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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춤형 빈티지 시대

On June 11, 2010 1

스테이크의 구운 정도와 소스를 주문하듯, 낡은 정도와 오염된 디테일을 주문할 수 있는 빈티지 아이템이 있다면?

+ 운동화를 살 때마다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있다. ‘더럽히기’. 최근엔 푸마의 TX-3 스니커즈를 사자마자 강박적으로 2주간을 질질 끌고 다녔다. 1985년에 만든 모델을 다시 출시한 모델이라 디자인과 색감은 옛것 같았지만, 새것은 새것이니까 말이다. 자신의 몸에 잘 맞는 청바지를 만들기 위해 새 청바지를 입고 욕조에 입수한다는 어느 청바지 마니아의 열정은 따라갈 수 없지만, 빈티지 믹스 매치 유전자를 따로 보유하고 태어나는 것 같은 그 빌어먹을 런던 패션에 근접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왜 그런 거 있지 않나. 유르겐 텔러가 찍은 이번 시즌 미소니의 캠페인 광고처럼 시간이 느껴지는 멋 같은 것.
빈티지 아이템은 지금에 없는 디테일과 자연스럽게 낡은 데서 오는 편안함뿐만 아니라 ‘사연’을 덤으로 사는 재미를 준다. 동묘 도깨비 시장과 황학동 광장시장에서 ‘구제’를 파는 상인들은 다음과 같은 말로 우리를 현혹한다. “아가씨, 이 선글라스 4천원에 줄게. 이게 6·25 때 나온 거야.” 이런 상술은 뉴욕도 별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맨해튼의 한 빈티지 숍에서 은색 구두를 하나 구입한 지인은 “이게 2차 대전을 견딘 구두야”라고 자랑했다. 뉴욕의 왕발 여자들이 신지 못한 구두가 자신의 발에 안착한 과정을 무척 감동스러워하면서. 하지만 발품을 팔아 머릿속에 그리던 빈티지 아이템을 손에 넣는 과정은 생각처럼 그리 쉽지 않다. 락스로 탈색한 데님 셔츠는 구제 시장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지만, 그 얼룩의 크기와 색이 빠진 정도가 맘에 안 들면 어쩐다? 그럴 때는 정말 ‘주문’이라도 넣고 싶은 심정이다.


그런데 얼마 전 입버릇처럼 말하던 맞춤형 빈티지가 의외의 장르에서 제작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헬멧. 개성 있는 헬멧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커스텀 헬멧을 제작하는 사이트에 들어가보니 페인트칠을 덕지덕지하거나 래커로 그림을 그리는 식으로 커스텀 한 샘플 사진들이 올라와 있었다, 그중 가장 맘에 드는 디자인은 보라색 마카펜으로 정성스럽게(?) 낙서를 해놓은 하얀 헬멧. 마틴 마르지엘라가 루비 헬멧과 콜라보레이션한 스페셜 버전을 보고 따라 했을 가능성이 크지만, 그래도 헬멧 중간에 여자친구의 이름을 넣어달라는 주문 사항이 애교스럽다. 또한 자전거가 패션 아이템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는 요즘엔 맞춤 제작하는 커스텀 바이크가 늘어나면서 빈티지 부품으로 각자의 취향에 맞는 자전거를 만드는 사람도 많이 보인다. DIY 가구 역시 빈티지 인테리어의 유행과 맞물려 페인트칠을 벗겨내고 반듯한 모서리를 닳게 하기 위해 열심히 사포질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


사실 이러한 빈티지 커스텀에 대한 수요는 마니아로부터 시작됐다. 일명 ‘대두 인형’으로 불리는 블라이스의 마니아는 자신의 인형을 이베이에서 비싸게 팔리는 빈티지 모델처럼 바꾸는 데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머리카락과 눈동자 색, 피부 톤, 그리고 메이크업 스타일까지 바꾸는 걸 보니 그야말로 대수술이다. 그나마 이 정도는 펜더의 렐릭 시리즈에 비하면 소박한 투자다. 1950~60년대 유명했던 모델을 다시 출시하는
‘리이슈’ 모델들로 엄청난 수입을 올린 펜더는 주문한 대로 기타에 세월을 입히는 ‘렐릭’ 시리즈를 자랑한다. 얼마 전 펜더로부터 헌정 기타를 받은 신중현은 1960년대 말에서 70년대 사이의 사양이어야 한다는 말과 함께 다음과 같은 추상적인 내용을 주문했다고 한다. “내 수십 년의 기타 인생이 어느 정도 묻어나게 해줘요.” 물론 우리는 그와 달리 훨씬 더 구체적이고 쪼잔한 주문을 해야 한다. 손잡이 나무 부분을 원하는 만큼 그을릴 수 있는(가죽 태닝과 비슷한 원리다) 것은 물론 기타 줄을 녹슬게 만들고 군데군데 스크래치를 낼 수 있으며 심지어는 ‘담뱃불에 탄 자국’까지 주문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커스텀 작업은 단순히 겉멋을 위한 것이 아니다. “구제 청바지를 입는 사람을 이해 못하는 것처럼 에이징 작업을 이해 못하는 사람도 있죠”라고 펜더 커스텀 숍의 매니저는 말한다. “하지만 빈티지 패션 아이템이 착용감이 다르듯 에이징 작업한 기타 역시 소리가 달라집니다.” 기타 연주자들이 말하는 그 ‘빈티지 사운드’를, 손가락에 물집이 잡히기 전에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또한 기타는 보관 상태만 좋으면 가격이 절대 떨어지지 않는 아이템 중 하나로, 제대로 된 가공을 거쳐 빈티지한 모델이 완성되면 가격이 10배까지 뛸 수 있다고. “살면서 몇 안 되는 기회예요. 시간을 돈으로 살 수 있는 기회.” 바야흐로 맞춤형 빈티지 시대가 왔건만, 세월을 사는 데 공짜는 없는 것 같다.

- 에디터 : 김가혜

- 사진 : 정재환

- 그래픽 : 홍승표 펜더의 스트라토캐스터 기타는 펜더 커스텀 숍(www.fendercustomshop.co.kr).


Credit Info

에디터
김가혜
사진
정재환
그래픽
홍승표 펜더의 스트라토캐스터 기타는 펜더 커스텀 숍
(www.fendercustomshop.co.kr)

2010년 06월호

이달의 목차
에디터
김가혜
사진
정재환
그래픽
홍승표 펜더의 스트라토캐스터 기타는 펜더 커스텀 숍
(www.fendercustomshop.co.kr)

1 Comment

이은지 2009-09-28

어떤 스타일에도 잘 매치가 되는 가죽 재킷은 매년 가을의 머스트해브 아이템이지만, 올해는 특히 갖고 싶네요~ 올 F/W 패션트렌트가 80년대 룩이 대세라서 어떻게 입어야할지 고민(?)이었는데 가죽 재킷과 함께라면 고민을 덜할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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