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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 hot chilipeppers

On February 06, 2012 0

여기 국적도 생김새도 성격도 확연히 다른 패션 디자이너 4명이 있다. 하나의 공통점을 꼽자면 패션이라는 까다롭기 그지없는 영역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완벽하게 구축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흥미로운 건 이미 슈퍼스타의 조짐이 보인다는 거다.



high times: pedro lourenco
많은 신인 디자이너들은 으레 언더그라운드 공연장 같은 곳에서 쇼를 펼친다. 이것은 패션 인큐베이터로서의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함이기도 하고, 가능한 한 최소의 예산 안에서 자신들이 가진 비전을 축소 버전으로라도 보여주기 위해서다(말하자면 어느 정도는 신인의 눈물겨움이요, 어느 정도는 허세라는 거다). 하지만 21세의 브라질 패션 신동 페드로 로렌초는 이런 과정을 모두 생략했다. 패션 디자이너이자 공장 소유주, 그리고 브라질 패션 신의 거물인 부모 밑에서 럭셔리하게 자랐기 때문일까?
그는 허세 따위와는 거리가 멀다. 그에 대해 '어린애답지 않다'거나 '특권층'이라고 비꼬아 말하는(한때 이브생로랑이 쿠튀르 컬렉션을 펼친 호사스러운 웨스틴 호텔에서 2010 F/W 파리 패션위크 데뷔를 한 뒤 특히 이런 말이 많았다) 비평가들도 한 가지 사실에는 동의한다. 바로 페드로 로렌초가 엄청난 재능을 타고났다는 점이다. 엄격하게 절제된 레더를 위주로 한 그의 첫 번째 컬렉션은 즉시 니콜라스 게스키에르와 견주어지는 평가를 받았으니 말 다했다. 흠잡을 데 없이 호화롭고 완벽한 그의 컬렉션을 보라. 좋은 집안 환경은 한편으론 패션계의 큰 수확일 수 있다.
"전 멋진 물건을 사랑하는 집안에서 자랐어요. 아주 어릴 때부터 부모님과 < 프리미어 비전 > (패브릭 페어)을 보러 여행을 다녔어요. 그래서 항상 멋진 패브릭을 생산하는 유럽 회사들과 가깝게 지낼 수 있었지요. 저로서는 좋은 것에 대한 취향을 발전시키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었어요." 동년배와 달리 로렌초는 '럭셔리의 말단 라인'에 어설프게 손대지 않는다. 그의 룩은 뻔뻔하고 부유한 종류에 속한다. 그러므로 로렌초를 입는 여성은 부유해야 한다. 그가 말하듯 "그 어메이징한 패브릭들"은 결코 싸지 않기 때문이다.
로렌초는 지난 시즌부터 프린트를 사용하는 새로운 탐험을 시작했다. 엽서에 나오는 앵무새와 야자수 프린트를 드레스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브라질 아티스트 렐리 드 오린즈 에 브라간차(Lelli de Orleans e Braganca)의 도움이 필요했다. 브라간차야말로 로렌초가 찾아 헤매는 "가장 절충적인 브라질리언 스타일"의 남미적 뿌리를 깊이 이해하는 아티스트 아닌가. 로렌초는 자신의 2012 S/S 컬렉션에 대해 브라질의 풍부한 패브릭에서 영감을 받아 추상적으로 연결시킨 화려한 리조트 스타일이라고 설명했으니, 이번 시즌엔 로렌초의 프린트 심화 학습의 결과를 볼 수 있겠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로렌초는 하이엔드 패션, 다시 말하면 '고급스러움'을 두고는 무엇과도 타협할 생각이 없다는 거다. "요즘은 패스트 패션 레이블 일색이다 보니 사람들이 디테일이나 퀄리티, 혹은 유니크한 것을 힘겹게 찾아다녀요. 럭셔리 시장이 다시 설 자리가 있다는 거죠. 패스트 패션에선 찾을 수 없는, 가장 질이 좋은 물건을 발견할 수 있는 곳 말입니다. 그게 바로 옷을 만드는 전통적인 방식이죠." 어떤가? 21세의 디자이너가 말하는 럭셔리에 대한 견해가.

- 프린트 드레스는 모두 PEDRO LOURENCO, 왼쪽 모델의 플라워 이어링은 CRUX, 메탈 뱅글은 LARUICCI, 메리제인 펌프스는 GAP, 오른쪽 모델의 오픈토 펌프스는 TOPSHOP.


사진 JAKOB AXELMAN 스타일리스트 KATEI BURNETT 헤어 TAKEO SUZUKI 메이크업 JENNY KANAVAROS 모델 VICTORIA SAVORY(NEW YORK MODELS), MARGARET QUALLEY(IMG)




curve appeal: david koma
지독한 여성스러움, 그리고 고도의 디테일로 누구 보다 빠르게 주목받은 런던의 신예 데이비드 코마는 10세 때 패션에 대한 첫 번째 계시를 받았다고 한다. "패션 TV에서 티에리 뮈글러에 대한 회고전을 보고 '저게 내가 원하는 거야'라고 생각했죠. 그러곤 더 많은 드로잉을 하기 시작했어요." 코마는 조지아 공화국에서 태어나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자랐다. 여성적인 형태에 열광하는 그는 이미 13세에 첫 번째 컬렉션을 선보였다. 심지어 지금 만드는 것과 유사한 코트 3벌은 그때 만든 것이라고 고백까지 했으니, 그는 패션이란 것에 단단히 미쳐 있는 꼬마였다. 그리고 불과 15세의 나이로 상트페테르부르크 패션위크에서 첫 번째 패션쇼를 펼쳤다(놀랍지 않은가!). 욕심 많은 그가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에서 공부하고자 런던으로 이사한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순서였다. 2009년 졸업 컬렉션에서 해로즈 디자인상(이전 수상자는 크리스토퍼 케인)을 수상했으며, 지금은 레이디 가가, 메간 폭스, 비욘세, 리한나, 셰릴 콜, 다프네 기네스 등의 셀러브리티를 팬으로 거느린 핫한 디자이너가 됐다. 물론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런던 부티크인 브라운 포커스는 그의 컬렉션 거의 전부를 사들일 수밖에 없었다. 2010년에는 런던패션협회의 뉴젠 스폰서십(떠오르는 신예가 런던패션위크에서 쇼를 할 수 있도록 돕는 기금으로 톱숍이 후원한다)을 받아 2011 S/S 패션위크에 공식적인 단독 데뷔 쇼를 펼쳐 보였다.
이 모든 성과에 대해 25세의 청년은 쿨하게 말한다. "그건 그냥 자연스럽게 일어난 일들이에요. 성공한 여성들이 제 옷을 입는 걸 보는 일은 거대한 찬사로 여겨지죠. 뭔가 제대로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비욘세가 2009년 MTV 유럽 뮤직 어워드 무대에서 곡선 형태의 메탈 조각으로 치장한 블랙 미니드레스를 입고 등장했을 때, 그 반응은 실로 엄청났더랬다(코마의 2009 F/W 컬렉션이었다). 비욘세의 뒤를 이어 그의 옷을 입기 위해 안달난 팝스타들의 길고 긴 행렬이란! 셀러브리티와의 긴밀한 릴레이션십이 마케팅과 세일즈에 큰 영향을 미치는 최근 패션계의 형국을 놓고 보자면, 코마는 어지간히 자존감이 높은 디자이너가 아니다. 그는 결코 자신이 먼저 그녀들에게 접근하지 않았다면서 자신의 옷을 입은 그녀들의 사진을 찾아 구글링을 하는 유치한 행동도 하지 않았음을 밝혀 두었다. '난놈'이라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게 아닐까?
지난 시즌 그는 속이 비치는 얇은 패브릭과 가죽 리본, 메탈 원형을 이용해 섬세한 작업에 몰두했다. 일본의 설치미술가 야요이 쿠사마에게서 영감을 받아 화려한 퍼 방울을 만들기도 하고, 러시아 출신 포토그래퍼 올렉 도우와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새로운 프린트도 구상했다. "주위를 뛰어다니며 이런 것들을 한데 모을 생각입니다. 이제 시작하는 입장이니만큼 가능한 한 많은 것을 경험하기 위해 노력할 거예요." 끊임없이 배우고 노력하겠다고 말하는 이 무서운 패션 천재는 2012 S/S 런던 패션위크에서 다시 한 번 뉴젠 스폰서십을 따냈다. "새로운 시즌에는 밝고, 깨끗하고, 여성스럽고, 미래주의적인 뭔가를 볼 수 있을 거예요.
종족이나 민족성을 연구하려고 여행을 했어요. 호주에서 아프리카, 하와이까지 서로 다른 대륙을 오가며 영감을 얻었죠. 아주 신선하지만 여전히 데이비드 코마다운 뭔가를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저는 여전히 무엇보다 몸을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느끼는 것이 항상 맞다고 여기고 그것을 충실하게 따르는 데이비드 코마. 그저 멋진 드레스 한 벌이 아니라 이토록 흔들림 없는 진중한 젊음이야말로 그의 팬임을 자청하게 하는 이유일 거다.


사진 JAKOB AXELMAN 스타일리스트 KATIE BURNETT 헤어 TAKEO SUZUKI 메이크업 JENNY KANAVAROS 모델 MARGARET QUALLEY(IMG)



weird modern: thomas tait
토머스 테이트를 찾아내는 것은 거의 미션 수준이다. 그의 웹사이트에도 그의 사진은 없다. 거기엔 '룩북은 요청 시에만 볼 수 있습니다'라는 심플한 텍스트만 자리할 뿐이다. 심지어 그의 스튜디오는 이스트 런던의 다 허물어지는 한 교회 뒤편에 숨어 있다. 왠지 미스터리한 인물 같다. 하지만 알고 보면 그는 숨기는 것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사소한 것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런던 패션위크에서 생애 두 번째 컬렉션을 끝마치고 코앞으로 다가온 세 번째 컬렉션을 준비하고 있는 24세의 테이트는 별자리 성향에 집착하는 엉뚱함과("전 사자자리지만 게자리의 감정도 가지고 있어요. 울부짖는 디바랍니다!") 시답잖은 포장을 싫어하는 솔직함을 갖춘("사람들은 항상 점심 먹을 돈으로 패션 잡지를 샀다는 둥 하는 눈물샘 자극하는 이야기를 원해요. 하지만 어린 시절에 저는 패션 감각이 전혀 없었어요"), 그저 너무나 바쁜("낮잠을 잘 수 있는 사람이 제일 부러워요") 패션 디자이너일 뿐이다.
테이트는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의 MFA 프로그램을 이수한 최연소 졸업생이다(졸업 당시 그는 20세였다). 그리고 2010년에는 도체스터 어워드의 첫 수상자가 됐다. 그뿐 아니라 그의 레이블을 위해 사용하도록 4만 달러(약 5천만원)에 이르는 지원금도 받았다. "하지만 이런 결과가 하룻밤 사이에 이뤄진 건 아니에요. 캐나다의 한 기술대학교를 다녔죠. 아주 빡빡한 과정이었어요. 수업 첫날 한 교수님이 공업용 재봉틀 앞에 우리를 앉혀놓고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자, 시작하세요' 신입생 시절에는 40명이 함께 수업을 들었는데 2학년 말이 되자 수강생은 12명으로 줄었죠." 격렬한 훈련 덕분에 결국 큰 성과를 내게 되었다. "만약 그때 혹독하게 트레이닝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처럼 디자인할 수 없었을 거예요. 그곳에서 저는 3D로 생각하는 방법을 배웠어요."
실제로 테이트가 만드는 옷의 구조는 재단의 수준을 넘어선 것처럼 보인다. 2012 S/S 컬렉션에서 예를 들어보자. 어떤 옷은 복잡하게 접힌 패턴을 조립한 것인데, 가만히 살펴보면 한 장의 화이트 레더로 만들었다는 걸 알 수 있다. 화이트 실크 저지는 색감과 광택 있는 패브릭을 덧댄 후 다시 플리츠를 넣는 방식을 채택했다. 런웨이는 하늘에서 떨어진 천사처럼 차려입은 모델들이 갤러리 주인 행세를 하는 퍼레이드처럼 보였다. "모두를 위한 옷을 만들지 않는다는 것쯤은 저도 잘 알아요. 하지만 패션계는 아주 친절해요. 다양성을 인정해주는 분위기랄까. 저는 만족스러워요." 런던 브라운 포커스에 자신의 컬렉션을 선보이는 패션 디자이너라면 소수의 여성만을 위한 옷을 만들어도 괜찮지 않을까? 어쨌든 테이트의 남다르게 모던한 취향은 안목이 까다로운 브라운 포커스 바이어에게 인정받고 있으니 말이다.
"상어는 계속 움직여야만 살 수 있는 동물이에요. 그 사실을 안 순간 나도 상어처럼 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사람들은 상어가 사악하다고 생각해요. 실은 아주 매력적인데 말이에요. 무서운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는 거, 그게 바로 포인트죠. 사람들이 저를 볼 때 그냥 옷 만들면서 해크니에 거주하는 어린애로 봐줬으면 해요. 전 무서운 사람이 아니랍니다!" 물론 테이트는 집중력이 뛰어난 사람일지는 몰라도 무서운 사람은 아니다. 우윳빛 피부에 팀 버튼식의 괴상하면서도 근사한 미소, 조니 뎁의 쿨한 스타일을 지닌 토머스 테이트를 대체 누가 무서워할진 모르겠지만.

- 톱과 팬츠는 THOMAS TAIT, 선글라스는 CUTLER & GROSS BY THOMAS TAIT, 네크리스와 브레이슬릿은 SHOUROUK, 진주 브레이슬릿은 MIU MIU, 삭스는 FALKE, 스니커즈는 NIKE BY THOMAS TAIT.

사진 RENE VAILE 스타일리스트 ELLE WERLIN·헤어 AYUMI YAMAMOTO·메이크업 SAMANTHA TRINH·모델 SOFYA(NEXT)



gentle silhouette: cy choi
세상에는 좋고 싫음의 경계가 단호한 사람이 있고, 모호한 사람이 있다. 어떤 대상을 볼 때 매력적인 부분을 먼저 보는 사람이 있고, 그저 싫은 점만 찾아내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좀 별론데'라고 취급당하는 것에 대해서도 기적처럼 매력을 찾아내는 사람이 있다. 패션 디자이너 최철용이 그렇다. "좋아하는 패션 디자이너도, 아티스트도 너무 많아요. 그래서 한 사람을 꼽으라는 질문에는 대답하기 힘들어요." 그렇다고 모든 것에 감탄하는 쉬운 남자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최철용은 패션 디자이너가 된 계기를 말하면서 "본능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그의 입에서 천천히 발음되는 텍스트는 하나같이 멋지다). 그렇다면 밀라노로 떠난 것도 본능이었을까? "1990년대는 이탈리아 패션이야말로 쿨함의 대명사였어요. 조르지오 아르마니, 프라다, 베르사체, 돌체 앤 가바나…. 그들이 만들어내는 완벽한 퀄리티를 배우고 싶었어요." 그는 물론 '본능적으로' 홍익대학교에서 밀라노 도무스 아카데미로 베이스를 옮겼다. 그리고 2004년 밀라노 스튜디오 모다에서 1등을 차지했다. "도무스를 졸업하고 멜팅 폿에서 일할 때 다리오 마란곤이라는 친구를 만났어요. 그리고 그와 함께 아트 스튜디오를 오픈해 드레스투킬과 랭글러 등 여러 패션 브랜드의 컨설팅을 시작하게 됐죠.
아주 유쾌한 작업이었어요." 단지 옷을 만드는 것 이상, 말하자면 복잡다단한 패션 마케팅과 브랜드 전략을 몸으로 배워나간 거다. 그 과정에서 최철용은 자신의 레이블인 시와이 초이의 가닥을 잡아갔다. 2009년, 드디어 시와이 초이는 탄생했고, 2011년에는 삼성패션디자인펀드(SFDF)를 수상했다. 10만 달러(약 1억2천만원)가 훌쩍 넘는 후원금도 받았다. "물질적인 것뿐이 아니에요. 정신적인 차원에서 많은 걸 얻었어요. 자신감과 용기 같은 거 말이에요."
신기하게도 그의 작업은 텍스트에서 시작된다. "구체적인 이미지에서 시작하면 생각이 제한되는 거 같아요. 저는 주로 텍스트에서 시작해요. 그리고 텍스트의 뉘앙스를 이미지화하는 거죠. 2012 S/S 시즌에는 '외연과 내연'이에요. 외연이라는 것이 바로 이미지고, 내연은 그 이미지가 가진 가치 같은 거죠. 며칠 후 파리에서 발표할 2012 F/W는 '접붙이기'에서 시작했고요." 2012 S/S 서울 컬렉션에서 선보인 시와이 초이의 런웨이에는 다양한 인종의 남자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프로페셔널 모델이 아니라 일반인이었다. "피부색이 다른 일반 사람이 같은 옷을 입었을 때 어떤 느낌이 드는지 궁금했어요. 이것도 일종의 외연과 내연이죠. 각기 다른 인종은 외연이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느낌은 내연이고." 그는 특정한 부류의 사람을 염두에 두고 옷을 만들지 않는다. 그저 일반 사람을 위한 옷을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저는 일상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일반 사람을 좋아해요. 제가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것도 일상이고요. 파리에 갈 때마다 일부러 주변의 여러 나라에 들러 서점이나 아트페어를 둘러봐요. 그곳에서도 사람들의 일상을 관찰하는 거죠. 나와 다른 일상을요."
그는 패션이라는 바운더리가 하나의 커다란 놀이터라고 정의한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 옷도 만들고, 그림도 그리고, 사진도 찍고, 글도 쓰고, 음악도 듣고, 커피도 마시는 그런 곳. "저는 아직도 노는 게 너무 재밌어요." 좋아하는 모든 것이 일상 안에 있기에 그는 행복하다. "인생에 대해서는 별로 궁금한 게 없어요. 그냥 받아들이는 거죠." 갑자기 질풍노도의 '오춘기'가 찾아오거들랑, 우리는 가로수길의 시와이 초이로 향하면 된다. 최철용이 친절한 말투와 따뜻한 실루엣의 옷으로 지루하고 한숨 나오는 일상을 다시 사랑하는 법을 알려줄 거다.

-모든 슈트는 CY CHOI.

사진 KIM KWON JIN 헤어 & 메이크업 JANG SU IL모델 ALBAN, HASANOV

editor KANG HYO GE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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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KWON JIN
헤어 & 메이크업
JANG SU IL
모델
ALBAN, HASAN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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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G HYO GENE

2012년 02월호

이달의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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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KWON 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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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AN, HASAN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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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G HYO GE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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