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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인터폴

On October 01, 2010 1

뉴욕 출신 밴드 인터폴에게는 최근 몇 가지 변화가 생겼다. 밴드에서 가장 유명한 멤버인 카를로스 덴즐러가 탈퇴했고, 나머지 멤버는 메이저 레이블이 아닌 인디 레이블로 돌아가서 4집 음반을 발표한 것. 상황이 좋아 보이지는 않지만, 그건 음악을 들어보고 판단할 일이다.

인터폴이 3년 만에 뉴욕 공연을 위해 무대에 올랐을 때, 밀크 스튜디오의 야외 창고를 가득 메운 팬들은 트위터를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햇볕에 지쳐 있었다. 지난 6월 말에 열린 이 공연은 규모는 작을지 몰라도 큰 의미를 갖고 있었다. 먼저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의 마지막 뉴욕 콘서트 이후 밴드는 인원이 줄었다. 창단 멤버이자 뉴욕 다운타운의 주민인 베이시스트 카를로스 덴즐러는 지난 5월 밴드를 공식적으로 탈퇴했다. 나머지 멤버는 밴드가 3집 음반 를 낸 메이저 레이블인 캐피톨(Capitol)에서, 자신의 데뷔 음반 를 발표한 인디 레이블인 마타도어(Matador)로 다시 돌아갔다. 그러므로 밴드가 붉은 조명 속에서 새로운 음반의 1번 트랙인 ‘Success’를 선보인 것은 상당히 적절했다. 코러스 부분이 생각에 잠기게 하는 단조로 변하는 이 곡에는 다음과 같은 가사가 있다. ‘나는 성공했다, 나는 오랫동안 경쟁하지 않을 것이다.’“성공은 주관적인 개념입니다.” 쇼가 열리기 몇 시간 전에 프런트맨인 폴 뱅크스는 말했다. “제 경우에 성공이란 은퇴해서 해변을 청소하거나 백만 장의 음반을 파는 것입니다.” 후자는 캐피톨이 2007년에 생각했을 법한 일이다. 당시 이 레이블은 인터폴이 미국 중산층을 타깃으로 세 번째 음반을 선보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러나 캐피톨의 모회사인 EMI는 망설였고, 밴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음반 산업은 누구에게 책임을 전가하기 힘들 정도로 너무 혼란스럽죠. 그렇기 때문에 회사를 비난하고 싶진 않았어요”라고 뱅크스는 그때의 경험에 대해 말한다. “밴드를 위해서라면 큰 성공도 받아들였을 겁니다. 저는 우리가 인디 밴드 형태로 유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 음악이 아레나 록(출중한 기교와 대규모 자본으로 무장한 록을 말하는 것으로 대형 경기장을 뜻하는 ‘Arena’에서 유래했다)이든 아니든 그건 제 알 바가 아닙니다.”

이들이 자체 제작한 네 번째 정규 음반 은 아주 우울한 스타디움도 뒤흔들 만한 힘을 가지고 있다. 인터폴의 위력은 올가을 U2의 유럽 투어에서 장식할 오프닝 무대에서도 확실히 증명될 것이다. 데뷔 음반 , 2004년의 2집 음반 , 그리고 3집 가 활발한 리프(짧은 마디를 반복해서 연주하는 것)로 시작해 춤추기 좋거나 통렬한 음악으로 바뀌며 그들의 의도를 일찍 드러낸 반면, 은 플롯이 복잡한 예술 영화처럼 펼쳐진다. 악기들은 서로 착착 포개져 몽롱하게 취하게 만드는 사운드의 벽을 만든다. “과거에 한 것보다 좀 더 세련된 방식으로 이야기하려고 애썼어요.” 기타리스트인 대니얼 케슬러는 2008년 카를로스 덴즐러와 함께 시작한 작곡 과정에 대해 말했다. “사실 덴즐러는 이 음반 곳곳에 흔적을 남겼다”고 케슬러는 말한다. 그의 미끄러지는 베이스 라인은 드러머인 샘 포가리노의 복잡한 백비트와 케슬러의 조화롭게 울려 퍼지는 기타 연주 속에 은은하게 섞여 들어간다. 덴즐러의 탈퇴는 그가 자신의 파트를 녹음한 직후 밴드를 떠나기로 혼자 결정한 일이라고 밴드는 말했다. 덴즐러는 펜더의 재즈 베이스 기타로 공격적인 스타카토 연주 스타일부터 시작해 한 올의 흐트러짐도 없는 헤어스타일과 독일 군복 스타일의 의상으로 화제가 된 패션까지, 인터폴에서 프런트맨보다 유명세를 떨친 베이시스트였다. 그는 지난해 라는 제목의 명성과 편집증에 관한 단편 영화를 발표했는데, 그의 새로운 관심사는 영화음악 작곡이었다.

“저는 그것이 자랑스러웠어요. 왜냐하면 경솔한 결정이 아니었으니까요. 카를로스의 재능에 대해서라면 몇 달이라도 얘기할 수 있어요”라고 케슬러가 말하자 뱅크스가 이렇게 덧붙였다. “자신이 빠져 있던 어떤 패턴에서 벗어나는 것은 대담한 결정입니다.” 그러나 2007년에 뱅크스는 한 기자에게 “어떤 멤버가 떠나든 밴드는 지속될 수 있다. 하지만 인터폴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함께하고 있다. “한때 우리도 해체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어요”라고 포가리노는 말한다. “하지만 밴드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현실에 직면하게 되면 ‘잠깐 기다려봐, 우린 아직 끝나지 않았어’라고 말하게 됩니다.” 새 음반은 4명의 오리지널 멤버가 함께 녹음을 했다. 그러므로 이건 여전히 인터폴의 음반이다. 당분간은 말이다(투어 때는 베이시스트 데이비드 파조와 시크릿 머신스(The Secret Machines)의 키보디스트인 브랜든 커티스가 밴드와 함께 공연한다).

뱅크스는 2009년 줄리안 플렌티라는 이름으로 솔로 음반 을 발표했지만,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주제인 ‘섹스와 죽음’을 밴드의 음악에서도 다루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냥 그것뿐이에요”라고 그는 냉정하게 말한다. 비록 ‘정치’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인터폴의 음반(‘Barricade’)에 들어가 있는 건 인정했지만 말이다. “부시 시절에는 대통령을 욕하는 밴드의 일원이 되고 싶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가 멍청하고 모든 것이 끔찍하다는 생각은 했습니다.” 새 음반의 가사는 뱅크스답다. 다시 말해, 고집스러울 정도로 명료하지 않다. 케슬러와 포가리노는 프런트맨의 생각을 완전히 신뢰한다. 밴드는 철저히 민주적으로 굴러가고 있지만, 케슬러는 “보컬은 폴의 세계예요”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가 마침내 자신의 가사에 만족한다면 그 말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자신을 어두운 곳에 놓아두었다는 걸 의미합니다.” 뱅크스는 예전의 음반보다 이번 음반에 수록된 곡들을 작곡하는 게 더 쉬웠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번 음반의 분위기를 한마디로 요약해주는 트랙은 ‘Always Malaise(The Man I Am)’이라고 덧붙였다. 이 곡은 어두운 주제를 중심으로 교향곡처럼 펼쳐진다. “정말 기묘하지만 귀에 쏙 들어오는 코러스 부분도 있습니다”라고 뱅크스는 즐겁게 말한다. 지금은 밴드 멤버 중 그 누구도 인터폴의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이들이 밀크 스튜디오의 무대 위에서 예전만큼 음악적으로 결집력이 있었다는 건 분명했다. 성큼성큼 걷던 카를로스 덴즐러가 다리를 넓게 벌리고 포즈를 취하던 것과 대조적으로 데이비드 파조가 조용히 숨어서 연주할 때, 다른 멤버는 모든 음표를 정확하고 에너지 넘치게 연주했다. 이들의 초창기 노래 중 하나인 ‘PDA’에서 격렬하게 기타와 드럼을 치자 관중은 보름달 아래서 환호하며 미친 듯이 폴짝폴짝 뛰었다. 그것은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남쪽으로 20블록 떨어진 곳에서 일어난 진정한 아레나 록의 순간이었다. 그리고 인터폴의 마지막 뉴욕 콘서트 때보다 친밀한 세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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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DOMINIC RAWLE

Credit Info

월간 나일론

디지털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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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MINIC RAW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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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MINIC RAWLE

1 Comment

김수 2009-09-30

캘빈 청바지도 이쁘지만 요즘 가방도 너무 예쁘네요ㅋ 이제 악세서리도 참 잘 만드는 것 같네요ㅋ 제 가방도 캘빈 진 가방인데 방수천에다가 디자인도 남자에게 정말 인기 있는 디자인이라 저도 잘 매고 다녀요 ㅋ 책도 많이 들어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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