의 히우그란지두술 연방 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1980년대 민주화 이후 민주노동당에 관계하며 히우그란지두술 주정부·주의회와 포르투알레그리 시청에서 일했다. 2000년 노동자당으로 옮겼고, 2003년 룰라 다 시우바 행정부 출범과 함께 자원부장관, 2005년 정무장관으로 임명되었다. 이후 그녀는 집권당의 가장 유력한 정치인으로 부상하였고, 룰라 다 시우바 대통령의 측근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리고 2010년 10월 브라질의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강력하면서도 부드러운 카리스마와 추진력으로 ‘브라질의 대처’로 불리며, 2014년 대선에서도 당선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관저 대통령궁에 거주, 가이드 투어도 진행
호세프 대통령은 팔라시오 도 플라나우토(Palacio do Planalto)라는 대통령궁에 산다. 팔라시오는 궁전, 공관, 관저 등을 의미하는 포르투갈어이고, 플라나우토는 브라질리아가 고원지대에 있어 붙은 명칭이다. 부통령을 비롯한 대통령의 측근들이 이곳에서 근무한다. 대통령과 가족이 거주하는 곳, 다시 말해 관저는 ‘팔라시오 다 아우보라다(Palacio da Alvorada)’다. 팔라시오 도 플라나우토의 뒤쪽에 있다. 팔라시오 도 플라나우토는 브라질리아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물이다. 단순하면서 세련되고 현대적인 외형을 갖추고 있다. 4층 건물이며 외부에는 조각품을 연상시키는 기둥이 설치돼 있다.
전체 면적은 약 3만6천㎡(약 1만8백90평)다. 팔라시오 도 플라나우토 주변에는 4개의 부속 건물이 있으며, 일요일에 한해 아침 9시 30분부터 오후 1시까지 일반에게 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해왔다. 20분짜리 가이드 투어도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호세프 대통령의 근무시간에도 건물 일부를 공개해 화제가 되고 있다. 팔라시오 도 플라나우토가 관광 명소가 된 셈이다. 간혹 멀리서나마 호세프 대통령의 모습을 볼 수도 있다. 대통령은 주로 경호원과 함께 북쪽 출입구를 이용한다. 우리나라보다는 덜하지만 브라질 역시 대통령에 대한 경호는 철저하다. 군 병력도 팔라시오 도 플라나우토 근처에 주둔하고 있다.

라이프스타일 외부 행사 외 집무실에서 주로 생활
올해 65세인 호세프 대통령은 두 차례 이혼 경력이 있으며, 10여 년 전부터 혼자 살고 있다. 자녀로는 외동딸 파울라 호세프 아라우조(35세)만을 두었다. 2010년 대선 유세 기간에 파울라가 아들을 낳아 호세프는 할머니가 됐다. 호세프 대통령은 별다른 가족이 없는 데다 다분히 워커홀릭 기질이 있어 집무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고, 그러다 보니 집무실에서 식사하는 경우가 잦다. 집무실에서 식사하는 습관은 수석장관 시절부터 생겼다고 한다. 별다른 외부 행사가 없으면 그녀의 식사는 관저 직원들에 의해 집무실로 배달된다. 각료나 측근, 대통령실 직원들이 식사 파트너다.


헤어&패션 스타일 서민 이미지, 아줌마 스타일 고수
호세프 대통령은 2010년 대선 유세 과정에서 친서민 이미지를 부각하는 데 주력했다. 이른바 ‘아줌마 전략’이었다. 머리 스타일부터 복장, 행동에 이르기까지 다정다감한 이웃집 아주머니 같은 모습으로 변신해 유권자들에게 다가선 것이다. 두꺼운 안경을 벗고 어깨까지 내려오던 머리는 단정한 쇼트커트로 바꿨다. 호세프의 이미지 변신은 국민으로부터 호감을 샀다. 호세프는 달라진 모습으로 “국민 위에 군림하는 대통령이 아닌 보살피는 대통령이 되겠다”며 유권자의 감성에 호소했고, 이런 전략은 호세프를 ‘브라질의 어머니’로 각인하는 데 일조했다. 당선 이후에도 그녀의 스타일은 큰 변화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호주 줄리아 길라드 총리

길라드 호주 총리는 호주 역사상 첫 여성 총리이자 이민자(영국) 출신 총리다. 호주의 진보정당인 노동당 대표로 2010년 6월 24일부터 제 27대 호주연방 총리직을 맡고 있다. 예술과 법을 전공한 후 변호사로 활동하다 1996년 빅토리아 주 야당 대표인 존 브럼비의 비서실장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호주 사람들은 그녀를 ‘빨강머리 백조’와 ‘조디 길라드’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강렬한 오렌지톤의 헤어 컬러에 긴 목, 그리고 영화배우 조디 포스터와 닮은 외모 때문에 붙은 별명이다.

리더십 단아한 이미지와 다른 거침없는 발언과 소신
그녀는 온화한 성품의 소유자다. 하지만 야권의 성차별주의를 맹렬히 비난하는 등 정책 대결에서 여전사 같은 모습도 보여준다. 겉으로 보이는 내성적인 이미지와는 반대로 꿋꿋이 자신의 정치 소신을 밀어붙여, 카리스마 넘치는 ‘호주의 마거릿 대처’로 통한다. 케빈 러드 총리를 찾아가 담판을 벌이며 사임을 유도하는 등 거침없고 호탕한 성격으로 호주 정가의 ‘여장부’로 통하기도 한다.

인생스토리 광부의 딸 - 호주이민 - 변호사 - 여성총리
1961년 영국 웨일스 배리에서 태어난 길라드 총리는 어려서부터 앓던 기관지폐렴을 고치기 위해 좀 더 따뜻한 곳으로 이주하려는 부모의 뜻에 따라 1966년 호주 애들레이드로 이민을 갔다. 이 때문에 호주 최초의 여성 총리라는 기록에 최초의 이민자 출신 총리라는 기록을 보태게 되었다. 아버지는 원래 광부였지만 호주에서는 정신병원 간호사로 일했고, 어머니는 동네 구세군 양로원에서 일했다. 전형적인 호주 서민 가정 출신인 셈이다. 그녀는 명문 멜버른대학에서 예술과 법률을 전공하고, 1987년부터 대형 로펌에서 노동관계법 전문 변호사로 활약했으며, 1990년 만 29세의 나이로 이 회사의 파트너로 임명되었다. 또 호주학생연합(ANU)의 대표를 맡으며 학생운동에 앞장섰고, 진보 성향의 ‘소셜리스트 포럼’ 사무총장을 맡으며 자연스럽게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았다.
이후 2007년 11월 케빈 러드 총리의 노동당이 집권에 성공하면서 부총리 겸 교육·고용·노사관계 장관에 발탁되었다. 부총리로서 케빈 러드 총리의 그림자로 불리던 그녀는 호주 역사상 유례 없는 일대 쿠데타로 케빈 러드 총리를 실각시키고 마침내 2010년 6월, 제 27대 호주 총리에 올랐다. 독선적 당 운영과 당내 지지율 하락으로 러드 총리가 고전하자, 당시 2인자이던 길라드가 총리 집무실로 찾아가 독대하며 용퇴를 요구하는 일대 정변을 일으킨 결과였다. 하지만 국민의 선택이 아닌, 당내 경선을 통해 중간에 총리로 임명된 길라드 총리의 입지 때문에 당선 이후 크게 달라진 변화는 없다.
공식적으로 결혼하지 않은 그녀가 처음 교육부장관에 임명되었을 때, 호주의 보수 언론은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도 낳아보지 않은 여자가 어떻게 교육과 육아에 대한 정책을 펼쳐가느냐며 비아냥거렸다. 이때 길라드 총리는 “나는 국제무대에서 정치쇼를 하느니, 아이들의 교육 현장을 찾겠다”는 발언으로 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호주 학교의 경쟁력을 강화해 세계 5위권으로 진입시킨다는 목표로 ‘호주 교육법’을 제정했다. 진보 성향의 그녀는 공개적으로 여성의 낙태 권리를 지지하고, 동성 결혼 입법에도 긍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호주 내 보수 정치권의 성차별적 편견과도 과감히 맞서 양성 평등을 촉구하는 등 적극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

관저 캔버라와 시드니 두 군데 공관에서 거주
길라드 총리는 수도인 캔버라와 시드니 두 군데 공관에서 가족과 함께 생활한다. 캔버라의 공관을 ‘더 로지(the lodge)’라고 부르는데 1927년에 완공된 방 40개의 조지안 스타일 건물이다. 의회 기간 중에는 주로 캔버라에 거주한다. 각국 외교사절과 국빈 만찬 등을 이곳에서 하는데, 총리에 따라서는 시드니 공관인 ‘킬리빌리 하우스’를 선호해 이곳에서 거주하며 캔버라로 출퇴근하는 경우도 있다. 시드니의 킬리빌리 하우스는 오페라 하우스가 바라보이는 하버에 자리하며 1854년에 건립된 건물을 개축해 공관으로 쓰고 있다. 두 곳 모두 접견과 파티에 필요한 각 부서의 전문 스태프가 상주하고, 길라드 총리의 가족으로는 연인인 팀 매티슨만이 함께 거주한다.

라이프스타일 미용사 출신 남자친구와 동거
남의 이목을 두려워하지 않는 길라드 총리는 사생활도 매우 ‘자유로운 영혼’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동안 알려진 남자 파트너만도 4명에 이르는데, 이 중에는 길라드 내각에서 무역부장관으로 일하는 에머슨 의원도 있다. 길라드 총리는 공식적으로 미혼이지만 현재 함께 사는 남자친구는 있다. 정식 남편이 아닌, 동거남인 파트너 팀 매티슨이다. 1957년생인 매티슨은 길라드 총리가 다니던 단골 미용실의 전직 미용사 출신으로, 2006년에 만나 1년 만에 본격적으로 가까워졌다. 이혼남이자 세 아이의 아버지인 매티슨은 현재 파트너의 지위로 총리의 모든 공식 행사에 참석하는 ‘퍼스트맨’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
각국의 퍼스트레이디 모임에 유일한 청일점으로 참석해 화제를 모으곤 하는 매티슨은 총리의 주요 일정에 따라 다니며 비서 이상의 역할을 수행하는데, 현재는 각종 자선 행사와 남성건강협회 등의 홍보대사를 역임하고 있다. 여성 정치인에 대한 편견에 과감하게 맞서며 정책으로 승부하는 길라드 총리는 외모를 가꾸고 자신을 표현하는 데도 적극적이다. 하이힐을 즐겨 신고 화려한 액세서리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수한다. 지나치게 높은 하이힐 때문에 몇 번이나 위험을 겪으며 언론의 집중을 받기도 했다.
인도 순방 중 공식 행사에서 하이힐이 잔디에 박히며 균형을 잃고 넘어지기도 했고, 호주 원주민 시위대에 쫓겨 하이힐이 벗겨진 채 경호원의 품에 안겨 피신하는 민망한 모습이 언론에 공개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호주 연방경찰 특별경호팀의 과잉 경호가 문제가 되기도 했는데, 그럼에도 여전히 하이힐을 사랑한다. 그녀는 호주 럭비팀인 웨스턴 불독과 멜버른 스톰을 후원하는 럭비광이며, 한가할 때는 뜨개질로 카디건을 짜 주변에 선물하기도 한다. 남성 위주의 호주 정치 무대에서 과감하게 편견과 맞서며 자신만의 색깔을 견지하는 그녀는 거침없는 태도와 정책으로 승부하며 오늘도 하이힐에 빨간 단발을 휘날리며 현장을 누비고 있다.

헤어&패션 스타일 빨간 단발, 높은 하이힐과 액세서리 고집
길라드 총리의 패션은 보수적이지만 유행에 뒤처지지 않은 프로페셔널한 스타일로 평가된다. 주로 공식 석상에는 흰색과 오렌지 색상의 밝은 재킷과 슈트를 즐겨 입고 항상 귀고리나 목걸이 등 액세서리를 착용한다. 스커트보다는 바지 차림으로 현장을 누비는 활동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패션 전문가들도 길라드 총리는 좀 지루하긴 하지만 때와 장소에 따라 자신만의 스타일을 적절하게 이용할 줄 아는 센스를 지녔다고 평가한다. 특히 해외 순방이나 국제회의 석상에서 길라드 총리의 패션 감각은 주목받고 있는데, 각국 정상들이 모인 G20회의에서 베스트 드레서로 뽑히기도 했다. 고집스럽지만 ‘I Made My Choices’를 외치는 길라드 스타일은 상큼하면서도 기품을 잃지 않는 여성 정치인의 면모를 보여준다.

CREDIT INFO

취재
정은혜, 김재순, 신영식, 이순희
2013년 02월호

2013년 02월호

취재
정은혜, 김재순, 신영식, 이순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