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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식 여행

On July 22, 2016 0

무라카미 하루키는 말했다. 여행은 때로는 지치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하는 것이라고. 그럼에도 그는 20여 년간 기록한 에세이에 여행에 대한 애증을 숱하게 드러냈다.

 

 

파고들면 제각기 다른 이유겠지만, 사람들 대부분이 무겁고 성가신 일상을 회피하고자 낯선 곳으로 떠난다. 그런데 쉬러 갈 요량이었지만 여행지에 도착하면 오히려 피곤해진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수면 흐름에 반전이라도 일으키듯 과하게 일찍 일어나서 액티비티를 하거나, 무겁게 가져온 책을 펴거나, 남는 건 이것뿐이라는 것처럼 휴대전화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거나.

무라카미 하루키는 1986년에 떠난 3년간의 유럽 여행을 계기로 <노르웨이의 숲>을 썼다. 그는 이에 그치지 않고 낯선 땅을 여행하면서 경험한 신세계와 소설을 쓰는 과정을 담아 <먼 북소리>라는 여행기도 공개했다. 20년 넘게 공백기 없이 소설을 발표하면서도 홀연히 어디론가 떠나기를 즐겼던 하루키가 지치지 않고 여행기를 남길 수 있었던 건 그 과정이 지극히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구태여 내가 무얼 먹었고, 어디를 다녀왔는지 인스타그램에 공개하고 열화와 같은 ‘좋아요’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관종’ 격의 요란한 여행자와는 그 결을 달리한다. 이스트 햄프턴, 멕시코, 아메리카 대륙 횡단의 시간을 나열한 <나는 여행기를 이렇게 쓴다>에서 “여행이라는 것 자체가 여행자에게 의식의 변혁을 가져다주는 것이라면 여행을 묘사하고 기록하는 것도 그 움직임을 반영해야 한다”라고 읊조린 것처럼.

배낭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으며, 책자에 나온 관광지는 반드시 가봐야겠다고 결심하는 어린 여행자는 그의 여행기를 싱겁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하루키는 여행지에서 자신이 사랑하는 마라톤을 하고, 더 이상 험한 여행은 못하겠다고 선포한 부인의 비위를 맞추고, 지독히 애정하는 위스키나 와인을 마신다.

하지만 이 세계적인 중견 작가도 풋풋한 20대 배낭여행자처럼 패기로 추억거리를 만들기도 한다. 열흘 동안 구불거리는 길을 쉴 새 없이 달리는 버스에 올라타서 멕시코를 여행하다가 시끄러운 멕시코 음악과 공격적인 성향의 현지인에게 시달릴 때도 있고, 일본의 한 무인도에서 홀딱 벗고 2~3일간 책이나 완독하려다가 벌레 때문에 하루 만에 쫓겨오는 경험도 고스란히 여행기에 적었다.

상세한 감정과 일화를 묘사한 그의 에세이 때문에 오히려 매사에 사진기를 들이대는 관광객보다 순간을 즐기지 못하는 게 아니냐는 의문을 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는 여행지에서 만난 상황을 상세히 기록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터키와 이란의 국경 근처를 떠돌다가 들른 작은 마을에서 이국적인 아줌마를 마주쳤다면 그저 ‘보자기 아줌마, 터키’처럼 간략하게 단어만 나열해둔다. 이렇게 간단히 적었는데도 1988년의 그리스와 터키 여행기를 정리한 <비 내리는 그리스에서 불볕천지 터키까지>가 세상에 나왔다는 게 용하다. 물론, 이건 탁월한 그의 기억력과 순간 포착력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최근에 발간한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는 하루키가 한동안, 여행기는 쉬어볼까 하던 차에 낸 책이다. 꾸준히 해외에 체류하면서 감상을 정리하는 데 이골이 난 그도 완벽한 여행의 순간을 즐기는 데 좀 더 집중하고 싶었을 터. 하지만 어디 버릇을 남 주는 게 쉽던가. 잡지사는 가만히 놀리기에는 너무 아까운 그의 여행기에 언제나 목말라 있었고, 계속해서 청탁을 했다.

1993년부터 돌아다닌 보스턴, 포틀랜드, 핀란드, 아이슬란드, 토스카나를 비롯한 10편의 허세 없는 하루키식 무용담이 이 책에 실렸다. 하루키가 여행지에서 맡은 냄새, 들은 소리, 손끝에 전해진 감촉으로 우리는 낯선 도시를 만난다.

조금만 더하면 지구 한 바퀴를 돌 수 있을 것 같은 그도 아쉬운 게 있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오페라에 흠뻑 취해 있던 나날, 뉴욕에서 만난 여러 작가와의 대화, 다 녹슨 도요타 캠리를 타고 떠난 뉴질랜드 여행에 대한 기억을 미처 글로 정리하지 못한 일이다. 물론, 하루키 자신이 즐기는 데 집중한 순간이었기에 그 역시 의미는 있지만, 하루키의 아쉬움은 그의 또 다른 여행기를 만날 수 없게 된 우리에게도 온전히 전해진다.

한 해의 반이 지나갔고, 옷가지는 더없이 가벼워졌다. 하루키는 지금 어디서 무얼 느끼고 있을까.

무라카미 하루키는 말했다. 여행은 때로는 지치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하는 것이라고. 그럼에도 그는 20여 년간 기록한 에세이에 여행에 대한 애증을 숱하게 드러냈다.

Credit Info

EDITOR
KIM JI YOUNG
ILLUSTRATOR
NA SEUNG JUN
사진제공
학사상사 <비내리는 그리스에서 불볕천지 터키까지>, <나는 여행기를 이렇게 쓴다>

2016년 07월호

이달의 목차
EDITOR
KIM JI YOUNG
ILLUSTRATOR
NA SEUNG JUN
사진제공
학사상사 <비내리는 그리스에서 불볕천지 터키까지>, <나는 여행기를 이렇게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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